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풀꽃이야기

[삼척여행] 삼척 준경묘 황장목,금강송이야기

安永岩 2016. 10. 14. 20:22

삼척에서 태백을 갈 때 도계로 가는데 수도없이 지나 다니면서(왜 다니는냐고요? 山을 가다 보니~ㅎ)

정작 준경묘는 늘 지나 쳤다.그도 그럴것이 포항에서 삼척이나 태백에 山을 탈려면 항상 빠듯한 일정에 쫒길 수 밖에 없다.

일부러 준경묘를 가기는 그렇고...그러니 늘 그 곁을 지나쳤는데 이번에(10/4) 쏠비치대명삼척에 가족들과 1박으로 오게 되어

시간이 있는 오후에 준경묘를 찾았다.

왜? 삼척의 황장목(금강송)을 보기 위해서,삼척의 황장목이라면 준경묘 주변의 황장목이 최고라는 애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준경묘의 황장목은 경복궁의 복원에 쓰였다고 하니 더욱 더 보고 싶었었다.

  

삼척 준경묘(三陟 濬慶墓) 사적 제524호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가 되는 이양무(李陽茂)장군의 묘로써 조선 왕조 최고의 선대묘라고 합니다. 

이양무는 고려시대 인물로 태조의 5대조이며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의 부친이다.

태조이성계가 조선 건국후 어명을 내려 선대의 묘를 찾아 고종  임금때인 광무 3년(1899년) 4월 16일 고종이 공식적인 선조의 묘로 추봉(追封)하고

묘와 재각,비각 등을 수축·정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지요.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마을에서 준경묘까지 가는 길은 1.8km이지만

특히 초입 1km는 급경사 오르막길 연속으로 무더운 여름엔 무척 힘드는 난코스입니다.

당연히 차량출입금지이지요.혹 차를 가지고 가드래도 조~위에서 철재가드래일이 막아 낭패이니

아예 차를 주차장에 두고 걸어 가셔야 하고 신발은 운동화나 등산화를 착용.

 

 

활기리에서 준경묘까지는 두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위 사진은 첫번째 고개마루입니다.급경사 오르막길은 여기까지,

지금부터는 경사가 완만한 길을 0.8km 갑니다.

그리고 가는 山路엔 금강송들이 줄줄이 환영합니다요~

 

 

 

 

 

두번째 고개마루

 

이 고개를 올라 서면 드디어 준경묘가 보이고

주변에 하늘을 찌르는 황장목들이 도열해 있는데 장관입니다.

그리고 고개마루 우측으로 좀 올라 서면 그 유명한

정이품송과 혼인한 신부 황장목이 있지요

그 황장목부터 만납니다.

 

 

가운데 황장목이 정이품송 혼례송

 

 

 

정이품송과 혼례소나무,즉 정이품송의 마누라입지요.

 

 

 

밑 부분

어데 흠잡을 데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참으로 잘 생긴 황장목입니다.

삼척에 황장목이 수 억그루는 될낀데 그 중에서 찾은 소나무라고 하니 어찌 대단하지 않으리요? 정말로 명품 황장목이고 정이품 각시소나무입니다.

지금 그 2세가 보은 속리산 정이품송 곁에서 잘 자라고 있답니다.

 

윗 부분


준경묘가는 입구의 황장목들...

고개들어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황장목,

 

 

 

 

 

 

 

 

준경묘가 보입니다.

 

허리꼬부라진 할머니 한분,비까지 추럭추럭 내리고 어둑어둑 한데

무섭기도 하고 더럭 겁도 나데요~ㅎ

일부러 큰소리로 '할무~이요,비까지 오는데 이 산중에 와 왔는교?'했다!

'뭐~좀 따려~'했지만 등짐을 보니 혹? 송이를...

'할무이~요,길이 먼데 조심해서 내려 가소~'

할무이 내려 가는 모습을 난 한참이나 서서 바라 보았다.

 

<삼척준경묘 안내문>

근데 '백우금관(百牛金棺)의 전설은 알아야제~

그 전설 내용은 이렇타!

 

잘 알려진 명당자리에는 그에 따른 전설과 설화가 많이 있듯이

이곳 준경묘도 조선왕조 건국과 관련된 유명한 백우금관(百牛金棺)의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안사가 전주에서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로 피신 와 자리를 잡고 산지 1년 만에 아버지(이양무)의 상(喪)을 당하게 된다.이안사는 아버지 묘 자리를 구하려고 이산 저산 산등성이를 넘어 사방으로 헤매고 돌아다녔으나 마땅한 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마침 활기리 노동(盧洞) 산마루에 이르러 몹시 고단하여 나무 밑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한 도승이 동자승과 함께 나타나 주위를 두루 살펴 인적이 없음을 확인한 뒤 한 곳을 가리키면서 "대지(大地)로다 길지(吉地)로다"하는 것이었다.

