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집寺刹이야기

지리산 화엄사

安永岩 2010. 7. 31. 08:55

                                 천년수행 향내 배인 화엄성지

지리산 화엄사(華嚴寺)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

 

                                                                                                                                                                  <각황전>

화엄사(華嚴寺)

화엄사는 6세기(백제 성왕 544년,신라 진흥왕 5년) 인도에서 온 연기(緣起)조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이후 신라 자장율사와 의상대사,고려의 대각국사 의천 등

여러 고승에 의해 중창되어 조선 세종 6년(1424년)에는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5,000여 칸의 건물이 전소되고

주지였던 설홍대사는 300여명의 승려를 이끌고 왜군에 대항하다 전사하는

 고난을 겪기도 하였다.

석조물을 제외하고 현재 남아 있는 전각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세워진 것들이다.

 

일주문,금강문,천왕문을 차례로 지나 보제루 앞 마당에 들어서면

높이 쌓아 올린 대석단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승방과 강당등의 수행공간이,

위로는 대웅전과 각황전을 비롯한 예불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눈여겨 볼 것은 각황전과 대웅전을 중심으로

절묘하게 조화된 가람배치의 아름다움이다.

또한 사사자삼층석탑과 공양석등에 전해오는 연기조사와 

어머니의 효 이야기도 발길을 끌고,각황전 앞의 석등과

모과나무 기둥이 독특한 구층암 등도

화엄사에서 빼놀을 수 없는 볼거리들이다.

 

 

 <전각 배치도>

 

 일주문<智異山華嚴寺> 편액은 이광 글씨

義昌君 李珖 (1589~1645)

조선 14대 선조임금의 여덟번째 서자로써 석봉 한호체를 잘 썼슴.

1636 作

華嚴寺란 이름은 '세상의 아름다운 꽃들은 물론

이름없는 온갖 꽃들을 포함한 꽃들의 장엄'을 뜻합니다.

 

일주문과 금강문 사이에 있는

'벽암국일도대선사비,碧巖國一都大禪師碑'

화엄사 중창의 주역인 벽암각성(1575~1660)의 탑비이다.

그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참전하여 크게 활약하였고,승군을 이끌고

남한산성을 축성하는등,조선후기 사회에서 불교계 위상을 높이는데

공헌하였다.또한 전란 후에는 화엄사를 비롯하여 해인사,법주사 등의

여러 사찰의 중수를 주도하여 조선 후기 불교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조선시대 1663년에 건립,높이 355.5cm

 

 금강문,金剛門

 

 天王門

 

서방 廣目天王(좌), 북방 多聞天王(우) 

광목천왕 : 수미산의 서방을 수호하고

위엄으로 나쁜것을 물리치고 넓고 큰 눈으로 국토를

바르게 지키고 중생을 이익되게 해주는 천왕

다문천왕 : 수미산의 북방을 수호하고

재복부귀를 맡고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고

설법을 많이 들으며 불법을 옹호하는 천왕

 

동방 持國天王(좌),남방 增長天王(우) 

지국천왕 : 수미산의 동방을 수호하고

백선을 편안케하며 나라를 잘 다스리고 지키는 천왕

증장천왕 : 수미산의 남방을 수호하고,

항상 염부제 중생을 관찰하고 더욱 길고 넓게

중생의 이익을 증장시켜 주는 천왕

 

 천왕문을 지나서 나타나는 보제루 앞 대석단

대석단을 올라서면 예불공간인 대웅전외 여러 전각이 차례로 둘러 쌓여 있다.

아래는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여러 요사체들이 자리 잡고 있다.

 

 

대석단을 올라서면 맞이하는 '보제루,普濟樓'

지방 유형문화재 제49호,1636년 건립 

 

화엄사는 보제루에도 특별함이 숨어 있다.승려나 신도들의 집회용인

2층 누각 건물로 대게는 그 밑을 지나 대웅전으로 들어서게 되지만

화엄사 보제루는 1층의 기둥 높이를 낮게 만들어 옆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각황전,대웅전,대석단 등이 장엄하게 펼쳐지는 중심 영역의

경관을 강조하기 위한 배려로 보인다.장식을 배제하고 단청도 하지

 않아 절제된 아름다운을 느낄 수 있다.

