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답사기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安永岩 2009. 9. 22. 20:49

       

            자연과 조화 이룬 가장 한국적인 궁궐

 

창덕궁(昌德宮)

사적 제 122호

서울 종로구 와룡동 2-71

면적 :583,516.3㎡

 

창덕궁은 1405년에 태종이 세운 조선 왕조 제2의 왕궁이다.처음에는 법궁(法宮,

임금이 사는 궁궐)인 경복궁에 이어 별궁으로 창건 했지만 이후 임금들이 주로 창덕궁에

거주하면서 실질적인 법궁의 구실을 하였다. 창덕궁은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스럽게 건축하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97년 12월에 유네스코(UNESCO)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궁궐이 되었다.

 

답사일자 : 2009년 9월 13일 오전

날씨 : 맑음,너무 화창한 좋은 날씨

<소회>

서울에 고궁을 모두 좋아하고 시간나면 들리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이 '창덕궁'을 좋아한다.

궁궐자체의 건물보다도 주위에 어울러진 자연을 더 좋아한다.자연 그대로 살리면서 필요한

건물과 설치물들을 배열하여 자연과 인공이 하나가 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후원은 전세계인들이 놀랄 정도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편안한 숲의 정원이다.

나 또한 이 후원의 숲이 너무 좋아 즐겨 찿는다. 지방에서 3번을 찾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도 말이다.하루 빨리 전면 개방하여 연결된 북악산,북한산을 오르고 싶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안내 관람이 아닌 자유 관람을 하여야 하는데 시간이 나질 않는다.

매주 목요일에 실시 한다고 하니 퇴직후에는 꼭 자유관람을 하여 한번도 보지 못한

후원중 옥류천 관람도 할 것이다.

 

 돈화문(敦化門) : 보물 제383호 로 창덕궁의 정문,1412년 건립

첫입장(일본어)이 9:30분인데 일본관람객들의 줄이 끝이 보이질 않는다.하기사 일본 궁궐이란

정복한 위정자에 따라 제다 부셔 버리니 옳은 궁궐이 하나 없다.더우기 유명한 산세를 그대로 살려

궁궐과 후원을 조성 하여 놓았으니 더욱 부러워 할 만 하다.우리의 궁궐과 문화재가 저 왜놈들이 온갖

만행을 저지러지만 않았다면 훨씬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었을 긴데...나쁜놈들...또한 섬나라 왜놈들이

이제와서 한국의 여러 문화재를 찾고 쇼핑을 즐긴다니 좀 그렇다.환영해야하나,말아야 하나...

그다음 10:00시에 한국인 첫 입장.관람시간이 일어,한국어,영어,중국어 씩으로 한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은 쉬고,자유관람은 목요일. 대신 입장료가 15,000원.

 

 정문을 들어 서면 만나는 경내 첫 풍경

 

한국어 가이드의 설명중, 나는 이 팀에 어울려 다녔다.

 

 금천교

입구인 돈화문을 지나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오면 금천교가 있다.

서울 궁궐 건축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석조물이다. 가장 오래된 돌다리^^

경복궁의 주요 건물이 남북으로 일직선인데 금천교는 동서로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창덕궁이 지형을 인위적으로 변형하지 않고 자연을 그대로 활용한

궁궐임을 알려주는 시설이다

 

 

창덕궁의 금천교는 1411년(태종11)에 축조된 돌다리이다.

조선의 궁궐에는 공통적으로 초입부에 풍수지리상 길한 명당수를 흐르게 하고

그위에 돌다리를 놓았다. 특히 창덕궁의 돌다리는 그 아래 맑은 물이 흐른다하여

비단錦에 내川자를 사용하는 '錦川橋'라 하였다. 다리 아래에는 남쪽의 해태상,북쪽에

거북상을 배치하여 궁궐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았다.

다리 중간에는 잡귀를 쫒는 귀면이 조각되어 있슴.

 

 

 

 진선문

조선 태종,영조때 신문고가 설치되었다는 진선문인데 글세...일반백성이

병사들이 지키는 돈화문을 통과하여 이곳의 진선문에 신문고를 두드리기는

정말로 어려웠을 것이다.차라리 하늘에 별을 따는 것이 쉬웠으리라.

 

진선문을 통과 하면 바로 보이는 인정전 마당이다.

 

 인정문(仁政門) : 어질게 백성을 다스리는 문이라...

이 문을 통과하면 임금이 계시는 곳을 만난다.

 

 인정전(仁政殿) :국보 제225호

창덕궁의 正殿으로서 왕의 즉위식,신하들의 하례,외국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임. 웅장하고 근엄한 경복궁의 '근정전'에 비하면

소박한 모습이다. 인정전 마당 동쪽은 문신,서쪽은 무신들이 서는

자리를 표시해 주는 품계석이 있다.

 

 인정전에서 '선정전'으로 가는 문과 회랑

 

 궁궐의 단청 모습

 

 인정전 내부 임금 옥좌모습

 

 

 인정전 창살

 

 선정문으로 가면서 쳐다본 인정전의 멋진 모습

 

 선정문

 

선정전(宣政殿) : 보물 제 814호

'정치는 베풀어야 한다'는 뜻의 선정전은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便殿)으로,아침의 조정회의,업무보고,국정세미나인 경연 등

각종회의가 이곳에서 매일 열렸으며 창덕궁 건물중 유일하게 지붕에 값비싼 '청기와'를

올려 이곳이 임금의 집무실임을 상징하고 있슴.

