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집寺刹이야기

[경북/영천]일년에 딱 두번 산문을 개방하는 마음의 절집,은해사 백흥암(百興庵)

安永岩 2015. 5. 28. 01:48

 

백흥암 극락전

 

 일년에 딱 두번만 일반인들에게 산문을 개방한다는 은해사 백흥암입니다.

즉 부처님오신날과 7월 백중일(우란분절,盂)에만 일반인들의 출입이 허용되지요

작년에 부처님 오신날만 개방한다는 문경 봉암사를 다녀 온 이후에 금년(2015년)에는 일찍감찌 일년에 두번만 출입을 허용한다는

은해사 백흥암를 달력에 찜 해놓은 터라 새벽 5시에 집을 나섭니다.우리 지역과 가까운 영천이다 보니 1시간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있게 출발하여 은해사에 도착하니 새벽 6시가 조금 지난 시간입니다.

은해사도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의 준비를 전날에 다 해 놓고 이른 새벽이라 아주 조용합니다.

이따금씩 법당을 오가는 보살님들만이 새벽 정적을 깨웁니다.

나혼자 잠시 조용히 은해사 경내를 둘러 보고 산내암자 기기암을 향해 길을 갑니다.

오늘은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귀롱나무의 기기암과 아름다운 절집 백흥암을 둘러 보고

하산길에 은해사를 다시 볼 계획입니다.

 

 

팔공산 산행과 구멍절 중암암을 탐방했을 때와 운부암을 갔을 때 이 곳을 서너번 지나 간 것 같은데

오늘처럼 보화루의 모든 문이 활짝 열린 광경은 첨입니다.

특히 보화루 밑의 출입문이 항상 굳게 닫힌 광경만 봐왔기 때문에 이렇게 활짝 열린 문을 보니 오히려 기분이 이상합니다.

 

 백흥암은 869년 신라 경문왕때 혜철국사(惠徹)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백지사(柏旨寺)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1546(명종 1)에 인종의 태실을 팔공산에 경영하면서

이 암자를 수호사찰로 삼고 크게 중수하였고 백흥암으로 개칭하였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크게 화를 입었다가 인조,현종,숙종 때 잇따라 중건되었다고 합니다.

유명한 백흥암수미단도 이 때 조성되었다고 하네요.

 

은해사에서 뒷길로 조금 올라 가면 저수지가 있는데에서 세갈래로 갈라지는데

좌측은 백흥암,우측은 운부암,그리고 바로 산길로 가면 태실봉,인종대왕태실이다.

 

 

차를 세우고 올라 갔다가 올까 하다 하산길에 보지 뭐,하다가 결국은 못 올라 갔네요.

여기서 800여미터 밖에 안되는데~후회 막심,다음에 보지 뭐...위안 

 

백흥암은 태실봉 남쪽 기슭의 절골 1.5km 지점의 태실봉(462m) 남사면 해발330~345m 지점에 있습니다.

 

   

 

전 법당의 정문 격인 보화루 밑으로 들어 가지 않고 우측으로 담장을 따라 요사채로 들어 가는 문으로 들어 갑니다.

그곳도 육중한 문이 평소에 굳게 닫혀 있었던 문였기 때문입니다.

백흥암의 보화루는 이웃한 천하길지에 위치한 운부암 보화루와 아주 흡사합니다.

다만 운부암은 1층은 기둥만 있고 뻥 뚫린 형식이고 백흥암은 완전 밀폐형입니다.

화려한 단청없이 고색창연한 모습은 똑 같습니다.

寶華樓의 편액은 추사 김정희 글씨랍니다.

은해사와 백흥암에는 추사글씨가 많은 절집입니다.

필경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갔네요.

 

  

 

그러고 보니 나올 때도 보화루 門으로 나오지 않고 요사채 옆문으로 나왔네요

결국 보화루 문은 이래 저래 통과를 하지 못했네요. 어~휴,,,ㅉㅉ

대신 보화루내에서 茶도 한잔하고 주변 풍광을 오래도록 감상하였네요

보화루 하부 문 양 옆으로 달린 연등 아래에'국태민안' '남북통일'의 문구가 이상하게 와 닿네요.

