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룡포산악회

구룡포산악회 소개(1982년 6월 12일 창립)

安永岩 2014. 9. 21. 07:42

산악운동의 산실,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구룡포산악회,九龍浦山岳會

 

소재지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1리 776-1번지

전화 : 054) 276-3266

창립일 : 1982년 6월 12일

 

<참고> 1982년 6월 12일 창립하면서 초대회장 송석무회장님

명의로 회원패를 발급하였는데 연맹가입은 그 이듬해 즉 1983년

봄에 대구 연맹을 방문하여 정식으로 가입하였다.

▣ 현재 회원수 : 62명

▣ 2011년 집행부 현황

* 장종만회장님은

1990년 본회 제9대회장으로 재임하고 난후 20년이 흐른 지금,

2011년에 회장직을 부득히 다시 맡게되었다.산악회가 30년이 흐르다 보니

회원자원이 부족한게 원인이다.회원중에 회장을 역임한사람이 절반이다 보니

인적자원이 고갈상태이다. 회장을 맡을 회원이 나서지 않아 작년 년말에

비상회의를 수차례 소집하드니 결론이 앞으로 몇년은 전직회장님이 회장직을

다시 맡아 줘야 한다나...그래서 장종만회장님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위 조직표에서 보다시피 3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회장직을 역임한

전직회장들이다. 과연 활성화가 될지 두고 볼 일이다.

30년동안 초대회장(1982,6,12 ~1983,12,31)를 제외하고

2년을 회장직을 역임한 회장은 없다.

 

구룡포산악회 세부 소개

◈ 산악회현판 ◈

◈ 산악회 마크 ◈

 

<참고> 이 마크는 1982년 6월 창립당시 지역유지'정창용님'께서 도안하셨다.

뜻은 구룡포산악회 상징인 로프 와 로프속에 3개의 산이 정상을 향해 있다,즉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정상을 향한 도전정신이 베어 있으며, 항상 최고를 지향한다는

이념과 평소에 지역의 생활에서도 남보다 앞서 나간다는 깊은 뜻이 있다.

 

◈ 현재사무실 이모저모 ◈

사무실 입구 현판

1982년 6월 12일 창립당시 구룡포3리 舊 구룡포종점 옆 최덕유전회장님

건물 2층(교보생명보험)에서 발기인대회를 하고 난후 더부살이를 하다

1985년 광명당 2층에 단독 사무실을 얻어 입주,그 이후에

4번 사무실을 옮겨 다니다 현재 이곳에서 정착하여

사무실을 축소 운영하기에 이르렸다.

산악회가 한창 번성할 무렵(1990년대)에는 30여평 사무실에

여직원까지 두고 운영하였으나 지방경기에 맞추어서

사무실을 현실적으로 축소 운영하자는 회원님들의 뜻에 따라

현재는 여직원 없이 순수한 회원 위주로 축소 운영하고 있다.

 

사무실전경

노산 이은상 시인의 글

아마도 노산시인도 산악인이였나 보다. 난 이 산악인의 선서를

즐겨 읽고 마음에 새긴다.글 내용이 너무 순수하고 진취적이고

살아가는데 힘을 준다.산악인은 무궁한세계를 탐색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역대회장님의 사진이 벽에 가득하다.

1982년부터 2010년 까지 원래는 29명였는데

유명을 달리한 회장과 개인사정으로 자퇴한

8명의 회장님의 사진를 빼고 전시되어 있다.

산악회의 운영의 산실 쇼파들이다.

통상적으로 임원회의를 하는 자리이다.

◈ 역대회장님 사진 ◈

송석무초대회장님(함흥식당) 재임기간 : 1982.6.12 ~ 1983.12.31 (1년 6개월)

그 외 제2대 부터는 재임기간이 1년였고, 작년까지 29대 28명의 회장을 배출하였으며

드디어 앞에서 언급하였드시 제30대 회장으로 9대회장을 역임한 장종만회장님이

다시 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제6대회장:최덕유(당시,한남체인)1987년

제8대회장 : 김대원(모모식당) 1989년

제9대회장 : 장종만(온고당인쇄) 1990년

제10대회장 : 안연천 (일선약국) 1991년

제11대회장:박두윤(성보건설산업)1992년

돌바우(안영암)는 1995년 본회 제14대회장으로 재임하였다.

