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답사기

[경주] 소박하고 평범한 무덤, 신라 진평왕릉

安永岩 2012. 9. 1. 03:19

 

 

여름 끝자락,남매간 계중을 1박2일로 보문의 한 콘도에서 실시하는데

25일 토욜 자고 일어 나니 아침에 딱히 할 일이 없다.무료하게 보내느니

가까운 곳에 문화재나 답사할 요량으로 길을 나셨다.

평소에 가고 싶었던 진평왕릉과 황복사지 삼층석탑을 보기 위해

먼저 진평왕릉에 갔다.

 

내가 아는 상식으론

진평왕(제26대,579~632)은 진흥왕의 손자이며

신라 역대 왕 중에 재임 기간이 가장 긴 53년을 재임하였고

재임중 삼국통일의 기반을 잡아 준 임금였다. 아들이 없어

첫째 딸인 덕만공주(제27대 선덕여왕)에게 왕위가 계승되어

역사상 첫 여성 임금이 탄생한다.

 

 

 

진평왕릉은 경주 시내 황룡사지 동쪽 너른 평야 가운데 있다.

시내에서 보문단지로 가는 길을 접어 들어 얼마 가지 않아 우측으로 들어 간다.

낭산을 마주 하고 있으며 여느 왕릉과 달리 일반 평지에 있으며

오히려 왕릉이 위치한 지대가 낮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진평왕릉에 나무들...

 

신라왕릉은 일반적으로 야트막한 산 기슭에 위치해 있다.

예외로 시내에 있는 왕릉도 평지에 있다.이유가 뭘까?

유언에 의해서~ 하여튼 평지에 있는 왕릉에 情이 더 간다.

더구나 진평왕릉은 꾸밈이 전혀 없다.

 

 

               왕릉가는길,아름드리 고목 몇 그루가 반긴다.

 

50여년의 재임기간 동안

고구려,백제와 싸움에서도 승리하였고

멀리 수,진,당나라와도 외교을 강화하여 후에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은 임금였는데~

왕으로써 누릴 수 있는 권세를 너무 많이 누려

죽어서는 평범해지고 싶었을까?

 

 

               진평왕릉에서 가장 큰 나무

 

나무에 대해 궁금하다.

진평왕이 서거한(632년)지 가 1480년이나 되었는데

그 때 심은 나무들은 다 어디로 갔나?

혹 이 나무들이 3세 4세...아닐까?

 

 

 

다른 왕릉에는 소나무가 주종인데

여기는 소나무가 몇 그루가 없고 전부 잡목들이다.

그나마 몇 그루 없다.

오히려 그것이 평지에 누운 임금을

시원하게 한다.

 

 

아무런 장식도 없고 꾸밈도 없습니다.

그냥 흙으로 쌓아 올린 봉분만이 크네요.

일반 무덤 같아 친근감이 갑니다.

 

 

 

오래된 소나무 한그루가 봉분을 향해 절하고 있네요~

 

 

그 소나무 밑동입니다.

 

 

신라 진평왕릉(新羅 眞平王陵)

사적 제180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608

 

이 능은 신라 제26재 진평왕(眞平王,재위 579 ~ 632,김백정)이 모셔진 곳이다.

봉분 높이 7.6m, 지름 38m 로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분으로,무덤 밑둘레에 자연석을

이용해 둘레돌을 둘렀으나,현재는 몇 개만 드러나 있다.

이 능은 아무런 시설 없이 평야 한가운데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진평왕은 남산성(南山城)을 쌓았고,명활산성(明活山城)을

개축하는 등 경주방위를 중요시 하였다.

왕으로 있는 동안 고구려,백제와 싸움이 빈번했으며,

중국의 수(隋)나라.진(陳)나라,당(唐)나라와의 외교에 힘써

후일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현지 안내문 내용입니다>

 

 

왕릉을 따라 서서히 한바퀴 돕니다.

 

 

 

신라 초기에는 골품제가 있어 임금은 반드시 성골 출신이어야 하고

그것도 왕궁에 살아야 임금으로써 자격이 주어 졌는데 진평왕은 아들이 없어

더구나 형제도 없고~ 그래서 셋딸 중에 덕만공주가 딸이지만 성골출신이라

왕위에 오릅니다.그다음에 오른 진덕여왕 역시 성골 출신인데 진평왕 사촌의

딸 승만입니다.진덕여왕을 끝으로 성골은 씨가 말라 버립니다.

 

 

 

하는 수 없이

진골 출신인 김춘추가 왕이 되지요.김춘추도 따지고 보면

성골출신인데 부친이 죄를 지어 신분이 강등되어 진골이 되었다네요.

그 김춘추가 유명한 제29대 태종무열왕입니다. 김유신장군과 더불어

삼국통일의 기반을 잡고 그의 아들 제30대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합니다. 

그러니까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하기 까지 진평,선덕,진덕,무열왕을

거친 긴 대장정였습니다.참고로 신라가 망할 때 왕은 제56대

경순왕(927~935)였고요, 935년 고려 왕건에게 항복합니다.

 

 

 

진평왕릉과 그의 딸,선덕여왕릉은 서로 이웃해 있습니다.

즉 여기서 남서쪽으로 보이는 낭산 위 정상부근에 선덕여왕이

잠들어 있는데 다만 보는 방향이 서로가 남향이라 마주 보고

있다고는 못하겠네요,그래도 이웃해 있으니

체온이라도 느끼겠죠?

 

 

 

왕릉 가장자리에는 수로를 설치하였네요.

무덤 훼손을 방지하기 위함이겠지요.

 

 

엄청 넓은 평지에 봉분과 나무 몇 그루가 전부 이다 보니

이것이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속이 다 시원합니다.

더구나 주변도 논이다 보니 온통 푸른 벼가

마치 몽골초원같은 느낍입니다.

 

 

빽빽한 나무 숲 보다 여백의 美랄까?

그러한 느낌입니다.

 

 

진평왕릉에서 본 그의 딸,선덕여왕이 잠들어 있는 낭산 모습

앞 부위 정상 부근에 있습니다.참고로 낭산은 옛날 신라에서

매우 신성시한 산였습니다. 그 너머로 뿌엇게 보이는 산이

문화재의 보고,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유명한 남산입니다.

<2012,8,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