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집寺刹이야기

[경북/영주여행/영주꼭가볼만한곳] 천년고찰의 신비, 부석사浮石寺

安永岩 2015. 3. 14. 01:35

 

 

영주 부석사는 여러번 갔다 왔습니다.

그런데 겨울의 끝자락에 서서 왜? 또 가고 싶은 것일까요?

이제껏 보지 못한 눈 덮인 부석사와 무량수전 앞에서 보는 시원한 자연경관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겨울 내내 때를 기다리다 이제사 길을 나셨습니다.

그것도 눈이 없고 흐릿한 날씨 속에 부석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원래 계획한 것은 꼭 실천하고야 마는 고놈의 성질 때문입니다.

가고 또 가고 ...아무렴 어떻습니까? 성이 차지 않으면 다음에 또 가모 되고...

하여튼 넉넉한 여유로움은 좋치요?

 

 

 

보통 절집은 거의가 평지에 넓게 전각들이 분포되어 있고 부속 암자들이 높은 곳에 위치해 있지요

하지만 부석사는 주산인 봉황산의 높이에 맞추어 일주문 부터 일자로 층층이 높이를 달리 하면서

올라 가는데 가장 높은 곳에 무량수전이 위치하고,나머지 부속 전각들은 좌,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암자처럼 봉황산 높은 곳에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무량수전에서 보는 탁트인 전망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흥이 일어나 좀처럼 아쉬움에 쉬이 떠나지를 못합니다.

부석사에는 국보급 문화재가 많이 있지만 나는 무량수전에서 보는 탁트인 자연경관을 국보로 지정하고 싶다.

무형문화재 국보로 말이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가 왕명에 의해 창건하였으며 화엄종찰(華嚴宗刹)입니다.

특히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와의 전설과 부석(浮石)에 얽힌 전설이 신비로운 절집입니다.

그래서 절 이름도 부석사浮石寺입니다.

특히 무량수전의 고색창연함이 더욱 고풍스러운 느낌을 갖게하여 천년 고찰의 면목을 실감케 합니다.

 

부석사에는 중요한 문화재가 많습니다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 무량수전(국보 제18호) 조사당(국보 제19호)

부석사 소조여래 좌상(국보 제45호) 부석사 조사당 벽화(국보 제46호)

부석사 삼층 석탑(보물 제249호) 부석사 당간 지주(보물 제255호) 등이 있는데

특히 국보급 문화재가 5개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지요.

 

 

부석사 일주문

 

부석사는 저~아래 상가밀집지역에서 부터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되면서

일주문부터 본격적으로 높이를 차츰 높여 올라 갑니다.

부석사의 또 다른 볼거리는 입구에서 천왕문까지 가장자리에 늘어 선 은행나무가 일품입니다.

늦가을 부석사를 찾으면 순흥에서 부터 시작되는 은행나무 가로수 길이 이 곳 부석사 은행나무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은행잎이 떨어지면서 햇살에 반짝이는 은행잎의 향연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꼭꼭 붙잡아 놓치를 않치요.

생각만 해도 흥분됩니다.

 

 

 

부석사당간지주(보물 제255호)

 

이 당간지주는 부석사 창건 당시 세워진 신라시대의 석조 유물입니다.

1300여년 전의 이 당간지주에는 화엄종찰을 알리는 깃대와 깃발이 꽂혀 있었겠지만

지금은 한쌍의 돌기둥만이 남아 있습니다.

당간지주는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다다르기 전 왼편 중턱에 우뚝서 있으며, 그 키가 4.8m 이다.

 

 

 

천왕문天王門

 

 

 

천왕문을 지나 오르면 만나는 현판이 없는 문입니다.

원래 천왕문과 범종각 사이에 門이 없었는데 몇 해전에 다시 만들었네요 

원래는 일주문-천왕문-범종각-안양루를 통과하면 무량수전였는데

그 사이에 門이 하나 더 추가되었지요.

