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답사기

[서울] 서대문형무소,서대문 독립공원

安永岩 2014. 2. 8. 01:19

 

서대문형무소

 

- 그곳에 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됩니다.

 

 

오늘은 좀 어두운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가슴 아픈 역사도 되고요.바로 서대문형무소이야기입니다.

서대문형무소 !

일제 강점기 때 우리 독립투사들이 옥고를 치르면서

갖은 고문과 그 고문으로 죽어간 가슴 아픈 감옥의 현장입니다.

물론 해방후에도 민주지사들이 옥고를 치른 곳이지만

일제 때 처럼 견디기 힘들었던 잔악한 고문은 없었지요.

햇볕이 전혀 들지 않는 1평도 채 되지 않는 좁은 골방에

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 마루 바닦에서 이 추운 겨울에

낮에는 갖은 고문으로, 밤에는 고문으로 인한 아픔의 통증으로

밤을 지세웠을 우리 독립투사 선조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지면서

저 못된 왜놈들을 죽이고 싶은 그 무엇이 아래로 부터 올라 옵니다.

저는 특히 안중근의사의 후손이기 때문에 더 한 감정이...

지금도 왜놈들은 반성은 커녕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으니...

참으로 이웃도 잘 만나야 하는가 봅니다.

그래서 오손도손 한나라처럼 살아가는

유럽의 여러 나라가 참으로 부릅습니다.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갔네요

각설하고...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보통 독립문으로 해서 들어 가는데

나는 인왕산을 산행하고 내려 왔기 때문에 옆으로 해서 바로 형무소로 들어 갑니다.

길게 늘어선 형무소 붉은 적벽돌의 높은 담장이 자못 위압감을 줍니다.

분위기도 음산해 보이고...그래도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과거의 어두운 기억을 지어 볼까 합니다.

 

 

 

적벽돌 담장 가운데 입구가 있습니다.

매표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들어 가니 안에서 매표를 합니다.

 

 

 

사적 제324호로 지정된 구서울구치소는 1907년 일제가

자신들의 본격적인 한국 침탈에 저항하는 애국지사들을 투옥하기 위하여 만든 곳입니다.

이곳의 처음 이름은 경성감옥이었는데,서대문감옥,서대문형무소,경성형무소,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67년 '서울구치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일제시대에 독립운동가를 비롯하여 애국시민,학생들이 투옥되었으며,

광복 후에는 반민족행위자와 친일세력들이 대거 수용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4.19, 5.16,군사정권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기도 하였습니다.

1987년 서울구치소를 경기도 의왕시로 옮길 때 옥사(獄舍)는 모두 15개동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역사성과 보존가치를 고려하여 제9,10,11,12,13 옥사와 나병사(癩病舍),

사형장을 남겨 두었지요. 이 건물들은 모두 붉은 벽돌 조적조 구조입니다.

1988년 부터 주변에 공원을 만들기 시작하여 1992년 부터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獄舍가 모두 화살표방향으로 한 곳에서 감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적은 인원으로 감시 감독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함이겠지요.

  이것이 바로 역사의 아픈 현장입니다.

 

 

 

옥사의 외벽에 걸린 대형 태극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우측에 2층으로 된 높은 건물의 지하에는 갖은 고문을 자행했던

도구들과 취조실이 있는데 그 수법이 너무나 잔인하여 사진에 담지 않고

가슴에 담았습니다.

인간으로써 차마 할 수 없는 갖가지 고문에 돌러 보는 내내

우리 애국지사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여 치가 떨렸습니다.

 

 

  

   저 뒷편에 보이는 높은 건물이 바로 癩(문둥병나)病舍입니다.

 

 

 

그래도 전혀 사진에 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

가벼운 현장만 몇 장면을 올립니다.

여기는 지하 취조실이 있는 감방입니다.

 

 

 

 

취조실에서 나온 애국지사들을 가둔 독방입니다.

 

 

 

 

이는 '배관고문'이라고 애국지사들을

앉거나 눕지 못하게 세워서 꼼작 못하게 하는 고문도구입니다.

 

 

 

모진 고문과 독방으로 오가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애국지사들...

 

그 외 갖은 고문도구들과 고통을 호소하는 비명소리가

지하에 가득했습니다.몸서리가 쳐지는 현장을 숨을 죽이며

돌아 보고 밖으로 나와 비로써 하늘을 봅니다.

지금의 대한미국은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누구나 애국자가 되어 봅니다.  

