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집寺刹이야기

하동 쌍계사雙磎寺

安永岩 2010. 8. 8. 14:21

                                       禪,茶,범패(梵唄)의 근본도량

 삼신산 쌍계사(雙磎寺)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는 삼신산의 하나로 방장산(方丈山)이라 

불리는 지리산의 남록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다.

쌍계사는 서기 723년(신라 성덕왕 22년)에 삼법(三法),대비(大悲) 두 스님이

당나라 6조 혜능(慧能)대사의 정상(頂相)을 모시고 와서 꿈의 계시대로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을  찾아 정상을 봉안하고 절을 지은 것이 처음이다.

서기830년 진감혜소(眞鑑慧昭 : 774~850)국사께서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삼법,대비스님의 옛 절터에다 육조 영당을 짓고 절을 크게 확장하여

옥천사라 하시고 이 곳에서 禪 과 불교음악인 범패(梵唄)를 가르치다

 77세로 입적하셨다.그 후 정강왕은 이웃 고을에 옥천사가 있고 산문

밖에는 두 시내가 만난다 하여 쌍계사라는 寺名을 내리셨다.

 

서산대사의 중창기를 보면 중섬,혜수스님의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다.임진왜란 후 벽암,소요,인계,백암,법훈,용담,

스님등이  중창을 하였고,1975년부터 고산스님에 의해 복원,중수 중창을

거쳐 현재와 같은 대가람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산내 암자로는 국사암과 불일암이 있고 문화재로는 국보 1점,보물 6종(20점),

지방문화재 12점,문화재 자료 5점,천연기념물 2곳 등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33관음성지,제15호 쌍계사 

 

 

 쌍계사를 들어 가기 위해 商街를 거치면서

나타나는 '쌍계(雙磎)'라고 씌어진 표지석

그 옆에 '석문(石門)'이라는 또다른 표지석이 있는데

쌍계사 입구 역활을 한다.

새로난 쌍계사 입구로 가면 볼 수 없다.

계곡 옆 상가를 돌아 가야 볼 수 있다.

 

 

 쌍계사 초입계곡

 

 쌍계사 올라가면서 나타나는 편안한 숲

 

 쌍계사 직전 우측 계곡

 

드디어 쌍계사 일주문

 

우측으로 돌아 가는 길이 있지만

대부분 일주문,금강문,천왕문을

거쳐 경내를 감상하고 우측 길로 내려 오면서

부도밭과 계곡 물소리를 벗하면서 내려 온다. 

 쌍계사 일주문,금강문,천왕문들을 차례로 통과하면서

조금씩 높이 올라 결국 팔영루를 거쳐 맨위 대웅전에 닿는다.

서서히 여유롭게 각 문을 감상하면서 올라 보기를 권한다.

대웅전에 닿기 전에 마음이 벌써 평화로와진다.

일주문과 천왕문 앞에는 작은계곡이 돌아 다리를

놓아 운치를 더하고 있다.

 

 

 쌍계사일주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

 

일주문은 俗世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 서는 첫 관문으로,

항상 한결 같은 마음으로 수도하고 敎化하라는 뜻으로 세운 문이다.

양쪽에 하나씩의 기둥을 세워 지붕을 받치게 한다 하여 一柱門이라 한다.

그러나 쌍계사일주문은 보조기둥을 세워 일주문으로서의

성격을 잃어 버렸다.이 문은 1641년(인조19)에 벽암스님이 지었다고 하며,

1977년에 고산스님에 의해 중수되었다.

쌍계사 일주문은 겹처마로 이루어진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이다.

처마를 받쳐주는 기둥머리의 장식은 역삼각형의 거대한 모습을

하면서도.출목의 간격이 넓고 가늘어 섬세하고

화려한 느낌을 준다.

 

 

 

 쌍계사 금강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金剛門은 일주문을 지나 절 안으로 들어 갈 때 두 번째로 통과하는 문이다.

