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룡포산악회

사진으로 본 구룡포산악회 발자취 2

安永岩 2014. 9. 21. 07:46

 

사진으로 본 구룡포산악회 발자취

 

 

<소회,연혁>

산악활동의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구룡포에 포항에 계시던 이춘근선배님이 구룡포에

교보생명보험소장으로 부임해오면서 뜻 한바 있어 주변지인들(김대원,최덕유,장종만,안염택,안영암)

함께 가칭,구룡포산악회를 조직하고 함흥식당 송석무님을 초대회장으로 모시고 지역의 산악활동에

뜻이 있는 유명인사와 선후배님들을 모시고 종점 최덕유님(시한남체인)건물 2층 교보생명에서

1982년6월12일 발기인대회를 개최하였다.이때 발기인대회 인원은 대략 30여명였는데

레저 단체로서 인기가 있어 그 해 년말에 40여명으로 늘어 났다.

* * *

30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지난날들을 되새겨 보니 감회가 새롭다.

사진으로 보면 알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산악회를 거쳐 갔다.

아!!!!! 저분도 우리 회원였나 ??? 할 정도로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산악활동을

함께 했는데...아쉽게도 고인이 된 분도 많고 개인 사정으로 본회를 떠 난 사람들이

더 많다. 현재 본회 창립멤버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송석무,최덕유,김대원,장종만,

안염택,안영암,허달수,박두윤등 8명과 창립멤버나 다름없이 그해 들어온 안연천,

김소형,이월섭등 10여명이 30년을 함께 해오면서 산악회를 지키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산악 후배님들의 구룡포산악회의 역사와 전통에 긍지를 갖고

열심히 산악활동을 하고 있고, 선배사랑이 하늘 같아서 산악회의 앞날이

더욱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앞으로 50년 아니 백년~~~

영원히 존재하여 갈것이다.

30년 동안 구룡포산악회에 몸 담아 있으면서 참으로 사연도 많았다.

아마 책으로 쓰면 몇권이 될지 모른다.83년도에 대구 연맹에 가서

대한산악연맹에 가입하면서 당시 연맹회장이셨던 이효상전국회의장을

구룡포에 초대하여 구룡포가 발칵 뒤집힌사건이며,또 이의장 대구 자택에

초대되어 간 것은 두고 두고 영광이였다.포항에 각종 산악활동에 적극

동참하여 모범적인 지역산악회로써 자리 메김하여 부러움을 싸게 하였고

당시에는 산행지식이 없는 상태인데다가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여

사전답사라는 형식으로 먼저 산행지에 갔다온 다음에 산행을

하곤 하였는데...예산부족으로 그 것도 여의치 않아 답사없이

산행을 가서 길을 잃어 헤메기가 다반사였다.

하여튼 우리 후배들을 위해서 사진들을 보면서 그때 그때 있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적을까 한다.1982년 6월 12일 창립일로 부터

1986년도 까지 1부에서 올리고 2,3부에 나누어 2000년까지 올릴까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사진이 오래되어 희미하여 회원들이 잘 식별이 되질 않는다는 점인데

보시는 분들이 어림잡아 잘 보시기를 바랍니다.정말로 귀한 오래 된 사진들입니다.

사진속에 인물들은 한동안이지만 분명히 우리 산악회회원으로 있었던 분들이다.

 

☞ 3부 사진 기록 : 1995년 1월 ~ 2000년 12월까지

 

 

1995년 제 14대 회장에 취임하는 안영암회장

 

 

산악회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회원간에 유대를 돈독히 하는데

최선을 다 하겠다고 취임사를 하고 있는 안영암신임회장

 

 

김소형전임회장님으로 부터 회기를 이양받아

힘차게 흔들고~~~

 

회장이,취임식이 끝나고 단체기념촬영(1995)

지금으로 부터 16년전 사진인 셈이다.

 

회장재직기념패

이,취임식후 3부 자축연행사 모습

지금은 정기총회와 회장선거,이취임식을 한 날에 모두 치르지만

그 때는 정기총회와 회장,감사선거를 하고 난 후

이,취임식은 중요한 행사 하나로 날을 따로 잡아 거행했고

잔치기분으로 외부 귀빈도 초청하고 하여

다소 과분하게 거창하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애기지만 말이다.