이안사가 나무 밑에 앉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모르는 도승은 이어서 말하기를, "이곳이 제대로 발복하려면 개토제(開土祭)에 소 백(百)마리를 잡아서 제사를 지내야 하고, 시신을 금관(金棺)에 안장하여 장사를 지내야 한다. 그러면 5대손 안에 왕자가 출생하여 기울어 가는 이 나라를 바로 잡고 창업주가 될 것이다. 또한 이 땅은 천하의 명당이니 함부로 발설하지 말라."하는 것이었다. 동자승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더 있다가 그들은 다른 곳으로 길을 떠났다.

자신의 귀를 의심한 이안사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생각에 골몰하였으나 가난한 살림살이에 소 백 마리를 어디서 구하며, 더구나 금으로 만든 관은 어디서도 구할 수가 없었다. 부친의 묏자리를 명당에 쓰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형편상 어쩔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안사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궁여지책을 찾아내게 되었는데, 소 백(百) 마리는 흰 소 한 마리로 대신하고 금관은 귀리 짚으로 대신하면 될 것 같았다.

흰 소를 한자로 쓰면 백우(白牛)이므로 숫자상 일백 백자와 발음이 통하게 되어 백우(百牛)가 될 수 있고, 귀리짚은 같은 황금색이므로 금관과 의미가 통할 것이라 판단하였다. 마침 처가에 흰 얼룩소가 있었는데, 다음날 아침 처가에 간 이안사는 밭갈이 할 일이 있다며 흰 소를 잠시만 빌려 달라고 하여 소를 끌고 노동(盧洞) 산마루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처가에서 빌린 흰 소를 잡아서 제물로 사용하고, 부친을 넣을 관은 귀리짚으로 대신하여 아버지의 장사를 치렀다.

 

준경묘

천하의 명당 자리도 보고 주변의 황장목도 보고~

완전 횡재한 기분이다.

다만 평일에 탐방객도 없고 비까지 내리니 음산한 기운에 기분은 좀 그렇네~

  

 

 

 

하지만 붉은 소나무들을 보니 기운이 생생~

더구나 이 소나무들이 경복궁 중수 때 쓰였다고 하지 않는가?

왜 소나무가 삼척이 최고인지를 알겠다.

그리고 여소나무를 왜 황장목,금강송,미인송,적송,춘양목 등등의 이름으로 불리는지 알 것 같고...다만 차이를 모르겠다.

하여튼 황장목이 무게가 있고 듣기도 좋다.

그리고 미인송은 확실하다.여기 소나무들은 하나 같이 미인 다리를 연상케 한다.

적송도 붉으니까 맞고, 금강송은 울진에서 하도 금강송 금강송하니 ~ 여기 삼척은 황장목이다.

우리나라에 소나무하면 삼척,울진,봉화를 꼽는데 가장 대접을 받는 것은 삼척 황장목일 것이다.

줄기가 곧게 자라고 목재가 단단하여 '황장금표'라고 표시하여 조선 왕실의 보호를 받았지요,

이들 소나무 중 특히 우수한 소나무를 '황장목'이라고 한다지요.

궁궐 복원에는 200~300년 생 황장목를을 사용하여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에 황장목은 

개체수가 많지 않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고 합니다.  

 

    

 

 

 

 

 

 

 

오늘,삼척의 황장목을 실켠 보고 느끼고 만져 보고 ~

그 기품을 느끼고 갑니다.

 

 

 

 

 

 

 

그리고 봉묘 뒤편에서 앞으로 바라 보니 과연 명당이구나!를 느낍니다.

좋은 터의 기운을 받고, 좋은 소나무의 氣를 받으니 운수대통 할랑가...싶다.

올라 올 때는 워낙에 골짜기 이고 협곡이라서 뭐~넓은 터가 나올라나~싶었는데

두번재 고개 마루에 올라 서는 순간,운동장보다도 넓은 환한 터를 보고는 놀랐었다.

그 옛날 교통수단이라고는 말밖에 없었고 순전히 걸어 다녔는데..

더구나 오지중에 오지인 이 첩첩산중에서 이런 명당을 어떻게 찾았을까?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그 옛날 선인들의 명당사랑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준경묘의 전경

 

 

 

 

 

 

 

 

 

 

황장목 속으로 내려 가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

곧게 자라는 황장목과 세월속에 장사가 없다고 허리가 꼬부라지는 우리 인간, 

대비되는 풍경에 겸손의 미덕을 배웁니다.

 

 

준경묘를 내려서면 만나는 '미로면 활기리' 마을 전경

가까운 곳에 영경묘가 있지만 오늘은 그냥 지나 칩니다.

역시 다음 기회를 위해 남겨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