 

 보제루현판

 

 보제루 낮은 기둥들...

 

대웅전앞 '東五層石塔

보물 제132호,

통일신라 9세기 말~10세기초,높이 619cm

 

이 탑은 표면에 아무런 조각 장식이 없고 기단도 단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1999년에 사리 장엄구를 비롯한 다양한 유물들

이 탑 속에서 발견되었다. 

 

서오층석탑,西五層石塔,

보물 제133호 

통일신라 9세기 말~10세기 초,높이 640cm

 

이 탑은 12支神 과 여덟 무리의 신들(八部衆),四天王이

함께 새겨진 보기 드문 예로서 1995년<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비롯한 유물 47점이 탑 속에서 발견되었다.

 

 八部衆

 

 四天王

 

 각황전,覺皇殿

 

• 화엄사 각황전 

국보 제67호

본래 이름은 장육전. 부처님의 몸을 가리켜 장육금신(丈六金身)이라고 해서

본래 장육전에는 석가 여래의 모습만한 금색의 불상을 모셔놓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본래 이 건물은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의상대사가 3층, 사면 7칸의 장육전을 건립하고

사방벽에 화엄석경을 새겼다고 하나 애석하게도 장육전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당시의 모습이나 불상은 찾아볼 수가 없다.

화엄사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30년 만인 조선 인조 14년(1636) 벽암선사가 복구했으나

각황전만은 복구되지 못했다가 조선 숙종 25년(1699) 계파대사가 중건했다.

현재의 건물은 1643년(인조 12)에 재건한 것이다.

 

성층(成層)으로 높이 쌓은 석단(石壇) 위에 서향(西向)하여 서 있다.

정면 7칸(26.8m), 측면 5칸(18.3m), 높이 15m로 내부 전체가 한 칸의 방으로 만들어졌다.

충층(中層)의 웅대한 건축물로써 그 내부에는 청판(廳板)을 깔아

중앙의 5칸 3면에 기둥을 세웠다.

 기둥 하나 하나는 한 그루의 나무로만 만들어져 있다.

중앙에 불단을 설치하여 거대한 불상을 안치하고

 천장을 우물정자 모양으로 주변이 경사지게 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그 예가 드물다.

 

 

각황전 앞 석등(石燈)

국보 제12호,

통일신라 9세기 말~10세기 초, 높이 640cm

이 석등은 전해 내려 오는 우리나라 석등 가운데 가장 크다.

간주석,竿柱石은 통일신라 석등의 팔작기둥과는 달리

북처럼 배가 부른 형태이다. 

 

 

 

 

 

 覺皇殿 편액

省齊 李震休(1657~1710)글씨.조선후기 명필가로

통도사 사리탑비,선암사중수기 등을 썼으며

예조참판,함경도관찰사등을 지냈다.1703년 作

 

 원통전 前 사자탑,獅子塔

보물 제300호

통일신라 9세기 말~10세기 초, 높이 331.2cm

 

이 탑은 아래 기단의 면석에 갓기둥과 버팀기둥이 없는 불단

형식으로 몸돌은 네모난 기둥처럼 우뚝하게 길며,각 면에는

사천왕상이 얕게 새겨져 있다. 

 

각황전에서 본 대웅전쪽 가람배치 모습과 주변 산들...

좌부터 원통전,영전,대웅전,명부전.

 

 大雄殿

보물 제299호

                                                         건평 35평, 높이 35자의 목조 건물이다.

                                      원래의 건물은 1597년(선조 30 : 정유재란 때)에 불타 버렸다.

                                    현재의 건물은 1636년(인조 14)에 벽암선사(碧巖禪師)가 중건한 것이다.

