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답사기

경주 남산 7대 보물을 찾아서

安永岩 2011. 11. 15. 02:42

 

얼마전 TV에서 1박2일의 유홍준교수님과 함께한

 '경주 남산 7대 보물을 찾아서'편을 보고

나로써는 익히 답사를 하고 여러번 찾은 코스지만 다시 한번 더 찾았다.

사실 경주는 내 블로그에 대부분을 차지 할 정도로 아끼고 사랑하는 곳이다.

시간이 어중간할 때면 무조건 경주를 떠난다. 오죽하면 경주 전체를'녹색의도시'

라고 하고 '공원'이라고 나는 부른다. 그만큼 도시가 조용하고 말이 없고 나를

푸근히 감싸 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유홍준교수님이 저술한'나의문화유산답사기' 전권(5권)를 읽고

문화유산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되었었다.교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재현해 보고

흉내도 내 보고 하였는데...이렇게 티이브이에서 보니 더욱 새로웠고 친근감이

가는 설명에 매료가 되어 잊기전에 다시 찾은 것이다.

가능한이면 그들이 앉은 자리에 앉아 보고 주변을 살펴 보고자 하였다.

 

입구 삼릉 숲

이 숲은 전국의 사진작가들의 쉼터이다.

이 날도 전국에서 온 사진작가들과 아마추어들의 서터눌림소리가 곳곳에 요란했다.

 

 

오전 8시 30분경에 찾은 남산였는데 벌써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지...

방송의 힘이 대단함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였다.다른지역 같으면 1박2일이

다녀 가면 현수막을 걸고 야단 법석인데 이 곳에는 아무런 표시나 흔적을

남기지 않았는데도 인파로 난리 법석이다.

 

 

당분간은 조용히 찾던 남산은 틀렸다.

토,일요일은 산행을 삼가해야 겠다. 이렇게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드니...

하기사 내가 즐겨 찾는 곳은 따로 있으니 관계는 없지만...

 

배리삼릉(拜里三陵) 사적 제219

위치 : 배동 73-1번지

 

배리삼릉은 경주 남산의 서쪽 기슭에 동서로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밑으로부터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무덤이라 전하고 있다.

무덤은 모두 원형으로 흙을 쌓아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배리삼릉의 주인공이 신라의 박씨 3왕이라 전하고 있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고 신라 초기의 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명왕 사이에는

무려 700여년의 차이가 있어 이들의 무덤이 한곳에 모여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신라 초기에는 이와 같은

대형무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경주 南山一圓

주 봉 : 금오봉(해발468M), 고위봉(해발494M)

구 역 : 남산동,인왕동,배동,평동,내남면 용장리,노곡리

국립공원지정 : 1968

 

<명소안내>

 南山은 금오봉과 고위봉을 잇는 남북길이 9 km,동서너비 4km 에 이르는 타원형으로

50여개의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절터 150, 석불 119구 등

수많은 유적이 발견되고 있어 남산이 신라인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불국토(佛國土)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남산은 1968년 12월 31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5년 사적 제 311호로 지정되었고,2000년에는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진 유산이다.

 

남산에는 용장골 삼층석탑(보물 제186), 칠불암 마애석불(보물 제200),

탑골마애조상군(보물 제201)등 수많은 유물과 보물을 간직하고 있어

노천불교박물관으로 불린다.

특히 이 삼릉계곡은 계곡 어귀에 3개의 능이 있어 삼릉계라 하는데 계곡이

깊고 여름에도 찬기운이 돌아 '냉골'이라고 부른다. 이 계곡에는 11개소의 절터와

15구의 불상이 산재하여 남산에서 가장 많은 유적이 있으며, 금오봉정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찾는 사람들이 많다.왼쪽 산등성이 바위 벼랑에는 관세음보살상이

새겨져 있고 그 위쪽으로 오르다보면 선각의 여섯부처님과 마래여래좌상,

석가여래좌상,그리고 남산에서 좌불로는 가장큰 상선암 마애여래좌상등

귀중한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다

 

 

 

이 삼릉은 경주 남산 코스중에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몰리는 곳이다.

그만큼 문화재도 많고 볼거리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삼릉계곡을 싫어 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 인해 눈살 찌푸리는 장면들을 많이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즐겨 찾는 코스는 따로 있다.