그 때는 그랬다. 회원들 기분도 내고~~~

전임회장 김소형회장과 형수님

한곡 뽑는 사람은 마뉼님인데~오늘 같이 즐거운날 당연히 한곡 하셔야죠^^*

회장 사모님의 헌신적인 뒤바라지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고마운 마음상'을 이 때 처음으로 아내가 받았다.

그 관례가 지금까지 내려 오고 있다.

1995년 1월 김해 무척산 시산제 모습

해마다 1월에는 시산제산행을 실시하는데 지방에 산 '응암산(박바위)'에서 주로

시행하는데 때론 전국의 명산중 조용한 산을 찾아 실시 하기도 하는데 이 때는

김해 무척산 정상에서 실시 했다.김해쪽에는 무척산외에 신어산,천태산,

토곡산등이 있는데 한결같이 김해 넓은 평야와 낙동강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이렇게 지극 정성으로 무사 山行을 비는 際를 올리고...

시산제 돼지머리에 꼽히는 돈이 제법 많아 그날 하루는 음식과 술을

포식하기도 한다. 다 쓰지 못할 시 는 잉여로 남겨서 산악회 자산으로

이용한다. 구룡포산악회 자산이 한 때 7000만원을 넘어 써서 타 단체의

부러움을 싸기도 했다.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그 때는 자산의 목표을

1억원 정도 잡고 나중에 무료로 산행을 다니는 꿈에 부풀기도 했다.

허나 돈이 그렇게 쉽게 모아 지나요? 아직도 산행회비를 내고 있다.

2월 소백산에서

소백산 연화1봉,2봉,비로봉,국망봉...희방사,비로사 등 참으로 영주쪽에

많이도 갔다.특히 소백산철쭉제는 단골로 다녔던 기억이 난다.소백산의

주능선이 장쾌하기가 천하 제일인가 싶다.연화봉~비로봉~국망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중에 국망봉구간이 제일인 것 같다.그랬던 소백산을

요즈음은 통 못 가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없다.

철에 따라 지금쯤의 소백산은? 하고 훤히 꽤 뚫고 있으니~

3월 경산 삼성산에서

경산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삼성산을 등반하고 '상대온천'에서 목욕했을 때

비화가 늘 생각난다. 조그만한 상대온천에 들어 갔을 때 신발을 넣을 곳이

없어 한사람 나오면 신발을 올리고 들어 가고, 올리고 들어 가고 하여...

지금도 웃으게 소리로 "올리고 ~내리고~" 한다.세상에 담당자가

신발을 올리고 내리고~ 하는 목욕탕은 이제 더 이상 없다.

앞줄 우측에서 2번째 원영수전직회장(1996년 재임) !

현재는 산악회를 잠시 떠나 있지만 한 때는 본 산악회를 위해서

많은 공헌을 하고 1996년도에 회장을 역임했다. 구룡포에서 태권도관장을

하면서 2세 교육에 남다른 열의 갖고 열심히 하고 있으며 의용소방대 대장도

3년을 역임했으며 지금도 지역발전을 위한 일에 헌신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지역의 참 일꾼이다. 언제나 힘이 넘쳐나 '참으로 사내이다'싶을 정도로

정력이 대단했다. 산행 뿐 아니라 매사에 남 보다 앞장을 서서

의욕적이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은 후배들의 귀감였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미였다.

언재 다시 한번 산악활동을

함께 하기를 기대해 본다.

구룡포 박바위산에서

이 때는 툭~하면 박바위산를 갔다.다음 산행을 기다리기가 지겨우면 말이다.

맨앞 좌측은 故안원백 3대 회장 부부이다.이 때 (84년) 나는 총무를 맡아

대구에 출장을 가서 산악회 처음으로 상부단체인 대한산악연맹에 정식 가입을

하고 산악활동을 하게 되었고, 봄에는 이효상(전국회의장)연맹회장을 구룡포로

초대하여 삼정섬에서 성대히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안원백전회장은 겁이 무척

많았다.특히 어느해인가 2월에 문경 조령산을 갔는데 하산하는 과정에 많은 눈과

빙벽으로 급경사길에 발 자죽을 떼지 못하고 쩔쩔매다 전 회원이 매달리다

시피하여 겨우 한발짝 한발짝씩 떼어 내려 오는데...

