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으로 본 구룡포산악회 발자취 ◈
< 소회,연혁 >
산악활동의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구룡포에 포항에 계시던 이춘근선배님이 구룡포에
교보생명보험소장으로 부임해오면서 뜻 한바 있어 주변지인들(김대원,최덕유,장종만,안염택,안영암)
과 함께 가칭,구룡포산악회를 조직하고 함흥식당 송석무님을 초대회장으로 모시고 지역의 산악활동에
뜻이 있는 유명인사와 선후배님들을 모시고 종점 최덕유님(당시한남체인)건물 2층 교보생명에서
1982년6월12일 발기인대회를 개최하였다.이때 발기인대회 인원은 대략 30여명였는데
레저 단체로서 인기가 있어 그 해 년말에 40여명으로 늘어 났다.
* * *
30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지난날들을 되새겨 보니 감회가 새롭다.
30살이던 회원이 60환갑이니 감회가 새롭다기 보다는 지난 세월이
가물가물하다. 사진으로 보면 알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산악회를 거쳐 갔다.
아!!!!! 저분도 우리 회원였나 ??? 할 정도로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산악활동을
함께 했는데...아쉽게도 고인이 된 분도 많고 개인 사정으로 본회를 떠 난 사람들이
더 많다. 현재 본회 창립멤버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송석무,최덕유,김대원,장종만,
안염택,안영암,허달수,박두윤등 8명과 창립멤버나 다름없이 그해 들어온 안연천,
김소형,이월섭등 10여명이 30년을 함께 해오면서 산악회를 지키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산악 후배님들의 구룡포산악회의 역사와 전통에 긍지를 갖고
열심히 산악활동을 하고 있고, 선배사랑이 하늘 같아서 산악회의 앞날이
더욱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앞으로 50년 아니 백년~~~
영원히 존재하여 갈것이다.
30년 동안 구룡포산악회에 몸 담아 있으면서 참으로 사연도 많았다.
아마 책으로 쓰면 몇권이 될지 모른다.83년도에 대구 연맹에 가서
대한산악연맹에 가입하면서 당시 연맹회장이셨던 이효상전국회의장을
구룡포에 초대하여 구룡포가 발칵 뒤집힌사건이며,또 이의장 대구 자택에
초대되어 간 것은 두고 두고 영광이였다.포항에 각종 산악활동에 적극
동참하여 모범적인 지역산악회로써 자리 메김하여 부러움을 싸게 하였고
당시에는 산행지식이 없는 상태인데다가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여
사전답사라는 형식으로 먼저 산행지에 갔다온 다음에 산행을
하곤 하였는데...예산부족으로 그 것도 여의치 않아 답사없이
산행을 가서 길을 잃어 헤메기가 다반사였다.
하여튼 우리 후배들을 위해서 사진들을 보면서 그때 그때 있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적을까 한다.1982년 6월 12일 창립일로 부터
1986년도 까지 1부에서 올리고 2,3부에 나누어 2000년까지 올릴까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사진이 오래되어 희미하여 회원들이 잘 식별이 되질 않는다는 점인데
보시는 분들이 어림잡아 잘 보시기를 바랍니다.정말로 귀한 오래 된 사진들입니다.
사진속에 인물들은 한동안이지만 분명히 우리 산악회회원으로 있었던 분들이다.
☞ 2부 사진 기록 : 1987년 6월 ~ 1994년 12월까지
<87년 5월 이화령에서>
지금은 이화령 터널이 개통되어 경북에서 충북으로 넘어 가는 것이 금방이지만
터널이 개통되기 전에는 월악산이나,희양산,혹은 문경세제 뒷편,즉제3관문,신선봉,을
갈려면은 반드시 이화령을 넘어 가야 했다.이화령을 넘으면 충북 연풍군인데 이곳에는
볼 것이 너무나 많았다. 월악산은 물론이지만 그 곳에서 흘러 내리는 계곡물과 수안보온천,
미륵사지터의 신비감,하늘재,조령산,포암산,등 2~3년에는 한번씩 꼭 이 이화령을 넘었던 것 같다.
그만큼 산세도 좋고 계곡이 좋고 볼 거리가 많았다.특히 그당시에는 수안보 온천이 인기라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다.그 수안보가 지금은...
<87년 6월 지리산 거림>
아마 기억에 중산리 - 거림 - 세석평전 - 장터목대피소 - 천왕봉을 등반 했던 것 같은데
중산리에서 너무 멀고 짐이 많아 트럭을 빌려서 짐도 싣고 사람도 타고 하여
거림까지 운반하였다.그 당시에는 1박 2일 간다하면 구룡포에서 나는 해산물을
풍족하게 싣고 또 개인 텐트가 있어 짐이 많았고 거의가 야영을 많이 했다.
지금처럼 민박 카는 것이 거의 없었다.세석평전에서 1박 했는데
물가사람같이 아침에 복어국을 산중에서 묵었던 기억이 난다.
고사목으로 유명한 지리산 제석봉에서
왠놈의 비가 하루 종일 내렸고 6월인데도 추위에 엄청 떨었던 기억이 난다.
안태부선생은 회원였는지,비회원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으나
이때 사모님과 함께 동행했다.
꼭 물에 빠진 생쥐 꼴이다.모두가...그래도 표정만은 환하다.
제석봉에서 김원연와 함께...
드디어 '천왕봉'
가운데 회원은 기억이 나질 않으나 산을 엄청 잘 탔다.
<88년 6월 덕유산에서>
이 당시에는 창립기념일이 있는 6월달은 산악회에서 년중 제일 큰행사를 했는데
부부동반으로 1박2일 혹은 금요일 밤에 출발하는 2박3일을 주로 국립공원,섬으로
다녔다. 덕유산도 그 일환으로 부부동반으로 갔는데 위 사진에서 보니 구룡포인물
들이 다 모인 것 같다. 나만 빼고 ...내가 왜 여기에 끼였는지 모르겠다.
