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답사기

[경주] 괘릉(掛陵)

安永岩 2012. 5. 3. 23:34

 

경주 괘릉(慶州 掛陵)

 

사적 제26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산 17

 

 이 능은 신라 제38대 원성왕(元聖王,재위 785 ~ 798,김경신)을 모신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주시내에서 울산 방면으로 약 12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밑둘레 70m, 지름 21.9m,높이 7.7m

능의 둘레에 있는 호석(護石)에는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돋을새김되어 있고 그 주위로 돌난간이

에워싸고 있다. 봉분에서 약간 떨어져 좌우에 화표석,문인석,무인석과 돌사자를 마주보게 세웠으며,

무인석은 서역인(西域人)의 얼굴 모습이어서 눈길을 끈다.

이 무덤은 당나라의 능묘제도를 본 받았으나 둘레돌,십이지신상,난간,석물 등 모든 면에서 신라 능묘 중

가장 완비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조각 수법도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괘릉'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덤의 구덩이를 팔 때 물이 괴어 널(棺)을 걸어(掛) 묻었다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왕은 독서출신과(讀書出身科)라는 제도를 두어 인재를 뽑았으며 벽골제(碧骨堤)를 고치기도 하였다.

 

 

 괘릉 가는 길,

경주에서 울산 가는 국도에서 10여분 거리로 산모랑지를 돌아 가면 나오는데,

산이라기 보다는 나즈막한 둔덕의 느낌이다.

 

괘릉은 입구에서 부터 서역인의 얼굴을 한 무인석,문인석,돌사자상이 마주하고 있고 그 끝에 릉이 있다.

배치,형태는 안강 흥덕왕릉과 흡사하다.

 

괘릉은 소나무로 우거진 솔산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데 그 앞으로는 농사 짓는 너른 평지이다.

 

괘릉은 너른 벌판에 위치해 다소 황량한 느낌을 주는데 그나마 소나무 숲으로 둘러 싸여 아늑함을 갖는다.

괘릉이 유명한 것은 릉 앞에 서 있는 석상 과 봉분 주위 석주 때문이다.

 

괘릉 석상(掛陵石像) 및 석주 일괄(石柱一括)

보물 제1427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산 17

 

이 곳 괘릉은 통일신라시대의 왕릉 가운데 가장 발달한 능묘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주변의 石物 배치나 조성기법도 훌륭하다.

왕릉 입구에서 남쪽으로 부터 화표석,무인석,문인석 각 1쌍 과 돌사자 4마리가 배치되어 있다.

이들 석물들은 동서로 약 28m 의 거리를 두고 마주 보고 있다.

2마리씩 나누어 마주보고 있는 돌사자는 동남쪽과 서북쪽의 것이 정면을 지키고,

서남쪽과 동북쪽의 것은 각각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려 남쪽과 북쪽을 지키게 하는

기발한 배치방법을 사용하였다. 4마리의 사자는 모두 자신김 넘치는 웃음을 머금고 있으며,

특히 북쪽을 지키는 사자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은 보는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이들의 석조물들은 괘릉 봉토 주위의 12지신상과 더불어 8세기 말

신라인의 문화적 독창적과 예술적 감각을 웅변하여 주는 걸작이다.

 

 


 

이 중에 무인석은 괴량감(塊量感)과 아울러 박진감 넘치는 석조물로

그 얼굴에 서역인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통일신라가 서역과도 활발한 문물교류를 하였음을 보여준다.

안강 양월리에 있는 흥덕왕릉에도 서역인을 한 무인석이 서 있다.


 


 

 

 

1쌍의 문인석도 그 늠름한 모습이 다른 능묘의 문인석에서 느껴지는 나약함과는 다르게 강건한 점이 인상적이다.

 

입구에서 우측에 있는 앞쪽의 사자상이 고개를 돌려 북쪽을 지키고 있다.

 

2마리씩 나누어 마주보고 있는 돌사자는 동남쪽과 서북쪽의 것이 정면을 지키고,

서남쪽과 동북쪽의 것은 각각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려 남쪽과 북쪽을 지키게 하는

기발한 배치방법을 사용하였다. 4마리의 사자는 모두 자신김 넘치는 웃음을 머금고 있으며,

특히 북쪽을 지키는 사자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은 보는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이들의 석조물들은 괘릉 봉토 주위의 12지신상과 더불어 8세기 말

신라인의 문화적 독창적과 예술적 감각을 웅변하여 주는 걸작이다.