조령산코스를 잡은 나를 잡아 죽인다고 하여 앗~뜨개라 하면서 후닥닥~

내려 와서 주막에 앉아 두부김치에 술잔을 기우리고 있는데 함홍차사다.

도무지 내려올 기미가 보이질 않아 무슨일이 났나? 은근히 걱정데 죽겠다.

한잔하고 밖을 나가 보고, 한잔하고 내다 보고...해가 늬엇늬엇 넘어 갈 때 쯤에

내려 왔는데...나는 맞아 죽을 각오을 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

안회장이 환히 웃으면서 우리가 먹은 술값을 다 계산하고 막걸리를 한사발

들이키는게 아닌가?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게 진정 산악인이다. 고생을 해도 아무런 사고 없이 내려 온게

고마웠을 것이다.그래서 안도의 한숨으로 선의를 베푼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이후로는 고공공포증이 있는 회원을 미리 파악하여 산행에

참고하여 대비를 했다.

충북 금수산에서

때는 1995년 5월로 기억한다. 충북 금수산을 처음으로 갔는데 길을 잘못들어

생각지도 않은 안벽을 줄줄이 만나 타고 넘어 가다 너무 위험하고 바위면이 비로 인해

너무 미끄러워 결국에는 중도에서 정상식을 하고 내려왔다.하지만 암벽을 타면서

쳐다본 충주호의 한폭의 그림같은 비경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맨 뒷줄 가운데 故최준식회원 !

애기하자면 너무 길고 가슴이 아프다.오랜시간을 함께 해 왔는데~~~

나는 최준식형님을 잃고 한동안 산행의 재미를 잃어 버렸다.

그 전에는 산행 참여가 100%일 정도로 산에 미쳐 다녔는데 준식이형을

저세상으로 먼저 보내고는 산행의 진정한 맛을 잃어 버렸다.

그 만큼 충격이 컸다.준식이형의 모든 사정을 아는 나는 그의 돌연사가

믿어 지지 않았다.아무리 그래도 한참 젊은 사람이 뇌경색으로 쓰러지다니?

일면 수긍을 하면서도 그의 죽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청청벽력였다.

최준식 ! 경주 토함산자락밑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구룡포에는

언제 왔는지 모르지만 그의 모친과 나의 모친과는 둘도 없이 친한

사이였고 참으로 고생을 많이 한 어머니들였다.그래서 준식형과

사석 술자리에 앉으면 어머님의 고생을 애기 하곤 했다.

구룡포하산의원과약국에 근무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매번

산행하면서 풀 곤 했는데 유머 감각이 뛰어나 매번 우리들을 즐겹게 했다.

특히 음담패설에 능해서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하여튼 준식형이 빠진 산행은 왠지 재미가 반감되었고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그 만큼 재미있는 멋진 산행동무였는데~~~

뭐가 그리 바빠 저~세상으로 먼저 갔는지~~~지금 생각해도

많이 많이 서글퍼고, 아쉽고, 그립고, 그렇다.

금수산 정상 못가 정상식을 하고~~~

이런 일이 잘 없지만, 이 때는 산행길이 잘 나 있지 않아 종 종 그랬다.

위험한 암벽 구간을 많이 타다 보니 파김치가 되어 들어 눕다.

금수산에는 이런 멋진 암벽이 지천이다. 지금도 또 가고 싶다.

장종만회장 !

유일하게 산악회 회장을 2번째(1990년 9대회장 재임) 하고 있는데 올해(2011년)

회장을 다시 맡아 살림을 꾸러 가고 있다. 1부에서 언급 했듯시 산악 불모지

구룡포에서 1982년 봄에 송석무초대회장을 영입하여 이춘근,장종만,안영암등이

주축이 되어 산악회를 조직하여 드디어 1982년 6월 12일에 종점 최덕유회장집

2층에서 발기 총회를 하여 오늘에 이르렸다. 30년 세월을 함께 산행 해 온 몇

안되는 형님이시다. 나와는 세월 만큼이나 구구절절이 사연도 많다.

