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한장의 사진 9

1993년 홍도여행

날짜를 보니 93년도 6월 구룡포산악회 창립기념(1982년6월12일 창립)으로 2박 3일을 일정으로 월출산을 산행하고 홍도를 가는여행였었네요.월출산만 해도 거리상으로 1박 2일 코스인데... 거기다 홍도는 2박 3일 코스 아닌가? 기억에 홍도에서 기상 악화로 하루를 더 묵게 되었었는데 결국 3박4일 일정이 되고 말았었다.하여튼 이때는 통 큰 행사를 많이 했었다. 홍도는 목포에서 가는데 흑산도를 거쳐 가는 배편이 있었으나 우리가 탄 남해훼리호는 바로 논스톱으로 2시간40분 만에 홍도에 도착했다. 희뿌언 안개속에 도착한 홍도였지만 그때 홍도의 신비스러운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홍도야 우지마라'노래도 있잖은가? 사실 노래 속에 홍도는 사람이름이고 홍도섬과는 연관이 없지만 우째거나 이 노래로 홍도가 많이 알려..

1982년 11월 가야산 정상식 행사 사진

40년 세월이 지났지만 어제일같이 생생하다 사람들의 기억력이 어디까지일까? 기억를 잘 하는 분야가 있는걸까?나는 전화번호를 잘 외우지 못하지만 山높이는 잘 외우고 잊지를 않는다.기억력도 자기가 좋아 하는 분야는 뇌가 월등이 능력을 발휘하는것이 아닐까 싶다.적어도 나같은 경우를 보면은 말이다. 지금으로 부터 40여 년 전였던 1982,6,12일에 지방의 자그만한 소도시에서 구룡포산악회가 창립되었다. 그 해 11월에 가족동반행사로 합천 가야산을 갔었는데 겁도 없이 부인과 어린이들을 동반하고 가야산 정상(상월봉,1430m)바로 아래 넓은 공터까지 올랐었고 그곳에서 소이 정상식(그때는 山 정상을 오르면의식으로 먼저가신 산악인들에 대한 묵념과 애국가를 부르고 만세 삼창을 하였었다)를 거행하였었다. 바로 위 사진이..

어게인 포항축로주식회사~그리운 직장동료들 모습

그리운 얼굴들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정말 그런거 같다.1980년대 부터 90년대 초까지 회사산악동호회 활동을 왕성하게 했었다.이 때 나는 외부 산악회에 몸을 담아 활발하게 활동을 하던 때라 쉽게 회사산악동호회에 몸을 담아 등반대장으로 매월 전국의 산을 다녔었다.위 아래 사진을 보니 정말로 보고 싶고 그리운 얼굴들이다. 1984년 10월,이름도 생소했던 우리나라 爐 전문회사 포항축로주식회사에 취직하였다.수십년 동안 한우물을 파고 직장인의 꿈인 정년퇴직을 2009년 12월 말에 하였다. 포항축로주식회사는 포스코가 1960년대에 포항에 설립되면서 함께 설립된 爐전문회사였다.爐전문회사란? 국내외에 생산되는 각종爐에 내화물을 전문적으로 축조 하는 회사였다.특히 쇠물을 생산하는 고..

1995년 구룡포산악회 시산제 풍경

1982년 6월 12일 지방의 조그만한 邑에서 큰 꿈을 안고 山岳會를 창립하였다. 당시로써는 산악회란 이름도 생소했고 보는 눈들도 의심의 눈으로 바라 봤던 세월였다. 그도 그럴것이 먹고 살기도 바쁜세월였으니까요, 70년대 조국근대화의 거대한 바람속에울산과 포항을 시작점으로 중화학공업이 불같이 일어 나면서 나라도 우리국민들도생활들이 좋아지기 시작하였고 경제적으로 호황기를 맞으니 자연스럽게 레저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건전한 산악문화를 선도한다는 철학으로 지방의 소도시(구룡포)에서 산악회를창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산악회 창립후 매월 세째주 일요일에 정기산행을 다녔고 해가 바뀌고 음력으로 정월 달 첫 산행지 정상에서 시산제(그때는 '산신제'라고 했다)를지냈다. 지금은 구룡포 응암산에서 시산제를 대부분 지내지..

