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山行이야기

선덕여왕과 여근곡으로 유명한 건천 오봉산(685m)

安永岩 2010. 7. 13. 12:55

                                                            여근곡(女根谷),주사암(朱砂庵),마당바위로 유명한

 

건천 오봉산(685m)

 

                                                                                                                                         <마당바위>

-일시 : 2010년 7월 7일 오전

-누구랑 : 나홀로

-코스 : 신평마을 - 유학사 - 여근곡 - 능선 - 오봉산 - 주사암- 마당바위

- 뒤돌아 왔던길로 하산 (3시간30분)

-날씨 : 뿌언 맑은날,32도로 덥다. 여름산행지는 무리로고...

 

 

경주는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이는 곳이다.

신라인의 불국토이자 이상향이었던 경주.

그래서 그곳을 찾아가는 길은 더욱 특별하다.

경주의 산들은 그 산세가 웅장하거나 계곡이 아름답다기보다는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들이지만

산자락마다 신라 천년의 역사와 설화를 간직한 곳이어서

그 역사의 향기를 더듬으며 한 번쯤 올라볼 만한 산들이 많다.

일명 주사산(朱砂山), 부산(富山)이라 불리는 오봉산(五峯山) 역시

천년이 넘는 옛 설화를 찾아 떠나 봄직한 산이다.

그리고 그 오봉산 정상에 옛 설화를 간직한 주사암이 있다.

 

<참고 : 오봉산지도>

 

 <신평리에서본 女根谷>

 

 

들머리는 유학사.

하지만 절 입구에 위치한 '여근곡 전망대'에 잠시 들러 여근곡을 먼저 보자.

숲을 나와야 숲이 보이듯 여근곡을 품은 오봉산 전체가 한눈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시선을 맨 우측 능선으로 돌리면 임신한 여인의 누운 모습도 확인된다.

실제론 여인의 머리 부분이 오봉산 정상이며

 나머지 4개의 암봉이 정상과 합쳐져 오봉산(五峰山)으로 불린다.

 

 

 

 

 <퍼온 여근곡 가을 사진>

 

1996년 늦가을 경주 서쪽의 건천(乾川)땅 한 마을 뒷산에 큰 불이 났다.

북쪽 산자락에서 연기가 치솟더니 반대편인 남쪽 기슭까지 온 산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당시 이 광경을 목격한 한 주민은 "세찬 바람까지 몰아쳐 봉태기만한 불길이 휙휙 날아다녀

반나절 만에 산 하나가 홀랑 다 타버렸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산의 한가운데

여성 성기를 닮은 독특한 형상의 한 지점은 신기하리만치 화마를 피했다.

 

<선덕여왕 과 女根谷>

여근곡에는 신라 제27대 왕인 선덕여왕(善德女王)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합니다.

 선덕여왕이 미리 안 일이 세 가지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여근곡과 관련된 것입니다.

다음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영묘사(靈廟寺) 옥문지(玉門池)에

겨울인데도 개구리들이 많이 모여들어

3, 4일 동안 울어 댄 일이 있었습니다.

나라 사람들이 괴상히 여겨 여왕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왕은 급히 각간(角干) 알천(閼川)과 필탄(弼呑) 등에게 명하여

잘 훈련된 병사 2천 명을 데리고 속히 서쪽으로 나가서

 여근곡(女根谷)을 찾아가면 반드시 적병이 있을 것이니 습격해서

모두 죽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두 각간은 왕명을 받들어 각각 군사 1천 명씩 거느리고

서쪽으로 가 물으니 부산(富山) 아래에 과연 여근곡(女根谷)이 있었고,

거기에 백제 군사 5백 명이 와서 숨어 있었으므로 이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리고 백제의 장군 우소(亐召)란 자가 남산 고개 바위 위에 숨어 있었으므로

포위하고 활을 쏘아 죽였습니다.

또한, 뒤에 백제 군사 1천3백 명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모두 쳐서 죽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군신들이 여왕에게

 어떻게 개구리를 통해 적의 군사가 숨어 있는 줄 알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왕은 "개구리가 성난 모양을 하는 것은 병사의 형상이요,

옥문(玉門)이란 곧 여자의 음부이다.

여자는 음이고 그 빛은 흰 데,

흰빛은 서쪽을 뜻하므로 군사가 서쪽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남근(男根)은 여근(女根)에 들어가면 죽는 법이니

그래서 잡기가 쉽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여근곡 이야기는 <삼국사기>에도 등장하는데,

그 시기가 겨울이 아니라 선덕여왕 5년(636년) 5월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굳이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지 않더라도

겨울에 옥문지에서 개구리가 울었다는 이야기는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으니,

<삼국유사>의 여근곡 설화는 선덕여왕을 신령스럽게 표현하려고

다소 윤색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좌측 100여m 가면 유학사이다.

산책로입구길은 하산길로 잡기로 하고 유학사로 갔다.

 

 여근곡 유학사

 

 유학사 좌측길 옥문지로 올라서다.

 

 산행초입

08:39분에 통과하다.

 

 

 

 여근곡 옥문지 샘터

 여근곡 깊숙한 곳,여자의 음핵에 해당되는 부위에

희안하게도 일년 내내 샘이 마르지 않는다.

이름하여'옥문지'다.

 

 이런 계단길을 만들어 놓았다.

오봉산은 3번째인데 그동안 이계단을 만든 듯했다.

 

 산책길 입구에서 올라 오는길과 마주치는  쉼터

여기서 숨을 고루고 다시 출발하다.

 

 계단길은 끝나고 편안한 약간 오르막길의 숲길로 접어 들다.

