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답사기

[충남/부여] 부여 여행 - 부소산성,낙화암,고란사,구드래나루터

安永岩 2014. 6. 22. 19:04

 

     낙화암에서 본 백마강

 

서기 660년 나당 연합군에 의하여 백제가 멸망하였으니 지금으로 부터 1354년 전의 역사입니다.

망국의 한이 서린 역사의 현장 부소산성에 갑니다.

낙화암 아래 백마강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유유히 잔잔히 조용히 흘러 가고 있습니다.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은 영혼들을 위로 하기 위해 세운 고란사도 울창한 숲 속에서

오늘도 말없이 흘러 가고 있는 백마강을 바라 보고 있습니다.

 

 

濟의 王都扶餘라고 쓰인 부소산성에는 낙화암,고란사,사자루,반월루,영일루,삼충사,구드래나루 등이 있으며

사적 5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습니다.울창한 숲을 이룬 부소산은 해발 106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아름다운 숲의 상을 탈 만큼 숲이 울창하고 싱그러운 연초록의 봄향이 좋은 힐링의 숲입니다.

부여시내 전경과 백마강을 보면서 돌고 돌아 가는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 

 

 

부소산성 정문입니다.

扶蘇山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門으로 들어 서면 곧 바로 숲이 좋은 부소산산책로가 이어집니다.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찾아 서서히 아주 느린 걸음으로 숲향을 맡으면서 가면 됩니다.

절대로 바삐 갈 필요가 없는 치유의 숲입니다.

실제로 부소산의 숲의 매력에  나는 단번에 빠집니다.

너무 좋네요~ㅎ 

 

 

 

이런 울창한 숲이 우거진 편안한 산책로를 따라 낙화암으로 갑니다.

아무래도 부소산성하면 낙화암과 고란사이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그리로 갑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산성을 따라 숲향을 맡으면서 한바퀴 서서히 돌아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시간이 없어 부소산성을 한바퀴 돌아 보지 못해 많이 아쉬웠지만 또 다음이 있지를 않습니까?

여럿이 단체로 온 관광의 단점입니다.

 

 

 

 

이 숲을 가지고 갈 수 없을까?

욕심이 날 정도로 숲길이 너무 좋습니다.

나무 하나 하나 풀까지도 거기다 부는 바람이 어쩜 이리도 시원할까?

저 나무 그늘에 앉아 막걸리라도 한잔 하고 낮잡이라도 함숨 푹~ 잤으면 조옷겠따 !

 

 

 

낙화암,태자숲길,반월루로 갈라지는 삼거리입니다.

숲속에 매점이 있는데 있어야 할지 없애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좀 그렇네요.

불과 10~20여분 거리 문밖에 상점이 있는데 말이지요 

낙화암으로 가기 전에 우측 반월루로 잠시 올라 갑니다.

낙화암은 좌측길이고 직진은 태자숲산책로인데 숲길이 얼마나 좋은지~

끝내 가보지 못해 많이 아쉽네요

 

 

      반월루

1972년에 세웠네요.부여 시내 전경과 백마강이 시원하게 조망되는 곳입니다.

 

 

 

 

 

 

      반월루에서 본 부여시 전경

 

 

 

      반월루에서 본 백마강

 

 

 

 

다시 낙화암으로 갑니다.

 

 

낙화암,고란사 가기전 탐방로 옆에 있는 고란약수이야기입니다.

한번 읽어 보시기를...

 

 

연리지인데

같은 소나무가 붙어 있네요

보통 다른 나무 끼리 붙어 자라는 것이 연리지인데...

 

 

낙화암 꼭데기에 세운 百花亭,

낙화암에서 몸을 날려 죽은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서 1929년에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낙화암 내려 가는 길

마침 백마강에 황포돗단배가 지나 갑니다.

 

唐軍에게 쫒기고 쫒겨 부소산에 올라 이 길로 도망을 가다 드디어 마주한 낙화암!

그렇게 여인네들은 망국의 한을 품고 낙엽 떨어 지듯 몸을 공중에 던져 죽어 갔습니다!