여기서 천왕문과 함께 사찰에 들어갈 때 불법을 수호하고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낸다는 의미를 갖는 장소이다.이곳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악을 물리치는 金剛力士가 모셔져 있다.이 건물은 840년(신라 문성왕2)

에 진감선사가 창건하였으며,1641년(인조19)에 벽암스님,그리고 1979년에

고산스님에 의해 각각 중수되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기둥의 장식들을 간략하게

처리하였다.좌측에는 언제나 부처님에게 바짝 붙어 그를 보호하면서

비밀스런 내용을 들으려 하였다는 밀적금강(密寂金剛)을 모시고 있고

 우측에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 신을 뜻하는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을 모시고 있다.이곳 금강문처럼

금강역사를 모시고 있는 금강문은 흔치 않아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다.현판은 벽암스님의 글씨이다.

 

 

 쌍계사 천왕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6호

 

천왕문은 절 안으로 들어올 때 일주문과 금강문 다음으로

통과하는 세 번째 문으로, 사천왕상을 모신 전각이다.

사천왕은 부처에 귀의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승과 불자를 돕는 4명의 수호신이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쪽은 持國天王,서쪽은 廣目天王,

남쪽은 增長天王,북쪽은 多聞天王이 다스린다.

수미산이 부처가 거처하는 이상의 세계이고

사찰이 수미산을 이 땅에 재현한 것이라면,천왕문을

통과했다는 것은 이미 부처의 세계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뜻이다.

 1704년(숙종30)에 백봉스님이 창건,

1825년(순조25)과 1978년에 다시 중수되었다.

정면 3칸,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건물로, 공포를

간략하게 처리하여 소박하고 단아한 느낌을 준다.

천왕문안에 봉안되어 있는 사천왕상은

조성 기법이 뛰어나 천왕문의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더욱 높여 주고 있다.

 

 

 천왕문을 통과해서 만나는 팔영루 올라 가는 계단

 

 팔영루(八詠樓)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4호

 

팔영루는 통일신라 840년에 진감선사가 세웠고,

조선시대 1641년과 1978년에 보수하였다.

이곳은 우리나라 불교음악의 발상지로서,

훌륭한 음악과 많은 명인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불교음악인 범패(梵唄)의 창시자인 진감선사가 여기서

 섬진강에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여덟음률로 된 범패인 어산(魚山)을 작곡했다고 하여

팔영루라는 이름을 부쳤다고 전한다.

 

 

 

팔영루를 지나 올라서면 대웅전으로 올라서는데

대웅전 올라 서기 전 마당 한가운데

우리나라 국보인 '진공선사대공탑비'가 있다.

그 좌,우에 스님들의 정진 장소인 요사채가 있는데

그 의미가 심장 한 것 같다.

진공선사대공탑비를 늘 보면서 수행하라는 뜻일 게다.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雙磎寺 眞鑑禪師大空塔碑)

국보 제47호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신라 말의 명승 진감선사 혜소(蕙昭)의 덕을 기려 세운 탑비이다.

선사의 속성은 최씨로 804년(애장왕 5년)에 당으로 들어가 신감대사아래에서 계를 받았고,

각지르 萬行한 뒤 830년(흥덕왕 5년) 신라로 돌아와 역대의 왕에게 숭앙을 받다가,77세의

나이로 옥천사에서 입적하였다. 선사의 큰 업적은 禪 과 茶 와 梵唄를 선양한 것이다.

헌강왕(886~887 재위)은 옥천사를 쌍계사로 이름을 고쳤다.

이 비석은 887년(진성여왕1년)에 건립되었다.고운 최치원이 글을 짓고 썼는데 그의

사산비명(四山碑銘)의 하나로 꼽힌다. 전체 높이는 363cm, 비신의 높이는 213cm,

너비는 약 1m ,두께는 22.5cm이다.