덕유산 무주구천동 비박,그리고 정상 등산

지금으로 부터 40여 년 전 사진인데 엊그제같다.기억이 또렷하다 1982년 8월에 찍은 사진이다. 29살 때 사진이다.여러가지로 추억을 소환하는 사진이다. 우리 구룡포산악회가 1982년 6월12일에 창립하고, 7월에 初等으로 팔공산을 가고, 8월에 1박2일로 무주구천동으로 더 유명했던 덕유산을 등반했었다.위 사진 2장이 그때의 사진이다.참으로 귀한 사진이 아닌가? 정말로 등반역사관에 있을 법한 사진이 아닌가? 40여 년 전의 등산(그때는 산행이라고 하지 않고 등산이라고 했다)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준 사진이다. 등산문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옷이다.이 때도 멋을 한껏 내었지만 지금보면 참으로 순수했던 것 같다.귀한 코펠사진이다.삐까뻐까한 지금의 코펠에 비하면 박물관용이 아닌가?이 때는 ..

구룡포 박바우 나들이

코로나19가 좀 진정되는가 싶더니 인천과 서울,수도권에 하루에 4~50명씩 오르막 내리락 발생하더니 급기야 지방으로 전파되니 또 걱정입니다. 곧 장마와 더위가 시작될 텐데 코로나가 없어질려나…기대를 해봅니다.제발 가다오,코로나여~~~ 2018년 12월에 다친 왼쪽다리골절과 10여 년을 함께 해왔던 뇌하수체종양 수술을 지난 달에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하고 아직 실생활에 복귀하기에는 아주 조심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빛바랜 사진첩을 뒤적이다 뜻밖에 밝은 우리 가족 사진을 발견하고 혼자 배시시 웃습니다. 30여 년 된 1990년대 초 사진같네요 지금 우리 손자 서균,시후만 한 나이때이네요.,*혁이와 *빈이가~ 손자 서균이 시후를 생각하면서 웃음을 짖습니다. 그 때는 세상을 다 가진 ..

80년대 점봉산 산행

80년대 후반 점봉산 눈산행(맨우측이 나) 참으로 귀하고 추억이 가득한 그리움이 묻어 나는 이 한장의 사진, 모든게 그립습니다.30여년이 지났지만 면면이 모두다 추억들이 새록새록 살아 나면서 그리운 얼굴들입니다. 가운데 깃발에 '포항로공업산악회'라고 선명히 보이네요 1984년 회사 입사했을 때 회사 상호가 '포항축로주식회사'였다. 국내 축로분야 최고의 회사였지요.築爐란? 이름에도 나타났듯이 국내 爐분야 내화물 최고축조회사였다.포항종합제철이 포항에 들어 서면서 함께 창립된 회사였지요,당연히 용광로의 내화물을 담당하였고 기술축적과 함께 국내에서 최고의 내화물축조회사로 자리 메김하면서 발전을 하였다. 그러다 포항로공업으로 상호가 바뀌면서 회사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그와 동시에 勞社간의 관계를 돈독히 하자는 ..

38년 전 구룡포산악회 첫 산행지/팔공산 은해사 건들바위

팔공산 건들바위 1982년 6월 12일 구룡포산악회 창립발기인 대회 총회를 마치고 그해 7월 셋째주 일요일(지금도 셋째주 일요일이 정기산행일이다) 첫 산행을 팔공산 건들바위로 갔었다. 아마도 영천 은해사,중암암을 걸처 능선재로 해서 관봉까지가 목표였을 낀데 산행 초보들이고 여름이라 힘들어서 능선재도 못 오르고 건들바위에서 정상식을 하는 모습이다.지금 생각해보면 건들바위는 중암암 위 만년송이 있고 옆에 삼인암이 있는 바위群이 아닌가 싶다. 사진을 보면 40여 년이 다 되어 가지만 어제일같이 생생하게 다가 온다. 정상식이라고 애국가를 진지하게 부르는 모습이 자못 엄숙하다.이때는 길가다가도 해질무렵에 국기하강식을 할 때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멈춰서서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제창하였지요, 맨 앞 일행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