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계종택/보백당 김계행의 고택
안동김씨 묵계종택(安東金氏 默溪宗宅)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9호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이 고택은 보백당(寶白堂)김계행(金係行,1431~1517)의 종택입니다.
김계행은 성종 11년(1480)에 급제하고 홍문관부제학,대사간,대사성,대사헌 등을 역임하였으며,
연산군 때 낙향하여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청백리이다.
묵계종택은 서원에서 멀지 않은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데, 정침과 사랑채인 보백당,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은 정면 6칸 측면 6칸의 ㅁ자형으로 돌출 형태를 이루고 있는 사랑채에는 용계당(龍溪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보백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건물의 비례가 훌륭하고 구조의 짜임새가 튼튼하며 건립당시에 사용된 목재가 그대로 사용된 것이 많아
당시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가치가 있다.
묵계리에는 그 밖에 보백당의 쉼의 정자인 '만휴정'과 배향하고 있는 '묵계서원'이 있다.
한마디로 묵계리가 배출한 걸출한 인물, 보백당 김계행의 산 교육장인 셈이다.
그는 주로 언간(言諫)에 종사하면서 평생을 아주 청렴하게 살면서 나라에 바른소리를 한
조선의 몇 안되는 청백리로 추앙을 받는 인물입니다.
안동에서 묵계리를 걸쳐 영천으로 가는 35번 국도에서 바로 보입니다.
100여 미터 비탈길을 올라 가면 대문을 활짝 열어 놓은 묵계고택의 대문이 보입니다.
제법 가파른 길이지만 양 옆으로 늘어 선 나무들의 사열을 받는 느낌은 좋습니다.
묵계종택 대문
어서 오세요~하고 문을 활짝 열어 놓았네요.
대문을 들어 서면 마주하는 마당 정원
나무 가장자리로 심은 꽃모종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보백당 후손들의 정성이 느껴집니다.
최근의 손길이 느껴지네요.
좌측에 보이는 별당,보백당(제사공간)
흙마당이 인상적입니다.이런 흙마당을 본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묵계고택 정침
정침은 'ㅁ'자형의 전형적인 안동지방의 주택으로 정면 6칸,측면 6칸이 팔작지붕으로 연결되어 있다.
용계당(龍溪堂)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묵계종택의 앞 마당
우측에 200년 된 상수리나무가 큰 키를 자랑하고 있네요
불천위 신위를 모신 사당
역시 배롱나무가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정침과 달리 죽은자의 공간은 높은 담을 둘러 성역시 합니다.
수호신처럼 사당을 지키고 선 향나무와 배롱나무 한그루가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깨끗하게 잘 보존된 정겨운 흙담기와도 너무 정감이 갑니다.
후손들의 정성이 느껴집니다.
사당의 기와흙담과 향나무
그리고 배롱나무가 선홍색 꽃을 피웠네요
묵계종택 바깥 담장 옆에는 200년생 상수리나무 2그루가 큰 키를 자랑하며 당당히 자라고 있습니다.
보호수로 지정 관리되고 있답니다.
조선 말기 안동김씨 60년 세도정치에 식상했던 독자들은 의아해 할 것이다.
조선 후기 병약할데로 병약했던 왕(순조,헌종,철종)들을 대신하여 안동김씨들은 전권을 휘둘렸으나
강력한 왕권을 외치며 등장한 흥선대원군에 의해 안동김씨들은 쇠락의 길을 걷는다.
조선 초기,중기에는 보백당선생처럼 안동김씨들의 선조들은 이렇 듯 참 선비가 많았었다.
무릇 권력이란 오래가면 썩는 법,조선 말기 안동김씨 후손들이 선조들의 가르침을
제대로 가슴 깊이 새기지 못하고 결국 패가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청백리 보백당 선생의 묵계종택이 더욱 더 돋보이는 이유입니다.
-유유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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