 

 

백마강이 여느 유명강처럼 그리 넓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가까이한 백마강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물색에 놀랍니다.

나는 백마강의 물색이 늘 황토색으로 탁한 것만 보아왔는데 오늘은 아니 올시다.

 

 

낙화암 직전에 단체로 온 학생탐방객들이 제법 소란스럽네요

역사를 아는지~모른는지~ 좀은 숙연해야할 역사 장소에서 말입니다.

정확한 역사는 모르겠지만 삼국유사에 전하는 역사인 것을 보면

이 곳에서 여인네들이 떨어져 죽은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몇 명인지는 몰라도... 

낙화암의 암벽은 60m 정도의 높이로 제법 높고,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10호입니다.

 

 

 

낙화암(落花岩)

 

백제의 사직이 무너지던 날(의자왕 20년,서기660년) 백제의 여인들이

적군에게 잡혀 치욕스러운 삶을 이어 가기 보다는 충절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백마강에 몸을 던졌던 곳으로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훗날 그 모습을 꽃이 날리는 것에 비유하여 낙화암落花岩이라 부르게 되었다네요.

백마강에서 바라보면 아직도 절벽 색깔이 붉은데 당시 백제 여인들이

흘린 피로 물들었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전해 옵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검푸른빛을 띠는 백마강입니다.

1354년전에도 이런 물빛였을까요?

연약한 여인네 몸으로 얼마나 겁을 먹고 뛰어 내렸을까요?

새삼 숙연해집니다.

백마강은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유유히 흘러 가네요.

 

 

 

이제 유명한 고란사로 내려 갑니다.

낙화암에서 고란사까지는 5분거리도 채 되지 않는 경사가 있는 굽은 숲길이 참으로 좋습니다.

비록 짧은게 흠이지만...그래도 숲속에 쌓인 고란사에 당도하면 왠지 편안해지는 마음입니다.

낙화암 바로 아래 협곡에 위치한 고란사인데 원래는 절이 들어 설 만한 터는 못되는 것 같습니다.

좁은 협곡에 돌계단을 쌓고 그 위에 세운 고란사인데 원래는 정자가 있었던 자리라고 하니

그게 맞는 이야기 같습니다.

협곡의 좁은 터이지만 낙화암에서 몸을 던저 죽은 여인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절집이 맞는 것 같습니다. 

 

 

고란사皐蘭寺

 

백제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뿐,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은 여인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 고려 초에 세웠다는 설이 신빙성이 있네요

사찰의 유래는 절 뒤 암벽에 자라고 있는 고란초로 부터 온 것이라고 합니다.

현 건물은 은산 숭각사를 이건한 것으로 정조 21년(1797)에 개건 하였다고 합니다.

 

 

 

 

정면 7칸,측면 4칸으로 비교적 규모가 큰 불전건물인데

특이하게도 좌측 2칸은 종무소 겸 요사로 사용하고 있으며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98호로 보호 관리되고 있습니다.

고란사는 좁은 절집이다 보니 당우는 종무소를 겸해 사용하고 있는

대웅보전,요사채,영종각,뒷편에 삼성각이 있으며

유명한 약수 고란정이 있습니다. 

 

 

 

 

고란사의 현판에도 난초가 그려져 있네요

실제로 얼마전까지 절 뒤 암벽에 고란초가 자라고 있었다는데

언제부터인가 사라지고 없는데 멸종된 것인지 알 수가 없네요

 

고란사 법당 내부

 

 

 

고란사에서 내려다 본 백마강과 황포돗대,

고란사 바로 아래가 고란사선착장인데 구드래나루터까지 황포돗단배가 다닙니다.

고란사에서 보는 백마강의 풍경이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왜 꼭 한번은 고란사에 와 봐야 하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저는 언재 기회가 되면 늦가을에 다시 찾고 싶습니다.

 

 

 

고란사 바로 아래 백마강

고란사는 부소산 북쪽 백마강 기슭에 있는 절집입니다.

절집의 주변 풍경이 숲속에 쌓여 있는게 참으로 아늑하고 아름답습니다.