제가 알기로는 백흥암은 엄격한 비구니수행도량으로 알고 있는데...

입구에 내 걸린 문구가 국민의 안녕과 남북통일이라니~

통(스케일)이 큰 암자이네요.

하기사 첫 대면하는 보화루의 오래되고 남루한 모습이 세월만큼이나 무게가 느껴집니다.

현재 백흥암의 모든 전각들이 오래되었든 최근에 지었든 단청을 하지 않은 수수한 모습들이

한결같이 고고하여 옛 멋을 흐트러지지 않음에 있습니다.

또한 담장이나 석축도 아무렇게나 쌓지 않고 정성이 느껴지는 순수함이 아주 정겹습니다. 

그것이 백흥암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자연스러운 것,자연을 거슬리지 않고 오랜 세월을 당당히 이고 선 백흥암의 아름다움입니다.

  

 

굳게 닫힌 門 앞에 서면 '이곳은 참선 정진하는 수행도량이오니 외부인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문구가

그렇게 크게 느껴졌는데 오늘은 이렇게 활짝 열렸습니다.

그것이 보화루로 들어 가지 않고 이리로 들어 가는 이윱니다.

이곳은 공양간이면서 선방입니다.물론 여기도 오늘은 개방입니다.

좌측 법당으로 갑니다.

 

 

 

옆에서 보는 보화루의 모습이 참으로 장중한 느낌입니다.

이것이 진정 고색창연한 매력이 아닐까요? 백흥암의 寶華樓는 정확히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1730년(영조6)에 크게 중수하였다고 하니 훨씬 이전에 세워진 듯 합니다.

아주 정갈한 계단을 따라서 법당(극락전)으로 갑니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얼마나 많은 시간속에서 깨끗함을 유지할려고 애를  썼을까요?

수행정진하기에도 힘들었을 낀데...

어디에도 먼지하나 티끌하나 딩구는 낙엽하나 없이 깨끗함이 오히려 정상 같네요.

 

 

 

 

정말로 백흥암 경내를 돌아 보는 내내 너무 깨끗하여 아주 조심스러웠습니다.

혹 사바세계에서 찌든 때라도 떨어질까봐 조심했네요~ㅎ

조심스럽게 공양간을 보고 선 사람도 풍경이 됩니다.

앞에 놓인 통나무의자가 백흥암의 품격과 아주 잘 어울립니다.

백흥암의 의자입니다.

 

 

 

여기도 '참선 정진중이오니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팻말이 낮게 걸려 있네요.

조심스럽게 법당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미 법당 앞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있네요

저보다도 더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들어 온 門인데 이렇게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오히려 열린 門이 신기한 백흥암입니다.

 

 

 

백흥암 극락전

 

드디어 부처님 계시는 법당입니다.

처음 와보는 백흥암의 극락전입니다.

역시 모든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마치 부처님을 맞이하듯이......

참선수행만 하는 청정도량이지만 오늘 만큼은 연등도 달리나 봅니다.

오히려 백흥암에는 연등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백흥암에는 보물이 2개가 있습니다.

바로 극락전(보물 제790호)과 수미단(須彌壇,보물 제 486호)입니다.

특히 백흥암의 수미단은 조각 수법이 매우 뛰어나 가장 으뜸으로 칩니다.

처마선이 아름다운 극락전입니다. 

단청 또한 곱게 낡아 은은한 고풍스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영천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 (永川 銀海寺 百興庵 極樂殿)

보물 제790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아미타삼존불(아미타부처님,좌우 협시불 관세음보살,대세제보살)을 모시고 있는 극락전은

인조 21(1643)에 지은 것으로 지금 있는 건물은 그 뒤로 여러 차례 수리한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재료의 형태와 짜임이 조선시대의 옛 수법을 잘 갖추고 있다.
안쪽 천장은 가운데를 높이고 주변을 낮게 만들어 층을 이루게 꾸몄으며,

불상을 올린 불단(수미단)은 조각이 매우 특이하고 우수하여

보물 제486호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으로 지정되어 있다.

 

 

 

 

 

부처님 전에 놓인 관불의식

장독으로 임시 만든 불전함이 눈에 뜁니다.

