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답사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 곳 - 아 ! 이견대(利見臺 )여 !

安永岩 2012. 3. 6. 23:20

 

이견대利見臺 !

감포로 오가면서 수없이 이 곳을 지나쳤지만 정작 이 곳에 발길이 닿기는 오늘 처음이다.

구룡포에서 감포로 가면서 대본리에 거의 다와서 바로 옆이라 그냥 지나치기 쉽다.

더구나 이견대옆이 바로 급 커버지점이라 머뭇머뭇 할 새도 없이 그냥 지나쳐야한다. 

오히려 역방향에서 접근하면 도로 바로 밑으로 주차장이 있다.

 

지척에 신문왕의 父王에 대한 孝心으로 지은 '감은사'가 있다.

그리고 바다에 용이 되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부왕이신 문무왕이 잠든 곳,

대왕암 !

그 대왕암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정자를 짓고 매일 같이 올라

아버지를 그리워 한 효심이 가득한 신문왕!

 

父子의 그리움과 애틋한 사랑이 존재하는 곳

이견대 !

 

나는 오늘 그 따스한 부자지간의 끈끈한 情과 사랑을 확인하고자

이 곳에 한동안 머물렸다. 

 

 

이견대利見臺

 

사적 제159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661

 

이견대利見臺

신라 문무왕文武王의 혼이 깃든 대왕암을 바라보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정자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신문왕神文王은 호국용이 된 부왕 문무왕을 위하여

감은사感恩寺축조하였다.

그리고 이견대는

신문왕이 바다에 나타난 용을 보고 나라에 크게 이익을 얻었다는 곳이며,

용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고 평화롭게 할 수 있는 옥대와

만파식전萬波息笛이라는 피리를 하나

받았다는 전설도 여기서 비롯하였다.

그 뒤 대왕암이 잘 보이는 곳에 이견대利見臺를 짓고

 역대 왕들이 문무왕릉을 참배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이견대는 중국의 주역에 있는 글귀에서 빌려

 "큰 용이 바다에 있는 것을 보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신문왕이 세웠던 이견대는 없어졌지만

1970년 발굴로 건물지를 확인하였으며,

1979년 신라의 건축양식을 추정하여

이견정利見亭을 새로 지었다. 

<현지 안내문>

 

복원하면서 이견정利見亭이라 현판을 달았다.

 

대본 해수욕장 동쪽으로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제법 너른 둔덕이다.

 

배흘림 기둥에 잘 지은 정자이다.

주변 바다 전망이 좋은 곳이고 대본 해수욕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정자 내에서 바라다 본 풍경,멀리 대왕암이 보인다.

 

 

아들인 신문왕은 부왕이 잠들어 있는 대왕암을

이 곳 이견대에 올라 매일 같이 바라다 보고 부왕을 그리워하고

이웃에 있는 감은사感恩寺에서 아버지의 극락왕생의 명복을 빌었다.

 

경주 감은사지 : http://blog.daum.net/ayam3390/8879848

 

대본리 해수욕장 앞에 문무왕

 

대한민국의 동해안 일출 명소로 유명하며

특히 가족단위로 일출을 보기 위해 1월1일은 인산인해다.

 

죽어서도 바다의 龍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으로

바다 한가운데 바위에 묻힌 문무왕! 그 혼이 잠든 바위군이

대왕암이다.

사실은 나라 사랑 보다도 뒤를 이은 아들인 신문왕의 보위를

걱정하여 아들을 지키기 위한 父情이 아니였을까?

 

오늘날 우리는,

이 곳에서 일출을 보면서 새해의 소원을 빌고

 이 이야기를 자식들에게  하면 자연히

부자지간에 깊은 정이 더욱 들것이다.

 

 

 

대왕암(신라 문무대왕의수중릉)

 

신라 제30대 왕(재위 661~681). 성은 김(金), 이름은 법민(法敏)이다.

 태종 무열왕의 맏아들로, 김유신 등과 힘을 합하여 676(문무왕 16)년

삼국 통일의 대업을 완수하였다.

 자신이 죽으면 불교식으로 화장한 뒤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사후 유언에 따라 시신은 화장하여,

 경상북도 경주시 감은사지(感恩寺址) 앞에 있는

동해 대왕암에 특이한 수중 경영 방식(水中經營方式)으로 안장되었다.

<201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