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시간에 보문사를 나와 갈길이 천리도 넘는데 석모대교지나 이번에는 네비가 우측 길을 안내합니다.이 길은 마니산과 전등사가는 길이며 강화도를 나와 인천 청라로 해서 영동고속도로와 연결되는 길입니다.전등사는 별 기억은 없지만 십 수 년전에 들렸던 절집이라 패스,통과하였는데 자꾸 뒤목을 당깁니다."이 눔아,어려운 길 이꺼지(여기까지) 와서 안들리고 간다고~?" 맞다! 언제 또 다시 와질랑가? 해서 차를 돌려 들어 간 곳이 동문였는데 왠지 관광지의 맛이 안나고 음침한 것이 여긴 아니다 싶어 다시 나와 길을 조금 가니 전등사 남문입니다.차를 주차하고 조금 올라가니 웅장한 남문을 마주합니다.예전에 보았던가? 전등사를 가는데 왠 城이~? 놀랐답니다.그랬다! 강화도 전등사는 삼랑성(정족산성)안에 위치한 사찰였다.그리고 정족산성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던 역사적인 장소이며 무엇보다도 당시 열악했던 군사로 병인양요(1866년)때 프랑스군을 상대로 처음으로 승리했던 기념비적인 장소입니다.
역사성이 깊은 전등사를 패스하지 않고 다시 찾게 되어 너무 기뼜답니다.더구나 숲이 너무 좋은 最古의 절집,전등사입니다.곧 해가 넘어갈 시간였지만 경내를 찬찬히 돌아 보았답니다.
♣방문일 : 2025년5월22일 오후 늦은 시간
전등사는 현존하는 한국 사찰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으며, 부처님의 가피로 나라를 지킨 호국불교 근본도량으로 역사와 권위를 간직한 사찰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바와 같이 삼랑성은 단군이 세 아들(三郞)을 시켜 쌓았던 고대의 토성이었고, 삼국시대에는 토성 자리에 석성을 쌓아 올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등사가 창건된 것은 서기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으로 전해지고 있다. 처음 전등사를 창건한 분은 진나라에서 건너온 아도 화상이었다. 당시 아도 화상은 강화도를 거쳐 신라 땅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도 화상이 강화도에 머물고 있을 때 지금의 전등사 자리에 절을 지었으니 그때의 이름은 ‘진종사(眞宗寺)’라 하였다. 이후 고려 왕실에서는 삼랑성 안에 가궐을 지은 후 진종사를 크게 중창시켰으며, 16년이 지난 충렬왕 때 왕비인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경전과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라 사찰 명칭을 바꾸었다. 이후 조선 광해군 때인 1614년에 화재로 인해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다가 지경 스님을 중심으로 재건을 시작하여 1621년 2월에 전등사의 옛 모습을 되찾았다.
※ 삼랑성을 주목할 것은 병인양요(1866년)때 프랑스군을 상대로 승리했던 역사적인 장소라는 것이다.전쟁에도 이기고 조선왕실사고도 지켜낸 장수가 양헌수장군였는데 후손들은 양헌수승전비를 세워 기념하고 있답니다.
좌측으로 전개되는 소나무숲이 예사롭지 않네요
안쪽 깊숙한 곳에 전등사 부도군이 있습니다.
전등사는 쭉쭉빵빵 미인송(소나무)이 즐비하고 느티나무등 노거수가 많은 절집이며 정족산성 안에 위치해서 숲속에 파묻혀있는 사찰입니다.그런 이유로 전등사 남문을 들어 서는 순간 마음이 평안해 옴을 느끼지요.바로 숲의 치유공간에 들어 선 당신의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랍니다.이런 전등사를 십 수 년전에 방문하였을 때는 몰랐답니다.이유는 술에 절어서~ㅎㅎㅎ 그 때는 왜 그랬는지~ 후회 막급, 그리고 다시 만난 전등사 ! 찬찬히 좋은 공기를 마시며 숲향에 취해서 돌아 볼까 합니다.
제일 먼저 좌측에 약 700년의 은행나무가 반깁니다.