명룡형님도 보이고...참으로 재미 있었던 형님였는데...
당시에는 이렇게 꼭 텐트를 치고서 1박 하면서 캠파이어도 하고
술도 먹고 노래도 부르고...참으로 낭만적이었다.
김우영한독약국 약사님이 텐트를 잘 못쳐서
월섭이하고 내가 쳐 주는 모습이다.
우영형님사모님께서 민요와 춤을 잘 추었는데...
특히 새타령은 일품였었지...지금은 어디에 계시는지...
저녁먹고 난후 아내와 커피타임.22년전이니까 젊었었지...
덕유산은 당시에 민정당수령원이 있던 곳이라 야영장이
잘 가까워 져 있었던 걸로 기억 난다.
<덕우산 무주구천동 백련사앞에서>
<나제통문에서>
굴을 사이에 두고 신라와 백제가 겨루었던 곳.羅濟通門 !
이쪽에는 신라,저쪽에는 백제.하여튼 덕유산 무주구천동에 오면 반드시
들리는 곳 나제통문였다.지금은 별로 유명하지 않은지...가본지 오래되었다.
이곳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관광차가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지금은 웃기는 애기지만...그 당시에는 관광도 그렇게 활성화가
되지 않을때 였다.
아내가 이때는 애숭이였다.
멋모르고 무주구천동에 발을 담그고 머리 감다
차가운물에 동태가 될뻔 했다나...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 물의
차가움을 애기하곤한다.
<88년 10월 한계령에서>
88올림픽을 치른 그 해 가을에 설악산을 갔다.
당시에는 부부동반으로 가을에는 오대산 ,설악산,계룡산,속리산.내장산,서울 북한산 등이
인기산였고 꼭 부부동반을 하여도 비록 일부이기는 해도 산행은 꼭 했다.
그만큼 산악회가 젊었었다.위 사진을 보니 병포리에서 이발소를 경영하던
김성규회원이 보이네.지금은 포항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비선대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권금성에서 마뉼님
권금성에서 황철봉을 배경으로...
이렇게 야영하면서 밤새 애기를...
왼쪽부터 돌바우,김명수 처,마뉼님,서상준형수님,하규태전직회장형수님,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된 김명수친구
이렇게 둘러 앉아서 켐파이어를 하면서 술도 한잔하고...
정말로 좋은 시절에 좋은 추억였다.
89년도 1월 창녕 관룡산 정상에서
이때는 1월달인데도 부부동반으로 시산제산행을 한 것 같다.
사진을 가만히 보니 원영수,기도권,김성규,김원연등 병포리그룹과 시장안에 이규환씨,
조진이씨,참기름집을 운영하신 이상ㅇ씨,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저 위에 형님,
그리고 수협 김명수,이경목씨,농협 권일곤, 삼구회 양진석형님,
용주리 황보관득형님등의 얼굴이 보인다.
이 사진만 봐도 떠난 회원이 더 많다.
천년사찰 관룡사에서...
당일인데 이만큼 많이 갔다.차는 몇대 대절 했는지 모르겠네...
아마 이때 '부곡 하와이'를 경유했을 것이다.정확하게 기억 나지 않지만...
부곡하와이가 국내에서 관광 1번지였다.한 건물안 즉 실내에서
수영과 목욕,공연관람(수영하면서 관람)식사등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곳,
부곡 하와이 ! 정말 대단했지!!! 이때는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 들여졌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씩은 거쳐 갔을 것이다.
이곳에서 찍은 사진도 꽤 있었는데...찾으니 없네.아쉽다.
관룡사 요사체에서
요상한 글귀가 있어서 한커트.
人間아 !
두발로 땅을 딛고
열개 발가락으로 중심을 잡고
엿가락 같은 두팔을 흔들며
열개 손가락으로 별별짓 다하고
검은머리 숲을 길러
해골 통 위를 가리운채
두개뻥 뚫린 구멍속에
안구통을 데국데굴 굴리며
못 볼것 안 볼것 보게되니
골통안 순두부속
똥물만 가득 체워
세치 헛바닥 굴러
뱉는 것은 거짓말이요
하는 짓은 죄지음이 전부이니
상판때기 중앙 두 구멍속으로
들락날락 거리는 공기도
썩은 생각 기운 몸뚱아리 다녀오니
천지간에 썩은 냄새 퍼뜨리는 것은
죄아니고 무엇인고
人間아!
人間아!
관룡산 정상에서 시산제를 모시는 중
산신제문을 읽는 형님의 이름이 가물하네.시장안에서 참기름집을 운영한 이상* 뭔데...
하여튼 불교에 심취하여 반야심경을 잘도 읇었는데...꼭 산 정상에 올라가면 한쪽 바위에
가부좌 자세로 반야심경을 읇는데 그소리가 얼마나 가슴에 와 닳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얼마전까지 포항 나루끝 한신타운에 계시면서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산악회 활동을 계속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89년 김대원회장님 이취임식 장면
이때는 사무실이 좁아 '일선예식장'을 빌려서 정기총회및 이취임식을 했다.
아 ! 이사진을 보니 참기름집 형님 이름이 생각 나네...이상봉씨.
김점옥형님도 보이고...그 옆에 두사람은 전혀 이름이 생각 나질 않는다.
얼마 안 있다가 그만 두었지...지용운씨도 회원였던 모양이네.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허달석전회장님이 요 앞에 회장을
역임했었다.들어 온지 얼마 되지 않아 회장을 했는데
이때는 그 형님들의 영향력이 컸고 그 당시에는 실세였다.
특히 철복이형님이 대단했지,그 기세가...
이때 간사가 있었나????? 기억이 가물하다.
기록을 보니 89년 3월 어느날인데...합천 가야산 산행중
이렇게 때 아닌 눈을 만나 고생했던 기억이 어제일 같이 생생하다.
