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답사기

묘한 신령스러움이 가득한 흥덕왕릉 소나무 숲

安永岩 2011. 6. 3. 00:44

 

 흥덕왕릉의 신비로운 소나무숲

 

 

 新羅 興德王陵

   사   적 : 제 30 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산 42

 

이 능은 신라 제42대 흥덕왕(興德王, 재위 : 826~836,김수종/김경휘)을 모신 곳이다.

왕은 지금의 전남 완도에 청해진을 두고 장보고를 대사로 삼아 해상권을 장악하였으며

당나라에서 차(茶)씨를 들여와 재배하도록 하였다.

 

밑둘레 65m, 직경 22.2m, 높이 6.4m 되는 이 능의 둘레에는 호석(護石)에 십이지상을

새겼고 그 주위로 돌 난간을 둘렀다. 네 모서리에는 돌사자가 있고

앞쪽에는 문인석(文人石).무인석(武人石)을 세웠는데

무인석은 서역인모습을 하고 있다.

 

삼국유사 왕력편(王歷編)에 '능은 안강 붑쪽 비화양(比火壤)에있는데

왕비 장화부인(章花夫人)과 함께 매장했다.'고 하였다.

 

1977년에 국립경주박물관과 사적관리사무소의 발굴조사 때

상당수의 비편(碑片)과 함께 '흥덕(興德)'이라 새긴 비의 조각이 나와

흥덕왕의 무덤임이 밝혀졌다.

무덤의 앞 왼쪽에는 비석을 세웠는데.

지금은 비석을 받쳤던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만 손상된 채 남아 있다.

당시의 둘레돌과 십이지신상 양식의 변천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현지 안내문>

 

 

어둠과 적막함,그 신비로움이 가득하다.

 

 

 

 

 

 

 

 

 

 

 

천년의 시간이 그대로 정지한 듯한 묘한 신비감이 드는 흥덕왕릉의 소나무들... 

 

 

 

 

 

 

 

 

 

 

 

흥덕왕릉 문인석,무인석

 

흥덕왕릉에는 원성왕릉으로 알려진 괘릉과 같이

무인석과 문인석이 각각 한 쌍씩이 서 있습니다.
이들은 왕릉을 지키는 수문장답게 한결같이 의연하면서도 위엄이 넘칩니다.

 그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인석으로,

곱슬머리에 눈이 깊숙하고 코가 우뚝한 서역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의 무인상으로 짐작건대 당시 신라가 당나라뿐만 아니라 먼 서역과도

활발하게 문물교류를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武人石


 

文人石


 

 

 

 

 

 

 

 

 

흥덕왕릉비귀부

왕릉 입구의 돌기둥이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소나무숲 속으로

다시 들어가면 엄청나게 큰 돌거북(龜趺)를 볼 수 있습니다.

헌덕왕릉비로 세웠던 지름 4~5m의 이 돌거북에는

 이미 비신(碑身)과 이수는 사라지고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흥덕왕과 장화부인의 순애보 

 

흥덕왕이 826년 10월에 즉위 한 후, 12월에는 왕비 장화부인이 죽어, 왕은 몹시 슬퍼했다.

군신은 후비를 넣는 것을 진언 했지만, 왕은 "외짝 새도 제 짝을 잃은 슬픔을 가지거늘, 하물며

훌륭한 배필을 잃었는데 어떻게 무정하게도 금방 다시 장가를 든다는 말인가?" 라고 하고,

후비를 맞이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또, 후궁의 시녀를 접근하는 일도 하지 않고,

왕의 좌우에는 단지 내시만이 있었다고 한다. 시호를 정목왕후(定穆王后)라고 하였다.

왕비를 잃은 슬픔을 한 쌍의 새에게 비유했던 것에 대해서, 삼국유사에도 기록이 남아 있다.

즉위 11년 12월(836)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흥덕이라 하였다.

조정에서는 왕의 유언에 따라 장화왕비의 능에 합장하였다.

