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사터 삼층석탑 高仙寺址三層石塔
통일신라 686년 이전,높이 10.2m
국보 38호
이 탑이 있던 고선사高仙寺는 『 삼국유사 』에 따르면 원효대사(617~686)가 머물렀던 절입니다.
미술사학자인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1905~1944)선생의 글에 의하면,1914년 5월 이 삼층석탑이 있던 주변에서
서당화상비(誓幢和尙碑) 조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서당화상비는 원효대사의 손자인 설중업이 할아버지인 원효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였습니다.
원효대사는 신문왕神文王(재위 681~692) 6년(686)에 입적하니까
이 탑 역시 686년 이전부터 있었을 것입니다.
1975년에 고선사터(경주시 암곡동)가 덕동댐 건설로 물에 잠기게 되자,
이 탑을 비롯한 여러 문화재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
이 탑과 너무나 닮은 탑이 신문왕 2년(682)에 세운 감은사터感恩寺址 삼층석탑입니다.
감은사터 삼층석탑에는 찰주刹柱가 남아 있어 언뜻 달라보입니다만,2단으로 된 기단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된 모습,노반露盤까지의 높이가 모두 10.1미터라는 점,82장의 돌로 이루어졌다는 점 등이
쌍둥이 탑이라고 할 만큼 닮았습니다.
다만 고선사터 삼층석탑 1층 몸돌에 문[문비門扉]을 표현한 점이 다를 뿐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 남쪽 마당에 서 있습니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놓은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 석탑양식의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구성하였으며, 각 면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습니다.
탑신도 여러 개의 돌을 조립식으로 짜 맞추었으나, 3층 몸돌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사리장치를 넣어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배려로, 석탑을 해체하여 복원하면서 밝혀졌습니다.
1층 몸돌에 문[문비門扉]을 표현함
지붕돌은 윗면에 완만한 경사가 흐르는데, 아래로 미끄러지는 네 귀퉁이에서
또렷이 들려있어 경쾌함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밑면에는 계단 모양으로 5단의 받침을 새겨 놓았습니다.
통일신라시대 전기인 7세기 후반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전형적인 석탑양식으로 옮겨지는 초기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양식은 이 탑과 함께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에서 시작되어
이후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국보 제21호)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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