이때 그래도 정상을 올랐다. 정상을 오르지 않는 등반은
상상을 할 수 없었다.그 만큼 열정이 많았고 최고를
향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리고 젊음의 열기가 대단했었지...
그리고 이때는 산행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등산,등반한다고 했다.산악회 초반에는 지역에서
내일 놀려 간다며 ? 아니면 언제 놀려가나?
하는 말이 제일 듣기 싫었다. 레져 지만은 산악활동이
그들 눈에는 아직도 호사롭게 놀려 가는 줄 만 알았다.
그것이 못내 섭섭했고 이해시킬려고 부단히 노력도
많이 했다. 지금은 산악회가 당연히 건강을 위한
최고의 레저활동이 되었지만...그때는 눈치도
많이 받았다. 지금 생각하니 선각자는 항상
외로운 길을 묵묵히 간다는 말이 생각났다.
문경 '희양산' 하산길에서
겁없이 길을 잃고 자일을 타고 내려 오다 수백미터 절벽을 만나
시컵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때 정말로 아무런 사고가 없었으니 다행이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더구나 비는 쏱아져 내리지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미끄러운 바위면에 손이라도 놓는 날엔...이때 김상호회원의
활약은 대단했다.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일을 준비하여 한사람 한사람
구조하여 무사히 언덕위로 올라 올 수 있었고 모두가 무사했다.
비록 무전기는 1대 잃어 버려도...봉암사쪽으로 내려와서 쳐다보니
거대한 대리석 흰바위는 정말로 대단했다.희양산 전체가
바위산였다.그것도 모르고 그 바위를 일부나마 탔으니...
그것보다도 더 큰 에피소드가 있었다.
이름바 봉암사 스님들의 김대원회장님을 까딱 둘러 메고
봉암사에 감금시킨사건이 그것이다. 이미 여러번 애기를 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고...대신 이 봉암사는 남자 스님들의 수도도량인데
일년에 딱한번,부처님오신날만 개방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떠들면서 들이 닥쳐스니...
하여튼 힌 적삼을 입은 스님들이 장작폐기를 들고 몇 백명(?)이 쏱아져
나오는데...그저 놀라 자빠 질 수 밖에...화가 나니 스님도 무섭드라...
이때 날짜를 보니 89년 5월이다.
89년 6월 부부동반'강원도 오봉산'에서
이때는 남자고 여자고 없다.전부 산을 잘 탔다. 아니 산을 타는 것이
당연한 줄로 알았다.지금 생각하면 좀 무식 할 정도로 등반을 강요했었다.
특히 1박 하면서도 밤새도록 술을 먹고 뜬 눈으로 밤을 새워도 지금보다도
등산을 잘 했고 겁도 없었다.하기사 나이가 30대에서 40대초반이
대부분였으니까 ...체력보다도 깡으로 버틴 듯 했다.
막무가내로 등산(?)을 해도 사고 한 건 없었으니...
구룡사진관 이상훈회원과 최무송회원님도 보이네.
오봉산은 소양댐에서 배를 타고 7~8분 거리에 있다.
배를 타고 이동하면서...진용수전회장도 이때는 애송이 였다...
오봉산에서 1박하면서 캠파이어 끝에 한판 춤판을 벌리다.
배를 타고 들어 가서 캄캄한 밤에 보이는 것은 별 뿐인데...
텐트치고 불을 밝히고 가져간 술을 한잔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
너나 할 것 없이 노래 부르고 춤을 췄다.특히 한독약국 김우영 사모님의
새타령에 모든 회원들은 녹아 났다.표정들이 얼마나 행복에 겨워 보이는가?
정말로 아름다운 모습이다.적어도 이때는 근심걱정이 없었다.
국가적으로도 경제가 활활 타오를 때가 아니였는가.
참고로 청색에 붉은색이 있는 추리닝은 단체복이였다.
이때는 툭 하면 단체복을 해 입었고
단체 모자다,쪼끼다,베낭등등...많이도 했다.
오봉산에는 멋진 소나무 많았는데...
나무에 올라 한커트 ! 가만히 보면 물통을 찬 모습이
촌스럽기 거지 없네.그래도 그 당시에는 이것이 등산의
한 패션였다. 지금처럼 생수가 나오지 않을때 였다.
때는 1989년(김대원회장때) 8월 울진 소광리 대광천에서
망중한을 보내면서...이때 먹은 음식은...상상에 맡끼고
나는 닭을 먹고 물에서 놀았다.이곳 소광리는 '금강송'으로
유명하며 계곡물이 전혀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곳이였다.
그곳이 자수정 동굴이 발견되면서 오염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금강송 둘레길이라 하여 많은사람들이 산림욕을
하려 오는 모양들 인데...오염은 불을 본 듯 뻔하다.
하여튼 원시림에 가깝던 20여년전의 모습은 간 곳이 없다.
역시 울진 덕구계곡에서
이 덕구계곡은 입구에서 4키로정도 계곡안으로 들어 가면
노천온천으로 희안하게도 땅에서 뜨거운 물이 쏱아 올랐다.
그 신기함에 당시에는 많이도 갔다.특히 연속으로 이어진
폭포와 계곡의 풍광이 예사롭지 않았고 응봉산을
오르내리는 길목이라 자주 갔던 기억이 난다.
물론 덕구온천랜드가 서기전 였고, 하늘이 뻥 뚫린 가림막만 있는
남,여 노천 목욕탕였던 것이다. 그 뜨거운 물의 온기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 때 서재원전시의원도 회원였다.