 

 선정전 뒷 뜰 공간

 

희정당 앞 모습

 

 희정단(熙政堂) : 보물 제 815호

인정전이 창덕궁의 상징적인 으뜸 전각이라면 '희정당'은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실질적인 중심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원래 이름은 '숭문당'이었으나 1496년(연산2)

에 '희정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원래의 편전인 '선정전'이 비좁고 종종 국장을 위한

혼전으로 쓰이면서, 침전이었던 희정당이 편전의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

 

 희정당 뒷편 모습

 

 희정당 내부 모습

 

못 다 핀 개혁정치의 꿈,효명세자(孝名世子):희정당은 순조의 아들이며 헌종의 아버지인

효명세자가 승하한 곳이기도하다.외모와 총명함은 물론이고  책을 좋아 하는 모습까지

할아버지 정조를 빼닮았다고 전해지는 효명세자.순조의 명으로 19세에 대리청정을 시작한

효명세자는 안동김씨 세력과 맞서 참신한 인재를 등용하고 개혁정치를 펼쳤다.

그러나 아버지의 희망,할아버지의 이상,그리고 조선 백성들의 염원을 채우지 못한 채

22세의 꽂다운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으니, 정사를 돌본 지 겨우 3년 3개월 만이었다.

효명세자는 후원에 작은 공부방인 '의두합'을 짓고 이곳에서 독서를 즐겼다.

 

희정당 내부 좌,우에 국보급 그림이 두점 있는데 이그림은 '금강산'을

그린 그림이다. 정면에서 보지 못해 아쉬웠다.

 희정당 측면 모습

 

 대조전 : 보물 제 816호

 창덕궁의 정식 침전으로 왕비의 생활 공간임.

 

 

 아궁이 (숯을 사용함)

 

 대조전 뒷뜰

 

 인금님의 응아~한 것을 치우는 문과 계단

 

 뒷뜰을 아름답게...미적감각이 돋보인다.

 

 

 

 

 뒷뜰에 잘 자란 소나무들...

 

 대조전에서 후원으로 가는 쪽문

 

자연에 대한 배려로 인공도 아름답게... 

 

 

 

 낙선재(樂善齋)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였으며,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인 순원왕후(23대 순조의비)를위한 집이였다. 후궁을 위해

궁궐 안에 건물을 새로 마련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 낙선재는이방자여사가

 1989년까지 생활 하였다.

 

낙선재는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을 지녔으며, 창살과 벽체의 무늬, 

평원루의 건축양식 등에서 청나라의 영양을 받았다.

 

 낙선재 옆 뜰

 

 

 

 성정각(誠正閣)

세자의 일상이 숨쉬던 동궁

 

500년 된 느티나무

 

 

 창덕궁의 후원(後苑) 가는길

 

 

 

 후원 넘어 가면서...아름다운 숲

 

 부용지(芙蓉池)

말그대로 연꽃못인데 연꽃은 어디에...후원의 중심지

 

 주합루(宙合樓)와 어수문(漁水門)

주합루는 정조가 즉위한 1776녀에 창건한 2층 누각이다. 아래층에는 왕실 직속 도서관인 규장각을,

위층에는 열람실 겸 누마루를 만들었다. 규장각이란 '문장을 담당하는 하늘의 별인 규수가 빛나는 집'

이란 뜻이고,'주합루'란 '천지 우주와 통하는 집'이란 뜻이다.높은 언덕 위에 있는 주합루로 오르는 정문이

 '어수문'이다.'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격언과 같이 통치자는 항상 백성을 생각하라는 교훈이

담긴 문으로, 정조의 민본정치 철학을 보여 준다.

 

 영화당

왕이 입회하는 특별한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했으며 동쪽으로 춘당대 마당을,

서쪽으로 부용지를 마주하며 앞뒤에 툇마루를 둔 특이한 건물이다.

 

 영화당 마당

 

 

 

 

 '의두합'가는 문

 

 

애련지(愛蓮池)

 

 불로문(不老門)으로 들어 가면 정면에 애련지가 보인다.

즉 효명세자가 독서를 즐겼던 '의두합'이 애련지와 마주하고 있다.

 

 애련지

 

 

연경당(演慶堂)

사대부 살림집을 본뜬 조선후기 접견실.고종황제는 이곳에서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120여칸이어서 일반 민가가 99칸의 규모로

제한한데 비해 차이가 난다.단체관람이라 설명만 듣고 들러가지 못해 아쉬웠다.

경내에는 연경당,선향재,농수정정자가 있슴.

 

연경당 앞

 

옥류천 가는길

 단체관람에는 이곳에 입장이 제한되었다.역시 자유관람때 볼 수 밖에...

 

 연경당을 마지막으로 보고 둘러 나오면서 길 좌,우에 고목들...

 

 밑은 죽은 듯 한데 위는 새로운 가지가 살아 싱싱하다.

 

 700년된 향나무

 

정말 오랜세월을 겪어온 풍상이 보인다. 1392년에 조선왕조가 개국했으니 

그보다 훨씬 이전에 여기 이곳에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나무의 수명은 언재까지 인가? 

 

 

 

나오면서 다시 돌아본 인정전과 궁궐

 

 선비의나무.  오래된 회화나무들이 창덕궁 마당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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