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집寺刹이야기

경주 기림사祇林寺

安永岩 2010. 8. 20. 20:22

대한불교 조계종 천년고찰

함월산 기림사(含月山  祇林寺)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419

 

 

 기림사건칠관음보살좌상(祇林寺乾漆觀音菩薩坐像)

 보물 415호

 

높이 91cm. 우리나라에는 희귀한 건칠불로

 

대좌에 먹으로 쓰여진 명문을 통해

 

연산군 7년(1501)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15세기 후반의 지장보살상에서 흔히 나타나는

 

오른쪽 다리를 내린 특이한 반가좌 자세의 작품이다.

 

타래머리 위에 보관을 따로 만들어 얹었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없으며

 

둥글고 풍만한 얼굴은 턱이 짧고 아래로 처진 눈과 긴 코에서 낯선 인상을 준다.

 

짧은 귀에 달려 있는 꽃모양의 큼직한 귀걸이에서는 명대 조각의 영향이 보인다.

 

당당한 체구에 비해 손이 작고 하체가 다소 빈약해 보이나 율동적인 천의 흐름에서 힘이 느껴진다.

 

복부의 큼직한 띠매듭과 가슴에 걸려 있는 3가닥의 영락띠는 조선시대 목불의 특징이다.

 

 

건칠불 

 

중국 당나라 후기인 9세기 이후 처음 등장하였지만

 

고가의 칠이 대량으로 소요되기 때문에 널리 이용되지는 못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집중되어 나타났다.

 

흙으로 빚어 대체적인 형태를 만든 다음 그 위에 삼베를 입히고

 

칠을 발라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여 일정한 두께로 건조되면

 

표면에 목분칠(나무의 분말 등을 칠로 단단하게 반죽한 것)을 바르거나

 

 정교한 조각이 필요한 부분에는 석고를 입혀 조각한다.

 

완전히 건조되면 속의 흙을 파내고 빈 부분에 나무 심을 짜 넣어

 

 고정시킨 다음 표면에 채색을 하거나 도금을 입혀 완성한다.

 

목심 건칠은 처음부터 나무를 이용해 대체적인 형태를 조각한 뒤

 

건칠 방법을 반복하기 때문에 내부에 별도의 심을

 

마련해 넣을 필요가 없어 공정이 훨씬 쉽다.

 

 

 

 林井橋

 기림사 옛 이름을 따서 붙인 다리이름이다.

 

 함월산 기림사 일주문

 

 <기림사 가람 배치도>

기림사는 삼세여래를 모신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약사불과

사천왕,사리왕탱을 모신 약사전,서쪽에 관음전,정광불의 사리각인 삼층전이 있고

남쪽으로 오백나한전,산신각,무량수전,진남루가 있으며 정면에 삼층석탑이

있는 1탑 1금당형의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다.

 

<기림사의 연혁>

함월산含月山 기림사祇林寺는 천축국天竺國(인도)에서 온 光有聖人이 창건하여

林井寺라고 불렸다.그 후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원효대사가 사찰을 크게 확장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이 때는 이미 大寂光殿을 건립하여 三身如來를 봉안하였으며,

동쪽에는 약사여래를 모신 藥師殿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서쪽에는 석조오백나한상을 모신

응진전(應眞殿)을,동쪽에는 삼층목탑과 定光如來舍利閣을,남쪽에는 無量壽殿과 鎭南樓를

건립하였다.그러나 사리각은 없어지고,삼층목탑은 그 터만 남아 있다.

 

대적광적은 보물 제833호로서 조선후기 맞배양식 건물이며,유물전시관에 모셔져 있는

건칠보살상은 보물 제415호로서 반가상 형태를 취한 보기 드문 보살상이다.

또한 응진전앞의 삼층석탑은 신라 말기 석탑양식을 나타내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역시 대적광전에서 불사리와 함께 발견된 고려시대 금은자사경金銀字寫經들은

보물 제959호로서 기림사의 오랜 역사와 사격寺格을 나타내는 성보聖寶이다.