그 옆에 부처님 정수리에 끼 얹을 목욕물을 담은 장단지와

아래 깔인 아무렇게 생긴 받침돌까지 자연스러움이 묻어 납니다.

 

 

 

전 보통 법당 내부를 촬영하지 않습니다.

헌데 오늘은 마치 사진촬영을 하란 듯이 모든 문을 활짝 열어 놓았고

더우기 부처님의 웃고 있는 환한 얼굴에서 오냐,그래라 하는 듯 합니다.

유명한 백흥암의 극락전 내부에 모셔진 아미타부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아래 더 유명한 수미단입니다.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 (永川 銀海寺 百興庵 須彌壇)

보물 제486

 

수미단이란 절의 법당 정면에 상상의 산인 수미산 형태의 단을 쌓고 그 위에 불상을 모시던 대좌를 말한다.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永川 銀海寺 百興庵 須彌壇)은 극락전에 있는 높이 125, 너비 413㎝의 조선 후기에 만든 불단이다.

앞쪽 면은 5단으로 되어 있으며, 각 단도 5등분 되어 각각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제일 위의 단은 안상문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2단은 봉황·공작·학·꿩 등을, 3단은 용·어린아이·물고기·개구리 등을

매우 섬세하게 조각하였다. 4단은 코끼리·사자·사슴 등을 꽃잎 속에 조각하였고, 제일 아래단의 양쪽 끝에는 도깨비 얼굴을,

가운데 부분에는 용을 조각하였다.각 단에 있는 새나 동물의 배열이 특색 있고, 조각기법도 매우 우수하다.

이런 특징이 있는 불단은 조선 후기 작품으로 더러 남아 있지만, 이 불단은 그 중에서도 대표되는 작품이다.

<문화재청>

 

아무리 일년에 두번 개방한다고 하지만 차마 법당내에서 수미단의 각 단의 동물들을  세세히 사진을 못 찍겠드라~

더구나 참배하는 사람들까지 많이 오시니...그저 그 정교한 조각 수법들을 눈으로 감상 하고 갑니다.

 

 

 

극락전 앞에서 본 보화루

 

 

백흥암 보화루

 

첫 눈에도 보화루의 깨끗함이 돋보입니다.

백흥암은 비구니 수행도량입니다.

보화루 한 켠에 자리한 노스님과 연등접수처도 백흥암과 잘 어울리는 풍경입니다.

특히 비구니 노스님의 온화한 미소와 함께 茶를 같이 나누면서 담화해주는 모습에서 부처님의 모습을 봅니다.

일반인들과 일년에 딱 두번 있는 茶가 있는 대담은 아마 백흥암의 자랑거리일 것입니다.

백흥암을 방문하는 일반인들은 누구 든지 스님과 茶을 나누면서 대화를 할 수가 있습니다.

 

 

 

 

산해숭심山海崇深

즉 부처님의 높고 깊은 마음입니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모각해 놓았습니다.

 

 

 

보화루의 문을 모두 열어 놓아 아주 시원한 느낌이고 보화루에서 보는 풍경이 한폭의 그림입니다.

가운데 놓인 꽃도 오는 탐방객을 환하게 맞습니다.

 

 

 

 

보화루에서 법당쪽으로 본 모습

백흥대란야,백흥암을 알리는 편액이 보화루 법당쪽으로 걸려 있습니다.

여기에도 예쁜 꽃수반이 놓여 있고 커피와 사탕류를 준비하여 오는 신도나 일반인들에게 제공합니다.

작지만 정성이 느껴지네요

 

 

 

보화루에서 본 앞 산 풍경

 

은해사에서 백흥암으로 오는 길이 좁고 험해서 비교적 작은 주차장에 몰리는 차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

은해사에서 아예 이 곳까지 차를 통제합니다.

다만 은해사에서 백흥암을 오는 신도나 일반인들을 위해서 은해사 뒤편 주차장에서 아래에 보이는 봉고 2대가

계속 번갈아 부지런히 실어 나르네요.

 

 

보화루에 걸린 보화루 중건기

 

경상감영의 완문을 징월스님이 정서하고(1798) 판에 새겨 걸어두었다.

