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일상이야기

2014,8,18(음7,23) 05:35

安永岩 2014. 10. 27. 13:22

전정희田貞喜,향년 84세,

어머님께서 결국 병마를 이겨 내시지 못하시고 한 많은 이세상를 떠나셨습니다.

죽음이란 뭔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우리가 태어 날 때 혼자 오는데 갈 때도 혼자 홀연히 미련 없이 갑니다.

아무도 동참할 수 없는 그 길입니다.삶과 죽음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누군가는 잠시 뭐 물렸다가 가는 인생인데 왜 그리도 아둥바둥그리면서 사는냐고?

잠시의 의미가 너무 큽니다.잠시가 아니지요 100년의 인생길이 결코 잠시일 수는 없습니다.

물론 수억년 수천년 전에도 사람들이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연속의 개념에서 보면 

100년은 잠시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100년의 인생길이 결코 잠시 일 수는 없지요

그 속에서 온갖 희노애락이 존재하며 특히 어려운 삶의고통은 괴로운 시간들입니다.

누구든지 풍요로운 삶을 산다면 문제가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든 세월을 살다가 갑니다.

어짜피 일회용 인생길,갈 때는 모두 내려 놓고 가는데,욕심을 내려 놓고,

그럴르니 하면서 허허~내려 놓고 살자는데 그것이 간단치가 않습니다.

어자피 삶은 무한 경쟁속에 치열하게 살아도 모자라는 사회의 구조의 문제가

우리들을 그렇게 몰아 가는 면이 많습니다.

천년 전처럼 농업이 주업이든 사회 같으면 오히려 편안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싶네요

스트레스 같은 흔한 현대병도 없었을 것이고,다만 의식주가 문제였겠지요.

풍요속에 빈곤이라고~먹을 것은 흔한데 마음이 병들어 가는 현실이 많이우려스러운 점입니다.

어머님의 죽음을 맞으면서 해본 넉두리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아품은  사랑하는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일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나를 낳아 준 어머님과 이별일 것입니다.

 

 어머님께서는 아버지와 사별하고 우리와 43년를 더 사시다 결국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43년 동안 나와의 인연은 각별합니다.

어머님께서는 나를 아들이 아닌 남편겸 아들로써 많은 의지를 하신것 같습니다.

지난 날들을 돌아 보니 감회가 새로와 장례 기간 내내 주체하지 못하는 눈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괜히 어머님의 인생 84년을 돌아 보니 자꾸 불쌍한 생각이 나서 빈소를 지키는 내내 눈물이 났습니다.

부모님은 그런 것 같습니다.

내 나이 18세 때 아버님께서 일찍이 돌아 가셔서 아버님에 대한 추억은 별로 없는 편였는데

어머님은 그렇치 않습니다.아버님가시고 43년을 더 함께 했으니까요

어머님께서는 비교적 건강한 체질을 타고 나셨습니다.

여자로써는 큰 체격이시고 힘도 장사였습니다.

그러니 잔병치레도 하지 않으셨고 다만 젊은 시절 수많은 고생을 하셨고(보통 보릿고개라고 5~60년대에

부모세대님들이 다 고생하셨다.)15년 전에 여수애양병원에서 1년간 양쪽 무릅을 수술하여 인공관절을 했고

그리고는 비교적 평소 좋아 하시는 것들을 하시면서 즐겁게 지인들과 행복해 했습니다.

다만 평소 드시지 않든 술을 과하게 드신듯 했는데 늦게 배운 도둑이 날센다고

늦게 배운 술맛에 빠져 많이 드셨는데 결국 그것이 큰 병을 얻으셨습니다.

편도암 4기. 하지 말아야 할 수술을 본인이 강력히 원했서 대구칠곡 경대병원에서 수술을 하였습니다.

퇴원 후  시내 중심부 요양병원에 모셨는데  결국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11개월만에 돌아 가셨습니다.

가시기 며칠 전 병원을 방문하였는데 그 날 따라 어머님과 나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 회복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보는 내내 늘 괴로웠는데

그 날은 어머님의 손을 꼭 쥐어 줬습니다.

그러자 어머님께서 얼마나 우시는지(아프고 우는 모습 처음 봅니다.)...

나도 고개를 돌리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미 어머님은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시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파 나도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방안에 있던 다른 보호자분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주데요.

어머님와 나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이 필요없는 순간의 시간였습니다.

결국 나는 그 날 집에 와서도 어머님이 불쌍해서  밤새워 실컨 울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눈물이 나네요.난 참으로 눈물이 많나 봅니다.

빈소에서도 자주 울컥하여 사람들을 놀래게도 할 정도로,내 나이 불혹을 넘긴 61세인데 말입니다.

나이가 아무리 곤백살을 먹어도 부모님은 부모님입니다.

임종하는날(2014,8/18,음7/23)새벽 5시 꼭 감은 눈에 숨을 몰아 쉬는데

난 어머님의 임종을 직감하고 손을 꼭 쥐면서

"엄마,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게 가세요.제가 다 알아서 잘할께요."하고

큰 소리로 두번이나 소리를 지르니 이게 왠일,꼭 감고 있던 두눈에서 한눈을 살짝 뜨시더니

나를 보시고는 이내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두번이나 몰아 쉬더니만 팔을 뚝 ! 늘어 뜨리신다.

실로 조용한 임종였다.

"오~냐,알았다"하시는 듯 했다.그리고 눈가에 한줄기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길고 질긴 긴 여정의 인연은 끝이 났습니다.

어머님의 장례를 치르는 3일간 동안 왠 비는 그렇게 오는지...

 

하늘나라에서는 이승같은 고생을 그만하시고 행복했으면 합니다.

항상 따스하고 꽃이 피어 있는 꽃동산에서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잘가시라고 절에 49재도 올려 드리고 막재하는날 어머님을 보내는 의식중에 천수바라춤,나비춤에

이어서 살풀이 춤을 추시는 분의 배를 저어 가는 장면에 흘려 나오는 음악이

왜 그리도 슬폈든지 눈물이 나서 혼났습니다.

마지막 재를 마치고 유품을 소각하고 오는날 생각외로 담담했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차분히 가라 앉는 차분한느낌의 하루였습니다.

이제 어머님과의 질기고 기나긴 이승에서의 인연을 끝낼까 합니다.

저도, 우리 가족 모두 이제 일상으로 돌아 갈까 합니다.

물론 어머님의 그림자는 내 죽는날 까지 이어 지겠지만 하루 빨리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 저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10월 27일,

벌써 어머님께서 가신지 2달 하고 열흘입니다.

그 동안 차마 어머님과의 이별을 쓸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정리를 해야하지 않을까 해서 이제라도 글을 씁니다.

그것도 간략하게,

그동안 어머님의 장례에 조문과 관심,격려를 해주신 분들께 늦게나마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애쓰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또한 어머님을 아시는 모든분들,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보살펴 주시고 함께 해주셔서~

이제 우리는 어머님과 영원한 이별을 합니다.

다만,어머님의 정신만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부디 하늘 나라에서는 행복하시고 영민하소서

-불효자 안영암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