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답사기

[경주] 국보 제 38 호, 고선사터 삼층석탑

安永岩 2013. 9. 16. 15:41

고선사터 삼층석탑 高仙寺址三層石塔

 

통일신라 686년 이전,높이 10.2m

국보 38호

 

 

이 탑이 있던 고선사高仙寺는 『 삼국유사 』에 따르면 원효대사(617~686)가 머물렀던 절입니다.

미술사학자인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1905~1944)선생의 글에 의하면,1914년 5월 이 삼층석탑이 있던 주변에서

서당화상비(誓幢和尙碑) 조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서당화상비는 원효대사의 손자인 설중업이 할아버지인 원효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였습니다.

원효대사는 신문왕神文王(재위 681~692) 6년(686)에 입적하니까

이 탑 역시 686년 이전부터 있었을 것입니다.

 

1975년에 고선사터(경주시 암곡동)가 덕동댐 건설로 물에 잠기게 되자,

이 탑을 비롯한 여러 문화재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

 

이 탑과 너무나 닮은 탑이 신문왕 2년(682)에 세운 감은사터感恩寺址 삼층석탑입니다.

감은사터 삼층석탑에는 찰주刹柱가 남아 있어 언뜻 달라보입니다만,2단으로 된 기단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된 모습,노반露盤까지의 높이가 모두 10.1미터라는 점,82장의 돌로 이루어졌다는 점 등이

쌍둥이 탑이라고 할 만큼 닮았습니다.

다만 고선사터 삼층석탑 1층 몸돌에 문[문비門扉]을 표현한 점이 다를 뿐입니다.

 

 

 

국립경주박물관 남쪽 마당에 서 있습니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놓은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 석탑양식의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기단은 여러 개의 돌로 구성하였으며, 각 면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습니다.

탑신도 여러 개의 돌을 조립식으로 짜 맞추었으나, 3층 몸돌만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사리장치를 넣어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배려로, 석탑을 해체하여 복원하면서 밝혀졌습니다.

 

 

 

 

 

 

1층 몸돌에 문[문비門扉]을 표현함

 

 

 

지붕돌은 윗면에 완만한 경사가 흐르는데, 아래로 미끄러지는 네 귀퉁이에서

또렷이 들려있어 경쾌함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밑면에는 계단 모양으로 5단의 받침을 새겨 놓았습니다.

 

 

 

 

 

 

통일신라시대 전기인 7세기 후반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전형적인 석탑양식으로 옮겨지는 초기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양식은 이 탑과 함께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에서 시작되어

이후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국보 제21호)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