 

 

 

 

제가 간 날은 평일인데도 엄마,아빠를 따라 나선 어린이들,

혹은 연인사이들,혹은 20대 젊은 아가씨들...

남자들 보다도 여자분 관람객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위기에 처하면 여자가 강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마도 남자들 보다도 여성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하는 형무소 현장 같았습니다.

 

둘러 보면서 아픈역사의 현장을 같이 공유하면서

분노하기도 하고 탄식도 하고 욕을 하면서

우리의 좌표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지하 취조실을 나와 들린 獄舍인데

3개동의 옥사를 이 곳에 서서 보니까 한 눈에 보입니다.

즉 ←화살표形의 옥사인데 꼭지점에 감시자를 배치하여 수감자들을 감시한 것입니다.

 

 

이렇게 한 눈에 보입니다.

 

 

 

3개 옥사 중 한곳의 옥사입니다.

비교적 무거운 죄를 지은 수감자의 옥사같네요

그리고 한개 옥사에 감방이 몇 개인지는

세어 보지 않았으나 2층으로 된 옥사로

 한 개층에 마주보고 있는 감방이 20~30개는 될 것 같네요

가운데 통로를 두고 좌우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여러명이 있는 감방도 있고 독방도 있고 그 중에

햇볕이 전혀 들어 오지 않는 독방도 있었습니다.

 

 

 

이 옥사는 그래도 밝은 옥사입니다.

비교적 가벼운 죄를 지은 사람들의 옥사 같네요

 

 

옥사를 둘러 보고 있는 관람객들...

 

 

 

천정에서도 감시를 하네요

한 외국인의 눈에는 어떻게 비췄을까요?

 

 

 

햇볕이 전혀 들어 오지 않는 독방입니다.

 

햇볕이 들어 오는 독방

 

 

 

옥사에서 나와 서대문형무소에서 가장 무서운 사형장으로 갑니다.

왠지 꺼림칙한 곳이였지만 아픈 역사의 현장이였기에 보지 않을 수가 없네요

어린이들을 동반한 부모들은 이 곳을 보여주지 않을려고 하는지

관람객들은 대게 옥사현장만 보고 갑니다.

 

 

사형장이 있는 외벽입니다.

원래는 붉은 벽돌였을낀데 흰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오히려 음산함을 느끼게 하고 몸이 오싹해집니다.

그리고 그 곁에 통곡의 미루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사형장 외벽 입구

내부는 사진찰영금지구역입니다.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이 門을 통과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하늘나라로 갔습니다.비록 육신은 갔지만 영혼은

살아서 영원히 우리들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사형장입니다.

 


사형장 내부를 보고 밖을 나오니

흐리고 차가운 날씨 만큼이나 기분이 엄청 다운됩니다.

한결같이 조용합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같게 하는 곳입니다.

 

나병옥사에서 본 형무소 옥사전경이며

멀리 보이는 산이 인왕산입니다.

왜놈들은 왜? 경복궁과 가까운 이곳에 형무소를 지었을까요?

아마 종로서와 가깝고 안산과 인왕산이 둘러 있고 터가 넓기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당시 종로서는 아무 죄도 없는 독립투사,애국지사들을 많이 취급하였는데

비교적 가까운 이곳에 형무소를 지어 가둔 것입니다.

형무소가 멀면 그에 따른 운송과정에 탈주을 막고,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하기 위함였겠지요

     

 

 

사형장을 나와 본 서대문형무소전경

서대문독립공원으로 새로운 이름을 달면서 공원화된 형무소내부입니다.

그리고 인왕산과 그 아래 고급아파트가 들어서 있는데

묘한 느낌을 받네요...

 

 

3.1독립선언 기념탑

서대문독립공원 내에 있습니다.

 

독립문獨立門

 

구한말에 세워진 석조 기념물로 사적 제32호입니다.

 외세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자주독립의 의지를 더욱 굳건히 다지기 위해 만들었다.

1896년 독립협회의 주도 아래 국민성금을 모아 공사를 시작하였으며, 1년 만에 완공되었다.

원래는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으나,

1979년 성산대로가 개통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2009년 10월에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재정비 되었다.

규모는 높이 14.28m, 너비 11.48m로 화강석을 쌓아 만들었으며,

가운데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었다.

홍예문에는 태극기와 함께 한글과 한자로 쓰여진 ‘독립문’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축물이다.

<다음 문화유산>

 

 

서대문독립공원입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