 

 

 남방나무(?)

잎은 장아찌를 담아 먹는데 그 향이 독특하다.

 

드디어  안부에 도착하다.

여기서 우측 능선길을 간다.

 

 제 1 전망대

여기서 보는 전망이 불어 오는 바람과 함께 시원하다.

신평리마을 드 넓은 논과 경부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을 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본 여근곡 과 신평마을

 

 가야 할 능선들...

비록 3시간 안팎의 산행시간이지만 여름에는 피해야 할 산이다.

더위에 꽤나 땀을 쏱아야 하기때문이고 능선에는 물이 없다.

 

 능선길과 임도가 만나는 곳.우측 산길이 내가 온길이다.

여기서는 다시 임도를 향해 나아간다.

 

 편안해 보이는 임도

 

 나리꽃

 땅찔레꽃

 임도를 버리고 우측길로 들어 간다.

정상 가는 길이다.

 

 꼬끼리 바위군 지나고...

 

 드디어 오봉산 정상 바위群

 

 오봉산 685m

정상은 20~30명은 족히 앉을수 있는 제법 너른 바위다.

조망은 시원하나 신평리쪽이 막혀서 조금 아쉽다.

 <나,돌바우>

 

 건천 아와쪽 전경

 

 정상에서 바로 아래로 내려서면 만나는 주사암

 

   주사암,朱沙庵

 

주사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 대사가

주암사(朱巖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 절의 내력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

(주사암의 창건 설화 참고).

그리고 이 설화에 의해서 절 이름이 지금처럼 주사암이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은 부산성을 축성할 때 의상대사는 이 절을 성에 두게 되면

 신라는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절은 성벽 바깥에 있게 부산성이 축성되었다.

그러나 그런 예언이 있었어도 신라가 멸명하기까지는

그로부터 수백년이 더 걸렸다.

또한 이 주사암에는 여태까지 죽어나간 사람이 없다고 하여

불사처(不死處)라 이르고 있다.
그러나 그 뒤의 연혁은 별로 알려진 것이 없고,

현재 남아 있는 전각과 불상을 볼 때

조선시대 후기에 중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각에서 본 부산성 목장

 

 주사암에서 '마당바위' 가는 길

여기서 50여 미터 거리이다.

 

  <마당바위>

 

주사암 마당을 지나쳐 50m 정도 더 나서게 되면

 이곳 오봉산의 명물인 마당바위 위에 올라앉게 된다.

지맥석(持麥石)이라 불리는 이 마당바위는 산정 위에 우뚝 선 평탄한 반석으로

 마치 멍석을 깔아놓은 듯한 암반으로

신라 김유신이 술을 빚기 위하여 보리를 두고 술을 공급하여

군사들을 대접하던 곳이라 하여 지맥석이 되었다고 전하며

곳곳에 움푹움푹 패여 들어간 자리들은 말발굽의 흔적이라 한다.

깎아지른 절벽 위 마당바위에 서서 바라보고 있자면

한여름엔 짙푸른 녹색의 바다, 가을엔 울긋불긋한 단풍의 향연으로 어지럽고,

안개라도 싸이는 날엔 진정 속진을 떠난 듯

잠시 산 아래 세상을 잊어버리는 선경에 든다.

고려 명종 때 벼슬에 뜻이 없이 고향인 경주에 눌러앉아

159권의 문집을 남긴 김극기가 주사암에 올라

다음과 같이 읊었다고 한다.

멀고 먼 구름 끝에 절이 있으니
속진 떠난 경지가 거기 있구나.
새나 날아오를까 굽어 오른 하늘가에
봉수대가 바위 위에 올라앉았네.

 

 

  두 소나무 사이에 앉아 마당바위 쪽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돌바우

 

마당바위 직전 두 그루 소나무가 인상적이다. 

 

 마당바위에 평평한 마당 모습

 

 선덕여왕의 죽음을 촬영한 장소.마당바위

 

 당시 촬영포스터

 

 그리고 MBC '동이'촬영지...

이곳의 풍광은 정말로 카메라에 담고 싶을 만큼 뻬어나다.

 

 사실 갑자기 여기로 온 것은 바로 이 '마당바위'가 갑자기

눈 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이고,영천 은해사 중암암에 갔다온 후로

또 높은 암자가 어딘가...를 생각다 바로 이리로 온 것이다.

여름임을 잊어 버리고서,,,오고 보니 지금 올때가 아닌데...

하여튼 시원한 풍광을 모처럼 마음껏 즐겼다.

 

 얼마나 멋진 풍광인가?

조~오 난간 끝에 앉아서 멀리 보는 풍경은 오래도록 기억 될 것이다. 

 

 건너 산 부산성 목장과 고냉지 밭들이다.

 

부산성,富山城

지금은 밭으로 변했지만 그 옛날 견고한 성였다.

나무가 무성한 아래로 성을 쌓은 돌들이 아래로 너부러저 있다. 

 

 <부산성 설명>

 

 부산성의 흔적들...

 

 다시 임도로 하산길.

임도지만 차가 없어 호젖했다.

 

 내려가는길 숲

 

천지天地의 기운이 따뜻하면,

만물은 자라나고 추우면 죽는다.

 

그러므로 성질이 차가운 사람은

누릴 복도 참으로 박하다.

 

오직 화기和氣 있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야

받아서 누릴 복 또한 두텁고 오래오래 간다.

<채근담>중에서

 산책로구간의 계단길인데

그 계단수가 장난이 아니다.

유학사 좌측으로 조금 도는 등산로를 권한다.

 

<20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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