 

입구에서 좌측에 있는 뒤쪽의 사자상이 고개를 돌려 남쪽을 지키고 있다.

 

 

괘릉은 여느 왕릉과 같이 산 언저리가 아닌 평지에 둔덕 같은 곳에 자리해서 시원함을 갖게 한다. 

 

 

괘릉의 소나무는 꼭 미인들의 행렬을 보는 듯 하다. 키는 높고 몸매는 날씬한게 쭉쭉빵빵이다.

여느 왕릉 주변의 오래된 덩치 큰 老松과는 다른다. 그래서 그런가?  다소 설렁한 느낌이 든다.

 

봉분에서 본 입구 모습

그저 일반인들이 농사 짓는 평지에 봉분이다 보니 차라리 서민풍의 소박함이 묻어 난다.

 

그러나 봉분 주위의 石柱 와 12지신상은 보물로 지정될 만큼 예술성이 뛰어 나다.

 

 

 

 

 

 

봉분과 석주 모습

 

 

 

 

괘릉 석상(掛陵石像) 및 석주 일괄(石柱一括)

보물 제1427호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산 17

 

이 곳 괘릉은 통일신라시대의 왕릉 가운데 가장 발달한 능묘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주변의 石物 배치나 조성기법도 훌륭하다.

왕릉 입구에서 남쪽으로 부터 화표석,무인석,문인석 각 1쌍 과 돌사자 4마리가 배치되어 있다.

이들 석물들은 동서로 약 28m 의 거리를 두고 마주 보고 있다.

2마리씩 나누어 마주보고 있는 돌사자는 동남쪽과 서북쪽의 것이 정면을 지키고,

서남쪽과 동북쪽의 것은 각각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려 남쪽과 북쪽을 지키게 하는

기발한 배치방법을 사용하였다. 4마리의 사자는 모두 자신김 넘치는 웃음을 머금고 있으며,

특히 북쪽을 지키는 사자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은 보는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이들의 석조물들은 괘릉 봉토 주위의 12지신상과 더불어 8세기 말

신라인의 문화적 독창적과 예술적 감각을 웅변하여 주는 걸작이다.

 

 

12지신상(원숭이)


12지신상(쥐)

12지신상은 다소 마모가 심한 것도 있지만 위와 같이 잘 보존되어 있다.

 

괘릉의 소나무들...

 

봉분 주위를 아늑히 둘러 싸고 있다.

 

 

옆으로 차가 지나가고 주변 사방이 들이다. 농사를 짓는 농부들과 일년내내 함께한다.

그래서 소박하고 서민풍의 왕릉이랄까? 외롭지가 않을 것 같다.

 

 

괘릉은 안강 흥덕왕릉과 비슷하지만 흥덕왕릉은 우람하고 웅장한 소나무 숲 속에 위치하여

웅장하면서 신비스러움이 가득한  느낌을 주지만 괘릉은 왠지 금방 이장한 듯한 황량함과 스산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입구에 배치된 석상과 봉묘 주변의 석주들은 보물로 지정될 만큼 예술성이 뛰어 나다.

 

 

흥덕왕릉의 소나무들은 하나 같이 고목인데 비해 괘릉의 소나무들은 왜소하다.

물론 흥덕왕릉 입구의 소나무들도 왜소하지만 숲이라고 하리만큼 대단하다.

'해자림'이라고도 하는데 사진을 좀 찍는다고 자부 하는 사람들은 한두번씩은

다녀갈 만큼 신비스러움을 가득 안고 있다.특히 안개가 자옥한 날의 해자림은

신비의 그 자체이다.흥덕왕릉의 숲을 즐기는 사람들은 일년에

수십번을 마다 않고 들리는 사진의 명소가 된지 오래다.

 

괘릉의 소나무들...

하나 같이 왜소하지만 반면 날씬한 미인다리 모습으로 각선미를 뽑내고 있다. 

 

이 곳에 火魔가 지나 갔는가? 밑둥이 검게 탄 듯한 소나무가 많이 보였다.

 

괘릉 옆 좌측에 대단한 솔숲이 있는데 들어 가 보지는 않았다.

시간이 허락하면 이 다음에 꼭 들어 가 볼 요량이다.

 

괘릉의 솔숲,주차장 모습

괘릉은 이 숲에서 벗어나 우측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