제13대회장 : 김소형(수협중매인) 1994년

제14대회장 : 안영암(경희회식당) 1995년

제16대회장 : 이월섭(제일미술사) 1997년

제17대회장 : 안염택( 운수업 ) 1998년

제18대회장 : 안병생(영천상회) 1999년

제19대회장 : 정수화(금강이발소) 2000년

제20대회장 : 엄준익 (구룡포농협) 2001년

제21대회장 : 김금진(유창수산) 2002년

제23대회장 : 허영헌(수협중매인) 2004년

제24대회장 : 김종진(LIG보험) 2005년

제25대회장 : 진용수(초원다방) 2006년

제26대회장 : 기도권(에이스가구) 2007년

제27대회장 : 임두하(수협중매인) 2008년

제28대회장 : 허달수(광명당안경) 2009년

제29대회장 : 김선규(현대제철) 2010년

제30대회장 : 장종만(온고당인쇄) 2011년

~현재 재임중

*허달수,김선규회장은 사진이 아직 부착되지 않았다.

◈ 년간 주요 활동내역 ◈

- 매월 전국 단위 산행

- 년 2회 봄(창립기념일),가을(단풍) 부부동반

1박2일 or 2박3일 관광겸 산행실시

- 월 2회 월례회,이사회 회의

- 년 1회 임시총회(회장,감사 선임)

- 년 1회 정기총회 및 회장 이취임식개최

<1990년 제9대회장 장종만회장 이취임식 장면>

◈사진으로 본 산악회 발자취

<먼저 소회,연혁>

산악활동의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구룡포에 포항에 계시던 이춘근선배님이 구룡포에

교보생명보험소장으로 부임해오면서 뜻 한바 있어 주변지인들(김대원,최덕유,장종만,안염택,안영암)

함께 가칭,구룡포산악회를 조직하고 함흥식당 송석무님을 초대회장으로 모시고 지역의 산악활동에

뜻이 있는 유명인사와 선후배님들을 모시고 종점 최덕유님(당시한남체인)건물 2층 교보생명에서

1982년6월12일 발기인대회를 개최하였다.이때 발기인대회 인원은 대략 30여명였는데

레저 단체로서 인기가 있어 그 해 년말에 40여명으로 늘어 났다.

* * *

30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지난날들을 되새겨 보니 감회가 새롭다.

30살이던 회원이 60환갑이니 감회가 새롭다기 보다는 지난 세월이

가물가물하다. 사진으로 보면 알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산악회를 거쳐 갔다.

아!!!!! 저분도 우리 회원였나 ??? 할 정도로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산악활동을

함께 했는데...아쉽게도 고인이 된 분도 많고 개인 사정으로 본회를 떠 난 사람들이

더 많다. 현재 본회 창립멤버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송석무,최덕유,김대원,장종만,

안염택,안영암,허달수,박두윤등 8명과 창립멤버나 다름없이 그해 들어온 안연천,

김소형,이월섭등 10여명이 30년을 함께 해오면서 산악회를 지키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산악 후배님들의 구룡포산악회의 역사와 전통에 긍지를 갖고

열심히 산악활동을 하고 있고, 선배사랑이 하늘 같아서 산악회의 앞날이

더욱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앞으로 50년 아니 백년~~~

영원히 존재하여 갈것이다.

30년 동안 구룡포산악회에 몸 담아 있으면서 참으로 사연도 많았다.

아마 책으로 쓰면 몇권이 될지 모른다.83년도에 대구 연맹에 가서

대한산악연맹에 가입하면서 당시 연맹회장이셨던 이효상전국회의장을

구룡포에 초대하여 삼정섬에서 성대히 행사를 하였고,또 이의장 대구 자택에

초대되어 간 것은 두고 두고 영광이였다.포항에 각종 산악활동에 적극

동참하여 모범적인 지역산악회로써 자리 메김하여 부러움을 싸게 하였고

당시에는 산행지식이 없는 상태인데다가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여

사전답사라는 형식으로 먼저 산행지에 갔다온 다음에 산행을

하곤 하였는데...예산부족으로 그 것도 여의치 않아 답사없이

산행을 가서 길을 잃어 헤메기가 다반사였다.

하여튼 우리 후배들을 위해서 사진들을 보면서 그때 그때 있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적을까 한다.1982년 6월 12일 창립일로 부터

1986년도 까지 1부에서 올리고 2,3부에 나누어 2000년까지 올릴까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사진이 오래되어 희미하여 회원들이 잘 식별이 되질 않는다는 점인데

보시는 분들이 어림잡아 잘 보시기를 바랍니다.정말로 귀한 오래 된 사진들입니다.