아직 이름은 없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변의 석축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부석사 석축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호국의 기원으로 서라벌을 향한 것이라는 설이 재미가 있습니다.
부석사에 한 번쯤 다녀온 사람들은 누구나 석축과 돌계단을 특별히 기억할 것입니다.
이 석축은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 비탈을 깎고 평지를 고르면서 만든 것입니다.

물론 석축의 목적은 사찰을 짓기 위한 땅다짐에 있지만 석축 돌계단 그 자체에도 상징 하는바가 있지요.

 

즉,극락에 이를 수 있는 16가지 방법 중 마지막 세 방법인 3품 3배관의 9품 만다라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천왕문에서 요사체로 오르는 세 계단이 하품단이며, 여기서 다시 세 계단 오른 범종루까지가 중품단,

범종루에서 세 계단을 올라 안양루 밑을 지나 무량수전 앞 마당에 다다르는데, 마지막 계단으로 상품단이다.

이렇게 부석사를 찾는 이는 상징화된 돌계단과 석축을 지나면서 극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반듯하게 다듬은 규격화된 돌들로 석축을 쌓지 않고,

돌의 자연 생김새를 그대로 이용해 잘 짜맞추어 쌓았다는 것입니다.

둥글든 모났든 크든 작든 돌들의 본래 모양새와 개성을 버리지 않고도 조화롭고 짜임새 있으며

견고한 석축이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현대의 우리들에게 커다란 가르침을 주며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적어도 모든 것이 획일화된 지금에는...

 

 

 

 

 

이름없는 문을 통과하면 바로 법종각 앞입니다.

이른바 하품단을 올라 중품단 앞에 섭니다.

부석사에는 부처님 알현하는 것도 힘이 듭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범종각

 

'봉황산 부석사' 현판이 걸린 법종각의 당우가 마치 한마리의 새가 하늘을 나는 형상입니다.

더우기 올라 가면서 쳐다 보니 치켜 올라 간 처마 끝이 그러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것이 부석사의 또 다른 매력입니다. 

 

 

서탑

부석사3층석탑 쌍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0호)

 

이 탑은 통일신라 후기 3층 석탑으로 쌍탑입니다.

높이는 동탑이 360m,서탑은 377m으로 두 탑의 크기와 양식이 거의 같습니다.

무량수전의 동쪽에 있는 3층석탑과 같은 형식으로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있고

정제된 모습으로 신라 석탑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동탑

 

 

범종루

 

부석사에는 2개의 누각이 있는데 안양루와 범종각입니다.

문의 성격을 겸한 안양루가 석축 위에 작고 날아갈 듯하게 지은 누각이라면 

대석축단과 안양루 석축으로 구분되는 공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범종각은

지반에 견고하게 버티고 선 안정감 있는 건물입니다.

특히 이 범종각은 그 건물의 방향이 여느 건물과는 달리 측면으로 앉아 있습니다.

건물의 지붕은 한쪽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팔작지붕을 한 쪽이 정면을 향하고 있고 맞배지붕이 뒤쪽을 향하고 있는데

무량수전 앞에서 바라보면 왜 목수가 지붕을 그리했는지를 알수 있으며 그 지혜에 절로 감탄이 납니다.

부석사가 소백산맥을 향하여 날아갈 듯이 앉아있는데 범종각이 정면을 향하고 있으면 건물이 전반적으로 무거워보인다.

따라서 범종각을 옆으로 앉혀놓고 뒷쪽을 맞배로 처리하여 건물이 전반적으로 비상하는 느낌을 주고 답답해 보이지 않아 좋다

 

 

범종각 뒤 모습

뒷쪽을 이렇게 맞배지붕으로 처리 하였다.

앞에서 보면 업청난 높이의 상승감이 보는 이를 압도하지만

한층 높이의 段을 올라 서서 돌아 본 뒤 모습은 아담한 느낌의 맞배지붕입니다.

이것이 부석사에서만 느끼는 맛입니다. 

 

여기서 부터 부석사의 높이를 서서히 느끼기 시작합니다.

제법 높이 올라 왔습니다.

 

 

범종각 뒤 마당에서 바라 본 안양루의 웅장한 모습

 

안양루의 3단 석축 또한 예사롭지 않습니다.

