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집寺刹이야기

[경북/영천여행]천하명당 조사도장 운부암(雲浮庵)

安永岩 2015. 3. 21. 23:19

 

천하명당 운부선원 조사도장 (天下明堂 雲浮禪院 祖師道場)

운부암雲浮庵

 

대한 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의 산내 암자로서
은해사 뒤편 저수지에서 우측 길로3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이름 그대로 구름 위에 떠 있는 절이라 하여 雲浮庵입니다.

암자이기 보다는 절집입니다.

실제로 은해사가 저 아래로 내려 가기 전에는 은해사였답니다.

운부암이 유명한 것은 천하명당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氣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꼭 들리는 곳이지요.

그 구름 위에 떠 있는 절집 운부암으로 갑니다.

 


 

오락가락하는 비속에 雲霧까지 짖게 내려 앉어

마치 仙界에들어 선 느낌입니다.

 

 

천하명당 운부선원 조사도량 (天下明堂 雲浮禪院 祖師道場)

 

신라 선덕여왕 11년(서기 711)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전하며
지세가 연꽃모양을 하고 있는 형국이라 연화지라 일컬어지는 명당이며
옛적에는 팔공산 주인이 이곳에서 난다고 하였을 정도로
지기가 출중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명한 성철스님도 이미 이곳에서 수행이 깊어져 남방의
대 도인으로 추앙 받았던 향곡 선사에게 이곳을 물려주고
그 다음 장소를 바로 산 너머  팔공산 동화사 금당선원으로 옮겨 안거하며
그 해 황연개오의 오도 송을 읊었다 하니 공부는 운부 선원에서
이미 다 깊어졌다 할 것입니다.

五井五池(5샘물과 5곳의 연못)을 갖춘 대 명당으로써
풍수가 워낙 좋고 地氣가 출중해서 기도 처로서 명성이 자자했으며
수백 년부터 전해오는 빼 놓을 수 없는 설이 있으니
즉,북(北)마하 남(南)운부 설입니다.
공부와 기도에 있어 지기(地氣)를 최고로 갖춘 도량으로는
조선의 북쪽에 금강산 마하연 선원이 으뜸이요
남쪽에는 팔공산 운부암 선원이 제일이라는 설이 파다하게
이어져 내려오는 훌륭한 도량입니다.

운부암은 창건이래 근세 한국의 조사 스님들의 근본 수행 처로 전해지고 있으며
당시에는 남한의 2대 중심선원을 선산 도리사와 팔공산 운부암을 꼽았다 합니다.
무수한 고승 대덕들의 수행 처로 그 규모와 위용을
떨쳤던 곳이기도 하답니다.

 

성철스님 오도송

 

황하서류곤륜정 黃河西流崑崙頂  항하수 서쪽으로 흘러 곤륜산 정상가니
일광무광대지침 日月無光大地沈  일월은 빛을 잃고 땅은 꺼지는 도다.
거연일소회수립 遽然一笑回首立  호탕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돌려보니
청산의구백운중 靑山依舊白雲中  청산은 의구하며 흰 구름 속에 있네.

 

 

 

운부암의 연못

윗쪽 달마대사의 立像이 눈길을 끕니다.

 

 

윗 연못과 아랫 연못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운부암으로 갑니다.

 

 

운부암 전경

운부암을 받치고 있는 3단의 돌담이 정겹습니다.

 

 

 

 

不二門 옆을 돌아 운부선원으로 올라 갑니다.

 

 

 

곧 운부암 보화루 앞에 섭니다.

 

 

보화루 아래를 통과하여 계단을 오르면 바로 圓通殿입니다.

 

 

운부암 원통전(圓通殿)

 

원통전 편액 글씨는 환재 박규수(瓛齋 朴珪壽, 1807~1877)가 쓴 것입니다.