사진속에 인물들은 한동안이지만 분명히 우리 산악회회원으로 있었던 분들이다.

 

1부 사진 기록 : 1982년 6월 ~ 1986년 12월까지

19827월 팔공산 은해사 창립기념등반

(구룡포산악회 최초 등산)

1982년 6월 12일 창립을 하고 첫 등산행사를 7월달에 팔공산 은해사 건들바위를 초등했다.

은해사 대웅전 앞에서

첫줄 우측부터 하규태,김순근,정창용,송석무,김우영,이춘근,이상천,김성룡,이춘근의처와 아들(동기)

가운데줄 최덕유,김우영의처,미스박(지금은 동장사모님),건너 장종만,김준호(봉출),안영암,허달수,

뒷줄 정대룡,기억나지 않음,김대원,장화익,기억나지않음,안원백,안염택順...

모두가 창립 멤버들 인셈인데 이때 돌바우(안영암)의 나이가 29세 막내 청년였다.

위 사진을 보니 30년전의 모습들이 정말로 정겹고 그때가 그립다.

세월이 느껴지는 것은 위 사진에서 지금까지 회원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은

맨앞줄에 송석무초대회장,가운데줄에 최덕유,장종만,안영암,허달수,

뒷줄에 김대원,안염택뿐이다.

이춘근부회장 ! 당시에 보험업계에 종사하시면서 구룡포산악회를 창립했고

포항산악연맹(그때는 그렇게불렸다)이 대한산악연맹대구,경북연맹에서 대구가 떨어져 나가면

경북연맹을 포항으로 유치하기 위해 그렇게 가칭으로 불렸는데 가맹회원산악회가 30여개가

넘었다.특히 포항종합제철에서 큰 역활을 해주고 공단의 각 기업 그리고 시내 각 단체에서

힘을 실어 주어 위세가 대단했다.그곳에서 이춘근선배님의 역활이 컸고 모든 연맹행사에서

거의 기획을 맡아 활동했었다.특히 내연산악제를 1박2일 행사를 할때 사회를 맡아 깔끔한

진행솜씨가 단연 돋보여 덩치에 비해 巨木같은 형님였다. 그 형님이 이제 몸이 좋지 않아

현직에서 은퇴하여 포항에서 조용히 사시고 계신다.

팔공산 '건들바위'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이 정말로 엄숙하지 않는가?

구룡포산악회에서 실시한 최초의 등산으로 건들바위에 도착하여

정상식을 하였다.정상식을 하는 줄을 몰랐는데 당시 이춘근부회장이

주관하여 묵념,애국가,만세삼창,기념사진촬영順으로 행사를 진행하였는데

그것이 오래도록 '정상식'이란 이름으로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데,다만

야생동물보호 차원에 야호삼창을 생략하고 애국가도 너무나 많은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괜히 좀 그렇고 하여 하지 않기로 했다.

뒷줄 가운데 흰모자 쓴 분이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목수일을 한분인가 ? 우유를 취금한분인가? 가물가물...

김순근선배님 ! 수협에 근무하시면서 산악회에 몸을 담아 아주 열성적으로 활동하셨고

한마디로 신사였다.외모에서도 그렇게 풍기지만 훤칠한 키에 미남이고 큰 덩치에 정말로

믿음직한 선배님였다. 춘근선배님과 함께 포항영포산악회 회원으로써

지금까지 활동하고 계신다.

이춘근,김대원,김성룡선배님들이 동기로써

모두 구룡포산악회의 혁심역활을 하였다.

산악회가 출발하면서 복장,신발,베낭등 등산상식이 전무하다 보니

이춘근 당시 부회장(이춘근선배님은 포항영포산악회회원으로 있으면서

구룡포산악회를 창립하였다)께서 포항에서 산악 장비점을 하는 후배를 통해

장비를 단체로 구입하게 하였다.신발이 K2 였던 기억이 난다.그리고 의복은

지금처럼 달리 등산패션이 아니고 그저 편한복에 등산화,스타킹,모자정도를

착용했다.가죽등산화에 긴 스타킹을 착용한 모습이 좀 촌스럽지 않은가?

물론 물은 따로 수통을 차고 다녔다.

1982년 7월 은해사 계곡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구룡포산악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좌표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을 하였던 기억이 난다.

은해사 백련암 보화루앞에서

20세기양복점을 경영하신 김성룡형님은

양복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셨는데...몇년이

지나 포항에서 공원막창으로 히트를 치게 된다.

포항의료원들어 가는 입구 고가도로옆에서 옮겨

장사를 하는데.지금은...한동안 안가서 모르겠네.

