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답사기

[경주] 노서리 고분군 - 금관총,서봉총

安永岩 2011. 12. 25. 22:57

 

경주 노서리 고분군(路西里 古墳群)

 

사적 : 제39호

경주시 노서동 112

 

 

이 곳 노서동 넓은 평지에는 크고 작은 고분이 10여 基 있다.

노동리의 봉황대고분과 더불어 그 규모에 있어 쌍벽을 이루는 제130호 고분을 비롯하여

1921년 우연히 금관이 출토되어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한 금관총(金冠塚), 1926년 스웨던의

황태자 구스타프 아돌프 6세가 발굴조사에 참여하여 금관이 출토된 서봉총,1946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 그릇이 발견되어 신라 고분에 대한 연대 추정에 도움을

준 호우총, 그 밖에 은령총,쌍상총,마총 등이 있다.

1984년 신라고분 정비 보존 사업의 일환으로 민가를 철거하고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하였다.

<현지 안내문>

 

금관총발굴터에 뛰어노는 어린이

 

역사의 의미를 알고 뛰어 놀고 있을까?

그저 잔디가 아름다운 언덕배기 공원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 천년의 역사를 뛰어 넘어 자유스럽게 뛰어 노는 어린애의 모습이 정겹다.

 

 금관총터(1921년 발굴)

현재 경주박물관에 보관 된 신라 금관이 출토된 고분터이다.

그저 산(?) 만한 무덤이 하나 사라지고 평지에 노란 잔디가 있어

설명을 듣지 않으면 이 곳이 고분터라는 사실을 모른다.

자그만하게 표지석이 서 있어도 사람들은 읽을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가장자리에 무덤의 일부 둔덕을 그대로 두어

이 곳이 무덤였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지금도

신라 천년의 역사가 도심 한가운데 누워 있는 증표이다. 

 

 

노서리 고분군의 입구 안내문

 

노서리 고분군은 경주 시내 중심 번화가 봉황로를 양옆으로 동쪽 고분군을 노동이 고분군,

서쪽 고분군을 노서리 고분으로 불리운다.봉황대는 지난번에 언급을 하였고 오늘은 노서리

고분을 언급할 까 한다. 경주는 참으로 신라 천년의 역사에 걸맞게 시내 중심가에 엄천난

고분들이 공원처럼 산재해 있다. 쉽게 말하자면 시내 중심가에 죽은자의 무덤이 산재해 있다는

애기이다.귀신이 나올 무서울 만한 애기이지만 가 보면 전혀 그러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것은 오랜 세월동안 시민들과 함께 하다 보니 자연스러움이 몸에 베어 그럴

것이다. 이 웃한 봉황대와 이 노서리 고분군을 보면 무덤이라는 사실을 잊고 그저 잔디가

잘 깔린 공원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25년전에는 이 무덤옆에 민가들이 자연스럽게

조성되어 수백년을 함께 살아 온 것이다. 지금은 그 민가를 다 철거하고 공원으로 조성

하여 또 다른 모습으로 시민들과 함께 숨을 쉬고 있다.

죽은자의 무덤이 공원화하여 시민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곳이 대릉원,삼릉,오릉,서악리고분군,등이 있다.

 

 

산(?) 만한 무덤이다 보니 무덤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주변에 잘 깔린 잔디와 나무가  어울러서 멋진 공원으로 변신하였고

걷고 싶은 공원으로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란다.

 

 

보라 ! 무덤이지만 얼마나 평화로운가?

 

서봉총터(1926년 발굴)

 

엄청난 크기의 서봉총터를 약간 높게 평지화 하고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그리고 서봉총 발굴 당시의 기록을 표지판으로 사진과 함께 전시해 놓았는데

아래 사진을 참고 하세요^^

 

첫머리에 흙이 모자라 고분을 파헤쳤다? 죽일 놈들...귀가 차다.

 

 

 

 

 

그래도 구스타프는 역사를 아는 사람였던가?

 

 

 

 

모 방송국 1박2일 경주 문화유적답사편에서 유홍준교수님께서

'서쪽에 신라 천년 역사가 금빛으로 잠들어 있는 곳으로 나를 찾아 오라'하여

유명해진 금관총. 유교수님은 경주 시내의 고분군을 애기하면서

특히 능의 아름다운 곡선미를 가르키며 위 사진을 언급하였는데

어둠속에 실 같이 살짝 드러나는 능의 곡선미를 극찬하셨다. 

언제 시간이 되면 밤에 이 곳을 다시 방문하여 어둠속의 능을

감상해 보고 싶다.

 

 

무덤이 아름답다는 느낌을 여기 경주에서 느낀다.

 

경주 시내 한복판에 한두기도 아니고 집단적으로 무덤이 산재해 있을까?

무덤이란 대게 산기숡이나 변두리에 있기 마련인데...경주에는 시내 중심가에

무덤이 집단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신라 도읍지로써 이곳이 그래도 그 당시에는

변두리였다는 증거일까? 그렇치 않고서야 이곳 중심가에 무덤이 산재해 있을

까닭이 없지 않는가? 대능원주변과 이 곳 노동리,노서리 고분군,그리고 오릉 등이

그 옛날에는 성밖에 있는 변두리였을 것이다. 이웃한 황룡사지터,안압지,

반월성,계림,첨성대 등 모두가 경주성 밖에 위치한 듯하다.

그래서 성과 가장 가까운 거리의 변두리가 아니였을까?

 

 

 

불과 25년에는 능 주변에 민가들이 산재해 있었는데 공원조성사업일환으로

모두 철거하고 이렇게 멋지게 공원화 함으로써 여백이 있는 공간으로써

무덤공원이 된 것이고 곧 시민들의 휴식처로 변한 것이다.

천년의 역사가 신라왕실의 고분군이라는 이름으로 재 탄생하여

시민들과 함께 호흡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경주시내 번화가 봉황로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좋고

주변 분위기도 조용하고 한적해서 젊은이들의

테이트장소로 인기있단다.

특히 밤에 조명아래의 능의 모습이 환상적이라

밤에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단다.

 

 

실제로 여기를 천천히 사색하면서 한바퀴 돌아 보면

마음이 한없이 평화로와짐을 느끼고...

특히 인생이란 무엇인가?

물음에 죽은자의 능을 가까이 하면서 느낌은

남다르다.즉,마음이 비워진다.인간의 욕심이 어디 까지일까?

바쁜 현대 사회의 치열한 경쟁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이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모든 것이 한낮 허황된 꿈이 아닐까?

무얼랏고 팍팍 기를 쓰고 아둥바둥 살라고 몸부림을 칠까?

욕심을 내려 놓자.

주워진 현실에 만족하며 살자.

바람부는대로 물흐르 듯이

그렇게 세월에 순응하면서 살자.

인생은 찰라라고 하지 않는가?

천년전에 산 자도 저 무덤속에 있는데...

또 천년 뒤에는 우리가 저무덤과 같이

흙으로 돌아가 있지 않은가?

인생은 정말로 미미한 한점의 티이다.

보잘 것 없는 허공의 존재이다.

마음을 비우고 현실에 만족하며

즐겁게 살자...

이 고분을 돌아 보면서 사색하면 누구나

인생의 달인이 된다.

 

 

<2011,11,어느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