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가득한 궁중문화의 전당
운현궁(雲峴宮)
서울 종로구 운니동 114-10
운현궁은 고종의 아버지인 이하응(李昰應)의 저택이자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다.
1863년 12월고종이 왕위에 오른 후부터 부근의 고개이름(운현)을 따 운현궁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1864년 조대비(趙大妃)의 명으로 그 영역이 대폭 확장되었고,사랑채인 노안당(老安堂)과 안채인 노락당
(老樂堂)이 그 영역 안에 새로 세워졌으며 고종의 가례식 이후 이로당(二老堂)이 건립되었다.
당시 운현궁은 당장 둘레가 수리(數里)나 되고 4개의 대문이 웅장하여 마치 궁궐처럼 엄숙하였다고 한다.
1977년 사적 제257호로 지정된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의 정치활동의 근거지로서 서원철폐,경복궁중건,
세제개혁,법전편찬 등 조선말기 개혁정치의 산실였다.
답사일시 : 2009년 9월 13일 (일) 오전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운현궁였다.창덕궁 가는길에 들렸다.
흥선대원군이 천하를 호령하던 곳의 정취를 느끼고 그의 삶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었다.이른 오전이라 비교적 조용하였는데 일본관광객 몇사람이
안내원의 설명에 제법 진지해 보였다.흥선대원군과 일본! 특히 며느리(민비)의
시해사건은 엄청난 충격였을 것이다.하여튼 묘한 느낌였는데 그들은 뭘 느꼈을까?
그러고 보니 운현궁은 경복궁,창덕궁,종묘 등 10여분의 지척거리이다.
여차하면 대궐로 입궐하여 수렴청정을 하기가 좋은 위치 같았다.
각설하고,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구름재'라는 이지역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함
'운현궁의 배치도'
그옛날에는 엄청 컸을 것인데 지금은 덕성여대에
많이 흡수되고 지금은 중요 건물만 남았다.
운현궁 입구
'수직사(守直舍)'
정문 우측에 위치한 수직사는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수직사 방 내부 모습
노락당 대문
노락당(老樂堂)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로 안채이다.고종3년(1866)삼간택이 끝난 후
명성황후가 왕비 수업을 받던곳이자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가 행해진 곳이기도 하다.
노락당 남행각(南行閣)
노락당 뒷편으로 드나들던 쪽문
노락당 뒷마당
노안당(老安堂)
운현궁의 사랑채로써 흥선대원군이 일상에 거처한 곳으로 고종 즉위 후 주요 개혁정책이
논의 되었던 역사적 장소이다. '노안당'이란 현판은 공자가 '노자(老者)를 안지(安之)'
하며 라고 한 논어의 글에서 인용한 것으로 대원군이 노년을 편안하게 살게 되어
흡족하다는 뜻과 노인들을 편안하게 모셔야 된다는 치국(治國)의 이념을 갖고 있다.
흥선대원군
여기서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였을 것이다.문득 '천하장안'이 떠올랐다.
흥선대원군의 가신(家臣)들! 그 위세가 당당하여 나중에는 부패의 온상으로
국민들의 비난을 받는다.가신정치?지금도 통하지...아마...
이로당(二老堂)
고종의 가례장소로 사용된 후 흥선대원군 일가에서 노락당을 안채로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려워지게 되자 안채 용도로 새로 건립한 건물이다. 주로 여성들이 거주하며 살림하던
공간이기 때문에 남자들이 쉽게 드나들지 못하도록 'ㅁ'자 모양으로 만들어 졌다.
내부 모습
뒷 공간 모습
밖에서 본 담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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