북한산 백운대에서
1989년 10월 14~15일 1박2일로 서울 관광 겸 북한산을 갔다
처음 접한 북한산국립공원.우이동에서 출발하여 말로만 듣던 '인수봉'옆을 지나면서
쳐다본 인수봉의 멋진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특히 그 당시에도 인수봉 암벽을 타는
클라이머들이 있었는데 경외의 대상였다. 힘들게 올라 백운대에 올라서니 그 기분은
날아 갈 것만 같았다.그리고 정상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백운대는 그때 오르고 지금껏 오르지 못했다.그 만큼 지방에서 서울 와서
당일 산행으로는 어렵다는 증거다. 혹 서울 와도 밤새 술 퍼 먹느라고 녹초가
되니 항상 그 언저리만 맴도는 꼴이 되었다.요즈음 백운대는 사람으로 밀려
오르기를 포기 해야 될 정도로 인파로 넘쳐나는 것 같다.
기억에 이 백운대 마지막코스는 한사람이 겨우 지나가는 바위슬랩코스라
더욱 정체되는 구간인 것이다.참고하시기를...
청도 남산 낙대폭포에서...90년 2월로 기억한다.
산악회 정예부대 대원(?)이 다 모인 듯 하다.
이 멤버면 히말리야 8천고지도 꺼떡 없을 것 같다.
싱싱하잖은가 ^^* ^^*
1990년. 드디어 90년대로 접어 들면서 제 9대 장종만회장이 취임하다.
구룡포 산악회가 90년대에서 10년간이 제일 전성시기가 아니였나 싶다.
년령적으로 경제적으로 제일 풍족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회원확충이 봇물 터지듯 밀려 들었고 본회 재정도 눈에 띄게 늘어 가서
산악회 살림이 자동으로 풍족하여 간사(여직원)을 두게 되었고,
자연히 큼직큼직한 큰 행사를 많이 하게 되었다.
창녕 화왕산 억새를 배경으로...
1990년1월 시산제를 화왕산에서 부부동반으로 지냈다.
이때는 이왕 관광차로 가는 거 산행을 원하는 부인은 자연스럽게 동참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부인회원이 감소하드니 어느 순간에 없어 지게 되었다.
충남 서대산(904m) 1990.5월
왠 아가씨들이 이렇게 많노? 가만히 생각해보니 간사 친구들과 약국에 미스김친구들이
같이 갔었든 것 같다. 사진을 보니 김재일도 보이고 김주석씨도 있었네.
1990.10월 오대산 비로봉에서 두윤형님과 함께
박두윤 ! 사진에서 보듯이 대단했다. 산악회와 함께 인생이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지금은 몸이 불편하여 산을 쉬고 있지만
몸을 너무 혹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몸을 좀 생각하고 다녔드라면
하는 아쉬움이 참으로 많다.산이면 산,술이면 술,절대로 마다하지 않고
무리했으니 몸도 갈 수 밖에...외국의 산도 안방드나 들 듯이 다녔고
봄 되면 蘭 탐사로 전국을 제 집 다니 듯이 다녔고...
술도 두주 불사라...절대로 사양하는 법이 없었다. 좀 얕게 먹지...
지금은 산악회를 쉬면서 경주 본가와 포항집을 오가면서
건강을 돌보고 있는데 하루 빨리 정상으로 돌아 오기를 빌어 본다.
↙영월고씨동굴 입구에서
마뉼님과 포즈를 ...왠지 촌스럽네
영월 고씨 동굴 !
20여년전에는 사진에서 보듯이 배를 타고 건너 갔다.
고씨동굴은 여느 동굴 보다는 특이했다.
강을 건너면 바로 굴 입구 인데 지하로 내려 가는 굴였다.
수십미터를 내려 가는데 지하수가 펑펑 쏱아지고
어느 지점에서는 지하계곡물이 흘러가고...하여튼
볼거리가 많고 신비한 동굴였던 것 같다.
이때 가보고는 아직도 가보지 못했는데...
굴 입구까지 다리가 놓아 졌다나 .
그리고 그때 들리는 애기로 삼성재단에서
이 주변 땅을 몽땅 싸 들여서 공원화한다고
했는데...그것은 아니가 보네.
이때는 산악회에서 동굴쪽을 많이 갔었던 것 같다. 단양 고수동굴,천동굴,울진 석류굴
영월 고씨동굴, 온달굴 , 정선 화암동굴,삼척 환선굴,제주도 만장굴,김녕굴,강원도 땅굴 등
하여튼 한국에 왠만한 동굴은 다 가 본듯 하다. 지금은 동굴견학 프로그램자체가 없다.
죄다 가 보았으니...그런데 한군데 더 가야 할 곳이 남았다. 삼척 대금굴이다.
경남 거창 가조에 있는 古見寺앞에서
산은 별유산 義湘峰(1046m)이다. 거창에는 유명산들이 많이 있었지만 의상봉은
알려지지 않은 미 개척 산였는데 우리 산악회가 가면서 많이 알려져 지금은 많은 산꾼들이
건너 미녀봉과 함께 찾고 있다.특히 의상봉 봉우리 올라가는 마지막 구간이 굉장히
위험했는데 지금은 사다리를 놓아 안전하게 올라 가도록 했다.그리고 이 가조는
당시에 '가조온천'를 개발하여 엄청 특수를 누렸다.지금은 쇠락하여 목욕탕으로
변했지만...우리 산악회도 이쪽 방향의 산행을 하면 무조건 가조에서
고기 파티(고기도 엄청 맛이 있었다)를 하고 가조온천에서 목욕하고
한잔 먹고 놀았다.그 만큼 인연이 많았던 곳이 가조온천였다.
거창쪽에도 많이 갔었는데...산은 대략 금원산,기백산,거망산,
황석산.남덕유산등 고산이 많았고 하나 같이 힘든 산였다.
☜ 강원도 점봉산을 오르면서 눈이 너무 깊어 능선까지
간 후에 정상은 포기하고 뒤돌아 섰던 기억이 새롭다.
나도 이때는 산에 완전히 빠져 다녔던 것 같다.
회사와 산 ! 그것이 유일한 생활였고
가정을 좀 등한시 한 때가 아니였나 싶다.