내용은 백흥암이 인종 태실 수호 사찰이므로 백흥암에 대한 공납 부역 등의 침탈을 금지한다는 내용입니다.

백흥암의 중요성은 상징하는 편액입니다.

 

 

보화루 천정 모습과 천정에 걸린 법고

백흥암에는 따로 종각이 없습니다.

 

 

 

 

 

 

보화루에서 본 영산전과 명부전

 

백흥암은 은해사에 부속암자이지만 오히려 창건 연대는 앞섭니다.

그만큼 예전에는 큰 절집였지요.

암자이지만 보통 절집에 있는 법당(극락전) 신검당,진영각,명부전,영산전,산신각,보화루,요사 등

많은 전각들이 있습니다.

 

 

백흥암 담장 너머로 보이는 울련 텃밭

백흥암의 비구니스님께서 수도정진하는 틈틈이 농사를 짓는 곳입니다.

 

 

백흥암에 우리 가족 소원 연등을 달고~

 

작년 시월에 이 세상에 온 손자 시후를 적어야 하는데

현빈을 두번이나 적었네요~ㅎ

현빈을 위한 간절한 소원이 저의 마음을 움직였나요?

 

 

백흥암 경내 담장 아래에 온갖 꽃들이 피어 탐방객들을 반깁니다.

꽃중에 꽃,양귀비꽃입니다.

꽃말도 위안입니다.

오늘 백흥암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 갑니다.

 

 

 

명부전과 요사채

 

 

 

이미 지고 있는 금낭화도 자태를 뽐내고~

 

 

 

 

명부전 절 마당에 걸린 연등들~

 

 

 

가운데 우리 가족 연등(흰색)

 

 

백흥암에는 꿀뚝도 이쁩니다.

 

 

그리고 축담 아래 홀로 핀 양귀비꽃 한송이

 

 

 

백흥암은 남향으로 포근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팔공산의 끝자락 나즈막히 내려 앉은 산 능선,바라만 보아도 힐링이 될 것 같은 풍경입니다.

이 마음의 쉼터 구실을 하기에 충분합니다.

 

 

명부전 가는 길 담장에서 본 보화루

 

 

 

담장의 온갖 꽃들!

 

 

나즈막 하게 낮게 걸린 외줄 연등이 마치 길을 안내 하듯 전각가는 길마다 걸려 있습니다.

 

 

 

다시 극락전으로 왔습니다.

극락전 우측 진영각마루에 걸터 앉어 잠시 아침 햇살을 즐깁니다.

 

그런데 천정 아래 희미한 편액이 한점 걸렸는데 무슨 뜻인지를 모르겠다.

십홀방장(十笏方丈)이라...

혹시 싶어 집에 돌아와 검색하니 아주 깊은 뜻이 있고 편액의 글씨도 추사 글씨라고도 하고,

추사와 쌍벽을 이룬 만파 석란(萬波 錫蘭) 스님의 글씨라고도 합니다.

언뜻 보니 추사글씨는 아닌것 같은데...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십홀방장은 정도 크기의 작은 (방장)’이란 뜻입니다. () 선승의 위엄을 더하기 위해 사용하는 법구입니다. 

손에 쥐고 사용하지요. 길이 ( 30cm), 너비 ( 6cm) 된다고 합니다.

벼슬아치가 관복을 입었을 손에 들고 있는 작은 패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홀은 길이가 33cm 정도 된다고 합니다.그러니까 십홀이면 330cm*60cm이니 한 평크기도 안되는 아주 작은 방을 뜻합니다.

수도 전진하는 스님의 방으로로써는 이정도면 충분하다는 청빈을 나타내는 뜻이겟지요?

알면 알 수록 어려운게 불가의 용어이고 가르침입니다. 

 

 

 

십홀방장

읽을 때는 시홀방장이라고 읽지요

10월을 '십월'이라고 읽지 않고 '시월'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백흥암의 청빈

 

 

진영각 마루

 

 

자세히는 보지 못했는데

진영각 기둥에 6폭의 주련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랍니다.

그 뜻도 시홀방장의 의미를 풀어 놓은 글귀이네요.