창립 첫 등산행사다 보니 등산후 거나하게 한잔하다.

상에 맥주만 보이고 소주는 보이지 않네...김봉출(준호)은 당시 친하게 지냈는데

창립후 바로 신입회원으로 가입하여 첫등산에 함께했다.

서울로 가면서 산악회를 떠났는데... 지금도 서울에 살고 있다.

1982년 8월 덕유산에서

나제통문에서...

8월이면 한여름인데...무주구천동 부부동반 1박 2일로 등산을 한 것 같다.

추웠나 ? 복장이 거의 잠바차림이다.하여튼 산악회가 창립이 되고 지방 읍단위에서

새로운 레져로써 인기가 좋아 많은 회원들이 신입회원으로 들어 왔고 그해 여름에

회심작으로 덕유산 무주구천동을 부부동반으로 등산 및 관광을 추진한 것 같다.

당시에는 이 나제통문이 인기 있는 관광코스중에 하나였는데...이쪽에는 신라,

굴 지나 반대편에는 백제...

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신라와 백제가 싸운 현장인 셈이다.

추풍령휴게소에 세워져 있던 경부고속도로준공탑이

관광객들에게 인기있는 사진촬영장소중에 하나였다.

김해환(미도센타)선배님,신장하선배님,정창용선배님,이분들의 영향력이 대단하셨지...

특히 이 셋분들은 신장이 거구라 어디를 가드라도 위엄이 있엇고 카리스마 송회장님과 함께

다툼이 있을때 그냥 가만히 계셔도 상대가 놀라 도망 갈 정도 였다. 당시에는 관광차를 타고

다니다 보니 여러 곳에서 부딛치는 일들이 자주 일어 났다. 그리고 장하형님은 두주불사로

술을 엄청 사랑 하셨다.술도 덩치만큼이나 자셨다.

그 중 정창용선배님은 한마디로 멋쟁이셨다.

아이디어,기획력도 뛰어나 구룡포산악회회기 마크를 멋지게 디자인 하셨고

회의나 토론회등을 할때면 항상 좋은 방향을 제시 하곤했다.

이때 신두철회원이 가입하여 동행했네.

지금은 부산에서 잘 살고 있다.

덕유산 정상에서...

1982년 8월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정상조는 항상 따로 있다.

이때 구룡포산악회 회기가 갈색바탕였네.

그것도 기억에 없다가 사진을 보니 아~하 !!!

이것이 하나의 기록이다.

무주구천동에서 야영을 하면서...

이때 텐트를 보라...지금 텐트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켜진다.

1박을 하면 무조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텐트를 치고 취사를 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게임도 하고 켐파이어도 했다.

정말로 낭만이 있는 밤이였다.

K2 신발에 스타킹이 같다. 그리고 복장은...참으로 촌 스럽다.

무주구천동에서 식사후 빙 둘러 않아 게임을 하면서 박장대소를

하고 있다. 부부동반으로 어디를 가면 게임에 대한 노이로제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게임에 대한 책을 싸서

암기하여 활용하였고 우리들(나,두철,준호)이 궂은일을 도 맡아

했고 선배님들의 따스한 보살핌으로 술도 참 많이도 얻어 마셨다.

무주구천동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회기를 자랑스럽게

들고 다녔다.이때는 등산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그래서

행동에 더 자유스러웠고 오염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허리에 찬 것은 벨트식 수통이다.

이규환선배 !!! 대단한 힘의 소유자였다.

당체 지칠 줄 모르는 힘이 어디에서 나올까?

항상 정상에는 남 먼저 올라 가 있고 술도 두주불사고

불의를 보면 참지를 못하고 남아중에 남아가 아닌가 싶다.

그 형님이 지금은 오천에서 가든을 경영하면서

고향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

지금은 그리운 무주구천동 출렁다리 !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 지금의 철제,나무다리보다는...

이렇게 깃발을 높이 들고 사진 찍는 것이 큰 자랑였다.

김우영한독약국 약사님 ! 종점에서 약국을 경영하시면서 산악회에 관심이 많아

아주 열성적으로 참여 하였고, 다만 걸음이 느려 정상식을 할 때면 꼭 30여분을

기다렸다가 하곤했다.아니면 올라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특히 사모님께서 부부동반때 민요,우리 창으로 노래를 잘 부르면서

흥을 돋구워 우리 일행들을 놀라게 하였다.