조용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찾을 수 있는 코스를 다닌다.

그러나 오늘은 예외이다.

유교수님의 자취를 찾아 길을 가기 때문이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냉골(삼릉계곡)에서 처음 맞이 하는 불상이다.

가슴부위에 조각선이 뚜렷하게 묘사되어 있다.

왼쪽 어께에서 흘러 내려 내려 매듭진 가사끈과 아래 옷을 동여 맨 끈,

무릅아래로 드리워진 두줄의 매듭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

석조여래좌상에서 왼쪽 산비탈을 50여미터 올라 가면 있다. 

 

 

 

남산 제1대보물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삼릉에서 30여분 오르면 계곡 건너 좌측 산기슭에 있다.

이 불상은 남산에서는 드물게 선각으로 된 여섯 분의 불상이 두 개의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아미타삼존불

앞면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서고 좌우의 보살은 끊어 앉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본존은 연꽂 위에 서서 왼손은 아래에, 오른손은 위에서 서로 마주 보게 하고, 두광만 조각되어 있다.

그 좌우의 보살상은 웃옷을 벗고 한쪽 무릅을 세운 모습을 하였다.

손에는 꽂 쟁반을 받쳐들고 있는데 두광만 조각되었으며,

 목에는 구슬 2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하였다.

이를 아미타삼존불이라고 한다.

 

석가 삼존불

안쪽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오른 어께에만 법의를 걸치고 연꽂대좌에 앉아 있다.

 머리 둘레에 두광만 새기고 몸 둘레 身光은 새기지 않았으며

왼손은 무릅에 얹고 오른손을 들어올린 모습이다.

그 좌우에는 연꽂 대좌에 두광만 조각되고

 방울 3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한 보살 두 분이 서 있다.

보통 이 세분을 석가삼존이라 부른다.

 

오른쪽 암벽위(석가삼존불)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호하가 위한 법당을 세웠던 흔적(구멍)이 남아 있다.

 

바위면에 한줄로 길게 파 놓은 이유를 묻는 문제에

 엄태웅이가 물이 흐러 내리지 않도록 수로를 만든 것이라고 답하여 맞춘 문제인데

나도 예전에는 몰랐다. 감히 부처님 머리위를 어떻게 올라 가나 싶었기 때문인데...

올라 가서 보니  부처님에게 빗물이 흐러지 않도록 선명하게 골을 파 놓았고

법당을 세운 흔적(바위구멍)도 있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저분 !!! 이 후에도 계속 만났는데 불심이 대단한 것 같았다.

불상마다 순례하면서 기도하는 모습이 나를 경건하게 만들었다.

 

부처님이 앉아 계신 곳에서 앞을 보라 ! 하여 바라 본 모습

보처님이 바라 보는 곳이 한결 같이 사바세계를 굽어 보고 계시다.

 

 

 

남산 제2대보물'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9호

이수근이가 '아프리카 불상'이라고 농한 남산 제 2대 보물,선각여래좌상이다.

이 불상은 높이 10미터 가량되는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바위면의 중간쯤에 가로로 갈라진 홈이 있는데,

위쪽에 불상을 조각하였으며,연꽂대좌의 아랫단은 홈 아래에 걸쳐 있다.

얼굴부분은 돋을새김을 하고 몸은 얕은 돋을새김인데

나머지는 선으로 표현한 독특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다.

바위 속에 얼굴만 내민 듯한 특이한 불상이고

이 전의 불상과는 차이가 있는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얼굴울 가만히 보면 화난 인상 같기도 하고 토라진 듯한 모습의 얼굴 생김이

재미있다.아마 조각한 사람이 임금을 받지 못해 그렇게 조각한 게 아닌가하고

이승기가 말했어 웃었는데 정말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까 열심히 기도하시던 그 분이 또 불상 앞에 썼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 분이 모델이 되는가 싶다,

 

 

 

불상 앞에서 부처님이 내려 보고 계시는 사바세계...

아까 보다 더 전망이 틔이고 경치가 멋지다.

그러고 보니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 곳이 명당인 것 같다.

