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답사기

[밀양여행]예림서원(禮林書院)

安永岩 2018. 9. 6. 01:53

 

 예림서원(禮林書院)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9호

경남 밀양시 부북면 후사포리 179


書院은 조선시대의 사설 교육기관이자 대 유학자인 先賢들을 제사하는 곳이다.

예림서원은 조선 전기 대학자였던 점필재(佔畢齋)김종직(金宗直,1431~1492)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567년(명종 22)에 부사 이경우가 자시산 기슭에 德城書院을 창건하였다.

1634년(인조 12년)에 부남면 운례리(현 상남면 예림리)로 옮기면서 예림서원이라 院號를 바꾸고

 "오졸재(迂拙齋)" 와" 송계(松溪)" 양 선생을 배향하고1669년(현종10년)에 왕의 사액을 받았다.

1680년(숙종6년)에 화재로 서원이 전소되어 그 해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현재의 모습은 1984년 부터 1988년까지 진행된 복원사업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독서루(讀書樓)

예림서원은 바로 앞이 주차장이다.

서원의 정문격인 2층으로 된 독서루가 주차장과 함께 한다. 

독서루 아래의 삼문은 정문의 기능을 하고,2층 누대는 유생들이 쉬면서 손님을 접대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예림서원은 독서루와求盈堂,育德祠를 일직선으로 배치하여 앞에는 교육영역을 두고, 

뒤에는 제례영역을 두는 일반적인 서원의 건물 배치양식(前學後廟)을 따르고 있습니다.




 서원 내의 藏板閣(장판각)에는 김종직 선생의 저서와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冊版이 보존되어 있다.



 


 

앞쪽 강당인 구영당은 유생의 교육,회합 및 토론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우에 있는 敦善齋(돈선재)와 直方齋(직방재)는 유생들이 공부하며 거처하는 곳이다.



 직방재

직방재 앞 두그루의 나무는 산수유나무인데 연륜이 오래되었네요


 돈선재 와 소나무



 구영당求盈堂

강당으로 유생의 교육,회합 및 토론 장소로 사용되었지요




 사액 예림서원 현판



 

 

 

 

 

 


 제례영역 사당

사당영역에는 나무들이 많습니다.

 

 


 사당의 내삼문 正養門



 育德祠

 사당인 육덕사는 중앙에 점필재 선생을 주벽으로,

좌우에는 오졸재 박한주(朴漢注,1459~1504,김종직의 문인)와 송계 신계성(申季誠,1499~1562) 양 선생을  배향하고 있다.


오졸재 박한주(1459∼1504) 선생은 김종직의 문인으로, 

성종 16년(1485)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정언, 성균관전적 등의 벼슬에 종사하였다. 

연산군의 어지러운 정치를 강직한 언행으로 아뢰다가 왕과 훈구파에게 미움을 받아 무오사화 때 유배되었으며, 

연산군 10년(1504) 갑자사화에 관련되어 처형당하였다. 

중종 반정 후 명예가 회복되어 도승지 겸 예문관직제학에 추증되었다.


신계성(申季誠 : 1499-1562). 자는 자함(子?), 호는 송계(松溪), 본관은 평산이다. 송당(松堂) 박영(朴英)의 문인이며, 

남명(南冥) 조식(曺植)과 매우 절친하였다. 남명과 함께 경상우도의 실천적 선비정신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점필재가 태어난 고을에서 태어나고 자람으로써 자연히 사림파의 학문 자세를 지닌 독행(篤行) 군자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밀양의 예림서원(禮林書院)에도 배향되었고 김해의 신산서원(新山書院)에도 향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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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의 나무들...



 사당 앞에 은행나무와 키 큰 향나무

 

 강당(구익당)에서 앞쪽으로 본 마당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