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집寺刹이야기

심산유곡 오지에 위치한 나옹성지(懶翁聖地) 영덕 장육사(莊陸寺)를 찾아서

安永岩 2013. 2. 7. 01:45

 

고려말 왕사였던 나옹선사의 혼이 서려 있는

영덕 운서산(雲捿山)장륙사(莊陸寺)

 ☞ 소재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120

 

 

  작년(2012년) 10월 어느날 여주 신륵사를 찾았는데 그곳에서 고려말 공민왕 왕사였던 나옹선사께서

입적한 곳이라 감회가 깊었는데...그럼 태어난 곳은? 검색하니 바로 지척에 있는 영덕 장륙사라는 사실을 알고

꼭 한번 방문하고 싶었었다.

항상 마음 한켠에 지워지지 않고 있었는데 차일 피일 미루어 오다 오늘 갑자기 시간이 나길래 영덕으로 해놓습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라는 詩로 유명한 나옹선사께서

태어난곳!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 한 산속에 위치한 장륙사를 찾아 갑니다.

 

아주 오래 전에 영해에서 영양으로 넘어 간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느낌으로 오지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다시 이곳을 찾으니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여전히 오지입니다.개발보다도 자연이 오롯이

존재하는 곳,창수면 갈천리 가는 길은 영양으로 가다가 신기리에서 우측 갈천리로 갑니다.

한티재를 지나 한참가면 인천리와 갈천리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들어 가면 갈천리입니다.

더 이상 갈 곳 없는 곳,운서산(520m) 아래 정남향으로 포근히 장육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주차하고 계류를 건너 조~기 보이는 일주문으로 가야 하는데 절 아래까지 차가 들어

들어 가기 때문에 그곳까지 갑니다. 모든 차가 그곳에 주차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좀~은 후회가 됩니다.

바로 일주문에서 본 운서산 아래 장육사의 전경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크네요

 

아래 주차장에서 본 장육사입니다.

차가 여러대 주차되어 있었는데 모두가 관음전에서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보이는 건물이 흥원루입니다.

흥원루 아래를 나즉히 통과하여 올라 서면 장육사 경내입니다.

 

주차장에서 본 아래쪽 풍경입니다.

앞에 흐르는 계류가 위천입니다.

일주문을 걸어 오면 요렇게 계류를 또 건너야 합니다.

이 위천은 장육사앞을 타원형으로 한바퀴 휘돌아 내려 갑니다.

장육사는 뒤로는 이름 그대로 구름이 사는 운서산이고,앞은 위천이 흐르는 명승지에 자리 하고 있습니다.

 

나옹선사(懶翁禪師:1320~1376)는 공민왕의 왕사이며.고려 말기의 고승으로 휘는 혜근(慧勤).호는 나옹(懶翁),

본 이름은 원혜(元慧)입니다.속성은 아(牙)씨이며,이 곳 장륙사가 있는 갈천리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장육사는  돌담을 높게 쌓아 층층이 수평을 맞추고 그 위에 절집이 하나 둘 씩 세워져 있습니다.

그 돌담도 아주 정성 스럽게 쌓아 깨끗하고 보기에도 좋습니다.

또한 경내로 올라 가는 이 돌 계단길도 획일화된 대리석 계단 보다도 더 자연스럽고 멋스러운게 좋았습니다.

흥원루 지붕위로 쭉쭉 뻗은 미인송이 보기가 좋네요

우측 맨 위 대나무숲에 쌓여 있는 건물이 나옹선사가 수행했던 홍련암입니다.

 

천천히 가면서...뒤도 돌아 보고 올라 갑니다.

돌계단길 옆에 자라고 있는 산벚꽃나무가 자칫 삭막할 수 있는 계단길을

풍경이 있는 계단길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흥원루興遠樓입니다.

단청이 되지 않은 순수함이 나그네를 편안하게 하네요

흥원루에 雲捿山莊陸寺,대한불교조계종11교구 운서산장육사 종무소,雲棲山房 글귀가 걸려 있습니다.

겨울이라 그런지 2층은 문이 굳게 잠겨 있고 운서산방은 茶를 마시는 茶房입니다.

경내는 바로 이 흥원루 아래 가운데로 나 있는 좁고 낮은 문으로 들어 갑니다.

실제로 키가 크신 분은 머리를 조금 숙이고 들어 가야 할 듯 합니다.

즉 자연히 고개를 숙이니 부처님 앞에 절하는 셈이지요

그리고 마음을 내려 놓고 겸손하라는 뜻인듯 합니다.