산악회외에 회사산악회도 이끌고 운영을 하였기때문에
더더욱 바빴고 아내한테 바가지도 많이 꿁혔었다.
회사산악회는 정책적으로 회사에 다니기 위해서는 하는 수 없이 운영해야 한다고 이해를 시켰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 한달에 2번이상을 산에 다녔으니 아내의 불만이 많이 클 수 밖에 없었다.지금은 다 지난일이지만...
문경 백화산에서
30년동안 참으로 문경지방에 많이 갔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1년 산행행사 계획을 세울때 반드시 문경지방의 산하나는 꼭 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문경을 빼면 산을 논 할 수 없을 만큼 산이 많은 고장이다.아마 대락 50산은 될 것이다.
참고로 년중 산행계획을 세울때 기본적으로 각 道에 한곳은 넣고 그 다음에 지방산을
두세 군데 넣었던 것 같다.그러니까 30년이 흐른 지금보면 전국의 유명산은 죄다
갔다온 셈이고 지금은 거의가 엥콜산행을 하고 있다.특히지리산,설악산은 수십번을
갔다 왔는데 데도 워낙 산세가 넓고 깊고 크다보니 갈 때마다 새롭다.
부부동반 강화도에 갔을때 김포에 애기봉도 들렸었다.
당시에는 1년에 2번씩 봄,가을로 부부동반하여 전국의
유명관광지를 돌았다.집에서 수고하시는 부인회원들을
위한 배려 차원였는데...반응이 폭발적이라 어느 순간
연례행사처럼 지금까지 고정행사가 되었는데...화합과
한가족이라는 모체로 끈끈한 정이 넘치는 단체를
만드는 1등공신이 되었다.
강화도 광성보에서...
합천 남산제1봉(매화산)
91년이니 꼭 20년전이네...
남산제1봉을 초등하고 난후 이 산의 매력에 폭 빠져 이후에
여러번 갔었던 기억이 새롭다. 참으로 바위 능선길이 너무
아름다운 산였다.가야산의 전경은 이 남산제 1봉에서 봐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그 유명한 홍류계곡을 사이에 두고
가야산,매화산이 좌,우로 솟아 있다.그리고 그 깊은 곳에
대장경을 안고 있는 합천 해인사가 포근히 자리하고 있다.
성철큰스님께서 말년에 기거 하셨던 백련암도 이곳에 있다.
설악산 종주를 하면서...
이때는 대청봉(1708m) 바로 아래 대청산장(지금은 아래로 내려가서
세로 지었지만)이 있었는데 워낙 협소하여 올라오는 등산객들을 다
수용 할 수가 없어 산장옆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그 야영을 위해 부득히 무거운 텐트을 메고 올라야 했다.
지금은 모든산장에서 인터넷예약을 하여 밖에서 자야하는
일이 없어 편리 해 졌지만 그 당시에는 꼭데기의 산장에 얼마나
많은사람들이 몰릴지 전혀 예상 할 수 없었고 선착순 먼저
도착하는대로 받아주었다. 늦게 도착하는 사람들은 밖에서
텐트를 치고 자고 새벽에 일출을 보았다.
나는 설악산 여러 코스중에 한계령 - 끝청 코스와 용아장성코스를
아직 타지 못하고 모든 코스를 종주한 듯 했다.특히 추천하고
싶은 코스는 장수대에서 출발하여 십이선녀탕과 공룡능선을 추천
하고 싶고, 계곡은 당연히 천불동과 구곡담계곡을 꼽고 싶다.
또한 남설악의 주전골도 가을에 꼭 한번 가기를 권한다.
하여튼 산악회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지리산 다음으로
많이 갔던 산이 설악산이 아닌가 싶다.그 만큼 우리나라의
대표 명산이 아닌가 싶다.
또 가고 싶네...
삼척 용소골을 처음가다. 날짜가 92년 8월이네...
처음으로 접한 '용소골'은 한마디로 우리나라에 가장 아름다운 숨어 있는 비경였다.
일반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용소골은 덕구노천온천이 있는 응봉산 북서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행정구역상 삼척군(지금은 市이지만)에 속했고 오지중에오지인
'덕풍마을'이라는 곳이 출발점이며 통상적으로 덕풍마을에 1박 하던지 아니면
용소골 계곡을 타고 가다 중간 지점에서 1박 하고 다음날 응봉산 정상을 올라
노천탕으로 해서 덕구로 나가야 한다.하여튼 이때는 박두윤형님이 김상호와
같이 여러지인들을 데리고 전국의 험한 산과 꼴자기를 돌아다니면서 많이도
다니더니만 어느날 용소골로 가자고 꼬시네.너무 좋다나.안 그래도 꼭 가고
싶었던 계곡이라 선듯 응하고 출발했는데...용소골은 정말로 미개척계곡였다.
첫째 등산로가 없고, 하루 종일 계곡 물속으로 아니면 험한 바위를 타고 넘어야 했다.
1~3용소를 지나 능선에 붙을때까지 계곡의 비경에 감탄을 금 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비가 많이 온 다음에는 절대로 삼가해야 하는 계곡이다.
아니 갈 수가 없다,급류때문에 어느 바위에 부딪혀 죽을지 모른다.
이때 기억으로 계곡 중간에 조금 평지가 있는 자갈이 몰아친 곳에 1박을 했는데
계곡에 발을 넣고 조금 있으니 물고기들이 발에 달아 붙는데 수백마리는 됨직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저윽히 놀래 자빠졌다.그래도 물고기 한마리 잡아
먹을 줄 몰랐다,하기사 종일 물속에서 강행군 했더니 퍼제자빠져서
그런 생각을 하지를 못했다.한참동안 혹 놀려가서 고기잡아 매운탕을
먹을때면 이 용소골 고기들이 생각이 난다.