그 애기를 하자면 날이 셀 것 같고 하여 생략하고~~~

운동장組 ! 이 게 무슨 소리인고 하니 아느 사람은 다 안다.

그게 뭔야 하면 80년90년대초 까지 장종만,최준식,안영암, 세사람이

술을 먹었다 하면 밤이 새도록 집에 가지 않고 날을 새기가 부지기수였는데

특히 술집 문을 닫으면 갈 곳이 없으니 올라 가다 '육일상회'에 들려서 한잔 더

하고 주인어머님이 잔다고 쪼~치면 맥주를 잔뜩 사들고 학교 '운동장'에

가서 우리 셋은 잔디 밭에 신발까지 벗어 놓고 이런애기 저런애기 하면서

밤을 샜다. 그 때는 무슨애기가 그리 많았는지~하여튼 날이 샐 때 쯤에

지나가는 행인들이 우릴 보고 오늘 또 셋이~ 모였군먼~ ㅉㅉ ???

그렇게 해서 붙은 이름이다. 운동장組 ! 끝 조이다. 뭐 든지 끝을 보는...

그랬던 우리가 준식형님을 저 세상에 먼저 보내고, 96년에 돌바우가

포항으로 이사 나오는 바람에 깨졌다. 더 이상 운동장組는 없다.

그래도 그 때 그 향수가 그립다.

영동 천태산에서

얼마전에도 갔다 왔지만 영동 천태산은 은행나무가 참으로 장엄하고

바위 암벽구간에 바위 능선이 아름다운 산이다.

뒷줄 좌측 2번째. 김원연 전회원 !

구룡포1리 학교옆에서 '정호반점'을 운영하고 있는 후배인데 한동안 산악활동을

같이 하다 지금은 산악회를 떠났다.김원연,김재일,이월섭전회장, 이 셋은 각설이

공연에 환상의 조였다.뭐~ 각설이 뿐 아니고 각종 연회 및 자축연행사.오락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노래도 잘하고 흉내,춤,유머,모든 잡기에 천재들였다.

그런 그들이 있어 산행과 뒷풀이가 참으로 재미있었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의사(?)들였다.현재는 재일이도 가고 이회장만 남아 있는데 나이 탓인가?

짝이 없어 그런가? 술을 먹지 않으니 점잖게 산행에만 열심이다.

울릉도 성인봉

1995년 6월 1박2일로 울릉도에 부부동반으로 갔는데

기상 악화로 하루가 묶여 3일만에 나왔다.

지금까지 산악회에서 울릉도는 3번 갔는데 성인봉등반은 이때가 처음였고

이후에는 관광 위주로 2번을 더 갔다왔다. 아예 산행을 하지 않을려는 것이 뭔가

조금은 잘못된게 아닌가 싶다. 산행은 차지하고라도 저동에서 천부동까지

트레킹은 해야하는게 아닐까? 세원에 맞지 않게 너무 편안 관광위주로 흐르니

젊은회원들의 원성이 높다. 앞으로 재고 해 볼 문제이다.

이 때는 4촌 처남 김홍주내외가 함께 산악회 활동을 같이 했다.

맨 좌측 이규환전회장!

지금은 산악회 뿐 아니라 구룡포를 떠나 고향 오천에서 식당 가든을 운영하고 있다.

구룡포시장안에 '동원식육식당'을 경영하면서 구룡포산악회에 창립멤버로 활동하면서

활약이 대단했다.힘이 천하장사라서 힘든일은 손수 혼자서 다 했고.산행은 항상 1등였고,

술도 항상 1등였을 만큼 힘이 넘쳤다. 좋은 고기를 많이 먹어서 그런가? 김대원,박두윤,이규환.

이 3인방 형님들이 참으로 잘 나갔지~ 그랬던 형님들이 지금은 김대원전회장만이 남아 있다.

성인봉에서 정상식을 거행하고~~~

뒷편 가운데 흰옷 입은 사나이 '최정만전회원'이다.

지금은 구룡포7리에서 '진강수산'을 경영하면서 각종 활어,해산물을 취급하고

겨울에는 과메기를 대단위로 하는 멋쟁이 후배이다.