 

 

 기림사가는길, 숲

 

석가모니 부처님이 생전에 제자들과 함께 수행했던 승원 중에서

첫 손에 꼽히는 것이 기원정사와 죽림 정사이다.

특히 기원정사는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23번의 하안거를 보내신 곳이다.

그 기원정사의 숲을 기림(祇林)이라 하니

경주 함월산 기림사는 그런 연유에서 붙인 이름이다.

 

 

 

함월산 기림사는 1911년 31 본산本山의 하나로 불국사를 비롯한

 60여 개의 말사를 감리한 거찰이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 교통의 불편과 불국사의 복원으로 그 사세가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지금은 거꾸로 불국사의 말사가 되어 있으며

 서산대사의 직전을 이은 스님들이 주지로 주석하여 왔다.

한편 왜구가 동해를 거쳐 경주로 침입하는 길목에 위치한 기림사는

임진왜란 때 승군의 지휘본부로 사용되었으며

진남루.나팔.목비 등이 남아 있어 호국사찰임을 증명해 준다.

 

 

 

 

 

 천왕문

 

 

 

 사천왕상

 

 대적광전가는길

   종무소와 진남루가 보인다.대적광전은 진남루 뒤편에 있다.

 

 

 기림사 진남루(鎭南樓)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1호

이 건물의 기능이나 용도 및 건립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진남루란 명칭은 사적기에 의하면 '무령수전야차유진남루(無量壽殿也叉有鎭南樓)라

하여 위치에 대한 언급만 있을 뿐이다.임란 때 기림사가 水軍과 僧兵활동의 근거지로

활용되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정면 7칸,측면2칸이며,지붕은

옆면에서 보면 '사람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일반적으로 樓라고 하면

중층건물이나 다락집의 형상을 의미하나 여기서는 일반적인 형태를 벗어나 있다.

 정면이 긴 건물에서 목조구조의 허약성을 보완하는 구조 수법이 돋보이는 건축이다.

 

 

 진남루 앞면 모습

대적광전을 마주 보고 있다.

 

기림사 전남루 주련의  내용

遠觀山有色(원관산유색)  먼산은 아스라하고

近聽水無聲(근청수무성)  물소리 들릴듯말듯

春去花유在(춘거화유재)  봄은 가도 꽃은 피고        

人來鳥不驚(인래조불경)  새들도 사람을 두려워하네

頭頭皆顯露(두두개현로)  하나하나 진리를 나툼이요

物物体元平(물물체원평)  모두가 아름답게 어울림이라

如何言不會(여하언불회)  어찌 모른다하리

祗爲太分明(지위태분명)  너무나 분명한것을

 

 

 좌로부터 응진전,대적광전 약사전. 그리고 삼층석탑

 

 

  

기림사대적광전(祇林寺大寂廣殿)

 

보물 제 833호

 

대적광전은 지혜의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셔 놓은 법당을 가리킨다.

선덕여왕 때 세워진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수리한 것으로 지금 건물은

조선 인조 7년(1629)에 크게 중수하였다. 철종 13년(1862)에 큰불이 나서 경내 113칸의 건물과

동종도 손실되었다.그러나 대적광전만은 화을 면하였고,1878년과1905년에도 보수하였다.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겉모습은 절의 중심 법당답게 크고 힘차며 안쪽은 비교적 넓은 공간에 정숙하고

 위엄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공포에 조각을 많이 넣어 17세기 건축 흐름을 알 수 있고,

특히 수리를 할 때 옛 모습을 손상시키지 않아

중요한 건축사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이 건물이 山寺의 건물들이 주칸은 좁고 기둥은 높은 성향을 지닌 것과는 구별된다.

견실한 구조와 장엄한 공간 구성이 돋보이며 옛모습을 보존한

조선후기의 대표적 佛殿 가운데 하나이다.