我觀唯摩方丈室(아관유마방장실) 내가 유마거사의 거실을 들여다보니
能受九百萬普薩(능수구백만보살) 능히 구백만의 보살과
三萬二千獅子座(삼만이천사자좌) 삼만이천의 사자좌를
皆悉容受不迫搾(개실용수불박착) 넉넉히 받아들이고도 비좁지 않고
又能分布一鉢飯(우능분포일발반) 또 능히 한 끼 밥을 나누어
饜飽十方無量衆(염포십방무량중) 모든 중생을 실컷 먹일 수 있겠더라

 

유마경에 나오는 글이라 한다. 십홀방장은 유마거사의 아주 작은방을 말하는데,

그 방에 문수보살과 많은 대중이 찾아왔다. 방 안에는 의자가 달랑 하나 였더란다.

문수보살이 사람이 많은데 의자가 하나요? 하니 유마는 법을 구하러 왔오, 의자를 구하러 왔오?하고 되물었다 한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 3 2천 사자좌를 구해 방에 들였는데 그 많은 대중이 다 들어와 앉고도 자리가 남았다는 이야기다.

수미산(須彌山)이 겨자 씨앗 속에 들어가기도 하고 바닷물이 하나의 털구멍 속에 들어가기도 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즉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뜻인 것 같고 청빈을 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의 범인이야 우예 그 심오한 깊은 깨달음을 알겠소~ 

 

 

이 분,인자하게 생기셨는데 들어 오시더니

곧장 법당으로 가서 기도하고 밖을 나오시더니 하늘에 걸린 연등을 두루 살피시고 만지시더니 이내 나가신다.

참으로 온화한 모습의 보살을 본 듯 합니다.저도 마음이 환해 지는 것 같습니다.

새벽 일찍이 백흥암에 와서 조용한 보화루에 앉아 나의 모습을 찾아 봅니다.

나는 누군가?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떤가? 

인생을 제대로 살아 왔는가?

또 어떻게 살아 가고 있는 걸까?

행여 나로 인해 주변의 여러 사람들을 힘들게는 하고 있지는 않은가?

앞으로 나의 마음가짐은?

.....

온갖 번뇌가 몰려 옵니다.

진정 나를 찾을려는 노력은 어렵네요.

시간을 두고 두고 찾을까 합니다.

 

 

자꾸만 시선이 머무는 백흥암의 부처님 계시는 공간입니다.

 

이제 백흥암을 떠나고자 합니다.

일년에 딱 두번 부처님오신날과 백중날에 일반에게 산문을 개방한다고 하니

7월 백중에 또 오면 될 것 같네요.

그 때는 와이프랑 혹은 가족 모두와 함께 였으면 합니다.

 

 


흙 사이사이에 기와를 넣은 백흥암의 담장이 소박함이 묻어 납니다.

 

5월에 구절초? 아무튼 보화루와 잘 어울립니다.


새끼를 등에 업은 두꺼비가 두 눈을 부릅뜨고 백흥암 정문을 당당히 지키고 있습니다.

마치 수문장처럼~

 

 

 

백흥암은 현재 비구니 수행선원이며 계율과 수행이 엄격하기로 소문이 나있습니

살림이 빠듯해도 돈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초파일, 백중날만 개방하고 재를 올리지 않는다.

법당에 인등도 없고 초파일날 등값도 매기지 않는다.

무위도식은 용서하지 않는다.

쌀을 제외한 채소류는 길러 먹는다.

  *재는 49재를 말합니다.

물질과 먼 백흥암입니다.

진정 마음의 절집이 백흥암이 아닌가 싶습니다.

 

 

 

은해사에 내려 오니 백흥암을 가기 위한 차례 줄이

엄청 길게 늘어 선 모습을 보고 백흥암의 믿음을 알 것 같습니다.

은해사를 둘러 보고 집에 도착하니 오전 11시경입니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날,와이프랑 며뉼아가,그리고 손자 서균,시후를 데리고

포항 시내 관음사,대송 장화사(어머님49재 절집)그리고 안강 대흥사를 둘러 봅니다.

부처님 오신날 절집 3군데를 가야 한다는데 전 6곳의 절집을 갔다가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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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찍이 아주 곤하게 잤습니다.

2015년 부처님의 자비가 온천지를 비추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