 

 

 

남산 제3대보물 '삼릉계곡 석불좌상'

 

보물 제666호

남산에 위치한 불상중에 사연이 없는 불상이 없지만은 특히 우여곡절이 많고

사연이 많은  불상, 즉 남산 제3대 보물'삼릉계석불좌상'이다.

이제까지 제1,2,3대 보물은 높이를 조금씩 달리 하면서

삼릉계 좌측 산기슭을 오르면서 위치해 있다.

 

 

 

불상의 얼굴(빰,코,입등)과 광배 등이 크게 파손된 상태였으나 2007~2008년 경주시의 의뢰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보수 정비하였는데, 유교수님의 지적대로 문화재를 보수할

현대기술로 완백하게 복원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광배처럼 일정부분만 보수하고

여백으로 처리하여 보는이로 하여금 문화재의 훼손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하는데

그것이 현재의 복원 추세란다.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 수긍이 간다.

 

이 불상의 복원 흔적을 묻는 문제에 은지원이 쪽집게 같이 얼굴의 눈 밑으로

손으로 가르키며 맞추자 다들 기뻐하며 성형수술한 불상(?)이라고 박장대소한다.

 

 

많은 복원 끝에 탄생한 석불좌상이지만

풍만하면서도 안정감이 있는 신체표현,

대좌 와 광배의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조각수법,

몸에 밀착시켜 입은 얇은 가사,발목으로 흐르는 옷주름 등으로 보아

 석굴암 본존불상에서 완성된 통일신라시대 조각의 양식과

수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므로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3대 보물을 보고 내려 서니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보통 때 같으면 토요일이지만 이른 오전 시간에는 한산한 데 말이다.이것이 방송의 힘이겠지?

좋은 현상이라고 해야 하지만 왠지...

 

제4대보물을 찾아 가기 위해 꼭 들리는 곳, 삼선암.

이 곳에도 벌써 많은 인파들로 붐볐다.

지금은 산꾼들이 많지만 내려 오면서 보니 저마다 손에 지도를 한장씩 들고

가족단위로 온 관광객들이 많았다.물론 나처럼 남산 7대 보물을 찾아서...

 

 

 

남산 제 4대보물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磨崖釋迦如來坐像)

 

  남산 4대 보물은 삼선암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10여분 오르면 좌측 수직암벽에 계신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8

 

부처님은 산 너머 아주 멀리 속세를 바라보고 않아 계셨다.

방금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 같은 모습으로...

 

  자연암반을 파내어 광배(光背)로 삼고 마애불을 새겼는데

불상의 머리 부분은 선각이 아닌 고부조(高浮彫)의 높은

돋을새김인 입체에 가깝게 새겼고,

몸은 선각(線刻)으로 표현하여 마치 바위 속에서 홀연히

솟아 나온듯한 모습이다.

석불은 대불이며 이는 남산에 현존하는 석불 중

두 번째로 큰 석불이다.(높이 5.2m, 너비 3.5m)

   

옷자락의 선이 유연하고, 보일 듯 말듯 한 미소와

뜬 듯 안 뜬 듯 한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옷깃을 여미고

그 앞에 엎드려 절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만큼 석불의 인상이 근엄하고 위엄하기 때문일까?

 

부처님이 앉아 계신 대좌(臺座)는 두 겹의 연꽃 보상화 무늬다.

옷 주름은 유연하지만 안개에 싸인 듯 선이 뚜렷하지가 않다.

석불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지만....

그 조각술은 신의 마음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

1박2일에서

유교수님이 이제까지 보아온 불상과 차이점은? 하고 묻자 이승기가 대번에

"얼굴부분은 입체고 몸은 선각으로 조각하였다"고 하자 유교수님이 "정답"하고

외친다.그러면서 '반가사유상'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여튼 문화재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문화재를 보니 이해가 쉽고 재미가 있다.

 

 

 

 

 

부처님이 보고 계시는 풍경이다.

 

부처님께서 외로우실까 봐 옆에 수호신처럼 서 있는 소나무

 

여기서 보는 풍경이 압권이다.

이 를 유교수님은 '장소성'이라고 표현하였다.

 주변의 산세와 어울려서 멋진 풍경을 보여 주고 있다.

이 후에 삼층석탑과 신선암의 마애보살반가상에서 보는

풍경이 대미를 장식하며 사람을 매료시킨다.