 

 

 

 꽃살문

 

 

대적광전 주련의 내용

世尊坐道場(세존좌도량)   세존께서는 도량에 앉아 계시고

淸淨大光明(청정대광명)   청정한 대광명을 놓으시네  

比如千日出(비여천일출)   비교하건대 마치 천개의 해가 뜨는 것 같이

照曜大千界(조요대천계)   온세상을 밝게 비추네

諸法歸本來(제법귀본래)   모든법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니

常自麻滅相(상자마멸상)   항상 스스로 상을 멸해야하는 것을

 

 

 

 

 

 

 

 

기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祇林寺 塑造毘盧遮那三佛坐像)

보물  제958호

기림사 대적광전에 모셔진 불상인데 향나무로 틀을 만든 뒤 그 위에 진흙을 발라 만든 것이다.
중앙에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좌우에 노사나불(盧舍那佛)과 석가모니불을 협시로 배치한 형태이다.

근엄하면서도 정제된 얼굴, 양감이 풍부하지 않은 신체의 표현, 배부분의 띠로 묶은 옷 등에서

 16세기 초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된다

 

 

 

 

기림사약사전(祇林寺藥師殿)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2호

 

중심 건물인 대적광전 동쪽에 있는 약사전은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는 불당이다.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효종 5년(1654)에 고쳐 세운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일반적으로 측면에 출입문을 설치하는 것이 통례지만,

 여기서는 배면에 문을 둔 것이 이색적이다.


전체적으로 모습이 부드러우면서 균형이 잘 잡혀있는 건축물이다.

 

 

 

 

중생의 모든 병을 고쳐주는 부처님(여래) 즉, 약사 여래불부처불

 

 

 

 

기림사응진전(祇林寺應眞殿)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4호 

 

응진전은 아라한阿羅漢을 모신 건물로,대적광전을 중심으로 하여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신라 선덕여왕 떼에 지어진 것으로 전하지만 조선 후기에 다시 중건한 것으로 추정된다.

앞면 5칸·옆면 2칸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다.

기둥 위에서 지붕을 받치는 공포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의 건물로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은 단정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안에는 오백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건축양식을 볼 때 부분적으로 조선 중기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조선 후기(18세기 이후)의 건물이다.

 대체로 수평적인 느낌이 강한 단아한 건물이다.

 

 

 

 경주 옥석을 재질로 조성된 석조오백나한상

 

 

 

 목탑지

 

 

 

 

 좌부터 명부전(보이지않음),삼성각,삼천불전,관음전...그리고 넓은 마당

 

 

 

 관음전觀音殿

 

 

관음전에 모셔진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한국33관음성지 중 22호 기림사

 

 

 

 삼천불전,三千佛殿

 

삼천불전은 앞면 7칸, 옆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전각을 새로 조성할 때는 대개 맞배지붕 보다는 웅장함과

견고함을 나타내기 위해 흔히 팔작지붕을 선호한다.

그러나 기림사의 창건 가람에 있는 전각이 모두 맞배지붕 양식을 지녔으므로

이곳과의 조화와 균형을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삼천불전은 현재 기림사의 여러 전각 중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다.

안에는 중앙의 불단에 석가삼존상을 주불로 모시고,

그 주위에 청자로 조성한 삼천불을 봉안하였다.

후불탱은 석가가 설법하는 광경을 묘사한 영산회상탱으로서

상단의 금강상과 하단의 사천왕상을 크게 묘사하여

불법 옹호의 기능을 강조하였다.

또한 석가의 주변에 시립한 보살은 18위로서 다른 사례보다 훨씬 많은데

이는 교화의 역할을 중시한 것으로  큰 규모의 전각과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출처 : 전통사찰총서 15)

 

 

 三聖閣

 

 冥府殿

 

영험있는 지장보살상과 지장시왕상 그리고 그 탱화가 전하여

지장기도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태기나무 

 

 

 <성보박물관에 보관중인 유물들>

기림사건칠관음보살좌상

 

 

 

 사리장엄구(통일신라)

 

 

 석조치미

경북문화재자료 제301호

 

치미는 건물의 용마루 양 끝을 장식하던 것임.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고,치미 중에

돌로 된 것으로는 국내 유일한 것이다.

 

 

 범종루

종루 앞에 베롱나무가 잘 생겼다.꽃이 만개했을때 보면 멋질 것 같다.

 

 

멀리서 본 기림사 경내

 

 

 기림사 앞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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