- 절집寺刹이야기

[대구] 팔공산 동화사

安永岩 2012. 9. 29. 02:30

 

중생들의 병을 고치는 약사여래 근본도량

민족의 영산 팔공산 동화사(桐華寺)

 

  동화사 동화문

 

 

2012년 9월 9일,일요일

칠곡 유학산 산행을 우천으로 인해 포기 하고 대신 들린 곳,동화사 !

동화사 서쪽문 '동화문'앞에 선 우리 일행들입니다.

짦게는 5,6년 길게는 30여년을 함께한 구룡포산악회 회원들입니다.

동화문을 통과하여 일행들과 헤어집니다.

왠냐하면 동화사를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함이지요.같이 움직이면 내가 원하는

동화사의 역사와 문화재,전각,풍경등을 찬찬히 돌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화사로 들어 가는 일주문이 2개인데 대부분 사람들은

여기보다 남문격인 봉황문을 주로 이용하지요.

우리는 칠곡에서 들리다 보니 서쪽에 위치한

 동화문으로 해서 동화사로 들어 갑니다.

 

 

동화문을 통과하여 바로 만나는 연못입니다.

연못 위 산기슭에 부도밭이 있는데 출입금지라 들어 가지는 못했습니다만은

부도암에 달린 보도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동화사의 전각 배치도입니다.

동화사는 부속 암자가 여럿 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동화사만 둘러 봅니다.

암자로는 동화사 서쪽에 대부분 위치해 있는데 비로암,부도암,염불암,양진암,내원암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쪽에 위치한 약수암,금당선원(스님들 수도처)도 있지요.

 

암자로 가는 갈림길에서 바로 내려 오면서 산허리를 휘~돌아 서면 마주 치는 동화사모습입니다.

 

 

동화사 전경입니다.

동화사는 493년(신라 소지왕 15년)에 극달화상이 창건하여 유가사(瑜伽寺)라 부르다가,

832년(흥덕왕7년)에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중창했는데

사찰 주변에 오동나무꽃이 상서롭게 피어 있어 동화사(桐오동나무동,華寺)라

고쳐 불렀다고 합니다.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의 본사입니다.

금산사,법주사와 함께 법상종 3대 사찰의 하나입니다.

 

 

 

사천왕상이 있는'응호문'입니다.

 

 

 

응호문을 통과하면 만나는 봉서루(鳳棲樓)입니다.

봉서루가 팔공산을  배경으로 자못 웅장합니다.

동화사는 봉소포란형(鳳巢抱卵形),즉 봉황이 알을 품은 모습의 지세라네요.

그래서 그런지 동화사는 봉鳳이 많습니다.봉서루,봉황문,봉황알...

봉서루 아래에 봉황알이 3개 있습니다.

참배객 두분이 기도를 하고 있네요

 

 

 

봉황알 3개

차례로 3개의 알을 보듬어 봅니다.

물론 소원을 빌면서 말입니다.

 

 

 

 

 

봉서루 옆에 있는 설법전입니다.

단일 건물로는 동화사 경내에서 제일 크네요 

일종의 강당인 셈이지요

큰스님의 가르침이 행해지는 곳입니다.

 

 

 

봉서루옆 석등,고목,원음각,그 뒤로 통일범종루가 우뚝합니다.

동화사는 1992년 통일을 기원하는 거대한 약사여래불을 세운 후로

통일이라는 이름이 곳곳에 많이 붙네요???

그냥 범종루가 아닌 '통일범종루'라 ~ 좀 그렇네요.

 

 

 

봉서루를 통과 하면 바로 대웅전입니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대웅전입니다만은 높은 기단위에 웅장하게 비상 하듯이 앉아 있습니다.

비가 오락 가락 하는 긎은 날씨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왔네요.

저마다 갖가지 소원을 갖고서~ 때론 그냥 관광차 들린 사람들도 많고요.

그래도 부처님은 다들 보살펴 줄겁니다.

 

 

 

동화사는 신라시대 때 창건된 이후 오늘날까지 8번 중창되었는데

지금의 대웅전은 1727년(영조 3)에서 1732년(영조 8) 사이에 건립되었다네요.

지금의 동화사 대부분의 전각들이 영조 때 많이 세워진 것이라네요

영조대왕은 동화사,팔공산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웃한 파계사에 250년된 영조임금나무가 있지요.