좌측형님은 이름은 생각 나지 않지만 나이에 비해 열의가 대단했고

웬만한 산정상은 다 올랐다. 지금의 안병생전직회장과 스타일이 비슷했다.

김봉출,허달수(광명당안경),안영암,이상길(신창지업사),김두철(화석),

이규환(동원식육점),안염택(양학다방),김우영(한독약국),이춘근부회장 順으로...

이 때 모자는 필수였고,수건을 하나씩 허리 춤에 찮다. 그리고 신발과 스타킹을

신은 모습이 가지런히 얼마나 양호한가 ? 스틱은 없어 나무를 대신했다.

덕유산 백련암 앞 계단에서...

사진을 찍으면 반드시 산악회기를 잘 보이게 들고 자랑삼아 사진을 찍다.

뒷줄 우측에서 2번째가 정대룡전직회장(2대)이다.

일광카메라사진관을 운영하면서 산악회에 몸 담아 熱意가 대단했었지?

결국 그 열의가 너무 지나쳐 또한 대쪽 같은 성격 탓에 짧은 산악회생활 끝에

떠난다. 한참 왕성하게 활동을 하여야 하는데 산악회를 떠나 많이 아쉬웠다.

뒷줄 맨 우측 신두철이가 찬 수통이 당시에 유행한 패션였다.

신두철,일명화석 !!! 산의 귀신였다.

초대 기술이사를 오래도록 역임할 정도로 산에 대한 지식이 박식했다.

걸음이 빠르고 힘이 넘쳐났고 자기 주장이 강해 자주 회원들과

부딛쳤고 잡기에 능했는데...다만 술을 못했다.

그 신두철이가 부산에서 지금 잘 살고 있다.

산에는 갈 시간이 없다나...

1982년 여름 앵콜등산,주왕산에서

8월달에 덕유산을 다녀오고 난 후에 바로 뒤 돌아 서서

청송주왕산에 엥콜산행을갔던 기억이 난다.

물론 송석무초대회장의 결정으로 갔던 것 같다.

뒷줄 깃발 드신분이 돌문밑에서 장사를 하신 두환(이름이 맞는지 모르겠네)

선배님같다. 참으로 인심이 후한 마음 넉넉한 형님였다. 화를 낼 줄도 모르시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고 통이 크신 형님으로 기억 하는데...

지금은 어디에 사시는지...궁금하다.

우리 삼총사(나,신두철,김봉출)도 함께 동행했네.

막내로써 100% 산행하면서 모든 심부름과 궂은일을 도 맡아 했다.

뒷줄 맨 우측에 김병호선배님(당시 유선방송사장)은

산악회에서 자형(김해환선배님)과 함께 산악회에 몸을 담았는데...

아쉽게도 얼마 활동을 못하시고 그만둔것 같다.

미스박 ! 교보생명보험 직원으로써 우리 산악회가 더부살이를

하다 보니 한동안 우리와 같이 산행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금 포항에 동장사모님이 되어 잘 살고 있다.

8월 주왕산앵콜 등산에서 우리산악회기 바탕색이 갈색에서 청색으로 바꿨네.

머리를 보니 좀 쑥 스럽네... 그러나 이때는 장발이 유행했다.

혈기가 한창 왕성 할 때 사진이다. 29세라... 상위 호주머니에는 메모지와 볼펜이

항상 꼿혀 있었는데...등산일기를 메모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등산이 끝나고 나면 지도와 함께 등산일지에 기록을 남겨야 했다.

그것이 미비하면 년말 감사에 지적을 받곤 했다.

참으로 아나로그 시대의 애기다.

1982년 11월 가야산에서

가야산 해인사 앞에서...

창립년도(1982) 그해 가을에 부부동반하여 합천해인사를 갔다.

참으로 많은 회원과 부인회원이 참여 하였는데 8월에 부부동반으로 덕유산에 갔다온 후로

회원확충이 많이 되었고, 홍보가 잘 되어 너도나도 가자고 홍보한 결과였다. 이때 송석무초대회장

사모님도 참여하였고,서영우前읍장님도 사모님과 같이 동행했다.

그리고 임남승,장철복선배님도 보이고...

무엇보다 우리가 막내를 면 하도록 막내가 신입회원으로 참여했다.

장종만회장님옆에 권**후배인데 지금은 포항에서 생활하고 있다.

가야산 정상에서...

높이가 1430미터에 등산로가 험하고 힘드니 부인회원들은 대부분 낙오다.

그래도 겁없이 많이도 정상에 올랐다. 하기사 이때는 모두가 20~30대였으니

힘이 넘칠 수 밖에...

