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답사기

백률사 대웅전

安永岩 2010. 6. 28. 21:42

이차돈(異次頓) 순교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절

 

백률사(栢栗寺)

 

 백률사 올라가는 길에 대숲

백률사는 소금강산 굴불사지 석불상 위에 있다.

굴불사와 이차돈과의 관계가 있었지 않았을까?

 

 백률사

 

 백룰사 대웅전(栢栗寺 大雄殿)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4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406-1

 

 

백률사는 삼국유사등의 기록에 나오는 자추사(刺楸寺)일 것이라 한다.

자추사가 맞다면 신라 법흥왕 14년(527)에 불교를 나라의 종교로 삼도록 순교한

이차돈(異次頓)을 기리기 위한 절이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그 후 다시 지어졌다.

단층의 목조 기와집으로 옆에서 보면 '사람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정면3칸,측면 3칸의 다포(多包)집으로 좌우 협칸에 쌍여닫이문을 두었다.

기단부는 일부 신라시대 양식을 지니고 있다.

대웅전에 모셨던 금동약사여래입상(金銅藥師如來立像)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세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3대 금동불(金銅佛)로 알려져 있다.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은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절이 아닌 문화재로써 박물관에 있는 것이다.

분실과 훼손 방지 때문인듯 한데..그래도 원래 있는자리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차돈의 순교이야기

이차돈은 신라 법흥왕 14년(527년) 불교 공인을 위해 순교했다.

왕이 불교를 일으키려고 하지만 신하들이 반대하자,

측근인 이차돈의 죽음을 통해 신하들의 반발을 잠재웠다.

이차돈은 순교하기 직전, "부처님이 신령하시다면 내가 죽은 뒤

반드시 신비로운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자 "흰 젖이 한 길이나 솟았고, 하늘은 사방이 어두워 저녁의 빛을 감추고

땅이 진동하고 비가 뚝뚝 떨어졌다"고

 '삼국유사'는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미술관 2층에 전시된 '이차돈 순교비'에는

순교 당시의 장면이 한폭의 그림으로 간결하게 표현돼 있다.

땅이 진동하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가운데, 목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는다.

고깔 모양의 모자를 쓴 이차돈의 머리가 그 아래 뒹굴고….

시대와 지역과 종교를 떠나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 그림 앞에서

순간 숙연해지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6면으로 이루어진 화강암의 이 비석은 이차돈이 순교한지

 290년이 지난 818년(헌덕왕 10년)에 건립됐다.

무덤을 수축하면서 비석을 세웠다고 하는데,

맨 위에 둥근 촉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는

상부에 옥개석 같은 구조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6면 중 그림이 있는 한 면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면에는

 

법흥왕과 이차돈이 나누었던 대화와 죽음의 과정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대부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글자가 잘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마모돼 알아 볼 수 없는 글자가 많다.

하지만 이차돈의 거룩한 순교의 의미를 되새기는데

이 한 폭의 그림 외에 달리 무엇이 더 필요할까 싶다.

 

 

 삼성각

 

 요사체

 

 

 

 

 백률사금동약사여래입상

국보 제28호. 높이 177㎝.

경주 북쪽 소금강산의 백률사에 있던 것을

1930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진열하고 있다.

불국사의 금동아미타불좌상·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함께

우수한 주조기술을 보여주는

통일신라시대의 3대 금동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불상이 언제 다시 백률사로 돌아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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