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집寺刹이야기

[전북/고창]힐링의 절집,도솔산 선운사(兜率山 禪雲寺)

安永岩 2016. 9. 28. 09:11

 

 도솔산 선운사 일주문

 

우리가 아는 고창 선운사는 선운산의 선운사인데 왜? 도솔산일까?

그것은 삼국시대 이전에 도솔산였는데 선운사가 창건 되고 부터 절 이름을 따서 선운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네요

그런데 현재 선운사 일주문에는 도솔산이라고 현판이 붙어 있네요.

헷갈립니다.아마도 도솔산,도솔천,도솔암 등 불교의 도솔사상이 깊게 베어 있는 곳이다 보니 그렇게 부르는가 싶네요.

 

 

 

일주문에서 좌측으로 도솔천을 따라서 우거진 숲 길을

아주 편안하게 천천히 오르다 보면 얼마 가지 않아 극락교가 보입니다.

더구나 9월 중순에 도솔천은 진붉은 꽃무릇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 내게 만듭니다.

 

 

극락교

선운사 앞에 있는 극락교가 아름답습니다.

도솔천의 검은 물색깔과 물에 비치는 나무들의 반영이 아름답습니다.

선운사에 단풍이 물들 때 도솔천에 단풍의 반영이 그렇게 아름답다 못해 황홀경을 연출한다는데 아직은 보지를 못했네요. 

올 해 늦가을 11월 초에...기대가 됩니다.

 

선운사는 도솔천을 두고 양 가장자리로 산책로가 나 있기 때문에 어느 길로 가든지 상관없지만 

도솔천 건너편 길이 더 원시적인 숲길이지요.그 길 끝에 선운사를 들어 가는 극락교를 건너지요.

산을 계속 오를려면 그대로 직진하모 됩니다.

도솔천 우측길은 찻길 같이 넓고 편안한 산책로이고 계곡 건너 좌측길은 최근에 만든 숲이 우거진 힐링숲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길을 추천하고 싶네요.도솔암까지 이어 집니다.

    

 

천왕문을 통과하면 엄청나게 넓은 경내에 제일 먼저 만세루를 만납니다.

 

도솔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선운사는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와 함께 전라북도의 2대 본사로서

오랜 역사와 빼어난 자연경관, 소중한 불교문화재들을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참배와 관광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특히 눈 내리는 한겨울에 붉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선운사 동백꽃의 고아한 자태는 시인ㆍ묵객들의 예찬과 함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대웅보전 앞에 있는 만세루(萬歲樓)는 정면 9칸, 측면 2칸의 맞배 지붕 건물이다. 
절의 창건 당시부터 있었던 건물로 지금까지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으나 아직도 700년이나 된 기둥이 남아 있어 옛 자취를 느낄 수 있다. 
건물의 기단은 석조로 세웠으며, 대들보와 기둥은 원목을 가공하지 않고 나무 형태를 유지하여 건축에 사용함으로써 자연적인 웅장함을 느끼게 한다.

건물 내부에는 각종 사적기(事蹟記)와 현판이 16개나 걸려 있다.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53호이다.

 

 

만세루 앞의 목백일홍

지금은 꽃이 졌는데 한창일 때는 엄청 아름답다고 합니다.

 

만세루,대웅전

 

워낙에 드넓은 절집이다 보니 엄청나게 큰 만세루와 대웅전도 작게 보입니다.

실제로 저~아래 풍천장어구이 간판이 즐비한 상가로 부터 주차장 매표소 이곳 선운사까지 나즈막한 산세따라 도솔천을 끼고 앉은 터가 엄청나게 넓습니다.

그래서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기도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영산전

영산전(靈山殿)은 대웅보전의 서쪽에 위치하며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 지붕 건물이다.

2단의 높은 축대 위에 조성된 영산전의 원래 이름은 장육전(丈六殿)이었다. 
1471년 처음 조성될 때는 2층 전각 형태로 조성되었으나 1614년에 중건하면서 단층으로 바뀌었고 1821년과 1839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장육전이라 이름은 내부에 봉안된 불상이 1장 6척이나 되는 큰 불상이었기 때문이며,

거대한 불상을 봉안하기 위해서 2층의 누각 건물로 조성했던 것이다.

<전각소개는 선암사홈페이지를 참조>

 

영산전 뒤 짙은 녹색 숲이 그 유명한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숲입니다.

오늘따라 파란하늘 아래 전각들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대웅전

(보물 제290호)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선운사의 중심 전각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구조는 다포(多包) 형식이지만 맞배 지붕을 얹은 조선 중기의 건물이다. 
건물 구조의 특징을 보면 측면에는 공포가 없는 대신 기둥 두 개를 높이 세워 대들보를 받치도록 하였으며,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이 넓고 건물의 앞 뒤 폭은 오히려 좁아서 옆으로 길면서도 안정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조선 중기의 건축물답게 섬세하고 다포의 짜임새가 장식적이다. 