대웅전 올라 가는 계단이 보입니다.

 

운서산방(雲棲山房)이라...운서는 구름이 산다는 뜻입니다.

홍원루 좌,우에 있는데 출입문은 흥원루 아래를 통과하여 계단을 오르기 전에 있습니다.

문에 '下心房'이라고 쓰여 있는데 말 그대로 마음을 낮추는,즉 오만함을 억누르고

겸손한 자태를 갖추라는 뜻이 아닐까요?

항상 아래를 보고 살아 갑시다.

 

운서산장육사 편액 글씨입니다.

 

들어 서서 홍원루를 보면 정면에 걸린 興遠樓 편액입니다.

 

흥원루를 통과하여 돌계단을 올라 서면 바로 대웅전입니다.

 

장육사 대웅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138호

 

이 건물은 고려 공민왕 때 나옹선사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조선 세종 때 산불로 소실되어 다시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다시 폐찰되었다고 하네요

이 후 고종 광무(光武) 4년(1900)에 보수하였습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입니다.

막돌로 기단을 쌓은 다음 자연석 주초를 놓고 둥근 기둥을 세워 주심포(柱心包)을 올렸네요.

 

대웅전의 금단청(金丹靑)된 불단의 주악 비천상과

좌우 보살상 벽화는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하네요

 

대웅전 내부 모습입니다.

우측 관음보살좌상은 종이로 만든 불상(紙佛)으로

태조 4년(1395) 9월 태조와 그의 부인 신덕왕후 강씨를 기리기 위해

마을 관리들이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상회상도 후불탱화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73호로 조선 영조 1764년에 제작된 것으로

 예술적,미적 가치가 뛰어 나다네요.

 

대웅전 천정 모습입니다.

사진에는 조금 나와 있지만 천장에 그려진 주악비천상과 좌우벽면의 문수보살벽화,

보현보살상벽화는 화려하고 아름다워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하네요

 

 

주악비천상

 

 

 

 문수보살벽화

 

보현보살벽화

 

 

대웅전 안에서 본 앞쪽 흥원루와 앞산 모습

신도들이 식사를 하고 하심방으로 차를 마시려 내려 가네요

 

 

대웅전 앞 석등

흥원루는 들어 오는 입구와 달리 통유리로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대웅전의 부처님을 마주하기 위함인 듯 합니다.

보통 부처님진신사리를 친견하기 위해 통유리를 설치하지요

 

대웅전에서 본 좌측 모습

좌측은 육화당이며 우측은 흥원루입니다.

그리고 멀리 돌아 오는 길과 일주문이 보이네요

그리고 제법 높지요.벚나무 옆에 백구가 저를 엄청 반깁디다.

비록 점심공양이 끝나 가는 시간였지만 마주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밥먹으라는 소리를 하지 않네요

가서 묵기도 그렇고...체면차리다가

배에서 쪼~로록 소리가 납니다.

 

흥원루 지붕위로 앞산을 담아 봅니다.

너무나 풍경이 좋아서요...

 

 

대웅전에서 본 우측 요사채,

스님의 요사채 심진당입니다.이렇게 층층이 담장을 쌓아 마당을 만들고 건물을 올렸는데

아무렇게 쌓은 듯 한 담장이지만 가만히 보면 맞물림이 틈이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쌓았습니다.

정성이 돋 보이는 담장이고 보는이로 하여금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어떻게 아무렇게 생긴 너부러진 돌을 저렇게 하나 하나 상하좌우로 맞추어 쌓았을까?

그 정성이 놀랍습니다.그래서 더 보기가 좋습니다.

아무렇게 쌓았다면 울뚱불뚱 보기에도 흉하겠지요

 

 

장육사에서 유명한 관음전입니다

 

관음전 앞에 돌담을 한번 보세요

역시 정교함과 깨끗함이 돋 보이지요

 

관음전은 대웅전 옆에 좀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바로 이 관음전 안에 보물 제 993호 건칠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건칠관음보살좌상

 

높이 86cm의 조선 초기 건칠관음보살좌상입니다. 건칠불이란 진흙으로 속을 만들어 삼베를 감고

그 위에 진흙가루를 발라 묻힌 다음 속을 빼어버린 것입니다. 불상안에서 발견된 원문과 개금묵서명(改金墨書銘)을 통해

홍무 28년(태조 4년,1395)에 영해부의 관리들과 마을 사람들의 시주로 만들었고,영락 5년(태종7년,1407)에 다시

금칠하였음이 밝혀졌습니다.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보살상으로 이후에 만들어진 대구 파계사 목조관음보살상(1447년),

영천 은해사 운부암청동보살좌상(1516년)에 영향을 주었으며,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어서

고려말 조선초 보살상들의 연대 추정에 기준이 되는 작품입니다.

