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집寺刹이야기

설악산 백담사

安永岩 2023. 4. 7. 19:33

백담사 계곡

 

강원도 여행길 둘째 날 미시령 옛길을 넘어 백담사를 찾았습니다.

작년에 백담사를 계획했다가 코로나 때문에 포기했었는데 해가 바뀌고 따스한 봄날에 다시 찾았습니다. 정말로 멀고 바쁘다 보니 최북단 깊숙한 곳의 백담사를 여행한다는 게 여간 큰 맘을 먹지 않고는 불가능한 여행지입니다. 새해 3번째인가 싶은데 워낙에 오래전에 방문했었는데 기억에도 가물가물합니다. 그래서 다시 찾은 것이지요

십수 년 전에 한창 산에 미처 돌아다닐 때 백담사를 깃점으로 해서 수렴동계곡 봉정암 소청대피소 중청 대청봉에서 텐트 치고 자고 다음날 오색으로 하산했었던 기억이 어제일같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아마도 산에 다니면서 설악산을 최고로 많이 갔었고 다음이 지리산인 것 같습니다.

언제나 반겨주는 설악산입니다.오늘은 그 내설악에 위치한 '님의 침묵'백담사를 평생 함께할 지인들과 함께 했습니다.

아주 뜻깊은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방문일 : 2023,3,19,일 하늘 좋은 날

 

 

내설악 깊숙한 오지 심산유곡에 자리한 백담사는 우리 범인들이야 찾기가 힘든 곳인데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절집이지요. 백담사 입구 용대리에서 미니 순화버스를 타고 10여분이면 닿는다. 길이 낭떠러지 절벽 난간길에다 급경사 커브길에 쳐다만 봐도 오금이 저린 백담사길이다. 일반 차량을 통재할 수밖에 없는 좁은 일방통행길이다. 

백담사를 들어 가는 우리 일행들입니다. 날씨가 맑고 쾌청하고 바람 또한 없어 축복받은 날이다.

 

금강문에서 단체 기념촬영

 

백담사百潭寺를 들어 갑니다.

못(沼)이 백개가 있다고 하여 百潭이라 하고 절집 이름을 백담사라 명명하였다고 합니다.

사실 내설악의 가야동, 수렴동계곡에는 크고 작은 沼가 100개는 넘을 듯,

 

아내

정말로 백담사를 다시 오고 싶어 했었다. 오늘 소원 풀었네요~ㅎ

 

극락보전으로 먼저 갑니다.

 

극락보전

아미타불을 모신 백담사의 중심법당입니다.

일행들은 저마다 소원을 담아 3배 9배를 하였답니다.

 

백담사 쉬엄쉬엄 둘러보기~

좌측 전각은 종무소인 법화실

 

 

 

3배를 하고 밖을 나와 극락보전 벽에 그려진 심우도를 감상했습니다.

 

▣ 극락보전 벽에 그려진 '심우도(尋牛圖)

 

1. 심우(尋牛) ; 소를 찾아 나선다. ('참 나'를 찾고자 발심한다.)

 

2. 견적(見跡) ; 소는 보지 못하고, 소의 발자취만 발견한다.  (본심을 찾으려는 일념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다 보면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

 

3. 견우(見牛) ; 소를 발견한다. (오랜 노력과 공부 끝에 본성의 깨달음을 얻는다.)

 

4.  득우 (得友); 소를 얻는다.(온갖 번뇌 속에 파묻혀 있던 본성을 비로소 만났으나, 아직 야성을 그리워하고 방종하려 하니 더욱 정진하여 공부한다)

5. 목우(牧牛) ; 소를 길들인다. (본성이 드러나니 더욱 도에 정진하며 다스리고 단련한다.) 

 

6. 기우귀가 (騎友歸家);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무위의 깨달음의 세계인 집으로 돌아온다.)

 

7. 망우존인(忘牛存人) ; 소를 잊고 사람만 남는다. (이제 소는 달아날 염려가 없으므로 소를 잊어버리고  안심한다.)

 

8. 인우구망(人牛俱忘) ; 소와 사람 둘 다 잊는다. (사람도 소도 모두 본래 空임을 깨닫는다)

 

9. 반본환원(返本還源) ; 근원으로 돌아간다. (꽃은 붉고 버들은 푸른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깨닫는다.)

 

10. 입전수수(入廛垂手) ; 저자에 들어가 중생을 돕는다. (중생을 구제하려고 거리로 나선다.)

 

범종루

 

 

 

▣만해기념관

 

卍海 韓龍雲

 

일제강점기 불교계에 혁신적인 사상을 전하고 독립운동에도 앞장섰던 승려이자 시인,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 자는 정옥,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이며 유년시절에 대해 알려진 것은 없으나, 1905년 백담사에서 득도한 뒤 수년간 불교활동에 전념했다고 한다. 1918년 불교잡지 <유심>을 창간하고 계몽적 성격의 글을 발표했다. 1919년 3·1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으며, 일제에 체포되어 3년형을 받았다. 1925년에는 한국 근대시사의 불후의 업적 <님의 침묵>을 펴내어 민족의 현실과 이상을 시적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이후 조선총독부와 마주 보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은 성북동 집에서 66세의 나이로 죽었다. <다음백과>

백담사 야광나무

백담사를 상징하는 야광나무입니다.

특히 만해기념관, 茶室겸 불교용품판매점 잎에 야광나무가 아름답습니다.

 

아래 퍼온 사진입니다.

특히 5월에 하얀 꽃을 피우며 캄캄한 밤에도 환하게 주위를 밝혀 야광나무라 합니다.

 

백담사 다실에서 쌍화차를 한잔 하며 쉬어갑니다.

 

 

백담계곡

 

 

소원탑을 쌓고~

 

백담계곡물색

 

기념품을 선물받고~

 

이제 백담사를 나옵니다.

 

 

안녕~ 또 언제 와질까 ~

다음에 또 봐요~

 

물건을 나르는 헬기 발견

백담사를 나와 한계령을 경유 주전골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