<삼국유사>

 

참으로 가슴 찡한 순애보이다. 그 당시 왕으로써 한 여인만을 사랑하고

죽은 부인을 생각하며 즐거움을 멀리 하였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기에 그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하는가 보다.

흥덕왕릉을 보면서 머리가 숙연해진다.

 

 

 

흥덕왕릉은 신라 역대 왕릉 가운데서 규모가 크고

형식이 갖추어진 대표적인 왕릉 가운데 하나.

 

밑둘레 65m, 직경 22.2m, 높이 6.4m 되는

이 능의 둘레에는 호석(護石)에 십이지상을 새겼고

그 주위로 돌 난간을 둘렀다.

 

네 모서리에는 돌사자가 있는데

한결 같이 웃고있는 형상인데 무슨 의미일까?

 

 

 

 

 

 

 

 

 

 

 

 

 

 

 

 

봉분의 밑둘레에 세운 호석에 돋을새김한

십이지신상의 조각솜씨는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다.

능을 따라 돌난간을 세웠으나 난간기둥은 많이 없어졌다.

 

십이지신상(원숭이)

 

십이지신상(토끼)

 

 

 

 

능 앞에서 바라본 전경

 

 

왕릉을 찾은 시간이 이른시간(8시30분경)인데도

벌써 찍사(?) 4~5명이 촬영하느라 정신이 없다.

 

자고 일어 나니

잔뜩 흐린 날씨라 지금 흥덕왕릉에 가면 안개에 쌓인 신비감이

 가득한 소나무숲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찾은 것이다.그러나 기대만큼 신비함이 덜했다.

그러나 적막함,고요함,신비함을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육통리의 80대 노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왕릉의 소나무들은 휜 채로 전혀 자 라지 않고

지금의 모습 그대로였다" 며

 "옛날에 있던 상석은 부부 사이가 좋지 못한 사람들이 문지르면

애정을 되찾는다는 전설 때문에 움푹 닳았었다"

고 말했다.

.

 

 

 

 

 마치 용비늘 처럼 보이는 소나무 껍질

 

 

시인 송재학씨는 "흥덕왕릉에 가면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묘한 신비감 때문에

 

왕릉의 일부인 석물처럼 오랫동안 가만히 서있게 된다" 며

 

"특히 비틀려 자란 소나무숲에서 천년 시간의 침묵과

 

나무들의 함성이 얽힌 환상을 경험하게 된다" 고 말했다.

 

그런 흥덕왕릉이 경주시가지의 유적지들과 달리 관리인조차 없이 방치돼 있다.

 

60년대 이후 이미 네차례나 도굴당했음에도 아직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왕의 땅을 범한 후손에 대한 분노가 소나무들을 고통스럽게 뒤틀어놓은 것은 아닐까.

 

「천년의 시간」이 그대로 정지한 듯한 흥덕왕릉 소나무숲.

 

그곳은 「적막의 아우성」이 가득한 신비의 땅이다.

 

흥덕왕릉의 소나무 숲!

나는 경주 안강에 흥덕왕릉이 있다는 사실을 오래 전에 알고 있었으나

가봐야 겠다는 필을 느끼지 못하다가 4,5년 전에 비교적 늦게

한 일간지 신문에 흥덕왕릉의 신비에 쌓인 듯한 소나무숲 사진을 보고

그날로 바로 찾아갔는데... 대낮이였지만 소나무숲은 어둠과 적막함으로

나의 심신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 후로 자주 찾아가는 단골 휴식처가

되어 버렸다. 마음이 심란할 때나 머리가 복잡할 때 주로 찾는데

가면 마음의 위안을 찾는다.신라의 대부분 왕릉이 경주근처에 있는데

유독 흥덕왕릉만이 외곽지인 이곳 어래산아래에 외로이 누워 계시는

까닦을 모르겠다. 그 외로움이 나를 찾아 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201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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