1000년이 넘는 용문사 은행나무도 있지만 은행나무의 수령은 도대체 언재까지 일까요? 제가 본 우리나라 은행나무 중에 수령 500을 넘긴 은행나무로 영동 천태사,금산 보석사,청도 작천사,도동서원,서울 명륜당,경주문화원 등등 나무지만 존경하며 예를 다해 경건히 친견한답니다.물론 스킨십은 자연스럼게 포옹정도로~氣을 받고 싶고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입니다.
곧장 올라 가는 길은 종무소와 요사채로~ 전등사는 우측으로 꺽어 들어 갑니다.

1.대웅보전 2.약사전 3.명부전 4.삼성각 5.무설전 6.월송요 7.대조루 8.선불장/공양간 9.적묵당(종무소) 10.강설당 11.정족사고 12.취향당 13.관음전 14.극락암 15.종루 16.남문 17.양헌수비 18.동문 19.화장실 20. 죽림다원 21.삼랑성 22.부도전 23.전족산성진지 24.전등각 25.문화관광해설사 |
보통 일주문에 걸리는 현판인데 전등사는 따로 일주문이 없고 사천왕문도 없고 금강문도 없고 바로 보제루를 통과하면 대웅전입니다.대신에 웅장한 남문이 일주문역활을 하는 듯 합니다.
전등사 대조루(對潮樓) 아래를 통과하여 계단을 올라 서면 바로 대웅전을 마주하는 절마당입니다.
대웅보전
보물 제178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규모는 작지만 단정한 결구에 정교한 조각 장식으로 꾸며져서 조선중기 건축물로서는 으뜸으로 손꼽힌다. 특히, 건물 내부 불단위에 꾸며진 닫집의 화려하고 정치한 아름다움은 건축공예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보마다 용틀임으로 장식되면서 용두가 네 귀퉁이에서 돌출해 나오며 천장 주변으로는 연, 모란, 당초가 화려하게 양각되고 중앙 우물 반자 안에는 보상화문이 가득 채워져 있다.
더욱 희귀한 것은 물고기를 천장에 양각해 놓아 마치 용궁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닫집 왼쪽 천장에는 양쪽에 용두장식을 하고 몸체에 용틀임을 한 작은 용가(龍架)의 배 부분에 아홉 개의 방울을 달아 놓고 끈을 달아 불단까지 늘여놓아 이를 잡아 흔들면 아홉 개의 방울이 동시에 울어 구룡토음의 장관을 이루게 했던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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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바깥 추녀의 네 귀퉁이의 나부상(裸婦像)이 유명한데, 광해군 시절 화재로 소실된 대웅전을 재건축하던 목수가 절 아래의 주막 주모와 눈이 맞아 돈을 맡겨두었으나 주모가 돈을 들고 튀었고, 이에 목수가 "주모는 영원히 무거운 대웅전 지붕을 떠받치면서 속죄하라, 다른 사람들은 이를 보고 여색을 경계하라"는 뜻에서 만들어 넣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있습니다.
처음 방문하여 들었던 웃스게같은 이야기가 회자되는 추녀의 네 귀퉁이에 나부상이 아직도 벌서고 있네요.
전등사의 남문이나 동문으로 올라와 두 길이 합치는 지점에 이르면 2층 건물이 보이고 1층 이마에는 ‘전등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 건물이 바로 전등사의 불이문 구실을 하는 대조루이다.
지금의 대조루는 1932년에 중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건물 자체가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며 전등사의 여러 건물 중에서도 아주 소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조루에서 대웅전을 바라볼 때의 시선은 25도쯤 위쪽으로 향하게 된다. 대웅전의 석가모니불을 가장 존경하는 시선으로 보게 하는 각도로, 이런 부분까지 섬세하게 고려해 지어진 건물이 대조루이다.
본래 대조루는 기도를 하거나 법회를 열던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불교 서적과 기념품 등을 파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천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다.
☞ 아래 전등사 전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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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기둥 대웅보전 앞 꽃들~
대웅보전 앞 꽃밭에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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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전등사는 연두색 나무들과 형형색색 피고지는 꽃들로 아름다움을 한 껏 뽐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절집,전등사입니다.
전등사를 떠나기전에 한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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