 

 

 

     영종각靈鐘閣

 

보통 범종각 또는 종루라는 현판이 붙는데 고란사에는 영종각이란 현판이 붙어 있네요

아마도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은 여인들의 영혼을 위로 하는 종소리란 뜻이 아닐까 싶네요

이래 저래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입니다.

 

 

같이 간 일행들입니다.

고란사를 돌아 고란정으로 가면서~

 

 

고란사 뒤벽에 그려진 벽화를 보고 있는 탐방객들

벽화는 고란사의 유래와 고란정의 약수에 얽힌 내용,낙화암에서 떨어지는 여인네들의 아픔이 그려져 있습니다. 

 

 

 

일본 소녀 셋이 스님이 되기 위해서 현해탄을 건너 고란사에 오는 그림

부소산의 고란사 전경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궁녀들이 백제왕들에게 약수를 바치는 그림

백제의 왕들은 부소산 너머 고란사 절벽에서 떨어지는 약수에 고란초를 띄워 이곳 약수임을 확인하고 드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절의 이름을 고란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란정皐蘭井

 

 

 

 

 

 

 

고란약수를 한번 마시면 3년을 더 산다고 하네요~^^

전 3잔을 마셨는데  더 이상 배가 불러 못 마시겠더라구요~ㅎ

국자가 너무 커서 조금씩 3번을~ㅎㅎㅎ

헌데 국자의 길이가 길지요?

그 긴 국자가 짧을 정도로 깊습니다.

약수를 퍼는 것도 쉽지가 안네요.

 

 

 

 

약수터 옆에 미륵불이 있는데 모두들 약수 한 모금하고 기도를 하드라구요

 

 

뒤에 보이는 큰 나무는 은행나무인데

늦가을에 여기에 오면 노오랗게 물든 은행잎이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드라구요

사진은 제 아내입니다.

 

 

 

고란사 앞 풍경

따스한 날씨 탓에 많이들 왔드라구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부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곳 낙화암,고란사의 풍경이 참으로

고즈넉한게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우산을 받쳐들고 역사가 있는 이 숲 속의 운무가 낀 경치를 감상하고 고란사까지 간다!

멋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백마강의 황포돗단배

황포돗은 그냥 폼이고요 배는 모터 엔진으로 갑니다.

고란사에서 내려 서면 바로 선착장입니다.

 

 

 

고란사 유람선매표소

구드래나루까지 편도 4000원입니다.

배로 5~10분 정도의 거리지만 백마강에서 보는 부소산 전경과 고란사,낙화암을 보는 풍경도 좋습니다.

부소산 낙화암,고란사는 구드레나루에서 배를 타고 이곳으로 와서 올라 가거나

아님 정문에서 표를 산 뒤 산책로를 따라 낙화암,고란사를 보고 선착장에서 구드래나루까지 배를 타고 나갑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후자가 좋을 듯 싶습니다.

 

 

고란사 선착장 옆에 있는 조룡대釣龍臺

자그만한 암반이지만 여기에도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습니다.

 

나당(羅唐)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해 의자왕(義慈王, ?~660) 을 사로잡고 난 뒤의 일이다.
당나라의 소정방(蘇定方, 592~667)이 백제성에 다다랐을 때, 당나라군은 강을 건너지 못하고 발이 묶여 있었다
.
강을 건너려는 족족 폭풍이 불고 번개가 내리치며 배들이 침몰해버렸기 때문이다
.
소정방이 이를 이상하게 여겨 연유를 알아보니 의자왕의 아버지인 무왕(武王)이 용으로 환생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
무왕은 원래 소부리(所夫里, 사비)의 궁남지(宮南池)에 살던 용이 그곳의 궁녀와 정을 통해 낳은 자식으로 용의 피를 타고난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소정방은 용이 백마의 고기를 즐긴다는 소문을 듣고 부소산(扶蘇山) 북쪽 강물 속에 솟아난 바위에 올라타

철사 낚싯줄에 백마의 고기를 끼워 용을 잡았다.
그제야 강을 건너 백제성을 공격할 수 있었던 당나라군은 신라군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켰다고 한다.(660
)
그 이후로 소정방이 올라탔던 바위를 조룡대(釣龍臺)라 이름 지었으며,

또한 용이 낚인 부근의 강 이름도 백마강(白馬江)이라 부르게 됐다고 전해진다.
작은 바위에 백제의 몰락에 관한 이야기가 얽혀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고란사선착장 전경

 

 

낙화암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듭니다.