그 이후로 우리 산악회에서도 한번 도전하여 많은사람들이 계곡의 비경에
감탄하게끔 했고 개인적으로 한번 더 갔으니 총 3번을 갔다온 셈이네...
최근에 들리는 바로는 모 방송국에서 1박2일 방송후 덕풍계곡,용소골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또한 용소골에 없던 등산로가 생기고 하여
누구나 갈 수 있도록 하였단다. 오지중에 오지였던 덕풍마을과 용소골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인간의 발이 닿으면 자연히
파헤치고 뚫고 놓고하여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오염(?)되기 마련이다.
그래도 어떻게 변했는지 한번은 가 보고 싶다.
<참고> 용소골 가기전애 우측으로 갈라지는 계곡이 '문지골'인데
나는 가보지 않았지만 박두윤,이규환,김상호가 가서 雨中에 길을 잃고 헤메다
능선을 넘어 도착 한 곳이 '석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오지에 도착하여
엄청 고생하였다는 전설 같은 애기를 들었다
영암 월출산 출렁다리에서
(지금은 구름다리라 하고 다리도 엄청 크고 견고하다)
진강수산 최정만씨도 보이고...
지금의 구름다리보다도 운치가 있었다.말그대로 출렁출렁~~~
홍도에서
날짜를 보니 2박3일을 일정으로 월출산을 끼운 홍도네...하여튼 이때는 통 큰 행사를
많이 했다.월출산만 해도 거리상으로 1박 2일 코스 인데...거기다 홍도는 2박3일 코스
아닌가? 하여튼 기억에 홍도에서 기상 악화로 하루가 더 묵이게 되었었다.
홍도는 목표에서 가는데 흑산도를 거쳐 가는 배편이 있었으나 우리가 탄 남해훼리호는
바로 논스톱으로 2시간40분 만에 홍도에 도착했다. 그때 홍도의 신비함은 대단했다.
'홍도야 우지마라'노래도 있잖은가? 사실 노래속에 홍도는 사람이름이지만...
홍도에서 추억은 지금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홍도1구,2구 2개동으로 나누어져 있고 배가 도착하면 바로 언덕을 넘어 반대편
동네로 가는데 그곳이 홍도의 번화가 인 셈이다.횟집,식당.노래방,회관까지 있었다.
아랫길,윗길해서 두 길인데 육지와 같이 없는 것이 없었고 관광객들중에는 80%가
서울 사람들인듯 했다. 저녁식사후 '구룡포산악회의 밤'을 회관을 빌려서 놀고 난 후
아직도 여흥이 채 끝나지 않아 삼삼오오 술집으로,노래방으로,밤이 새도록 놀았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우리 인원들만 해도 많아 홍도에 온 천지가 우리 인원들이다.
깜짝 놀란 것은 간밤에 우리와 같이 놀아준 도우미아줌마가 홍도선착장에서
해삼멍개를 파는 홍도해녀였다. 얼마나 민망하든지...그래도 구면이라고 멍개를
한사라 주데...하여튼 이때 홍도는 관광 천국였다. 유람선을 타고 섬을 한바퀴
돌아보라 ! 왜 홍도인지 ! 말이 필요없다. 그 비경에 감탄! 감탄 !!!!!
벌어진 입이 절대로 다물어 지지않는다.대한민국 섬의 백미 ! 홍도 !
최고의 비경 섬 홍도. 정말로 환상의 섬였다. 나는 홍도를 갔다 온 이후로
주변사람들에게 꼭 홍도를 가 볼 것을 많이도 권했다.
이때 홍도는 물이 귀해서 비가 오면 비를 받아 저장했다가 식수로 쓰고
화장실의 물은 바닷물을 올려서 사용했다. 그리고 학교가 있어 운동장에서
공도 찰 수가 있고,산에는 동백나무,후박나무가 지천이고 蘭도 여기는 대엽란이고
나무에 붙어 자라는 석곡이 많았다.해산물이 풍부하여 전복,해삼,멍개,소라가
개대가리만하고 자연산우럭,농어가 흔하고,산에는 산딸기가 엄청나게 많았는데
뱀 또한 흔하다는 말을 듣고 딸기 따 먹다가 혼비백산하고 도망나왔다.
홍도 몽돌 해변에서 아내와 함께...
홍도는 면적 6.47㎢, 인구 478명(2001)이다.
해안선길이 36.8㎞이다. 목포항에서 서남쪽 115㎞ 지점에 있다.
이 섬에는 270여 종의 상록수와 170여 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1965년에 홍도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170)으로 지정되었으며,
1981년에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최고봉은 깃대봉(368m)이며, 남서쪽으로 양산봉(231m)이 솟아 있고,
섬 전체가 비교적 기복이 큰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선은 드나듦이 심한 편으로 남쪽과 북쪽이 깊게 만입되어 있다.
해안은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해식애가 잘 발달되어 있으며,
해식동, 시 아치(sea arch), 시 스택(sea stack) 등의 해안지형이 발달하여 뛰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다.
1월 평균기온 2℃ 내외, 8월 평균기온 25℃ 내외, 연강수량 1,134.7㎜이다.
주민들은 주로 어업에 종사하나, 남해안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섬으로서
관광객이 끊이지 않아 이들을 대상으로 한 수입이 주소득원이 되고 있다.
농산물로 고구마·보리·콩·마늘 등이 생산된다.
근해에서는 우럭·붕장어·농어 등이 잡히며, 전복·김 등이 채취된다.
취락은 남쪽 죽항마을과 북쪽 석촌마을에 밀집해 있다.
주요관광 코스로는
남문바위·시루떡바위·물개굴·석화굴·기둥바위·탑바위·원숭이바위·
주전자바위·독립문바위·홍어굴·병풍바위 등이 있다.
섬내에 원시림처럼 잘 보존되어 있는 당산림은 예로부터 주민의 신앙생활 중심지로 되어 있어
해마다 음력 섣달 그믐이면 풍어제를 지내기도 한다.