한동안 산악회활동을 같이 하다 사정에 의해서 산악회를 떠나는 날 얼마나 아쉽고

섭섭했던지? 그만큼 좋은 후배였다.항상 남보다 앞 서고, 뒤에서 뭐뭇 뭐뭇거리는

일이 없고 활달하고 의리가 강한 사나이중에 사나이였다.술도 좋아 해서 같이

어울리는 자리에서는 단연 메너가 짱~였고 놀기도 잘했다. 그러고 보니

산악회의 인재들이 매년 한,둘씩 빠져 나가는 바람에 다소 맥이 빠진듯한

산악회지만 그래도 항상 새로운 회원들이 들어 옴으로써 그 맥을 잇고 있다.

유람선을 타고 섬 일주 관광 중에~~~마뉼님!

봉래폭포에서

앞줄 좌측에서 2번째가 처남댁(김홍주처)이고 뒷줄 우측에서 2번째는

사무실 여직원으로 이때는 월급 주는 간사를 두었다.

봉래폭포가는길에 '천연에어컨'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월악산 영봉에서

이 사진에서 보니 떠난 회원이 더 많네...이상봉,김주석,故이철준,홍영일,김수동,

故제갈성술,원영수전회장,방문호,이규환전회장,

홍영일회원! 얼마전까지 같이 산악활동을 함께 했다.개인사정에 의해서 자퇴를 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참으로 산을 잘 탔다. 어디서 그렇게 제빠른 행동이 나오는지 볼 때마다

감탄였다.남들은 쎄~쎄 거리는데 도무지 지칠줄을 모르는 후배였다.그리고 心性이 착해서

남 나쁜말을 할줄 모르고, 會에 궂은 일은 도 맡아 하다 시피했다.

매년 집행부 이사를 맡아 일할 정도로 신임을 받았고

일만 죽도로 시켰는데...참으로 착한 후배였다.

경남 황석산에서

1995년 11월로 기억한다. 10월달에 2박3일 내장산 주변 여행으로 심신이 지쳐 있다보니

11월 산행에는 참석이 저조한데...그래도 그렇치 참석인원이 7명이 뭐냐? 기가 막힌다.

그대로 산행을 가야 하나 말아냐 하나...이미 관광차는 와 있고 ...마음 같아서는

위약금을 주고 산행을 취소하고 싶은데 고민하고 있으니 ...

안병생회원님 께서 안 나온 회원보다 나온 회원이 더 중요한것이 아닌냐,

그냥 산행으로 강행하자는 바람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말이 맞다싶어 산행을 강행하여 찍은 사진이다.

지금까지 제일 적게 참석한 산행였다.

7명이 대형버스를 타고 산행이 가능 했던 것은

참석하지 않아도 산행회비를 내는 제도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구룡포산악회의 오랜 전통인 것이다.

 

 

이 때는 년말 정기 총회때 100% 산행참석자에게 이런 기념패와 함께

산악회 마크가 새겨진 금뺏지 1돈을 지급했다.

처음에는 회장 사비로 주다가 부담이 되어서 나중에는 회경비로 지출했다.

그리고 지금은 20년이 넘는 회원에게

본회 마크가 새겨진 순금 5돈 메달을 지급한다. 20여년 동안 산악회활동을

해오면서 그 공로을 인정하여 지급하는 것이다.아마 전국의 어느산악회에도

이렇게 순금5돈 메달을 지급한다는 애기는 못들어 봤다. 구룡포산악회의

자랑이 아닌가 싶고 회원들의 자긍심을 높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구룡포산악회에 여유있는 자산과 산행잉여금이

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창녕 화왕산에서

창녕의 명산,화왕산!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참으로 많이 갔다.

특히'부곡하와이'가 지천에 있어 목욕 겸해 부부동반으로 많이 갔던것 같다.

화왕산은 관룡산과 연개하여 종주산행이 인기 있는데 특히 11월초 억새산행은

단연 인기최고요, 전국에서 몰려든 산꾼과 관광객들로 인산인해였다.

2년주기로 정원대보름에 '화왕산억새태우기'행사 때는 정말로 산정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였는데 몇년전에 행사때 불길이 역류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배바위쪽에서 희생되어 이제는 억새태우기행사가

중단되었다.지금도 관룡산에서 화왕산 능선 10리 억새길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관룡산 아래 천년고찰'관룡사'도 고즈넉한 사찰이다.

