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동 마을 고건축물들... ☆
마을 내에는 보물 3점, 중요민속자료 12점, 도지정유형문화재 4점, 도지정민속자료 1점, 도지정기념물 1점과
문화재자료 1점이 있다.
주요문화재로는 무첨당(보물 제411호)·관가정(보물 제442호)·향단(보물 제412호)·양동강학당(중요민속자료 제83호)·
양동낙선당(중요민속자료 제73호)·양동수운정(중요민속자료 제80호)·양동수졸당(중요민속자료 제78호)·양동심수정
(중요민속자료 제81호)·양동안락정(중요민속자료 제82호)·양동이동기가옥(중요민속자료 제76호)·양동이원봉가옥
(중요민속자료 제74호)·양동이원용가옥(중요민속자료 제75호)·양동이향정(중요민속자료 제79호)·양동이희태가옥
(중요민속자료 제77호)·경주손동만씨가옥(중요민속자료 제23호) 등이 있다. 그밖에 문화재로는 손소선생분재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4호)·적기공신논상녹권(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호)·양동대성헌(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4호)·
양동의 향나무(경상북도 기념물 제8호)·손종로정충비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1호) 등이 있다.
마을의 가옥은 ㅁ자형이 기본형이며, 정자는 ㄱ자형, 서당은 一자형을 보이고 있다. 주택의 규모는 대체로 50평 내외이고,
방은 10개 내외이다. 강동면의 양동마을은 조선 오백년의 양반문화와 현대문화가 함께하는 지역으로 8·15해방 직후까지도
양반집마다 한집에 평균 한집반씩 노비집이 딸려 있어 가랍집·하배집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모두 밭이 되었다. 마을주민
들에게는 아직도 유교사상이 짙게 남아 있어 매년 4, 10월에 선조를 제향하는 의식을 마을 공동으로 거행하고 있다.
향단(香壇) 보물제412호 이건물은 조선시대 성리학자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 경상감사로
있을때 모친의 병간호를 하도록 중종(中宗)이 지어준 집이다. 두곳에 뜰을 두고 안채,사랑채,행랑채를 붙여 전체가
'與'자 모양을 이루어 독특한 평면형태를 구성하고 있으며,원래99칸 이었다고 전하나 일부는 불타 없어지고
현재 50여칸이 보존되어 있슴.
향단 출입문(우측)으로 들어와서 좌측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 간다.
관가정(觀稼亭) 보물제442호 - 이 건물은 조선 성종때 이조판서를 지낸
우재(愚齋)손중돈(孫仲暾,1463~1529)이세운정자임
양동 이향정(二香亭)
양동 심수정(心水亭) - 농재(聾齋) 이언괄(李彦适)을 추모하여 조선 명종 15년(1560)경에 지어졌다.
농재는 형인 이언적을 대신하여 벼슬을 마다하고 나이든 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것으로 전해온다.
그 뒤 철종때에 이정자가 불타고 1917년경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수졸당(守拙堂) - 이가옥은 회재 이언적의 4째 손자인 수졸당 이의잠이 조선 광해군8년(1616)에 세운 것임.
우측으로 돌아 안채로 출입하는데 현재 후손이 살고 있어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표지판 때문에 안으로 들어 가지
못해서 아쉬웠다.
두곡고택(杜谷古宅) - 조선 영조9년(1733)경에 세워졌다.
역시 출입이 통재된 곳이라 담장 넘어로 찍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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