 

대웅전 옆 영산전

대웅전 앞에는 오래된 목백일홍(배롱나무)이 두그루 있는데 장관입니다.

선운사의 8월에는 이 목백일홍을 보기 위해서 온답니다.

그만큼 유명하지요.

어디 목백일홍만 유명한가요? 초봄에 동백꽃,여름에 목백일홍,9월엔 꽃무릇이 대단합니다.

 

 

대웅전 앞 목백일홍(배롱나무)

 

수세가 대단하고 아주 잘 생겼습니다.

절정기는 지났지만스도 간혹 보이는 붉은 꽃과 윤이 나는 줄기가 눈을 부시게 합니다.

 

 

 

불심佛心

 

 

 

오래도록 목백일홍 곁을 떠나지 못하고 헤멥니다.

한창 때 사진입니다.

 

 

 

 

정면


측면

 

2016,9,20 현재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 숲(천연기념물 제184호)

 

고창 선운사는 천연기념물이 또 있지요.

바로 주차장 옆 송악(천연기념물 제367호),

장사송(천연기념물 제354호)

 

동백꽃이 필 때 고창 선운사로 오세요~란 말이 있지요.

전 아직 보지를 못해도 동백꽃이 필 때 장관이겠지요?

그러고 보면 선운사는 사계절 절집같습니다.

늦가을에 단풍도 쥑인다고 한는데...

 

 

 

장사송

 


 

 

송악

 


대웅전,만세루,천왕문

 

 

팔상전,산신각

팔상전(八相殿)은 석가모니의 행적 가운데 극적인 여덟 장면을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 탱화(幀畵)를 봉안하는 곳이다. 
이 곳에도 1706년의 중건 때 함께 봉안한 팔상 탱화가 있었으나 현존하지 않고, 현재는 1900년에 새로 조성된 팔상 탱화 중 2점이 남아 있다. 
석가 여래 좌상도 근래에 새로 조성한 것이며, 본존 뒤의 후불 벽화 역시 1901년에 조성된 것이다.

 

 

선운사 동백 숲과 꽃무릇

 

 

 

선운사 대웅전 뒤 동백나무 숲은 정말로 대단합니다.

수세도 좋고 키도 크고 잘 생겼습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기 때문에 출입을 통제합니다.

 

 

 

 

 

 

 

 

팔상전 앞 돌탑들...

 

 

명부전,팔상전,영산전

 

명부전

명부전(冥府殿)은 저승의 유명계(幽冥界)를 나타낸 전각으로, 원래는 지장보살을 봉안한 지장전과 시왕(十王)을 봉안한 시왕전이 별도로 있었던 것을 17세기 이후에 두 전각을 결합하였다고 하네요.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

 

영산전

 

선운사 샘

넓은 선운사 경내를 한바퀴 돌아 나오면서 마시는 한모금의 샘물이 온몸을 시원하게 합니다.

 

 

 

 

 

천왕문

천왕문(天王門)은 앞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 지붕 건물이다. 
2층 누각 건물이었는데 현재는 1층으로 되었고, 4천왕상이 있다. 선운사 사천왕상 발 밑에는 일반적인 악귀와는 달리 남방증장천왕 아래에는 음녀가 있고,

서방 광목천왕 발밑에는 탐관오리가 있어 한국적인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

 

 

선운사 돌담

 

 

선운사 앞 도솔천

 

 

선운사 부도群

 

 

 

 

 

선운사꽃무릇

 

 

선운사창건 설화

선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檢旦, 黔丹)선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하고 있다.

첫 번째 설은 신라의 진흥왕(재위기간 540∼576)이 만년에 왕위를 내주고 도솔산의 어느 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때 미륵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크게 감응하여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함으로써 이 절의 시초를 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곳은 신라와 세력다툼이 치열했던 백제의 영토였기 때문에 신라의 왕이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시대적ㆍ지리적 상황으로 볼 때 검단선사의 창건설이 정설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검단스님의 창건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본래 선운사의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나가던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곤 하여, 이를 신이하게 여긴 마을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은 금방 메워지게 되었다. 이 자리에 절을 세우니 바로 선운사의 창건이다. 검단스님은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절 이름을 '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또한 이 지역에는 전쟁 난민이 많았는데, 검단스님이 불법(佛法)으로 이들을 선량하게 교화시켜 소금을 구워서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주었다. 마을사람들은 스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해마다 봄ㆍ가을이면 절에 소금을 갖다 바치면서 이를 '보은염(報恩鹽)'이라 불렀으며, 자신들이 사는 마을이름도 '검단리'라 하였다. 선운사가 위치한 곳이 해안과 그리 멀지 않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염전을 일구었던 사실 등으로 미루어보아, 염전을 일구어 인근의 재력이 확보되었던 배경 등으로 미루어 검단스님이 사찰을 창건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선운사홈페이지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