지금은 서론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시원한 풍광이다.

 

 

나는 남산 정상(금오산)으로 바로 가지 않고 안부에서 좌측으로 2~3분 거리에

있는 바둑바위 와 금송정터로 갔다.

 

금송정(金松亭)

제4대보물 마애석가여래좌상이 있는 꼭데기가 금송정터 이다.

 

신라 경덕왕때 음악가'옥보고'가 가야금을 타며 즐겼던 곳이란다.

옥보고는 이곳 금송정에서 바위들과 솔잎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파란 하늘에 흘러가는 흰구름을 벗삼아 가야금을 뜯으며

세상 시름을 잊었다고 한다.

 

금송정 터 옆에 있는 '바둑바위'

여기서 경주시내가 한눈에 보이고 건너편 선도산이 저 만큼 다가 온다.

금오산 정상 보다도 여기서 보는 전망이 좋아 남산의 정상 역활을 한다.

장소도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전망을 즐기면서

맛나게 식사도 하고 한동안 머물다 내려 간다.

 

다시 안부로 내려와 올라서면 만나는 거대바위群 상사암,즉 상사바위다.

남산에서 제일로 좋은 암벽구간이며 여기서 보는 경치가

주변의 산세와 어울려서 풍치 절경이다.

비록 400여미터 밖에 되지 않는 산이지만

높이에 비해 이런 풍경은 드물다.

경주 남산이 왜 국립공원이겠는가?

물론 경주 전체가 국립공원이지만...

 

바로 이런 풍경을 선사한다.

어떤가?

 

 우측 건너편 암벽이 방금 지나온 제4대보물 마애석가여래좌상이다.

 

상사바위 정상에서...돌바우^^

 

 

상사바위에서 본 토함산쪽 풍경

좌측 흰 부분이 부엉골에서 오르면 만나는 '늠비봉 5층석탑이고,

우측 꼭데기에 보이는 것이 금오정 정자(전망대)이다.

 

 

상사바위

 

 

정상 가는 길에 본 삼릉계곡

 

남산 정상(금오산)

 

 

화강암 채취 흔적들

금오산 정상을 그냥 지나쳐 남쪽으로 임도(이영대 가는길)를 한참 내려 가다

우측으로 난 용장사곡으로 가다 경주 남산 제5대 보물 삼층석탑 못가 만나는

석재 채취 흔적들...

 

나도 이것을 처음 만난다. 삼층석탑은 여러번 와 보았지만 이런 흔적을 발견

하지 못했는데,1박2일을 보고서야 알았다.사실 오늘 경주 남산을 찾은 제일 큰 이유중에

하나가 내 눈으로 이것을 보기 위함였는데...처음에는 상사바위에 있는가 싶어 아무리

찾아 보아도 흔적이 없었다.그리고 공교롭게도 삼층석탑을 내려 가면서도 길을 피해

전망좋은 바위지대로 내려 가다 보니 발견 못했다. 석탑을 보고 길을 따라 올라오다

길 옆 바위에서 발견을 하였다. 얼마나 기뼜는지? 오늘은 그 흔적을 못 보나? 했는데 말이다.

나는 이 바위 위에서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하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그냥 지나친다.

이곳에서 한참을 쉬면서 어린이이나 학생들이 지나가면 가르켜 주고 1박2일에 나온

석재채취현장이라고 설명을 해주니 너무나 좋아라 하고 사진을 찍고 만져 보고

야단법석이다.덩달아 나도 좋았다.마치 유교수님이 된 것 처럼...

그날 방송에서 유교수님이 설명한 것처럼 화강암에 구멍을 일정 간격으로 뚷어서

 겨울에는 물을 넣어 얼게 하면 팽창이 되어 바위가 쪼개지고, 여름에는 나무나 콩을

넣고 물을 부으면 부풀어 팽창하면서 바위가 쪼개진다고 설명하였는데

나도 처음으로 아는 상식였다.우리 조상님들의 지혜가 새삼 놀랍다.

엄태웅이는 라면도 뿌르니 라면을 넣으면 안되나 해서 모두들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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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을 내려 가는 길...저 능선 아래에 있다.

 

 

특히 이 곳은 아름다운 소나무가 많다.