편액에 '계해년 한겨울(癸亥仲冬)'이라 적혀 있으니 그가 철종 13년(1862년)의 임술농민항쟁 때 안핵사로 임명되어

사건 실상 조사와 수습을 맡아 경상도를 오르내리던 무렵에 쓴 것인 듯합니다.

박규수는 연암 박지원의 손자이며, 개화파의 선봉에 섰던 인물입니다.

운부암에는 그의 글씨가 한 점 더 있습니다. 원통전 우측 심검당에 걸린 '운부난야(雲浮蘭若)'란 글씨가 그것입니다.

원통전 편액은 단아하고 정중한 반면에 심검당의 그것은 부드럽고 넉넉하되 묵직한 무게가 담겨 있습니다.

 


 

 

 

신라 선덕여왕 11년(서기 711) 의상대사가 창건한 은해사의 운부암 원통전에는 금동보살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영천 은해사 운부암 금동보살좌상 (永川 銀海寺 雲浮庵 金銅菩薩坐像)

 

높이 1m 가량의 아담한 보살좌상으로 화문과 불꽃무늬, 극락조(極樂鳥) 등으로 장식된 화려한 관(冠)이 특징이다.

불신에 비해 큰 불두, 화려한 보관, 영락 등에 나타나는 화려한 장식성은 고려 말에 유행했던 라마양식의 영향을 이은

조선 시대 작으로 평가된다.

1969년 7월 30일 보물 제514호로 지정되었다.
<문화재청>

 

 

 

 

 

역사만큼이나 고색창연한 암자입니다.

겨울의 끝자락에 찾은 운부암은 운무에 쌓여 더욱 더 신비스럽고 고풍스러움을 풍기고 있습니다.

 

 

 

 

 

 

수령1200년이 넘는다는 운부암느티나무

 

의상대사가 꼽은 지팡이랍니다.

우중충한 날씨라서 일행들이 내려 가는 통에 올라 보지 못했네요

또 다시 와야 하는 이윱니다.

그것도 노오란 은행잎이 떨어 지는 11월 초에...

 

 

 

 

 

우측 요사채에서 본 운부암 풍경

 

 

다시 보화루 앞으로 나왔습니다.

 

 

운부암 보화루 앞에서 보는 풍경이 한폭의 산수화르 보는 듯 합니다.

 

 

 

 

 

어느 때 무수한 고시 생이 운집해 합격의 영광을 척척
안았다 하여 판검사의 도량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이를 뒷받침이나 하듯 운부암 뒷산이 팔공산 비로봉 정상에서
약30km이상 줄기차게 뻗어 내려와 용트림을 반복하는 형상으로
운부암 법당 뒤편에 쏟아 부어 놓은 듯 정맥을 이루고 있습니다.

풍수상으로 좌청룡 우백호는 아주 튼튼하되 유순하며
좌, 우의 끊임없이 흐르는 계곡 물이 합수(合水)하여
연못에 머물다가 태극형으로 흐르고 있지요.


 

운부암의 수조

 

 

 

마당 한켠에 마련된 정갈한 쉼터가 아주 포근함을 줍니다.

 

 

요사채입니다.

이 곳엔 계절, 아니 세월을 잊은채 오직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수도 정진하시는 스님들이 계십니다.

성철 큰스님처럼 득도를 해야 山門을 나선다고 하네요.

친절하게 운부암에 대해 이야기해주신 스님께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전 조용히 아주 조용히 절집을 내려 옵니다.

 

 

 

 

 

 

운부암 아래 아담한 3개의 연못 주변의 풍경도 좋습니다.

특히 연한 雲霧에 쌓인 소나무의 기상도 신령스럽습니다.

 

 

 

 

명품 운부암소나무

 

그 위로 천하명당에 자리한 雲浮庵이

마치 구름위에 앉은 듯 합니다.

 

 

 

운부암은 늦가을에 다시 찾을까 합니다.

늦가을의 운부암 풍경을 보지 않고는 운부암을 다 보았다고 말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