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을사년 음력 설날 정초 소원기도
- 호미곶면 구만리 분월포해변에서~
옛날에 산돌(살아있는 바위)에 어린애들을 파는 사례가 많았다. 그리고 매년 음력 정초에 기도를 간다.
어린애가 아프지 않고 잘 자라는 의미로 기도를 올린다.그 어린애가 잘 자라 벌써 일흔을 넘었다.
설 이튼날 새벽에 돌엄마에게 정성껏 기도를 올린다
옛날 옛적에 홍역 같은 전염병이 돌면서 많은 어린애들이 죽었지요. 지금 같은 의료시설들이 없었던 옛날에는 전염병이 돌며 죽거나 병신이 되었는데 특히 연약한 어린애들이 많이 죽었다. 그런 환경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민간토속신앙이 유일했었지요. 즉 어린애에게 양부모를 정해주거나 아니면 산돌(바위)에 팔았다. 사람은 이래저래 변심이 많으니 변함없는 묵묵한 바위에 파는 형식으로 돌엄마를 정해주었다.
그래서 어릴적에 兒名이 그저 '돌바우'로 부르거나 '바우'로 많이 불렸다. 많이 불러주면 애가 장수한다고 하여 그렇게 불렸다. 그 전설 같은 이야기가 아직도 전해지고 있으며 매년 음력 정초에 기도를 간다.

나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태어났다.
단연히 보릿고개 초근목피로 근근히 살아가는 아주 먼 옛날(?) 이야기이다. 내 위로 형이 둘 있었는데 홍역을 앓다가 둘 다 잃었단다. 그리고 젖먹이 나까지 시름시름 앓으니 울 엄마가 이러다 애 죽이겠다 싶어 부랴부랴 돌에 팔았겠다?(이때는 양부모를 정해주거나 돌에 팔았었단다) 그 덕택였는가? 애는 병을 극복하고 잘 자라 그 애가 일흔을 넘겨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답니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결혼하고 알았었다. 안 그래도 자라면서 주변사람들이 버젓한 내 이름이 있었는데 '돌바우'라고 불였다. 감성이 예민했던 어린 시절에는 돌바우라는 애칭이 참으로 듣기 싫었었다. 그리고 나보다도 울 엄마는 '돌바우엄마'로 더 유명했었다. 울 엄마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지금도 많이 내려올 만큼 화재를 낳았던 울 엄마가 오늘따라 많이 보고 싶다!
아내와 나는 정성껏 올해의 우리 가족 모두의 소원을 빌었습니다

분월포해변에 우뚝 솟은 울 엄마바위가 마치 히말라야 에베레스트山을 닮았다.
오늘도 한해소원을 정성껏 빌었다.



분월포해변은 영일만 입구바다이다.
동해안의 검푸른 바다를 바라만 봐도 무서울만큼 공포스러운 검은 바다이다
'내 밥묵고 구만바람을 쐬지 마라'는 지역속담이 있다.
그만큼 이 지역(구만리)은 파도가 세고 바람이 태풍급이다.
특히 설 이튼날 울 엄마바위를 찾아가는 날에 찬바람에 세찬 파도, 살을 에는 듯 한 추위를 잊을 수가 없다.
이런 천박한 환경에서 우리 엄마는 어떻게 살았을까? 잠시지만,
*
내 위로 두 아들을 잃고 우리 엄마는 이곳으로 이사와서 (이사 왔다기보단) 오빠집에 잠시 얹혀 살다 살기가 막막하여 부산으로 갔단다. 나를 맡길 때가 없어서 장사 갈 때 나를 묶어 놓고 갔는데 장사 마치고 집에 들르면 묶인 내가 어떠했겠는가? 이러다 애를 죽이겠다 싶어 다시 구룡포로 올라왔단다. 그곳에서 지금껏 살았다면 우리 가족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나는 누워서 가끔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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