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旅行이야기

[여수여행]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영, 진남관(鎭南館)

安永岩 2016. 4. 15. 01:45

여수 영취산 진달래꽃 산행을 마치고 디오션호텔 가는길에

잠시 시간이 있어 들린 진남관입니다.

그동안 여러번 갔던 여수지만 진남관 관람은 첨이지 말입니다.

여수의 중요관광지를 거의 다 설렵하였지만 정작 국보 제304호 이순신장군의 혼이 서려 있는 진남관을 보지 못해서

늘 마음 한구석에 허전함과 죄송함이 있었었다.

오늘 여름같은 좋은 날씨속에 진남관을 둘러 봅니다.

 

진남관(鎭南館) 전경

국보 제304호

 

 

 

진남관은 여수경찰서에서 가깝고 앞에 돌산대교가 바라 보이는 곳 종고산기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여수 앞 바다를 바라 보고 당당히 서 있습니다. 

 

 

 

진남관을 오르는 입구에 망해루 2층 누각이 서 있고 그 아래를 통하여 계단을 올라 갑니다.

 

 

 

제법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통제문이 높게 보입니다.

통제문을 통과하면 바로 마주 하는 진남관입니다.

 

 

 

통제문에서 본 여수 앞바다

돌산대교가 보이고 그 좌측에 자산공원이 보입니다.

최근에 해상케이블카로 유명하지요

 

 

진남관(鎭南館)

남쪽의 왜적을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을 지닌 진남관입니다.

 

진남관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지휘소로 사용한 진해루(鎭海樓)가 있던 자리에,1599년(선조 32년) 통제사 이시언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1716년(숙종42년) 화재로 불탄 것을 1718년(숙종44년) 전라좌수사 이제면이 이순신 전사120년이 되는 해를 기려서 다시 세운 것입니다.

글씨는 중건 당시에 이제면이 쓴 것이다.

 

진해루(鎭海樓) 1592 5 1일 이순신 장군과 부하 장수들이 작전회의를 열어 출병 여부를 의논한 곳이며,

임진왜란 당시 삼도 수군통제영, 즉 해군사령부 건물로 사용한 건물입니.

진남관 앞에 2개의 돌기둥은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있을 때 수군들의 밤 훈련을 위해 불을 밝힐 목적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당시에는 4개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2개만이 전합니다.

 

 

 

한눈에 봐도 엄청난 건물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이순신장군의 혼이 서려 있는 이곳을 이제사 들렸다는 것이 너무 죄송스러운 맘으로 둘러 봅니다.

 

 

내부모습

 

일제 강점기인 1911년에 여수공립보통학교 등으로 사용되면서 크게 훼손되었다고 하는데

임란의 상징,진남관 건물을 학교로~  참으로 일본놈들은 아주 나쁜 족속들입니다.

서울의 경북궁을 조선박람회라는 미명으로 모든 전각들을 훼손 하고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고

수만건의 문화재를 도독질하여 가지고 가서는 지금까지 돌려 주지 않고 있고...

전국의 불지른 문화재는 또 얼마인가?

몇 해 전에 일본을 관광하면서 왜 일본에는 문화재가 많지 않고 오래된 건물들이 없는가? 하고

가이드에게 물은 적이 있었는데 대답이 일본의 성주들은 전쟁에서 이기면 모든 건물은 불에 태우고

식솔들은 지 마누라로 만들고 거느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못 된 섬나라족속들이네~하고 느낀 적이 있었다.

우리 이웃에 아주 아주 나쁜 심성을 가진 족속이 살고 있으니 이 또한 우리의 운명이 아닌가?

정신을 똑바로 차릴 일이다.지금도 독도가 지 나라라고 우기는 아주 나쁜 족속들... 

 

  

 

 

현재의 건물은 1716년 화재로 불탄 것을 2년 후인 1718(숙종 44) 전라좌수사 이제면(李濟冕)이 중창했으며,

68개의 기둥으로 구성된 건물의 규모는 정면 15, 측면 5, 건물 면적 792제곱미터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대 규모입니다.



 


 


 


 

뒤에서 본 모습

 

 

 

내부 단청

 

 

 

 

 

이순신장군의 면모가 곳곳에 서려 있는 핵심적인 유적으로,아직도 복원이 진행중입니다.

원래 진남관(鎭南館)은 조선시대에 객사로 지은 현존 국내 최대의 단층 목조건물이며

임진왜란 때는 삼도 수군통제영으로 사용된 조선수군의 중심 기지였습니다.

진남관은 1598(선조 31) 전라좌수영 객사로 건립한 건물로써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수군기지로써의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전라좌수영은 남해안 방위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여수에 자리하고 있던 수군영였습니다.


진남관이 위치한 전라좌수영은 설치 당시 성곽의 둘레가 1.7킬로미터였고,

진남관 외에 80여 동의 건물, 민가 2,024, 우물 9, 연못 1곳이 있었다.

남쪽 · 동쪽 · 서쪽에 성문이 있었으며, 남문 밖은 바로 바다와 접해 있었다.

지금은 남문 밖의 바다는 매립되어 시가지로 변해 있습니다.
전라좌수영은 그 모습을 거의 잃은 채 성곽의 일부와 진남관만 남아 있었으나

현재 부분적으로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참고>

아래 사진은 진남관 입구 우측에 있는 임란유물전시관에 있는 '전라좌수영'모습

 

 

 

 

 

진남관 앞 여수바다의 장군도와 돌산대교

 

 

 

좋은 날씨속에 많은 관람객들이 참관하려 왔네요

 

 

진남관 뒤로 종고산(220m)이 보이고~

 

종고산(鐘鼓山,220m)

임진왜란 때 이총무공께서 한산도대첩을 거두던 날 이 산이 북소리같기도 하고 종소리 같기도 한 소리를 연사흘동안이나 내는 것을 보고

이순신장군이 종고산(鐘鼓山)이라 명명하였다고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여수 앞바다 전망이 좋고 동백꽃 과 숲이 좋다는 종고산의 등산은 다음으로 미룹니다. 

 

 

 

역사는 흐른다고 했던가?

임진왜란이란 국란의 역사는 잊혀진 것일까?

그 역사를 아는가 모르는가?

그 역사의 현장은 어디로 가고

그 자리에 돌산대교가 우뚝하고 자산공원의 케이블카는 부지런히 오르내립니다.

 

 

주차장에서 본 진남관과 복원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