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답사기

[경주] 김유신장군 집터에 있는 우물,재매정(財買井)이야기

安永岩 2013. 6. 2. 02:07

 김유신장군 집터에 전해 내려오는 1000년도 훨씬 넘은 우물,재매정(財買井)

 

경주 교촌마을 산책길에 우연히 마주한 신라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장군이 살던 집터에 있는 1000년도 훨씬넘은 우물,재매정(材買井) !

그러고 보니까 작년에 가본 통일전에서 이 우물에 얽힌 사연을 그림으로 본 듯 합니다.

그림의 내용은 김유신 장군이 백제군을 크게 물리치고 왕명을 받고

왕궁으로 오던중 자기 집 앞을 지나치는데 다시 백제군이 침범해 온다는 급보를 받고

집에는 들리지 못하고 말을 탄체 이 우물의 물을 마시고 곧 바로 전장에 나갔다는

내용인데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 우물을 오늘 돌아 봅니다.  

 

 

 

 

경주 교동 최씨고택과 경주 향교를 둘러 보고 南川를 따라 서쪽으로 약 200여 미터 내려 가면

사마소 옆에 김유신장군이 살았던 집터를 만납니다.

집터가 엄청 넓습니다.

 

 

 

재매정 비각이라 쓰인 문을 들어 서면

 

 

곧 바로 비각과 그 옆에 우물인 재매정,

리고 집터를 짐작하게 하는 추춧돌만이 답사객을 맞이 합니다. 

 

 

재매정(財買井)

 

 재매정(財買井)은

신라 명장 김유신(金庾信)이 살던 집터라고 전해지는 이곳에 남아 있는 우물입니다.

월성에서 서쪽으로 약 400m 거리에 南川을 바로 앞에 두고 위치해 있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김유신 장군이 백제와 싸워 크게 이기고 돌아 오던 중에 백제군이 다시 침범하여 온다는 급보를 받았다.

장군이 쉴 사이도 없이 출전하는 길에 자기 집 앞을 지나게 되자,

병사를 시켜 물을 떠오게 하여 마신 다음 "우리 집 물맛은 옛날 그대로구나!" 하면서

떠났다는 기록이 있다.

 

 

옆에는 조선 고종 9년(1872)에 세운 유허비가 있습니다.

 

 

 

화강암으로 만든 우물은 깊이 5.7m , 최대 지름 1.8m , 바닥 지름은 1.2m 내외이고,판석이 덮여 있습니다.

우물은 역사 만큼이나 탁해 보입니다.

물론 지금은 역사성 만이 존재하는 우물입니다.

 

 

 

 

 

추춧돌만이 옛 역사를 말해 줄뿐 모든 것이 헛 것이로다

왜 바둥 바둥 살려고 몸부림칠까?

천년도 훨씬 지난 이야기지만 얼마나 잘 나갔던 김유신였던가?

지금은~ 모든 것이 헛 것이로구나~ㅎ

그 흔적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우물만이 남았구나 !

 

 

 

 

 신라대대각간개국공김선생 유허비

 조선 고종 9년(1872)에 세운 유허비 입니다.

 

 

 

 

김유신장군 집터가 엄청 넓습니다.

선덕,진덕,무열왕,문무대왕를 거치면서 삼국을 통일하고,삼국을 삼킬려고  저~기세 등등하던 唐나라까지 물리친 김유신장군였으니~

비록 왕은 못되었지만 왕 못지 않은 권세를 누리고 천추(79세,서거)를 누렸으니 여한이 없겠다 !

김춘추와 김유신!

 어릴 때 부터 三韓을 편안케 하고자 大意를 품고, 함께 하다 김춘추(태종무열왕)는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 정벌 중에 서거하고

그의 아들 법민(김춘추 첫째아들,문무대왕)과 함께 삼국을 통일합니다.

법민은 김유신이 가고 2년을 더 살았지요.

법민,즉 문무대왕은 부왕의 삼국통일에 대한 염원을 이루고 죽어서라도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감포 앞바다에 잠듭니다. 감포 앞 바다 문무대왕 수중릉의 주인공이 바로 법민입니다.

그의 아들(신문왕)은 그러한 아비의 뜻을 가슴에 새기고자 수중릉이 보이는 곳에 정자(이견대)를 세우고

매일 같이 바라 보았다지요.또한 아비의 혼이라도 편안한 안식을 바라는 마음에 감은사를 지었고요,

감은사는 용이 된 아비가 수시로 드나들 수 있게 수로를 만들어 놓았다지요,그 흔적이 지금도 고스란이 남아 있습니다.

애기가 걸어 졌네요? 우리가 사는 가까운 곳에 가슴 찡한 이야기 이다 보니 하게 되네요

지금 한창 방송드라마로 인기 절정인 '대왕의 꿈'을 보는 중이라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이 재매정 우물이야기도 전장에 나가는 길에 가족 모두가 얼굴이라도 한번 볼려고 마중 나가 있는데

그런 가족은 외면 한 체 물 한사발 마시고 물 맛은 옛날 그대로구나! 하고 그냥 돌아서 가니~

그를 따르던 군사들은 큰 감명을 받았겠지요.그러한 힘이 삼국을 통일 하는데 기여했으리라 짐작합니다.

무릇 예나 지금이나 사회의 지도층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작금의 현실이 많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오늘 김유신장군의 우물을 돌아 보고 느낀 소회입니다.

좋은 나날이 되소서^^*

 

 

재매정

사적 제246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8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