가야산 정상에서 정상식을 거행하다.

이때는 이렇게 애국가를 힘차게 불렸다.

하산길에 목도 축이고...

정상 못 미처에 막걸리를 파는 매점이 있었는데 우리들에게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얼마나 반갑던지...

막걸리를 정말로 맛나게 먹었다.

당시에는 무전기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

이런 손마이크를 무겁게 차고 일행들을

안내 하고 비상용으로 사이렌도 울렸다.

참으로 옛날애기다.

부곡하와이에서

↗↘ 부곡하와이 실내 풀장에서...

부곡하와이 !!!

그 때는 창녕,합천방향으로 등산을 가면 거의가 부곡하와이를 경유했다.

외국의 예를 본 받아 설립한 부곡하와이는 이름 만큼이나 이국적였고

우리나라의 온천문화를 확 바꿔버렸다.벌거벗은 차림으로 수영도하고

쇼도 보고 목욕도하고 식사도 하고 술도 먹고...참으로 그 당시에는

인기가 대단했다. 신혼여행지로 1번지였고 어르신네들은 곗돈을 부어

그곳에 몇번이고 가곤 했다. 지금 그곳에 우리산악회가 가야산등산후

들려서 목욕을 하고 놀면서 밤을 보냈다.참으로 좋은 밤였다.

그 이후로 몇번을 더 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을 만큼 많이 갔던 것 같다.

구룡포산악회, 화이팅!!!!

예나 지금이나...그렇게 외쳤다.

삼총사에서 사총사로...

1982년 12월 박바위(응암산)등산 및 정기총회

창립(1982년) 그 해 12월 정기총회 앞서 지방산(응암산,일명박바위)을 등산하면서

박바위 머리부위에 전회원이 올라서서 찍은 기념사진이 지금 보니 새롭다.

지금은 명찰 다는 것이 부끄롭고 쑥스럽지만 그때는 자랑삼아 달고 다녔다.

일종의 단체의 힘을 표시하는 과시용인 셈였다.

그리고 그것이 보편화되었고

지금도 달고 다니는 단체를 간혹 본다.

박바위를 올라가면서 양지바른 바위에서...

이때는 뚝 하면 단체사진을 찍었다.

응암산에서 사총사가 다시 오총사가 되었다.

엄순익친구가 새로 가입했기 때문이다.

한때에 엄순익,엄준익,엄상익의 삼형제가 우리 산악회에 몸을 담아 활동 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엄준익前회장만 계속 활동을 하고 있고 엄순익은 포항에서 생활하면서

가까운 지인들과 한께 즐겨 산을 찾고 있단다.

박바위로 해서 늘태리로 내려 오면서 늘태저수지 주변의

쓰레기를 주워 소각하는 장면이다.장종만,정정문,양진석,안연천선배님들은

구초39회 선배들로써 산악회의 혁심역활을 하였다.

박바위산 등산후 교보생명 2층(舊 종점)에서 정기총회를 하였는데

송석무초대회장님이 다시 1983년도 회장에 재선임되었고,

회칙개정등 총회가 끝나고 그 자리에서 간단하게 자축연을 하였다.

1983년 1월 김천 황학산 등산

이제 창립년도(1982년)를 넘기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면서

김천 황학산을 찾았다.우체국에 근무하신 하**씨,신호전자 황보**선배,

얼마전에 세상을 떠난 안공석씨도 이때 같이 동행했다.

그러나 이들은 얼마 있지를 못하고 산악회를 떠났다.

김천 황학산의 직지사에서...

황학산 정상에서

직지사계곡에서...

복장이 꼭 모범 답안지 같다.얼어 죽지는 않을 것 같다.

1983년 3월 울진 백암산 등산

울진 백암산은 백암온천을 품고 있어서 자주 찾았던 같다.

백암산을 오르다가 양지 바른 묘지옆에서 단체사진을 찍은 것 같다.

이때는 산악회기로 성이 차지 않아 이런 큼직한 현수막도 가지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을때 앞에 놓고 찍곤 했다.

1983년 5월 경주 가족행사

1983년 5월 경주 가족 나들이 행사를 했는 모양인데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앞줄에 어린애들이 가득한 걸 보니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가족행사를 실시한것 같다.

이 어린이들이 지금은 30대 초반 나이 이고 보니 산악회의 역사가 오롯히 느껴진다.

아래 위 사진을 보고 비록 희미하지만 사람 찾기를 해보시기를...

