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답사기

[경주] 양동마을 - 무첨당(無添堂),대성헌(對聖軒)

安永岩 2012. 2. 9. 21:38

 

경주 양동마을 - 무첨당(無添堂)이야기

보물 제411호

 

 

경주 양동마을은

북쪽으로 나즈막한 설창산(163m) 과 남쪽으로 성주봉,동쪽에 안계댐,서쪽으로 드넓은 안강평야를

두고 평온하게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특히 설창산에서 내려온 勿(말물)자를 따라 마을이 형성되었고

그 중 무첨당은

 첫 골짜기 물봉골의 우측 높은 곳,남향으로 제법 위엄 있게 위치해 있고, 여강이씨의 종가이다.

 

물봉골 올라가는 길

 

우측으로 제법 높은 둔덕 위에 자리한 무첨당의 담장이 城처럼 웅장하다.

 

위에는 양반,아래는 서민들이 살았단다.

그래서 그런지 양동마을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 건물들은

한결 같이 높은 곳에 남향으로 터를 잡고 앉아 있다.

설창산 아래 - 관가정,향단,무첨당,대성헌,수졸당,낙선당,서백당,사호당,상춘헌,근암고택

성주봉 아래 - 안락당,이향정,심수정,강학당,두곡고택,동호정등이 그러하다.

다만 성주봉 아래 고택이나 정자는 위치상 산그늘로 인해 서북방향으로 앉아 있다. 

 

 

무첨당 주차장

곧장 올라가면 물봉동산과 설창산으로 간다.

 

곧장 올라가서 좌측은 물봉동산,우측은 설창산 혹은 내곡(內谷)으로 간다.

 

무첨당과 성주봉

설창산 아래에 있는 집들은 한결같이 성주봉을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 500여년간 많은 인물들은 배출하였는가?

 

무첨당 입구

담장이 꽤나 높다. 왜 그랬을까? 외부와 단절???

이 길로 승용차가 들어 간다.들어 가서 보니 차가 여러대 주차해 있었다?

 

무첨당

회재 이언적 선생의 부친인 성균생원 이번(李蕃)공이 살던 집으로

1460년경에 지은 여강 이씨(驪江 李氏)의 종가로써,

별당의 기능을 중요시한 간결하고 세련된 솜씨의 주택이다.

 

 

 

별당건물이기는 하지만 살림채 입구에 있고 규모도 커서 큰 사랑채 격이다.

 다시 말해서 대개의 별당이 외부인의 눈에 잘띄지 않는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반해

무첨당은 대문 옆에 자리잡고 있어 큰 사랑채와 같은 느낌을 준다.

 요즈음도 제사를 지내거나 문중의 큰 일이 있을때 사용한다고 한다.

 

 

건물의 평면은 자형으로 중앙에 6칸짜리 대청을 두고 양옆에 2칸방을 하나씩 두었으며

왼편 앞쪽에 2칸짜리 누마루를 설치하여 건물을 돋보이게 하였다.

 높직하게 달아낸 누마루는 바깥쪽으로는 널문을 달아 외부의 시선을 차단한 반면

안쪽 마당으로는 난칸을 달고 개방적으로 만들어 내부를 향해 열린 공간을 만들었다.

 

무첨당()

이언적 선생의 다섯 손자 중 맏손자인 이의윤(李宜潤)공의 호이며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뜻이다.

 

아래 각 현판 글씨들...

 

 

無添 즉 더 바랄 것이 없다?조상에게 욕 됨이 없게 한다?

하기사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 글만 읽으면 되는데...더는 무슨 욕심이 있겠는가?  양반문화로 인해 서민들만이 등골 빠졌지... 

 

오른쪽 벽에는 대원군이 집권 전에 이곳을 방문해 썼다는 죽필(竹筆) 좌해금서(左海琴書)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영남(左海) 풍류() 학문()’이라는 뜻이다.(*琴거문고금)

그래도 양동마을 여강이씨.월성손씨들의 조상대대로

내려 오면서 이어지는 청빈함과 겸손함이

주변의 칭송이 자자할

정도로 유명하다.