                                     총 15칸· 5칸· 3칸의 단층으로 된 매우 드문 구조 양식의 건축물이다.

                                           또 내부의 불화(佛畵) 및 돌층계 등도 특수하다.

                                                편액은 지리산화엄사를 쓴 의창군 이광글씨,

 

 명부전

지장보살을 봉안한 법당

 

 影殿

원래 이곳에는 역대조사들의 영정을 봉안한 곳이었으나

현재 승방으로 개조하여 화엄 石經을 보관해 놓았다.

 

 원통전(圓通殿)

목조관세음보살좌상을 봉안

 

 라한전,羅漢殿

 

라한전앞 홍매화,紅梅花

장륙전이 있던 자리에 조선 숙종 때 각황전을 중건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계파桂波선사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丈六花라고 하며,다른 홍매화보다 꽃이 검붉어

黑梅花라 불리기도 한다.

 

< 타 블로그사진 > 

 

사사자삼층석탑 가는길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35호,

통일신라시대 세기, 높이 289.7cm

 

 이 탑은 기단에 주악천인과 공양상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고,

기단 갑석위에는 연꽃 봉오리를 든 비구니상이 서 있다.

그 위에 1층 몸 돌에는 門의 좌우에 인왕상과 사천왕상,범천상과

제석천상이 새겨져 있다. 탑을 향해 석등을  머리에 이고 앉아

있는 승려상은 찬잔을 들어 공양하는 모습이다. 이곳은 효대(孝臺)

라고도 불리는데,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어머니를 위해

탑을 세웠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탑에서는 통일신라시대 당시 신앙의 일면과 함께 조각의 독특한 재주를

                              엿볼 수 있으며 현재 국내에 남은 사자탑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불국사의 다보탑과 함께 한국석탑의 쌍벽을 이룬다.

 

                       석탑 바로 앞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의 어머니인 비구니의 모습이라고 하면

                       석등의 무릎을 꿇어 앉아 있는 숭상은 어머니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던 연기조사가

                         차공양을 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한무리의 신도들이 오더니 예불과 탑돌이를 시작했다.

 

 사사자삼층석탑에서 내려오면서 '각황전'뒷 모습

 

 각황전앞에서 본 전각들과 포근히 감싸고 있는 옆산들...

 

 대웅전에서 본 앞쪽 풍경,보제루와 종각.오층석탑...

 

화엄사영산회괘불탱(華嚴寺靈山會掛佛幀)

 

                                               국보 제 301 호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인 영산회상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화엄사에 있는 이 괘불의 크기는 길이 11.95m, 폭 7.76m이다.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보현보살과 사천왕상 등이 배치되었다.

 

화면 중앙의 석가불은 높다랗게 만둘어진 단의 연꽃받침 위에 앉아 있으며,

 

마귀를 물리친다는 의미의 손가락을 땅으로 향한 손모양을 취하고 있다.

 

둥근 얼굴과 어깨에서 부드럽고 원만한 느낌을 주고

 

필선은 매우 섬세하고 치밀해 세련미를 더한다.

 

석가불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석가를 모시며 서 있다.

 

사천왕 중 2구는 그림의 하단에, 2구는 상단에 배치해 마치 네 모서리를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각 상들의 얼굴은 둥글고 커다란 눈에 작은 코와 입, 길다란 귀를 가지고 균형잡힌 모습으로 서 있다.

 

홍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였고 중간색을 사용해 은은하면서도 밝은 느낌을 주며

 

채색무늬와 금색무늬가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조선 효종 4년(1653)에 만들어진 이 괘불은 각 상들의 늘씬하고 균형잡힌 형태,

 

밝고 선명하며 다양한 색채, 치밀하고 화려한 꽃무늬장식 등에서 17세기 중엽의 불화에서

 

보이는 특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가로 7.76m, 세로 11.95m에 이르는 거대한 화면에 석가모니불과 문수·보현보살을 중심으로

 

사천왕과 십대제자, 2구의 분신불, 시방제불(十方諸佛) 등이 적절하게 배치된 군집도 형식의 영산회상도이다.