[출처] 홍도 [紅島 ] | 네이버 백과사전
홍도에 도착하면 안내 방송으로
홍도는 천연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돌 하나 풀한포기 가져 갈 수 없다고 하길래
그런가 하고 착실히 지켰는데 와서 보니 돌을 주워 온 사람, 대엽란을 가져 온 사람,
산에서 귀한 석곡등을 체취해온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기념으로 가져 온 것 이지만 하여튼 못 말리는 사람들이다.
하루 묵이는 바람에 홍도산 자연산산딸기를 실컨 따 먹었다.
홍도에서 기상악화로 하루가 묵였는데, 조그만한 섬에서 1박2일로 볼 것 다 보고 나니
서서히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첫째날은 해안선유람과 저녁에 술을 퍼 마시고 놀았고
둘째날은 석촌마을에서 좌측 봉우리 양산봉(231m)을 등산겸 자생하는 식물과 원시림을
구경했다. 여기가 대엽 란과 석곡란이 많이 자생하고 있었고 동백이 울창했다.
셋째날은 기상 악화로 묵이는 바람에
시간도 보낼 겸 반대편 해안선을 따라 가 볼 수 있는 곳까지 간다고 가다 보니 산에
산딸기가 엄청 많아 정신없이 따 먹는데 누군가 '홍도는 산딸기가 많은 대신 뱀이
많다'고 하는 바람에 혼비백산하고 서둘러 빠져 나왔 던 기억이 난다.
구룡포산악회가 6월 창립기념일행사로 부부동반으로 섬에 많이 갔다.
제주도,울릉도,거제도,가덕도 연대봉,한산도,미륵도,사량도, 소매물도,거문도,보길도,
여수 오동도,돌산도,완도,진도,군산선유도,흑산도,홍도,강화도등등... 그 중에 제주도는
산악회에서 2번을 갔지만 개인적으로 지인들과 매년 아님 2,3년에 한번씩 겨울 한라산
등반을 자주 했었다.울릉도는 산악회에서 3번을 갔다 왔다. 물론 포항에서 여객선이 떠다
보니 자연적스럽게 자주 가게 되었다.그래도 성인봉 등반은 한번 밖에 못했다.
그것이 못내 아쉽고 저동에서 천부동 넘어 가는 '내수전 전망대 길'을
아직도 못가 다음에 갈 기회가 주워지면 꼭 가 보고자 한다.
문경 가은 '대야산'에서
김소형전직회장 뒷편에 명지한의원 원장인데 보기 보다 산을 못탔다.
왠 놈의 땀을 그렇게 흘리고 힘들어 하는지...더구나 한의원 원장이...ㅎㅎㅎ
설악산 공룡능선 능선을 등반 하면서...
기록을 보니 94년 10월 7~8일 (1박2일) 설악동에서 1박 하고 새벽 일찍 출발하여
비선대 - 마등령 - 공룡능선 - 희운각대피소 - 천불동계곡 - 설악동으로 내려왔다.
기억에 이때 날씨는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雲霧가 너무 심해 주변전망을
속 시원하게 보지 못해서 많은 아쉬움을 준 것 같았다.
공룡능선은 많은 시간(10시간이상)과 체력을 요구 하지만 꼭 한번 타 보기를 권한다.
대신 꼭 날씨가 맑고 운무가 없는 날에 도전 해보기를...타는 내내 기암괴석,봉우리들의
파노라마에 벌어진 입이 절대로 다물어 지지 않는다.그야말로 장관이다.
설악산 마등령에서...
뒷편에 안개가 심해서 봉우리가 희미하다.
김천 '수도산'(1316m)에서...
가야산과 이웃한 산인데.꽤나 높고 힘든 산였다.
지금은 기억이 아물 한데 등산 초입 동네가 정말로 오지중에 오지였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청암사의 오래된 절집 풍경과 그 앞에 흘러 내리는 청암계곡의 맑은물과
우거진 아름드리 나무들의 숲이 좋았던 것 같다. 한번 가보고는 지금껏 가 보지
못 했는데 꼭 한번 더 가 보고 싶은 곳이다.
수도산에서 단체사진
가운데 짧은바지에 흰반소매차림의 원영수전직회장(15대,1996년)의
당찬모습에 힘이 느껴진다.아가씨는 추영민회원 동생인데 한동안 우리
산악회에 간사로 있었다. 월급을 주는 간사를 10여년 정도 운행하다 젊은회원들이
회장을 맡으면서 없어 졌다. 산악회 초창기처럼 총무가 고생을 더 하듯이 사무국장과
집행부에서 수고를 나누어 하면서 자연스럽게 없어 졌는데...그로 인해 회원들의
부담이 덜어 졌고 재정은 더욱 더 탄탄해졌다.
그런 반면 지방에 실업자가 하나 더 생겼다.
예나 지금이나 한달에 한번 시행하는 산행에 참여인원이 20~30명 내외인데
때로는 10명 내외로 참여가 저조 할 때가 있는데 그래도 대형관광버스로 출발한다.
버스는 보통 년중계약상태고,산행비는 가든 안 가든 전회원이 의무금으로 낸다.
이 는 산악회 창립일로 부터 내려오는 전통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산악회의
재정도 튼튼해지고 회원간에 이해와 단합 할 수 있는 힘이 된 것이다.
물론 월회비도 있고 산행회비도 있다.
그리고 6월과 10월 부부동반 산행및관광 때는 많은 회비를 더 낸다.
수도암에서...
고즈넉한 수도암에서 보는 전망이 시원했던 것 같다.
강원 정선 '가리왕산(1561m) 정상에서...
10월 부부동반으로 가리왕산 산행과 정선,영월지방을 관광했지 않았나 싶다.