 

삼층석탐이 보이고...

 

 

남산 제5대보물 '용장사곡 삼층석탑'

 

보물 제186호로 지정된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이다!

 

용장사의 법당터보다 높은 곳에 세워진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자연 암반을 다듬어 아랫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면마다 기둥새김 셋이 있는 윗기단을 설치하여

산 전체를 기단으로 여기도록 고안되었다.

윗부분이 없어진 탑의 높이는 4.5 미터 밖에 되지 않지만,

하늘에 맞닿은 듯이 높게 보여 자연과의 조화미가 돋보인다.

바위 위에 세운 석탑으로써

통일신라 하대의 대표적인 우수작으로 꼽힌다.

 

 

1박2일 방송에서 유홍준교수님이 걸터 앉은 바위 위에서 본

삼층석탑과 탑 꼭데기 위에 남산 쌍봉, 그리고 그너머에 고위산이 보인다.

 

교수님이 앉아서 본 바위 위에서 보니 이런 그림이 나오는데...

 

그 전에는 몰랐다. 그저 탐 주변만 멤돌다 간 꼴이니...

실제로 이 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석탑을 보면서 감격해 하면서도

이 바위위에는 오르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다.

나는 이 바위 위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오래도록

이 경치를 즐겼다.

 

정말로 산 잔체를 기단으로 삼고 이 꼭데기에 석탑을

쌓은 석공은 과연 무슨 생각으로 이 탑을 완성하였을까?

보면 볼 수록 그저 감탄이 나올 뿐이다.

보물이 아니라 국보로도 조금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문화재는 역사성과 조각의 정교함등으로 평가를

하는지는 몰라도 이런 '장소성'도 함께 평가해 줬으면

좋겠다는 개인생각을 해본다.

 

생각의 차이겠지만 평지의 석탑이 아무리 조각성이 좋다고 해도 

천년의 세월을 고고히 장엄하게 하늘을 이고

서있는 이 석탑과의 비교를 할 수 있을까? 

 

삼층석탑과 소나무

석탑 주변에는 유달리 소나무가 많다.

 

석탑 조~아래에 용장사터이다.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쓴 곳이다.

용장사골은 김시습과 인연이 깊은 골이다.

 

 

용장사골 일명'용장골'이다. 보이는 다리는'설잠교'

삼층석탑에서 내려서면 이 설잠교를 지난다.그리고 다시

경주 남산 제6대보물을 찾아서 이 용장골을 올라 간다.

나는 개인적으로 삼릉계곡보다도 이 용장골을 좋아한다.

그만큼 계곡과 산세가 좋기 때문인데 특히 남산의 공룡능선인

이무기 능선이나 쌍봉능선을 타기 위해서 이 골을 찾는다.

 

 

1박2일에서 나온 산중호수이다.

삼릉에서 이 산중호수를 거쳐 제7대보물이 있는 칠불암까지는

매우 힘든코스로 많은 체력을 요한다.6~7시간은 족히 걸리고

차를 가져오면 곤란하다. 반대편으로 하산하기 때문이다.

남산 지도를 참고하시기를...

 

 

산중호수를 거쳐 능선으로 올라서면 만나는 칠불암 내려가는 곳인데

나는 여기서 자주 쉬거나 음식을 먹으면서 토함산쪽 풍경을 즐긴다.

 

경주 남산 제6대보물 신선암가는길...

 

1박2일 방송에서 유교수님이 감동을 주기 위해서 한사람씩 가도록 한 곳으로

이수근이가 아래를 쳐다 보면서 "여러분 이 아래는 절벽입니다..."라고 한 곳이다.

그렇다 ! 조심해야한다. 아래는 칠불암이 있는 깍아 지른 절벽인데...어떻게

이런 곳에 제6대 보물이 있단 말인가? 보면 정말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개인적으로 참으로 좋아 하는 곳이다.보살님의 모습도 너무 정겹고...

정교한 조각 솜씨도 국보급이고...더구나 전망이 죽인다!!!

유교수님은 삼층석탑을 보고 '장소성'을 강조하였는데 그 장소성이

여기서 더욱 빛을 발한다.그만큼 절묘한 곳에 보살님이 계신다.

 

 

드디어...