돌의 생김새따라 자연스럽게 축조된 석축이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봉황산 아래에 비산하는 한마리의 새처럼 날렵한 자태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 내게 합니다.

약간 치켜 올라 간 처마 끝이 그러한 느낌을 줍니다.

 

 

안양루

정면에서 본 모습입니다.

아래는 安養門,위에는 浮石寺,그리고 뒤에는 安養樓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하나의 건물에 누각과 문이라는 2중의 기능을 부여한 것입니다.

즉 안양문을 통과하면 바로 부처님이 계시는 공간입니다.

안양루 아래 석축도 돌의 생김새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쌓은 기술이 돋보입니다.

이제 3段으로 된 석축 위로 난 계단을 올라 안양루 밑 계단을 통과하여

부석사 경내로 올라 섭니다.  

 

 

드디어 안양문을 통과하여 마지막 계단을 올라 섭니다.

천천히 조용히...

 

 

국보 제 17호 석등 사이로 '無量壽殿'현판이 보입니다.

 

 

드디어 유명한 무량수전 마당에 올라 섰습니다.

무엇보다도 무량수전 마당에서 보는 경치가 압권이기 때문에  주변 풍경을 눈에 담습니다.

저를 부석사에 오게 만든 장본인 셈입니다.

겨울의 끝자락에 잔뜩 흐리고 추운 날씨이지만 역시 부석사의 인기는 좋습니다.

전국에서 많이 오셨네요.1년 내내 인기 있는 절집입니다.

아마도 무량수전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을 보기 위해서 일겁니다.

 

  

안양루 좌측에서 본 풍경

 

 

옆에서 본 안양루

 

 

그리고 안양루 앞 풍경

 

 

 

무량수전 옆 浮石 즉,뜨 있는 돌입니다.

부석사의 절名을 만든 주인공이지요.

부석사는 의상,부석,선묘낭자의 전설이 서린 절집입니다.

특히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부석浮石

 

부석사와 관련이 많은 공중에 떠 있다는 바위입니다.

 

 

무량수전 앞 우측에서 본 풍경

 

 

그리고

부석사 마당의 석등과 안양루

 

안양루는 무량수전 앞마당 끝에 놓인 누각입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무량수전과 함께 이 영역의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까도 애기하였지만 이 건물에는 위쪽과 아래쪽에 달린 편액이 서로 다르지요.

난간 아랫부분에 걸린 편액은 '안양문'이라 되어 있고 위층 마당 쪽에는 '안양루'라고 씌어 있습니다.

하나의 건물에 누각과 문이라는 2중의 기능을 부여한 것입니다.

'안양'은 극락이므로 안양문은 극락 세계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하지요.
따라서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면 바로 극락인 무량수전이 위치한 구조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안양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엎드려 모여 있는 경내 여러 건물들의 지붕과

멀리 펼쳐진 소백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아스라이 보이는 소백산맥의 산과 들이 마치 정원이라도 되듯 나의 눈 앞으로 다가옵니다.

부석사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많은 문인들이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소백의 장관을 시문으로 남겼고

그 현판들이 누각 내부에 걸려 있습니다.

 

 

 무량수전 (국보 제18호)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목조구조 기술의 정수라는 배흐림 기둥이 있어 건축미의 극치를 보여주며

우리나라 목조 건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정면 5칸,측면 3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심포 양식으로 간결하면서도 웅장한 느낌을 주는 건축입니다.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으며 건축미가 주는 고색창연함이

더욱 고풍스러운 느낌을 갖게하여 천년 고찰의 면목을 실감케 합니다.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입니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수불로도 불리는데 

'무량수'라는 말은 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더하고 뺄 것 하나 없는 완벽함,문창살 하나,문지방 하나에도 천년의 세월이

살아 숨쉬는 상쾌한 균형과 절제가 있다는 예찬을 듣고 있는 무량수전입니다.

사뿐히 고개쳐든 지붕의 추녀 곡선 그 추녀와 기둥의 조화,간결하고 절제된 주심포로 절묘한 아름다움을 보여 줍니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소백산이 부석사의 울타리인냥 마당안으로 들어와 있는 풍광을 바라보고

가슴에 사무치는 희열을 느껴보시지 않으실렵니까?

