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답사기

[경주/강동] 우리 동네 의병운동의 요람,단계서당(丹溪書堂)

安永岩 2016. 10. 8. 14:11

양동마을에 갔다가 기계로 가는길에

기계 달성 4거리 못미처 우측으로 들어 가면 강동면 다산리인데

여긴 의병운동을 하시다가 돌아 가신분의 사당을 모신 우국충절의 마을입니다.

올랫만에 들렸네요.

특히 다산서당의 목백일홍나무꽃이 저를 반깁니다.

 

단계서당(丹溪書堂)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4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다산리 878

 

단계서당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가 순절한 권복흥(權復興)의 사당으로 조선 영조 15년(1739)에 건립되었다.

조선 고종 5년(1868) 때 훼철된 후 1924년에 다시 단(壇)을 설치하고 복향(復享)하였다.

 

단계서당은 강당인 숭의당(崇義堂)을 중심으로 하여 부속건물들이 베치되어 있다.

이 중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강당은 홑처마 굴도리 3량집으로 좌우에 방을 배치하고 중간에 3칸의 대청이 만들어져 있다.

정면에는 단계사(丹溪祠),대청 뒷벽에는 숭의당崇義堂 현판이 각각 걸려 있다.

특히 강당의 좌우 협칸 전면 상부의 기둥 사이에 도리 방향으로 설치된 들보 등은 傳統木構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현지 안내문>

 

 

권복흥은 누구인가?

  조선 선조 때의 의병장인 권복흥(權復興 ; ?∼1592)의 자는 중원(仲元), 호는 오모재(五慕齋), 본관은 안동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곧 가동(家僮)을 인솔하고 토적(討賊)을 부르짖으며 의병항쟁에 앞장섰다.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족질(足疾)을 염려하여 기병을 만류하였으나, "나의 발은 비록 병들었으나 마음은 병들지 않았다.

이제 국왕이 몽진(夢塵)하였거늘 발에 병이 있다 하여 어찌 죽어서 나라에 보답하지 못하겠는가?" 하고서 분연히 일어섰다.

다대포에서 적을 만나 돌진하여 분격하다가 죽음에 부인이 시체를 찾으러 갔으나 찾지 못하고 의관으로 초혼하여 돌아 왔다.

140년이 지난 1728년(영조 4)에 증손 이지(以輊)가 관에 소원장(訴寃狀)을 올리어

순찰사 박문수(朴文秀)의 상소로 인하여 정려(정閭)의 명령이 내렸다.

 

 

 

강동 다산리에는 그를 기리는 사당도 있지요

이른바 삼괴정이 지근 거리에 있습니다.

 

 

 

 

 

 

 

 

 

 

 

 

 

 

 

 

 

 

 

 

 

 

 

단계서당 전경

 

단계서당 밖에 풍경

정면에 있는 은행나무도 가을에는 노오란단풍으로 멋진 풍경을 선서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