 

중앙에 높다랗게 마련된 단(壇)의 연화좌 위에 항마촉지인의 수인(手印)을 하고 있는 본존불은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키모양 광배를 지니고 있으며 좌우 협시보살과 함께 삼존상(三尊像) 중심이지만,

 

하단부에 큼직하게 표현되어 있는 사천왕상 2구와 더불어 마치 오존도(五尊圖)처럼 구성되어 있다.

 

사천왕 중 나머지 2구는 화면 상단 좌우에 그려놓아 네 모서리를 지켜주는 것과도 같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본존불을 위시한 각 상들의 형태는 균형잡힌 모습으로 둥근 얼굴에 어깨 또한 동그스름하게 표현하여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원만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각 상의 이목구비는 커다란 눈에 작은 코와 입, 기다란 귀를 하고 있다.

 

육계가 뾰족해진 석가불의 머리에는 중앙 계주와 정상 계주가 뚜렷하며,

 

 커진 화면과는 달리 사용한 필선은 매우 섬세하고 치밀하여

 

 각기 상들에 개성과 함께 세련미를 더해주고 있다.

 

홍색과 녹색 위주의 색조는 밝고 화사한 중간색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은은하면서도 화사한 느낌을 주며,

 

특히 화려한 채색무늬와 금색무늬는 한층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늘씬하고 균형잡힌 형태에 치밀하게 장식된 꽃무늬와 작고 둥근 꽃무늬,

 

밝고 선명하며 다양한 색채 등은 17세기 중엽경의 불화에서 보이는 양식적 특징으로

 

이 괘불도는 당대를 대표하는 걸작이라 할 수 있다.

 

 

 

♧ 자연과 조화를 이룬 암자 '구층암' ♧ 

 

 화엄사에서 200여m 거리에 위치 

 

 구층암,九層庵

화엄사 대웅전 뒷쪽으로 2~300m 올라 가면 나타난다.

구층암의 매력은 자연을 닮은 데 있다.

무엇 하나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 없다.

요사채의 모과나무 기둥은 단연 자연스러움의 으뜸이다.

모과나무를 다듬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가져다 썼다.

천불의 부처가 모셔진 천불보전 앞에 단아한 석등과

배례석,모과나무가 있다. 복원하지 못하고 듬성듬성

쌓아 놓은,신라 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3층석탑마저 자연스럽게 보인다.

 

 

 

천불보전,千佛寶殿

천분의 부처님을 모셔 놓은 법당

자연과 어울러 정말로 포근한 느낌였다.

요사채 앞 마당 흙, 가운데 석등,좌우 모과나무가 자라고 있고

아무렇게 놓인 계단 따라 천불보전이 뒷산에 포근히 감싼 느낌이다.

 

요사채의 기둥 - 모과나무를 그대로 갖다 놓았다.

 

 모과나무 기둥 - 정면 모습

 

 구층암 갔다가 내려 오면서 바라본 각황전

 

마침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일행들이 스님으로 부터 뭔가 설명을 듣고 있다.

 

 화엄사 앞 계곡

 

 노고단까지 7.0km 라는 이정표

 

 화엄사 前 산 기슭에 있는 '南岳祠'

 

지리산 산신제를 지내는 곳이다.

지리산은 삼국시대부터 5岳 중

하나인 南岳으로 신성하게 여기는 산이다.

신라 때는 천왕봉에서,고려 때는 노고단에서

산신제를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은 약수제라는 이름으로 매년 곡우(4월20일경)에

제를 올리면서 맥을 잇고있다.

 

<2010,7,22> 

'- 절집寺刹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동 쌍계사雙磎寺  (0) 2010.08.08
지리산 대원사大源寺  (0) 2010.08.04
구례 사성암四聖庵  (0) 2010.07.29
청도 운문사雲門寺  (0) 2010.07.19
운문사 사리암邪離庵  (0) 2010.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