관룡사 옆에 있는 부산쪽으로 보고 있는 '용선대석불좌불'도 팔공산 갓바위

만큼이나 유서 깊은 불상이지만 참배객들은 많지 않은 듯 하다.

언재 시간이 허락하면 다시 한번 더 관룡사를 들려 볼까 한다.

관룡산에 둘러 쌓인 관룡사의 주변 풍광이

매우 아름다웠다.특히 가을에...

맨 뒷줄 가운데 이상훈전회원 ! 구룡포3리에서 '구룡사진관'을 운영하면서

산행 및 각종 제반행사시 사진을 도 맡아 찍었고 지금은 산악회를 떠났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아는게 많고 산악활동을 열심히 하였는데...

직업상 시간이 없다보니 그만 둔 것 같았다.착한 후배였는데...

 

화왕산 자락에서 창녕시내를 보면서...돌바우

 

설악산 대승폭포를 배경으로

언재인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설악산 장수대에서 십이선녀탕코스를

종주하면서 찍은 사진 같다. 대승폭포의 100여미터 높이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장관인데 이 해에는 가물어 폭포가 말랐다.

그리고 베낭은 박두윤회장때 (90년대초) 단체로 맞추었고,등산화는

지금은 촌스럽지만 그 때는 이런 가죽등산화가 대세였다.

 

이 때가 1996년8월 2일였네...

설악산 십이선녀탕에서...돌바우.

이 때는 돌바우도 한 몸(?)했네...

 

참으로 오래된 사진이다.

차림을 보아 15,6년전 10월 부부동반으로

충남 서산 덕숭산 수덕사에 간 것 같고,이 때 아내와 처음으로

400여 미터 높이의 덕숭산 정상에 올라 선 기념으로 찍은 사진 같다.

 

충남 천주교성지 '해미읍성'에서

충남 예산에 있는 '白松' 앞에서 단체사진 촬영

충남 아산 현충사 앞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송석무 초대회장님과 함께

지금 생각해보니 아산 현충사 가는 길에 은행나무가 너무나 환상적였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나무가 많이 컸으니까 더욱 더 장관이겠지...언재 한번 가 질려나...

일부러 가지 않으면 가기 힘드는 곳이 아닌가? 하여튼 그 때 감동이 피어 오른다.

천안에 있는 '천동불'이 있는 사찰인데 사찰이름이 생각 나지 않는다.

이때는 천안에 천동불과 독립기념관을 많이 갔던 것 같다.

 

서산 방조제

참으로 많이도 간 곳 중에 한곳 ! 서산 방조제,

정주영공법이라 하여 방조제 마지막 물막이 공사를 폐선을 이용하여

가라 앉혀 공사를 마무리 한 것으로 유명한 방조제, A,B지구가 있는데

통상 차를 타고 가면서 그 광활한 넓이를 짐작할 수 있다.여기서 나오는

쌀이 울산시민이 1년을 먹을 수 있는 량이라니 대단하지 않은가?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에서 바다를 메워 육지를 만드는 공사가 숙명으로

여겨야 하는 우리나라로써는 방조제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서산방조제보다 더 큰 새만금방조제의 공사가 마무리되어

육지화하는 과정에 있고 이곳에도 벌써 몇번을 갔다왔는데 완전히

물막이공사를 끝내고는 아직 못 갔다.그 전에는 반만 갔다왔는데 이제는

끝까지 간다고 하니 다시 한번 더 가보고 싶네...

 

 

그 유명한 수덕사 대웅전앞에서

 

사진속에서 지금은 본회를 떠난사람들...

맨 앞줄 좌측 이름이 기억나지 않은 동생,故 제갈성술,故안공석,원영수전회장,故이철준,

김홍주,서규태,양승수전회장이다. 특히 고인이 된 셋사람의 삼가 명복을 빈다.

고인이 된 세사람은 참으로 인간성이 좋았던 후배이고 선배였는데...

 

언제인지는 몰라도 태백산설산 등반사진이다.

아마 태백산도 설악산,지리산 다음으로 많이 갔던 산이 아닌가 싶다.