 

남산 제6대보물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모랑지를 돌아서면 암벽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보살반가상을 만난다.

 

 

칠불암 위의 곧바로 선 절벽면에 새겨져 있어

마치 구름위에 앉아있는 듯이 보이는데...

머리에 三面寶冠을 쓰고 있어 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얼굴은 풍만하고 오른손에는 꽂가지를 들고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서 설법하는 모양을 표현하고

온른쪽다리는 아래로 내려 놓은 자세(유희작)가 특이하다.

높이 1.4m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 작품임.

*

유교수님은 이를 글을 쓰는 글쟁이들의 표현을 빌려서 

보살반가상을 조각한 것이 아니라 바위를 한 꺼플 씩 걷어내니 그 속에서

보살반가상이 나오드라는 것이다.그 만큼 훌륭한 작품이라는 뜻 일 것이다.

또한 여기서 바라 보는 풍광이 삼층석탑에서 바라 보는 풍광 보다 

못하지 않다.특히 토함산쪽 풍광이 끝 간데 없이 시원하다.

 

 

 

남산 제7대보물 칠불암 마애석불(七佛庵 磨厓石佛)

 

 

국보 제312호

보물(제200호)에서 최근 국보로 승격된 칠불암이다.

신선암에서 내려 서면 바로 만난다.경주 남산에서 최고의 걸작품이다.

 

이 칠불암과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을 가장 짧은 거리로 만나려면

남산 동쪽 통일전에 있는 곳에서 봉화골을 오르면 1시간여 만에

만날수 있고, 능선으로 해서 봉화골로 원점회귀 산행을 해도 된다.

이 칠불암은 기도처로써도 유명하여 일년 내내 불자들로 넘쳐나고

봄이면 키를 넘는 진달래가 온 계곡을 채우고 칠불암가는 길에

잘 생긴 쭉쭉빵빵 소나무가 매우 인상적이다.

삼릉의 소나무와 대조적이다.

 

 

 

 

 이 불상들은 경주 남산 봉화골의 정상가까이 위치한 마애삼존불과 사방불로써

삼존불의 가운데 있는 본존불은 앉아 있는 모습으로

미소가 가득 담긴 양감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을 드러 내고 있다.

사방불(四方佛)은 모두 연꽂이 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각기 방향에 따라 손 모양을 달리 하고 있다. 8세기 작품.

 

 

유홍준교수님은

본존불의 좌대에 조각된 연꽂의 유연한 방향성을 극찬했다.

 

이상 경주 남산 제7대보물을 찾아서를...마치면서

 

나는 유홍준교수님을 한번도 뵌 적은 없지만 오래전에 나의문화유산답사기 1권을 처음 대하고

그의 해박한 답사기를 읽으면서 감동을 느끼고 조금씩 문화유산에 매료가 되면서 그곳에

가면 꼭 책에서 쓴 내용을 확인 하곤했다.물론 2,3권과 북한답사기4,5권을 지금도 소장하고

간혹 읽고 있다. 특히 경주편을 매권마다 다룬 것을 보면 경주에 대한 애정보다 찬란한 신라

천년의 역사성을 본 교수님의 깊은 안목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1박2일의 문화유산 답사도

경주를, 그것도 남산을 꼽고 찾은 것에 대해 당연한 결정이 아닌가 싶다.유교수님은 책에서

개인적으로 남도답사일번지라 하여 해남,강진을 첫손에 꼽았지만 문화유적답사지로는 경주가

첫손으로 꼽은 것이 아닌가 싶고 방송이다 보니 볼거리와 역사성,장소성,무엇보다 보는

시청자들을 의식하여 선정되지 않았나 싶다. 하여튼 그 동안 늘 보아 온 제7대 보물들이지만

오늘 새롭게 산행 겸 답사를 하게 되어 참으로 유익한 하루였다.

돌바우생각>

 

 

하산 하면서...

 

금오산에서 틈수골로 하산 하면서 본

마애석가여래좌상,상사바위,그아래 삼선암

자세히 보면 인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이 인산인해다!

방송의 휴유증(?)이다.

 

 

때 늦은 진달래가 피었다.

일년에 두번 피나???

 

 

다시 삼릉...

 

 

 

- The End -

<2011,11,12,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