1983년 6월 울주 가지산 등산

영남알프스群 중에 최고봉 가지산(1242)을 석남사를 깃점으로

초등했다. 그리고 30여년동안 참으로 영남알프스를 많이 찾았다.

천왕산,재약산,운문산,가지산,능동산,간월산,신불산,취서산(영취산)

그리고 고헌산,문복산,억산등 그 언저리 산도 많이 찾았다.

권오진선배도 이때 보이네...여전히 명찰은 가슴에 달고 있네...

착한 어린이 처럼...

가지산정상에서 애국가를 힘차게 부르고...

이 때는 정상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우리 단독이라

애국가를 크게 목 놓아 불렸다.누가 뭐라할 사람이 없으니까

하기사 애국가를 부르는데 누가 뭐라카겠노?

석남사에서 단체로...

이때는 절 대웅전 앞에서 무조건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유명산에는 반드시 유명 사찰이 있어 이 때 부터 사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공부를 한 것 같았다.등산을 하면서 사찰을 관람하고

부처님 앞에 참배하면서 자신을 돌아 보고 ...

전국에 유명산을 가다보니 자연히 유명 사찰을 다 가보게 되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일정상 바빠서 그냥 수박 겉할 듯이 대웅전만 보고

그냥 휑하니 둘러 보고 나왔지 그 사찰의 연혁과 깊이를 보지를 못했다.

그래서 지금 다시 전국 사찰 순례를 다니고 있다.

비구니 사찰인 석남사는 참으로 아담했다.

석남사의 경내 연못에 노니는 물고기를 보면서...

1983년 8월 6~7일 계룡산 등산

계룡산 甲寺에서

지금은 창립기념일 있는 6월과 가을에 부부동반산행 및 관광을 실시하고 있는데

이 때는 여름에 1박 2일로 등산을 한 것 같았다. 기록에 보니 1983년 8월 6~7일였다.

이 때는 갑사에서 금잔디고개를 넘어 남매탑,동학사로 내려 온 것 같았다.

계룡산 금잔디고개에서...

계룡산은 이후에 몇번을 더 갔는지 기억에 없다.

하여튼 수도 없이 갔 던 것 같다.이 계룡산뿐 아니고

국립공원산들은 눈 감고도 환하다.그 만큼 많이 다닐 수 밖에 없었다.

아울러 도립공원,군립공원의 산도 전부 환 할 수밖에 없는 세월이 아닌가?

좌측에 김태형(위득이형)선배님!!!

놀음에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모든 잡기에 능했지만 노래부르면서

흥을 돋구는데는 단연 최고였다.물론 노래 실력도 가수빰을 쳤고...

들어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총무도 맡아 헌신했고...하여튼

재미있었던 선배님 였는데...포항 진출하면서 산악회를 떠나

몹시 섭섭했던 기억이 났다.

그 형님이 지금은 대보 호미곶 바로 옆에서 민박 및 식당을

경영하고 계신다.

이때는 무조건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물론 민박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야영하면서 밥도 해먹고

켐파이어 하면서 빙 둘러 앉아서 술도 먹고 노래도 하고...

그리고 텐트에 누워 밤하늘에 별도 헤아리고...

정말로 그때가 그립다. 몹씨...

이렇게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그 유명했던 '물레방아식당'앞에서...

복장이 완전 표준이다.

등산화,스타킹, 수통혁띠,카멜라,산악회명찰,조끼,모자,이때는 모자에

가는 곳마다 기념뺏지를 사서 달았는데...훈장처럼 많이 다는 것이 곧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큰멋으로 생각하였다.

이 사진은 의미가 깊다.

1983년 8월 7일 계룡산등산을 마치고 귀가 길에 갑자기 북한비행기가 남쪽으로

쳐들어와서 실제상황이라고 정부에서 발표하는 바람에 전쟁이 났다고 온 나라가

발칵 뒤 집혔는데...빨리 집에는 가야하고 차를 타고 내려 오는 내내 마음을 조렸는데

실제 상황이 아니라 하여 정말로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끝나 다행였지만

얼마나 놀랬던지...자 ~ 아 기분도 전환할 겸 한잔하고 놀다가자고 간 곳이

연일다리밑인가 형산강다리 밑인가에서 한잔하고 신바람을

내고 놀았다. 바로 그 사진인 셈이다.

198311 구미 금오산 등산

도립공원 구미 금오산 ! 참으로 힘들게 올랐던 기억이 난다.

