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6월 12일 지방의 조그만한 邑에서 큰 꿈을 안고 山岳會를 창립하였다.
당시로써는 산악회란 이름도 생소했고 보는 눈들도 의심의 눈으로 바라 봤던 세월였다.
그도 그럴것이 먹고 살기도 바쁜세월였으니까요,
70년대 조국근대화의 거대한 바람속에울산과 포항을 시작점으로 중화학공업이 불같이 일어 나면서
나라도 우리국민들도생활들이 좋아지기 시작하였고 경제적으로 호황기를 맞으니
자연스럽게 레저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건전한 산악문화를 선도한다는 철학으로
지방의 소도시(구룡포)에서 산악회를창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산악회 창립후 매월 세째주 일요일에 정기산행을 다녔고
해가 바뀌고 음력으로 정월 달 첫 산행지 정상에서 시산제(그때는 '산신제'라고 했다)를지냈다.
지금은 구룡포 응암산에서 시산제를 대부분 지내지만 그때는 전국의 산으로 다니면서
그것도 반드시 정상에서 시산제를 모셨다.지금 생각해보만 조금은 무모했지 않았나 싶다.
시산제는 장소보다도 회원들의 정성이다.4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시산제를 모시는 풍토도 많이 사라졌고 힘든 산 정상보다는 둘레길을 선호하는 추세이다.
그에 발맞추어 우리 산악회도 가급적 천고지가 넘는 힘든 산은 멀리하고
4~5백의 낮은 산을 선호하게 되었다.각 지자체에서 앞다투어
동네 뒷산 정도였던 낮은 산들을 정비하여 둘레길들을 잘 만들었어 놓았기 때문이다.
비록 낮은 산들이지만 50여 년에 이르는 산림녹화사업으로
나무들이 잘 자라 산림이 무성해졌기 때문이다.
우리 포항만해도 100대명산인 내연산보다도
운제산이나 중명공원이 있는 옥녀봉을 더 많이 찾는다.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산을 오르면서 좋은 공기도 마시고
운동도 되고 하니 힐링되는 몸을 느낄 수가 있다.
위 사진은
1995년 사단법인 대한산악연맹 구룡포산악회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1월 첫 산행으로 김해 무척산 정상에서 시산재를 지내는 모습이다.
이 때는 시산제 제물들을 정상까지 운반하였고 참석 모든 회원들이
예외없이 산 정상을 올랐었다.다만 시산제 산행지를 가깝고
비교적 낮은 산을 선정하였던 것 같다.
시산제 후에는 하산하여 적당한 학교를 섭외하여 청백으로 나누어
친선축구경기나 족구를 하면서 친목을 도모하였었다.
사진속의 山자가 선명한 베낭은 단체로 지급하였던 베낭이다.
이 때는 매년 당대 회장께서 재임기념으로 단체 기념물들을 많이 했었다.
나의 경우는 그 해 6월에 울릉도를 2박3일 부부동반 창립기념 여행을 하였는데
나오는 날 파랑주의보로 묵이게 되자 긴급 대책회의를 하면서 추가 경비를
즉석에서 모금을 하였는데 많은 돈이 들어 왔었다. 여행 후 결산하면서
예산이 많이 남아 회원들에게 돌려 주자는 이사회의의 결의에 따라서
60여 회원들에게 오버트라우저를 한벌씩 지급하였었다.
이 모든 것이 재정이 든든하였기 때문에 가능했었고 본회 자산이
최고로 많았을 때는 7천만원까지 늘어 났었다.지역의 어느 단체도 이렇게
자산이 많은 단체는 없었고 모두가 부러워했었다.지금도 비록 회원수는
줄었지만 4~5천만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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