내부 불단 위에는 삼세불상(三世佛像)인

석가모니여래불,아미타여래불,약사여래불을 봉안하였습니다.

대웅전은 보물  제1563호입니다.

 

 

특히 동화사 대웅전의 정면의 문짝에 새겨진 꽃무늬 창살은 문화재 보물급입니다.

이는 부처님께 꽃을 공양한다는 불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가공하지 않은 아름드리나무를 기둥으로 사용하여

시각적으로 자연미와 함께 건물의 안정감을 돋보이게 합니다.

 

그리고 대웅전 바로 뒤 마당에 파묻혀 있다는 '금괴소동'을 아시나요?

 

얼마전 한 탈북자가 동화사 뒤 뜰에 금괴가 묻혀 있으니 발굴해야 한다는

보도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고 그 탈북자의 증언이 비교적 신빙성이 있어

문화재청에서 허가까지 난 상태인데 사찰측과 마찰로 인해 아직 발굴하지 못하고

있는데 최근에 한국은행까지 나서서 그 금괴가 6.25전쟁 때 분실된

한국은행에 보관되었던 금괴라는 것입니다.

하여튼 탈북자의 양아버지(82세)가 지금 북에 살아 있고 6.25전쟁 때 인민군이였다고 하니

그 양아버지가 묻어 놓았다고 하니 신빙성이 있기는 한데~ 과연 그 금괴는 누구의 것일까?

자그만치 40kg, 싯가 24억원 정도라니 입이 떡~벌어 지네...

서울이 적치하에 있을 당시 그 양아버지가 인민군였다고 하면  탈취한 금괴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그 탈북자 양아버지는 약탈자이네~ 그 탈북자 애기로는 양아버지가 사업을 크게 하여

돈을 많이 벌어 금괴를 준비하였다고 하지만 믿기 어려운 애기이네요

당연히 국고로 환수 조치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현행법으로는

 주인이 없을 때 발견자와 땅 소유자가 반반씩 갖게 되어 있다고 하니

이래저래 시꺼럽게 생겼네요. 결과가 어떻게 날지,아무튼 금괴가 있기는 한지?

파봐야하지 않을까? 이러한 금괴이야기로 최근에 동화사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고 하니 그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동화사를 찾을까?

실제로 이날도 대웅전 뒤를 돌아 보면서 금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은 대웅전 뒤 좁은 마당을 이리저리 둘러 보는

모습들이었습니다. 모두가 헛상이로다!!!ㅉㅉㅉ

 

 

 

 

스님이 수행하는 공간입니다.

 발이 길게 늘어져 있네요.

일요일이 아니고 평일이면 이 발이 올라 가 있겠죠.

 

대웅전 아래 석등과 당간지주

 

 

 

우리 회원님들 대웅전에 참배하고 나오네요.

대웅전에서 좌측으로 산신각,조사전,칠성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측은 영산전 가는 길입니다.

그 길에 백일홍이 아직도 한창입니다.

 

 

백일홍과 삼층석탑

 

통상적으로 대웅전 앞에 삼층석탑이 위치하는데

여기 동화사는 대웅전 옆,영산전 앞에 위치해 있습니다.

절에 비해 삼층석탑도 자그만합니다.

 

 

 

영산전입니다.

이 건물도 조선 영조 때 세워진 건물입니다.

靈山殿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기리고 그 행적을 표출시킨 전각인데

동화사 영산전은

석가삼존불을 중심으로 십육나한상이 좌우로 앉아 있습니다.

즉 나한전,응진전이라고도 하지요.

 

 

 

대웅전 동쪽 삼층석탑이라고 하지 않고 영산전 삼층석탑이라고 합니다.

삼층석탑이 백일홍과 영산전,그리고 뒷편 대나무,소나무와 잘 어울립니다.

 

 

삼층석탑에서 본 대웅전 모습입니다.

 

신검당과 대웅전

신검당의 돌담이 시골길 돌담처럼 정겹습니다.

 

종무소 뒷편에서 본 대웅전 모습입니다.

 

 

 

대웅전 좌측으로 약간 올라 간 곳에 차례로 산신각,조사전,칠성각이 있습니다.

 

 

 

최근에 지은 듯 단청이 없는 칠성각입니다.

칠성각 앞에는 마당이 있습니다.

그 마당 서편에 오래된 오동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일명 심지대사나무라고 하네요.