 

마루바닥이 닿아 빤질빤질하다.

역사의 깊이가 느껴지는 공간이다.

인위적으로 손을 댄것 보다

자연스러움이 백번 좋다.

가운데 높은 곳에 사당이 있다.

사당의 위치는 가옥의 오른편 쪽에 세우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의 사당은 왼편 뒤쪽에 세워져 있는점도 특이한 점이다.

 

 

안채는 후손들이 살고 있어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방문한 날이 설 전날이라 후손들이 설을 쐴려고 온 차들이 주차해 있었다.

대가집 명성에 비해 차들이 검소하다.

 

무첨당 대문

 

몰봉동산으로 올라 가면서 본 무첨당 원경

그 위로 수졸당 동산이 보인다.

 

 

 대성헌(對聖軒)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 34호 지정

 

 

이 집은 영조 8년(1732)에 이언적의 11세손인 이능단(李能亶)이 분가하면서 지은 것이다.

순조때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를 지낸 물와(勿窩)이재직(李在直)이 살던 집이라 한다.

우리의 옛집들은 빼어난 산봉우리를 바라보고 자리한 경우가 많은데,그러한 산봉우리를 안대라고 부른다. 

이 집은 안대를 성주봉으로 한 것인데,집의 이름도 '성주봉과 마주 하고 있다'는 뜻으로 '대성헌'이라

하였다.사랑채의 두칸 대청 안쪽에 여덟짝의 문을 달아 4짝씩 접어 올리게 돼 있는 점이 특이하다.

여강이씨 종택,무첨당 옆에 위치해 있다.

 

대성헌對聖軒

성주봉을 마주하다.는 뜻.

정말로 마루에 앉아 바라 보면 성주봉이 바로 코 앞이다.

양동마을의 편액들이 나름대로 큰 뜻이 있다.

 

관가정(觀嫁亭):곡식이 자라는 습을 보듯이 자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다는

서백당(書白堂) :월성손씨 종택,참을인忍자를 백번 쓰며 인내를 기른다는 뜻 

무첨당(無添黨) : 여강이씨 종택,'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뜻이다

 

이 곳 역시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지금은 양동마을에 들어 와서 한바퀴 빙~돌면서 곁만 보고 가기 때문에

역사의 옛 향기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아쉬움이 크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전에는 모든 집들이 개방이 되었었는데

지금은 워낙 많은 관광객들이 들어 오다 보니 사생활의 보호를 위해

제한 할 수 밖에 없다.나 역시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대성헌 사랑채와 담장

대성헌은 사랑채는 개방되어 있고 안채는 출입금지이다.

사랑채에 앉아 주변 조망을 즐길 수 있다.특히 성주봉을 마주한다.

눈 높이의 대성헌 담장 너머로 물봉동산 가는 길이 보인다

 

 

좌측에 대성헌,우측은 여강이씨 종택 '무첨당'과 뒷편 사당

그리고 그 위에 민둥산이 수졸당동산인데 올라 보면 조망이 좋다.

양동마을은 하촌,물봉동산,내곡.수졸당동산,성주봉코스등 탐방로가

산책코스로서 전혀 지루하지 않고 볼거리도 많아

한나절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물봉길로 내려 가는 길이다. 마주 보이는 峰이 성주봉이다.

 

양동마을 일반 가옥인데...

지금은 갖가지 음식을 파는 초가집이 많다.

양동에는 이런 초가민가는 거의가 평지에 있고

기와고래등집은 전망 좋은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양동마을 한가운데를 가로 질러 흐르는 도랑(川).  좌,우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양동마을 정보센타

뒷산은 성주봉이고 우측은 이향정이다.

 

 

<2012,1,22 설 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