그것도 겨울만, 이 때 겨울산행지로는 태백산,오대산,선자령을 주로 갔던 것 같다.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주로 갔는데 지금은 겨울산행지라도 지자체에서 시설을 잘 해 놓아 큰 위험없이

아무 산이나 다닐 수가 있다. 입은 옷은 단체 오바트러우져로써 95년 돌바우(안영암)가 회장할 때

총회의 승인을 받아 한벌에 10만원짜리를 60벌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 옷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지금은 단체복을 하지 않지만 그 때는 모자,쪼끼,상의 등산복,베낭을 자주 해 입었다.

모두가 필요한 물건이고 어짜피 싸 입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사찰 대웅전인고? 가물하다...

뒷줄 우측 첫째는 포항시청에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후배인데

한동안 산악활동을 같이 하다 포항으로 나가면서 본 회를 떠났다.

산은 그다지 잘 타지는 못했지만 선배챙기기를 1등으로 잘했다.

성격이 둥글둥글하여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모나지 않은 성격에

선배들이 많이 사랑했던것 같다. 또한 술도 무척이나 좋아했다.

하기사 구룡포 사람 치고 술을 못하는 사람이 없지...

 

마이산 탑사에서

처음 본 마이산과 탑사는 신비의 그 자체였다.

아마 한동안 대한민국 여행 1번지 였던것 같다.

그리고 15여년을 가지 않다가 2009년 초등동기들과

가을여행을 이곳에 갔는데...감회가 새로왔다.

 

그 유명한 태백산 '주목'

사진 속의 돌바우가 애송이로 보이는 걸 보니 20여년은 지난 사진 같다.

지리산 '삼성궁'에서 아내와 함께

속리산 정이품송 앞에서...

사진에 보는 정이품송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몇 해 전에 태풍으로

가지가 부러져 불품없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참으로 名品 松 였다.

아마 속리산 들어가는 길에 이 곳에서 사진 한장 안 찍은 여행객은 없을 것이다.

그 만큼 많은 사랑을 받은 소나무였다. 들리는 애기로는 2세가 자라고 있다는데

천만 다행이다. 어서 대를 이어 무럭 무럭 자라기를...

 

오대산 설산 등반중에...

참으로 많이 간 산중에 하나이다.

오대산 ! 가을에도 가고 겨울에도 가고 산악회에서도 가고

회사 산악회에서도 가고 계중에서도 가고 개인적으로 가고...

하여튼 이래 저래 많이도 갔다. 그 중에서도 단연 겨울 설산이다.

위험이 전혀 없고 눈을 실컨 볼 수 있는 곳이 겨울 오대산이기 때문이다.

 

울산 대운산에서 동이형님과 함께

문경 문수봉에서

울진 통고산

영덕 팔각산

전남 고흥 팔영산

 

3부. -The end -

2000년 6월 부터 2011년 6월까지 또 11년의 산행기록을 올릴려니

자료가 너무 많아 힘에 부치네요^^* 보시는 분들의 상상에 맡기고

8년간의 기록은 생략 할께요. 대신에 3년전 부터 올린 제 블로그에

'산행이야기'를 참조 하시기를...그 동안 3부에 걸쳐서 두서 없이

구룡포산악회의 역사를 사진 위주로 올렸는데 혹시 잘못된 곳이

있으면 언재든지 연락을 주시면 즉시 수정하여 올리겠습니다.

30여년을 산행 및 여행을 다니면서 있었던 기록을 처음부터 했으면

그 자료가 어떠 했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블로그가,

콤퓨터가, 그 당시에도 보편화 되었드라면 좀더 멋진 여행서 내지는

길잡이가 되지 않았을까? 제 개인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지금 다니는 산과 여행지마다 거의가 간 곳을 또 가니 말입니다.

물론 아직도 처음 가는 산과 여행지가 많지만...

그렇게 전국을 안방 드나 들듯이 다녔는데...또 가고 싶고 떠나고 싶은데...

지금은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회사에 몸담고

있을 때가 봄날였네. 특히 주 5일근무제로 바뀌면서 시간이 많았는데...

그래도 시간이 허락하면 꼭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을 찾아 떠날것이다.

특히 오지에 숨어 있는 한국의 비경을 찾아 보고 싶고

섬여행을 계속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