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송소고택(松韶古宅)
국가민속문화재 제250호
이 집은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심처대(沈處大)의 7세손 송소 심호택(沈琥澤)이 호박골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마을로 옮겨오면서 지은
99칸의 저택으로 1880 년 경에 건립되었다.대문은 솟을대문에 홀살을 설치하였으며,큰 사랑채는 정면 5칸,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큰 사랑채에는 주인이 거처하였고,우측에 작은 사랑이 있다.안채는 안주인이 거처하던 곳으로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대청마루에는 세살문 위에 빗살무늬의 교창을 달았다.
건물마다 독립된 마당으로 공간이 구분되어 있는 등 조선후기 상류층 주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송소고택은 조선시대 12대 만석꾼인 경주 최부자와 함께 9대에 걸쳐 무려 250여 년간 만석의 부를 누렸던 영남의 대부호로
한때 전국적인 명성을 떨쳤던 대표적인 고택이며 청송 심부자가 살았던 집이다.
덕천마을 입구에 주차장하고(송소고택앞에 주차해도됨) 바람 쐬며 쉬엄쉬엄 걸어 들어 갑니다.
노오랗게 익어가는(지금은 수확을 다했겠지요) 벼를 보기만 해도 부자가 됩니다.
만석꾼은 아니여도~ㅎ,요즈음 사람들은 만석꾼하면 감이 잘 오지를 않지요.
그 옛날에는 농사가 主業였지만 지금은 산업화시대를 지나 디지털시대이니 저역시 만석꾼이라~감이 잘 오지를 않습니다요
땅이 얼마나 있는냐 집이 몇 채가 있는냐 금융자산이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아닌가?
하여튼 4~5백년 전에는 송소고택에 살았던 사람들은 제일 부자였답니다.
행랑채(문간채)
대문 위에는 송소고장(松韶古莊) 당호가 걸려 있다.
송소는 이 집 주인장였던 심호택의 호
좌)큰사랑채 우)작은사랑채
마당 가운데 헛담이 있다.사랑채와 안채를 구분 짓는 집안의 담장이다.
정원이 있는 앞 마당 뒤에 큰사랑채
큰사랑채
큰 사랑채에는 주인이 거처하였고,우측에 작은 사랑채가 또 있습니다.
손님들이 엄청 왔나 봅니다.행랑채에다 큰사랑채와 작은 사랑채까지 있었으니~
조선의 미덕 중에 오는 손님은 융숭하게 대접하고 하루 유숙을 허하였지요.
큰사랑채 툇마루와 거실
큰사랑채의 세간살이들
又松書屋
우송선생의 글 읽는 집이라~석재선생의 글씨
투박한 나무 탁자 위에 나무조각 거북상이 볼거리입니다.
거북은 장수 상징동물로써 덕천마을 곳곳에 보입니다.
송소고택의 상징 '헛담'
송소고택의 내외담 헛담이라 부른답니다
ㄴ자 모양의 담은 밖에서 안의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내자를 배려한 담이랍니다. 남녀가 유별한 유교적 집안에서
사랑채에 오신 뭇남성들이 안채를 바라보지 못하도록 설치해 놓은 것입니다
별채가는 길
큰 사랑채 옆 안채들어 가는 문
안채와 붙은 작은사랑채
입구에 놓인 사람얼굴의 옹기분에 국화향이 너무 좋아서~
안채
안채 우물
가운데 안채 열린 문으로 안채 전용 뜰이 있습니다.
내자와 가족들을 위한 공간인 것 같습니다.
방앗간채
안채를 돌아가면 방안간채와 텃밭이 있습니다.
송소고택의 어마어마했던 살림살이를 방앗간에서 느낍니다.
안채에서 나와 큰사랑채 왼쪽으로 돌아 안채 뒤뜰로 갑니다.
창호지로 깨끗하게 도배한 문이 정겹네요
안채와 뒤뜰
내자와 집안의 가족들의 공간인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뒤뜰이 집 뒤로 가면 또 있습니다.
안채 뜰
안채 뒤 세간살이
나무로 만든 꿀뚝이 이색적입니다.
뒤산과 연결된 또 다른 뜰
송소고택에는 자연과 친화적인 공간들이 아주 많아
집안에서도 답답함을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별채
별채대문 앞에 해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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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채
주인의 사생활공간입니다.
앞 마당의 정원 동산
즐겁게사세요~
행복한 한주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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