기억이 가물가물...그런데 이때 산행 참여가 저조했던 기억이 나고 길을 잘 못들어
고생했던 기억이 나고 뒤에 가운데 선그라스를 쓰고 잔득 멋을 낸사람이 최덕유
전직회장(6대,1987년)인데 이 때 영문도 모르고 기술이사에게 속아 올라 가다 보니
빽도 못하고 죽기 살기로 올라가다 보니 정상에 올랐는데...그 높이가 1561미터
가리왕산 정상이다. 아마 최전직회장안테는 지금까지 최고봉일 것이다.
가리왕산 정상 바로 밑에서...
정상쪽은 꽤나 넓은 경사진 둔덕에 잔잔한 나무가 뻑뻑하고
죽은 고사목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걸친 쪼끼는 단체복인데
지금도 보관 하고 있으며 봄에 가끔식 입는다.
문경 대승사 '윤필암' 올라 가는 길에서
...목숨 걸고 공부라...문구가 너무 비장하여서...
몇년도인지 모르나 아마 10월 부부동반 소양강댐과 청평 남이섬을 관광한 것 같다.
참여인원이 꽤 많았네..이때 부부동반 관광이 무서운 것 없이 대단했었지...
보통 1박2일 아니면 금요일 밤에 출발하는 2박3일 여행였는데 인원에 관계없이
대형버스 2대에 나누어 타고 다니면서 술도 먹고 관광도 하고 웃고 노래부르고
뛰면서 춤도 추고 ...엔돌핀이 불쑥불쑥 쏱고 했지...지금은 전국을 하도 다녀서
그런가 그런 재미가 덜 한 듯 하다. 아니 나이 탓 인 듯 하다.
그래도 산악회는 다른 단체처럼 나이로 인해 OB로 넘어 가지 않아 오래도록
산악회에 머물면서 산행을 하고 후배들과 교류를 계속 하면서 맏형 역활을
할 수 있어 이 또한 기쁜일이 나니겠는가?
남이섬 잔듸밭에서 어느 외국인과 대화하면서
기념으로 한커트...무슨 애기를 했더라...
이때 술도 많~~~이 먹었지...
환하셔...
춘천 소양댐에서 단체로...
이때 처음보는 소양댐은 신비로웠다.흙과 자갈로만 막은 일명 '사양댐'이라...
한국 근대사 건설주역 故정주영 작품인데...박통과 댐에 얽 힌 일화가 있는
소양댐은 그때는 춘천의 관광 일번지였고 관광후 꼭 춘천닭갈비를 먹었다.
그 이후에 몇번을 더 갔었던 것 같다. 잘 생겼네...환 하고...ㅎㅎㅎ
이 때는 의복이 붉은 색 계열이 유행였지...
강화도 마니산 참성당에서 단체의식을 하다.
이 때는 꼭 정상에서 정상의식을 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서
동해물과 백두산이...그리고 묵념...야호 삼창(나중에 동물보호차원에서 하지 않음.)
회장님인사말씀....기념사진촬영을 하였다. 이 강화도 마니산 등반과 관광은 이후에
한번 더 했는데 그 때는 석모도에도 갔다.하여튼 강화도를 처음에 갔을때 기억이 생생하다.
마니산 정상의 근엄한 참성단, 근대사의 외국 각국으로 부터 적을 물리친 포진지들,
처음으로 접해본 썰물로 물 빠지는 소리가 괴음에 가까워 깜짝 놀란 일,그리고 전등사의
새벽에 안개에 낀 신비로운 절집 풍광에 마음이 다 숙연해졌던 감동의 순간들...
모두가 그립다...한번 더 세월이 지난 만큼 그 감동을 한번 더 느끼고 싶다.
이번에는 아내와 단 둘이서 조용히 가 보고 싶다.
영남 알프스 '雲門山' 정상에서...
영남 알프스!!!!!!!!!!!! 표충사 천황산,운문사 운문산,석남사 가지산,그너머 고헌산,석남재을 지나
능동재 능동산,간월산,신불산,통도사 영취산(취서산) 등 말 발굽같이 생긴 일대의 山群을 영남알프스라
하는데 정말로 대단한 곳이다. 산으로써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갖춘 곳이 이 영남알프스다.
산이면 산,계곡이면 계곡,절이면 절,꽃이면 꽃,단풍이면 단풍,억새면 억새,바위면 바위,어느 곳 하나
부족한 것 없이 다 갖처져 있는 곳. 영남알프스! 그 곳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것도 1~2시간 거리에...그러다 보니 30년 동안 제일 많이 간 곳이 이 영남알프스다.
갈 때 마다 계절에 관계없이 항상 푸근히 감싸 주는 멋진 곳이다.
영남알프스는 아무래도 늦가을 억새풍광이다.
재약산과 천황산정상부근의 10만평의 사자평억새밭,간월재,간월산억새,
신불산 신불억새평원에서영취산으로 이어진 끝없는 억새의 향연,
정말로 대단하다.단언컨대 아마 국내에서는 최고이고 이만한 억새밭이 없다.
이 맘 때 쯤이면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영남알프스 곳곳에서 텐트을 치고 억새를
배경으로 일출,일몰을 찍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는 곳이다.
이 영남알프스만 애기를 해도 책으로 한권 될 것 인데...그만 하자, 겸손 또 겸손.
그냥 가서 본 만큼 느낌만 갖자.
강원 태백산에서...
매년 2월에는 특히 눈이 많은 산을 골라 겨울 설산을 이렇게 다닌다.
다만 안전을 고려하여 부드러운 능선의 설산을 다닌다.예를 들어
오대산,계방산,태백산,함백산,덕유산,등 바위가 없는 육산을 주로 다닌다.
그러다 보니 위 산들은 수 골백번도 더 갔다. 온 산이 훤 할 정도로...
바위가 많은 설악산,속리산,계룡산,가야산,지리산,등은 겨울에는 피한다.
대신 단풍철에 단골로 다니고 있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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