 

 

유명한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으로,

빼어난 조각 솜씨로 비례의 조화가 아름답고,화려하면서도 기품이 서려 있습니다.

높이2.97m의 8각 기둥은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두었고,

위로는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은 상륜부(윗받침돌)를 얹어 놓았습니다.

특히 화사석(火舍石) 4면에 새겨진 연꽃봉우리를 쥐고 선 보살상 조각의 정교함은

석등을 더욱 더 돋보이게 합니다.

이 석등은 현재 국내에서 가장 우수한 조각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화사석

 

 

연꽃봉우리를 쥐고 선 보살상 조각

 

 

 

무량수전 전경

 

 

부석사3층석탑(보물 제249호)

 

무량수전의 동쪽 약간 높은 지대에 위치한 통일신라시대의 3층 석탑이다.

이 탑은 자인당의 석불들과 함께 이웃 절터에서 옮겨진 것이다.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은 전형적인 신라시대 석탑이다.

 

 

 

본래 탑은 법당 앞에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부석사 삼층석탑은 무량수전의 동쪽에 서 있어 궁금중을 자아낸다.

아마도 동쪽을 향해 안치된 무량수전의 아미타불 방향과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삼층석탑은 부석사 창건 당시 조성된 것으로 높이가 5.26m, 기단폭이 3.56m 이다.

 

 

안양루에서 보는 풍경도 좋지만

조사당가면서 삼층석탑에서 보는 부석사 풍경이 압권입니다.

 

 

말이 필요없고 숨이 멎을 것 같은 풍경에 넋을 놓다.

더구나 연한 雲霧까지 끼여 仙景을 연출합니다.

이 풍경을 볼려고 이 곳까지 왔습니다.

 

 

요리조리 위치를 옮겨 가면서 봅니다.

 

 

 

 

내가 섰던 자리에 다른 분이 서고~

이 분도 뭐~을 좀 아네요~ㅎ

 

 

조사당가면서 본 선묘당과 무량수전,그리고 고목나무

 

 

 

이제 조사당으로 올라 갑니다.

자그만한 조사당 건물 또한 고려시대 건물로써 국보입니다.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들락 날락하여 깊게 파인 나무계단이 위태합니다.

 

조사당 (국보 제19호)

 

무량수전에서 동북쪽으로 100m가량 오르면 조사당이 보입니다.

조사당에는 의상대사의 진영을 모시고 있습니다.의상은 절 창건 후 입적할 때까지 이곳에서

화엄사상을 전하며 제자를 길러냈습니다.1918년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우왕 3년(1377년)에 건축되었다고 하며

순수한 고려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작은 전각으로 측면 쪽으로 약간 비스듬히 진입하여 소박하고 간결한 느낌을 준다.

지붕은 맞배 형식으로 간단해 보이지만 넉넉하게 뻗어 나와 결코 작은 건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 자그만한 건물에 국보가 둘 있었지요.

바로 건물(국보 제19호)과 벽화(국보 제46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조사당을 찾습니다.

 

 

 

 

 

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

 

지금은 유리 상자에 넣어 벽화 유물전 안에 따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모두 6폭인 벽 그림의 내용은 제석천(帝釋天)과 범천(梵天)·사천왕(四天王) 등의 호법신장(護法神將)들이다.

제석과 범천은 불교의 호법신 가운데 최고의 신이다. 그리고 사천왕은 이 두 천신(天神)에게 직접 통제되는 천왕(天王)이다.

제석과 범천은 풍만하거나 우아한 귀부인의 모습이다. 그리고 사천왕은 악귀를 밟고 서서 무섭게 노려보는 건장한 무장상이다.

위풍당당하거나 우아한 형태와 능숙한 필치 등에서 고려 불화 가운데서도 독특한 품격을 보여 주고 있다.

본래의 채색에 몇 번에 걸쳐 새로 덧칠한 것이 많아서 원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래도 고려 불화풍이 꽤 간직되어 있는 편이다.