산악회 2년차라 어느정도 관록이 붙고하여 복장도 점점 세련되었고

정상도 100% 올랐고 각자 폼도 최고였다. 그 기세가... 어느 누가 감히

범접을 할 수 없는 기세가 아닌가? 하여튼 이 때는 폼 하나는 최고였다.

무서운 것도 없고...아나무인격이라고나 할까?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무의미한 행동들인데...그 때는 그것이 한 때의 유행였을까?

괜히 목에 힘주고,과시,허영을 떨었던 것이...

역시 금오산 정상에서 정상식을 하고...

앞에 '최신영'회원였는데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아

총무를 하고 나드니 우리산악회를 그만 두고 나가

지금의'우암산악회'를 만든 장본인였다.그때는 욕도

많이 얻어 먹었는데...지금생각하면 다 부질없는

행동이고 욕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인데...

그 때는 배반자라고 대단했다.

참으로 겁없이 다니던 시절였다.

박두윤회원님의 생일축하 장면

그 때는 등산을 다니다 누가 생일이라도 있는 날이면

이렇게 정상에서 케익을 자르곤 했다.

케익이 없으면 초코파이를 가지고 만들어 축하해 주곤 했다.

1984년 1월 밀양 천황산 등산

밀양 천황산 표충사에서...

영남알프스 산群에서 아마 천황산을 제일 많이 다닌 것 같다.

재약산 아래 10만평 사자평의 억새밭은 늦가을 산행지로서는

최고였고 그곳에 지금은 없어졌지만 '고사리분교'가 있었고

마을에는 술도 파는 가게가 있어 1박 하는 날엔 분교에서 공도 차고

파전에 동동주로 술도 한잔하고 밤하늘의 별도 세고...

참으로 즐거웠다.

지금은 분교도 마을도 다 없어졌다.

천황산을 오르다가 바위틈에서...

장철복선배님! 원리원칙주의자.불의를 보면 용납이 되지 않고

목소리 또한 커서 모든회의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 내었는데...

흠이라면 자기 주장을 너무 세운나머지 주변의 적이 많았다.

자기 주방이 옳으면 다수라도 따르지 않고 고집을 부리곤 했는데...

결국 얼마 있지 않아 산악회를 떠났다.

하여튼 힘이 있고 남아 다운 기질을 여실히 보여준 형님였다.

1985~86년 기타 사진 모음

이 金仙臺에서 바라 보는 전망의 시원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금선(金仙)은 말 그대로는 ‘금 신선’이지만

불가에선 ‘부처’를 금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니 금선대는 ‘부처가 머무르는 곳’이란 뜻입니다.

4명의 종정 부처처럼 머물던 천하 길지.

이 외딴 누옥에선 성철 스님과 서옹 스님, 서암 스님,

그리고 현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 등 4명의 종정을 비롯해

기라성 같은 고승들이 홀로 용맹정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진 사람이 어찌 찻길도 없고,

전기도 없는 이런 곳에서 살아가려 할 것입니까.


울진 응봉산을 오르다가 홀로 외롭게

서 있는 고목을 배경으로...

이 고목이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운문산에서...

청학동소금강에서...

청학동소금강 만물상앞에서...

노인봉 정상에서...

강릉 청학동소금강 !

그 때는 강릉에 '청학동소금강'을 처음 접하고는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계곡에 모두들 넋을 잃고 감탄했었지.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산악회가 많이도 간 곳 중에 하나이다.

작년에도 갔다왔지.

그 만큼 계곡이 빼어나고 노인봉까지 산행코스도 완만하게 좋고

무엇보다 1박하면서 놀기에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을 가진곳.특히

여름에는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있는 곳이다.

가을 단풍도 환상적이고...

문경세제 !!!

우리산악회가 제일 많이 간곳 중에 하나인 세제. 문경 지방에 산이 대략 50여산이다보니

자연히 많이 가게 되었는데...처음에는 갈 때마다 이 세제를 들락거리면서 관람도 하고

주막에서 술도 먹고 온천에서 목욕도 하고...참으로 많이도 들락거렸다.

그 들락거림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비록 지금은 오며가며 온천에 목욕만

하고 들리지만 우리 산악회와는 뗄려고 해도 뗄 수 없는 인연이다.

주흘산에서...

주흘산 정상에서...

김주석선배님 !

샷시를 하시는 형님였는데 산도 야무지게 잘 타셨지...그리고

술은 못해도 고스톱은 엄청 좋아 하셨고 어울리기를 좋아 하셨다.

다 ~ 아 그리운 얼굴들이다.

마산무학산에서...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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