 

머리에 나무로 별도의 관을 만들고 꽃무늬와 불꽃무늬로 장식하여화려한 느낌을 줍니다.

얼굴은두꺼운 금칠로 인하여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신체는 굴곡이 별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단아하고 엄숙한 모습이다.불상은 장식성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와같이 화려하고 장엄한 모습,굴곡이 표현되지 않는 신체의 처리 등은 조선시대불상의 전형적인 양식이라고 하네요.

<현지 안내문 참조>

건칠관음보살좌상은 양양 낙산사에도 있는데 몇 해 전에 불이 났을 때 제일 먼저 건칠관음보살좌상을 대피시켰다고 하지요.

 

관음전에서 본 절 입구 쪽 모습

 

 

관음전 정면에 앞산 모습

 

 

흥원루 모습

 

 

장육사의 범종각

 

 

관음전에서 내려와서 대웅전 앞에서 본 동쪽 모습

우측 건물은 요사채 육화당입니다.템블스테이로 사용하는 요사채입니다.

삼층석탑 위로 홍련암이 보입니다.지금 홍련암으로 갑니다.

 

대웅전 모습

최근에 세운 삼층석탑은 대웅전 우측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옹선사를 모셔 놓은 홍련암에 올라 갑니다.

 

나옹선사께서

20세 때 친구의 죽음을 보고 출가하였다고 하며 원나라에 유학하여 인도 고승 지공(指空)스님의 제자가 되어

인도불교를 한국불교로 승화시켰으며 생전에 우리나라 최대사찰인 회암사를 중창하였다고 하네요

조선 태조 이성계 왕사로써 한양천도의 주요 인물인 무학대사는 그의 제자입니다.

부도와 비석이 회암사터 뒤쪽에 현존하고 있으며 비문은 영덕이 낳은 또다른 성현 목은 이색이 썼으며

이곳 장륙사의 홍련암에 그의 초상화가 남아 있습니다.

그가 입적한 남한강변 여주 신륵사에도 사리를 봉안한 부도와 사리탑이 있지요.

신륵사의 부도와 사리탑은 모두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나옹선사의 수행터 홍련암입니다.

이 곳 장육사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안에는 지공,나옹,무학의 화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저는 가급적이면 법당은 물론 절집 내부의 사진촬영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꼭 필요시 검색하여 가져 옵니다만은 내부에서 사진촬영은 꼭 부처님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서 하지를 않습니다.다만 문화재적인 가치가 있는

탱화나 벽화정도는 간혹 찍기는 합니다. 

 

홍련암에서 내려다 본 장육사 전경입니다.

골짜기가 위천입니다.그리고 찻길은 여기서 끝입니다.

돌아 나가야지요.골짜기를 조금 거슬러 올라 가보았는데

초입에 계곡이 좋고요 모랑지를 돌아 가니 큰 밭이 있고요

경치는 이 곳 보다 못한 것 같네요.

 

 

장육사는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대웅전을 제외하고 비교적 근세에 지워진 절집이며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고려말 왕사였던 나옹 큰스님의 혼이 남아 있는 장육사는 작지만

큰 절집입니다.최근에 나옹선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오는 그리 외롭지만은 않은 절집입니다.

이 곳 장육사에도 템플스테이를 한다고 하네요.

나옹선사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공기 좋고,물 좋은 운서산에서

하루밤을 보내기에는 더 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네요.

참고하세요

 

 

장육사에 또 다른 암자 미유암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지은 건물이며 공양실인 삼륜당 맞은편 언덕에 위치해 있습니다.

 

홍련암에서 내려 오는 길에 본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부자지간인 듯 한데 평화로와 보입니다.

 

 

나오면서 다시 한번 더 흥원루를 보고~

 

 

주차장에서 한번 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종각과 흥원루를 보고~

그리고 나옹선사님의 유명한 詩를 읊어 봅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

 

그렇치요? 물같이 바람같이 살아야지요

모두를 내려 놓읍시다!

성냄도,욕심도,탐욕도,

그리고

마음을 비웁시다.

 

 

<2013,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