 

 

 

 요사채(설선당)앞 진공선사대공탑비

 

 

 쌍계사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500호

 

722년에 신라의 대비화상과 삼법화상이 옥천사를 세운 것이 기원이다.

정강왕(886~887)이 두 계곡이 만나는 절의 지형을 보고 이름을 쌍계사로

고쳤다고 한다.임진왜란 때 불 탔던 것을 1632년에 벽암대사가 다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쌍계사의 중심인 대웅전은 부처(여래)를 모신 법당으로

정면 5칸,측면 3칸의 규모이다.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을 얹었고,

지붕과 기둥사이는 3단의 목조장식으로 받쳤는데, 밖으로 드러난

목재들이 복잡하면서도 우아한 곡선이 오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부의 천정은 모난 우물모양으로 꾸몄고,부처의 하늘을 상징하는 닫집은

화려하게 장식되었다.직선에 가깝고 비교적 높은 기둥은 건물의 규모를

크게 느끼게 한다.기둥 사이에는 위에 장방형 창과 아래에 4짝의 여닫이문을

달았다.여닫이문의 아래에 있는 8각의 창은 대개 조선시대 말부터

대웅전에 채용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시기적으로

 200년 이상 빠른 예에 속하고 있다.기둥의 전면을 가득 채운 용과 구름무늬,

내부를 빈틈없이 꾸미고 있는 비단무늬,회화적인 단청 등이 보물로서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이 대웅전은 조선시대 불교건축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우리나라 건축사와 미술사 연구에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쌍계사 석등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28호

 

대웅전 마당에서 본 앞마당과 진감선사탑신,

그리고 팔영루와 먼산...

 

대웅전 내부모습 

<좌부터>관세음보살,아미타불,보현보살,석가모니불,문수보살,약사여래불,일광보살

 

 쌍계사 명부전(冥府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3호

 

명부전에는 지옥의 중생을 구한다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사후 세계에서 자신이 지은 선악의 업보에 따라

 영혼이 가야할 길을 심판한다는 명부 10대 제왕이 모셔져 있다.

쌍계사는 일주문으로 부터 금강문,천왕문,팔영루,대웅전에

이르는 축을 기준으로 하여 각 건물의 위계를 만들었다.

명부전은 대웅전과 같은 위치의 남쪽에 배치되어 대웅전과

같은 위계의 건물이 되었다.이러한 배치는 조선후기에 불교가

민간 신앙과 결합되는 과장에서 명부 신앙이나 약사 신앙이

생겨 난 결과이다.명부전은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비는 의식이

행해지는 곳으로 지장전,시왕전,으로도 불리며 칠성각,산신각,

독성각,등과 함께 한국 불교의 토착화를 보야 주는 좋은 예이다.

이 건물은 1687년(숙종13)에 성안대사가 창건,

1710년(숙종36)에 신민대사가 보수하였다고 한다.

정면 5칸,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기둥머리의 장식을

간략하게 처리하여 소박한 느낌을 주고 있다.건물의 기단은

1단으로  낮게 하였는데, 대웅전과의 위계를 고려한 듯하다.

 

 

 쌍계사 마애불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8호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특이한 모습의 마애불이다.

큰 바위에 두터운 돋을 새김으로 불상을 새기고 불상의 둘레를

깊이 파내 감실(龕室)에 모셔진 부처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머리가 크고 살집이 많은 얼굴에 어께까지 쳐진 귀는

자비로운 느낌을 주고 있다.부처의 손은 法衣로 덮여 있는데

전체적인 모습이 아주 소박하여 부처라기 보다는 승려의

모습과 같은 마애불이다.

명부전 옆에 있다.

 

 쌍계사 옆 계곡

 

 팔상전,금당 구역은 일반인 출입금지이다.

 

<쌍계사 경내 배치도>

중간 좌측 23 ~ 30 구역이 금당출입금지구역인데 아쉬웠다.

 

범종각

 

 팔영루

 

 우측 길로 내려오면서

 

쌍계사 아래 계곡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

<20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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