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집寺刹이야기

[경남/산청] 성철대종사 생가와 겁외사(劫外寺)

安永岩 2013. 7. 6. 15:20

 

근현대 한국불교의 거목 ! 성철큰스님께서 가신지 9년 7개월,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렸습니다.

내가 아는 성철큰스님은 생전에 무소유와 오직 수도정진하는 스님으로 유명하셨고

일체 밖으로 나오시지 않은 산속의 스님였다.80년대 초에 조계정 종정에 추대된 것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된 걸로 알고 있으며 매년 우리 범인들이 알동 말동한 법어를

세상에 내 놓아 우리들을 혼란스럽게하셨고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는 엄하게 오직 수도정진만 하도록 하였다. 

또한 산청에서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별 어려움을 모르고 자랐으며

집안의 강요에 의해 일찍 결혼하여 슬하에 딸을 하나 두고 25세에 해인사로 출가하였으며

그의 유일한 피붙인 딸은 아버지를 따라 스님이 되었으며, 그의 처도 훗날에 스님이 되었다고 하네요

참으로 佛家와 인연이 긴 가족의 일대기입니다.

생전에 그렇게도 냉정하게 모른채 했던 딸(불필스님)이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생가에 

사찰을 지어 아버지를 그리니 그녀의 孝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미워하고 원망해야 할  아버지인데 말입니다.

 

2층 누각 현판에 '지리산 겁외사'라고 쓰여 있으나

사실은 지리산과는 멀지요.그런데 굳이 지리산이라고 했을까요?

큰스님께서 평소에 지리산을 가까이 하고 좋아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일주문은 없지만 기둥 18개에 2층 누각이 자못 웅장합니다.

 

 

 

겁외사劫外寺

'상대유한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이라는 의미를 지닌 겁외사는

산청군의 협조와 불필스님의 원력으로 2001년 3월30일 창건되었습니다.

겁외사는 생가부문과 사찰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큰스님의 생가를 복원하여 선친의 호를 따라 율은고거(栗隱古居)라 이름하였는데

 전시관인 포영당(泡影堂).사랑채인 율은재(栗隱齋).안채의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찰부분은 대웅전,누각 벽해루(碧海樓),심검당(尋劍堂),요사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당 중앙에 성철스님의 동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생가와 사찰이 함께 있는 좀 특이한 절집입니다.

 

 

 

검외사는 비교적 자그만한 동네 사찰크기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불교계의 거목, 성철대종사께서 계시는 큰 절집입니다.

 

 

입구의 2층누각을 지나 안으로 들어 와서 누각을 보면

벽해루(碧海樓)라는 또 다른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스님께서 평소에 즐겨 말씀하신 紅霞穿碧海(홍하천벽해)

즉 '아침의 붉은 해가 푸른바다를 뚫고 솟아 오른다'라는 뜻의 현판입니다.

 

 

 

마당 중앙에 성철대종사의 동상이

푸른 옷을 입고 늠늠하게 지금도

들어 오는 범인들을 향해 일갈하시는 모습입니다.

다만 푸른빛의 옷이 마음에 걸리네요.

회색빛의 빛바랜 옷이 더 어우리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성철큰스님께서는 열반하실 때까지 이 누더기 옷을 즐겨 입으셨습니다.

지금의 칼날같이 선 스님복을 입으시는 멋쟁이 스님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였습니다.

그래서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신 스님이야말로 진정 큰스님였습니다.

또 한분이 있지요? 몇 해전에 열반에 드신 法頂스님이 그 분입니다.

 

 

 

 

겁외사는

성철대종사 동상을 가운데로 좌측에 대웅전,우측에 신검당,요사채가 전부인 사칠찰입니다.

 

 

대웅전 옆 큰 바위가 인상적입니다.

 

 

우측에 신검당 옆으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뚫여

지나는 차 소음에 스님께서 뭐~랄실까,궁금하네요?

옥의 티라고 할까요...

참고로 생가 뒷산은 엄혜산이라고 하네요

 

 

 

절집을 복원하면서 마당에 심은 소나무들이 멋스럽게 잘 자럈네요...

 

 

철대종사 동상입니다.

평소에 풍채가 있으신 분이라서 뚱뚱한 모습은 그렇다고 쳐도

푸른 옷은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빛바랜 누더기 회색 승복이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고요

하기사 평생을 누더기 옷을 입으셨서니 돌아 가신 후에는

좋은 옷을 입으시라고 후세 사람들의 스님을 생각하는

갸륵한 마음인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스님 존경했습니다.

살아 생전 한번도 뵙지 못하고 이렇게 돌아 가신지 10년이나 지나 뵙네요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수도정진 참선 그만하시고 좀 놀면서 편안히 계세요.

 

 

 

겁외사 뒷편에 생가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겁외사를 지나 생가로 갑니다.

 

 

생가로 들어 가는 솟을 대문 惠根門입니다.

성철스님 부친께서는 이 곳 산청지방에서는 다 알아 주는 양반에 부자집안였다네요

즉 잘 살았다는 뜻이지요

 

 

 

율은고거(栗隱古居) 안채

부친 이상언의 호를 따서 붙인 현판입니다.

스님께서 해인사 가기전까지 즉 25세까지 영주라는 이름으로 산 안채인데

해인사 백련암의 방 모습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생가터에는 안채,사랑채,기념관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랑채인 율은재(栗隱齋)입니다.

 

기념관인 포영당(泡影堂)입니다.

안에는 스님의 일대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 동생내외입니다.

 

 

생가의 살림살이인데

생가에는 사람이 기거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절 세간살이 인듯 합니다.

 

 

 

생가 마당입니다.

제법 너른 터에 포근히 여유롭게 앉자 있습니다.

 

 

 

기념관 내부 모습입니다.

 

 

 

1947년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답게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결사를 시작했던 유명한 내용입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 우리 일행들입니다.

 

 

 

생가에서 본 겁외사 마당 풍경입니다.

겁외사는 오직 성철대종사를 위해 만든 절집입니다.

 

 


동상앞에 있는 목탁과


염주입니다.

 

 


 

 

 

 

 

 

 

 

 

 

 

 

 

 

 

 

 

 

 

 

 

 

 

 

 

 

 

 

 

 

 

 

 

 

 

 

 

이제 성철 큰스님을 뒤로 하고 절집을 나섭니다.

 

겁외사(劫外寺)

경남 산청군 묵곡리 210번지

 

<201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