 

 

심지대사(心地大師) 나무

심지대사가 누굽니까? 동화사를 크게 중창한 큰 스님입니다.

심지대사는 신라 제41대 헌덕왕(憲德王)의 아들로써 15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된 인물입니다.

신라 흥덕왕 7년(832년) 심지대사가 중창할 때 한 겨울인데도 오동나무가 상서롭게 꽃을 피웠다

하여 동화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네요. 수령이 200년 정도 된 이 오동나무는 동화사 중창과 인연이

있을 뿐 아니라 파계사 등을 창건하여 팔공산을 佛國土로 만들고자 한 대사를 기리기 위하여

"심지대사나무"라 이름 지었다네요.

 

 

그 앞에 또 다른 오래된 느티나무입니다.

 

 

대웅전 뒷편에 대나무와 소나무가 보기 좋습니다.

 

 

 

산신각,조사당에서 본 대웅전과 신검당 지붕 모습입니다.

 

 

신검당의 당우가 꽤 웅장합니다.

 

 

신검당 담장의 기와가 멋스럽습니다.

 

 

신검당의 지붕모습입니다.

 

 

 

 

 

다시 봉서루를 나서면서 바라 본 절 입구 모습

숲으로 둘러 쌓인 동화사 앞 주변이 아늑합니다.

 

 

궂은 날씨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들렸네요

 

 

동화사를 나와 좌측으로 해서 계곡 쪽으로 내려 갑니다.

통일약사여래불을 보기 위해서...예전에 한번 보았는데

온김에 한번 더 친견할까 합니다.

 

 

 

동화사 앞 계곡 모습입니다.

 

 

 

 

 

해탈교입니다.

동화사로 올라 가는 다리입니다.

 

 

이러한 이정표가 길을 안내합니다.

통일대불로 갑니다.

 

 

금당선원가는길에 있는 동화사당간지주입니다.

 당간지주는 절에 행사가 있을 때나 사찰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 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 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합니다.보물 제254호입니다.

 

 

 

통일약사여래불로 가는 길입니다.

 

 

통일약사대불전입니다.

올라서면 통일약사대불이 엄청난 크기로 다가 옵니다.

 

 

통일약사여래대불

 

1992년에 만들어진 통일을 기원하는 통일여래대불입니다.

좌대 높이 13m를 포함,높이가 30m 둘레 16.5m 로 세계최대규모입니다.

108명의 석공이 7개월간 작업을 하였다네요.

당시 전직대통령의 고향이기도한 팔공산에 이러한 거대한 불사가

언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지요.

지금은 이 대불을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네요.

후대 천년이 지난 후에 모습은 어떨까요?

아마도 聖地가 되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이 대불로 인해서 동화사는

현대와 고대의 흔적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하나 봅니다.

 

 

대불 앞에서 본 모습입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예불을 볼 수 있을 만큼 넓습니다.

 

 

이날, 통일약사대불전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스님으로 부터 교육을 받고 있네요.

사찰에 대한 기본예절교육이겠지요.저도 책자를 한권 얻어 갑니다.

 

 

동화사 계곡입니다.

 

 

 

약사여래대불을 나와 다시 왔던 대로 올라 갑니다.

해탈교를 지나 동화문으로 갑니다.

 

해탈교에서 본 동화사 앞 계곡 모습입니다.

 

 

 

해탈교에서 동화사로 올라 가는 계단 좌우로

희망의빛,연등이 보기가 참으로 좋습니다.

일년 내내 달아 놓는 모양입니다.

밤에 불을 밝히면 보기가 좋을 것 같은데...

보지 못하고 갑니다.

 

 

 

 

 

계단을 올라 서면 응호문 가기 전에 있는

'인악대사(仁嶽大師)나무'입니다.

인악대사는 영조 때 스님으로

어릴때 신동이라 불리워졌으며

인근에 있는 용연사에서 공부를 하다가 스님이 되었다네요

역시 동화사의 중창에 힘을 쏟은 큰스님였습니다.

 

수령이 500년 정도 된 이 느티나무는

동화사와 인연이 깊은 스님을 기리기 위하여

 "인악대사나무"라 이름 지었다네요.

동화사를 한번 더 보고~

 

 

동화문을 나와 주차장에 마련된

물레방아에서 동화사의 탐방을 마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약사여래불 !"

 

<2012,9,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