원래 이 그림은 조사당 입구에서부터 사천왕과 제석천·범천의 순으로 배치되어 석굴암과 비슷한 구도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그 그림들은 불(佛) 대신 부석사 창건주이자 화엄종의 조사(祖師)인 의상조사(義湘祖師)를

외호(外護)하는 신장들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문화재청>

 

 

 

 

 

조사당 건물 한켠에 보호망을 쳐 놓은 곳은 바로 선비화를 보호하기 의해서입니다.

 

 

 

선비화(의상대사 지팡이 나무)

 

조사당 처마 밑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전설의 꽃 선비화(禪扉花,골담초)로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가져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아 자란 것이라고 합니다.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서도 항상 푸르게 자라고 있습니다.

일찍이 퇴계 이황선생이 부석사를 찾아와 이 선비화에 대한 詩를 짓기도 하였다 합니다.

 

옥같이 빼어난 줄기 절문에 기대었는데,

지팡이가 신령스러운 나무가 되었다고 스님이 일러 주네,

지팡이 끝에 원래 조계수(曺溪水)가 흐르는가,

하늘과 땅이 내리는 비와 이슬의 은혜를 빌리지 않았네.

 

이 선비화의 學名은 골담초(骨擔草)라고 부릅니다.

 

 

 

 

 

 

부석사 나무들...

 

 

 

 

 

좌측으로 자인당으로 갑니다.

가는길이 아름답고 아름드리 나무들이 볼만 합니다.

 

 

 

 

이렇게 많이 파여서 어쩐담?

뿌리가 통째로 들어난 모습이 안타깝네요.

 

 

 

자인당과 응진전(나한전)

 

자인당은 선방의 용도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부석사에서 동쪽으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폐사지에서 옮겨 온 석불을 이곳에 이안했다
자인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며 공포가 건물 규모에 비하여 너무 크고

측벽에 여러 가지 형태의 옛 부재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19세기 후반경에 해체 부재를 재사용하여 지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실내에는 석조 삼존여래 좌상을 모셨는데 가운데는 석가여래이고

좌우는 비로자나불(보물 제220호)입니다.

 

 

 


보물 제220호

비로자나불 좌상

(석가여래좌상 양 옆으로 모셔져 있슴)


석가여래좌상


 

 

이제 다시 내려 갑니다.

가면서 다시 한번 더...

(스마트폰사진)

 

 

 

 

보고 또 보고...

아무리 보아도 싫지 않은 풍경입니다.

 

 

 

스마트폰 사진의 화질이 참으로 좋습니다.

 

 

 

 

 

 

 

 

선묘각은 무량수전 북서쪽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의상 조사의 창건 설화와 관련된 인물인 선묘를 모신 건물입니다.

규모도 작고 기단도 없이 초라하여 마치 작은 사찰의 산신각 같은 느낌을 줍니다.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 규모의 맞배집인데 가구 방식이나 부재를 다듬은 수법으로 보아 최근세의 건물인 듯합니다.

내부에는 1975년에 그린 선묘의 영정이 걸려있다.

 

 

 

다시 무량수전

 

 

 

 

안양루,석등

 

 

안양루 바닥

 

 

삼층석탑(쌍탑)

 

올라 갈 때 풍경과 내려 갈 때 풍경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 옵니다.

 

 

 

 

 

부석사 일주문

 

 

 

 

돌아 보고~

부석사가 있는 봉황산은 입산금지 山이라 많이 아쉽네요.

문경 봉암사가 있는 희양산도 입산금지 산이지만

뒤쪽 은터에서는 등산이 가능하지요.

 

 

부석사 진입로 좌판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그리고 늦은 점심 겸 저녁

장미식당 청국장찌게(주인 아줌마도 10년새 많이 늙었네요,세월 앞에 장사가 없구려~ㅎ)

 

 

 

 

집단시설지구 뒤로 봉황산,그 아래 부석사가 있지요

그리고 나의 새로운 愛馬, QM3

 

 

해는 서산에 지고~

이제 부석사를 떠납니다.

늦가을 은행잎이 휘날릴 때 다시 찾고 싶은 부석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