 

 

 

황포돗단배를 타고 바로 옆에 있는 구드래나루터로 갑니다.

비록 짧은 거리의 뱃길이지만 부소산,고란사,낙화암등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포인트인 셈입니다.

좌측의 건물은 고란사의 삼성각이고 우측 바위가 바로 낙화암입니다.

그 아래 붉은 글씨는 '落花岩'이라고 쓰여 있는데 조선 후기 학자 송시열 글씨라고 하네요

 

낙화암이 60m 높이 라고 하니 제법 높은 거리입니다.

뒤 쫒아 오는 당나라 군사에게 잡히지 않을려고 낙화암에서 몸을 날려서

마치 낙엽지듯 떨어지는 여인들의 그림이 고란사 뒷벽에 그림으로 남아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하게 만듭니다.

 

  

 

 

한번에 5~60명을 태울 수 있는 제법 큰 황포돗단배입니다.

아까도 얘기하였지만 돗은 폼으로 달고 다니고 엔진으로 가는 배입니다.

고란사에서 구드래나루터까지 타원형으로 한바퀴 돕니다.

 

백마강에 물이 많습니다.

역사를 아는가 모르는가 강물은 여전히 말없이 흘러 가고 있습니다.

역사가 항상 그릇트시 아무리 큰 사건이라도 몇 년 혹은 몇 십년이 지나면 

자연히 잊어지기 마련이지요.

그리고는 역사책으로 마주하는데 그 느낌은 ...???

아무래도 잊혀진 역사가 됩니다.

백마강의 아픔도 잊혀진 역사이고 그저 웃으면서 경치를 즐기는 탐방객들의 수준입니다.

진정으로 아픔을 함께하는 역사의 여행은 아니 올시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재의 역사관모습인 것입니다.

전쟁을 모르는 세대이다 보니 전쟁이 난다고 하여도 눈 하나 꿈쩍도 안 하고

나라가 두동강 날 정도로 이념논쟁 속에 식상한 결과이겠지요.

정말로 정신을 차려야할 우리들입니다.

당파싸움만 하다가 나라가 망할뻔한 것이 한두번 아닌데

지금도 당파싸움질만 해대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백마강의 시커먼 물을 바라 보면서 느낀 소회입니다.

 

 

 

 

 

고란사에서 지척거리에 있는 구드래나루터입니다.

배를 타지 않고도 부소산성을 한바퀴 돌아 볼 수는 있지만

관광 편의상 시간 절약상 타게 되는 배입니다.

 

 

 

구드래선착장에 도착,여승무원이 접안용 로프를 들고 선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구드래나루터에서 내린 승객들은 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갑니다.

통상적으로 정문에 차를 세워 관광객을 내려 주고 이곳에서 기다립니다.

물론 자가운전자도 걸어 가도 30여분이면 차 있는데 까지 갑니다.

 

 

 

주차장으로 가고 있는 관광객들...

많이도 탔네? 이 많은 인원이 한번에 타고 왔습니다.

 

구드래나루터 주차장

 

 

 

 

 

그리고 구드래나루터일대는'구드래공원'으로서 사람들이 많이 오고

고급식당가가 밀집되어 있어 쾌 유명한 것 같네요

우리도 그 중 유명하다는 두드래돌쌈밥집에 들려 맛있게 식사를 하고 갑니다.

일요일에는 줄을 설 정도로 잘 된다고 하는 식당인데

우리가 간 날은 토요일인데도 가게 안은 이미 만원입디다.

  

 

이 집은 특이하게도 역대 대통령의 흉상을 한쪽 벽면에 세워 놓았고

또한 박근혜대통령께서 언제왔다가 가셨는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드군요

아무래도 대통령되시기 전 같네요.

이 집 주인장의 취미인가는 몰라도 특이한 것들이 많이 있었는데

잘 살펴 보지 못해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