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집寺刹이야기

[영천] 천년고찰 기룡산,묘각사

安永岩 2012. 4. 3. 23:20

 

기룡산 600높이에 위치한 풍치절경

천년고찰 묘각사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화리 

 

 

나는 잠자리에서 잠이 들기 전에

내일은 어데로 갈까 궁리를 하다가 잠을 청하는데...

잠에서 일어 나면 용수철이 튀듯이 벌떡 일어나 짐을 싸들고 길을 나선다.

가고자 하는 곳이 정해 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상이다 보니 자연스레이 받아 지고 준비가 불실할 때가 많다 보니

아예 나의 차에 베낭,등산화,스틱,침낭 등이 실여 있고

가면서 물과 간단한 먹거리만 준비하면 된다.

오늘도 눈을 뜨자 왜? 갑자기 영천 기룡산 묘각사에 가고 싶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묘각사에서 기도를 꼭 하고

묘각사에서 보는 그림 같은 경치 때문이고

산행도 간단히 할 수 있는 1석 3조의 효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나는 십수년전에 처음 묘각사를 접하고 그 경치에 정말로 홀딱했다.

그때는 초라하고 가난한 절였는데 ~ 그래도 경치만큼은 선경였다.

다시 몇 해 전에 올랐는데 그때는 한창 불사가 진행중이라 어수선 했다. 

그 묘각사를 다시 보고 싶었고

절에서 한시간 거리에 있는 정상에서 경치를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눈을 뜨자마자 영천으로 방향을 놓고 달려 간다. 

 

천왕문을 올라 전경을 보는데 백구가 포즈를 취한다. 

나중에 보니 그림이 너무 좋아 타이틀로 삼는다.

스님께서 외출하시고 오지 않아 나와 백구,둘이서 시간을 보내다.

선묘다원에서 그림 같은 일몰을 보면서 茶라도 한잔하고 싶었는데 ~

스님께서 많이 늦을 모양이시네...

 

묘각사 앞 마당까지 차가 올라가지만

 예의상 500여 미터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구불구불 길을 걸어 오르면서 다리에 힘도 좀 넣고  

잠시나마 절에 당도하기 전에 마음을 다지기 위해서이다. 

 

절 마당이 이렇게 넓어졌다.

엄청난 불사를 하면서 망가지기 쉬운 주변의 것들을

온전히 보존을 하면서 해서 그런가 하나도 흉칙한 것이 없고

자연스럽게 오래된 절 같은 느낌이다.

 

묘각사는 마당 겸 주차장이 1층에 넓게 자리잡고 있고

극락전을 위시하여 당우들은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 가야 한다.

멋스런 소나무 숲 아래는 최근에 지은 요사채이다.

 

절 앞 나즈막한 담장, 담장을 높게 하지 않은 것은 경치를 즐기기 위함이다.

 

 

기룡산 묘각사는

지금으로 부터 1300여년 전에 신라 선덕여왕(632~647) 당시

의상대사(625~702)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법당에는 아미타불 주불로 좌보처 관세음보살 우보처 지장보살의 삼존불을 모시는

극락전의 형식이었으나 현재에는 아미타불과 지장보살님만 모시고 있다.

요사채는 조선중기의대표적인 일반 가옥형태의 ㄷ자형 양식을 따랐으며

입구가 부처님어간(정중앙)을 비켜난 것이 특이하다 할 수 있다.

선조 25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사찰전모가 소실되었으나

조선 후기 여러 차례 중건,중수하였으며, 현재의 극락전은 2009년에 신축하였다.

현재 묘각사 경내에는 현 극락전,지장전,산신각,요사채 2동,공양실이 있다.   

 

묘각사들어가는 문,

일주문 겸 천왕문 겸 선묘다원,종무소가 있는 ㄷ자형 당우가 높은 담장위에 위치해 있다.

일반 가옥에서 볼 수 있는 형태라서 위엄보다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들어서자 마자 뒤돌아 보는 풍경이 仙京이다.

 

 

(左)선묘가 용이 되어 의상대사를 따르는 그림과 (右)원효와 의상이 당나라 유학가는길에 하룻밤을

자면서 마신물이 해골이라 원효는 더 이상 깨우칠 것이 없다고 신라로 되돌아 가고

의상은 예정대로 당나라로 유학길을 가는 그림이다. 

 

문헌에 따르면

조선 후기 이곳에서 지낸 기우제가 신기하리만치 영험한 비를 내렸다하니

이는 창건설화와도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 주는 듯 하다.

일설에는 이 절을 지을 당시 동해 용왕이 의상대사에게 그 법을 청하고자

말처럼 달려 날아 왔다고 하여 기룡산이라 이름을 지었으며,

날듯이 비상하여 달려온 용왕은 대사에게 곧바로 법을 설하여 줄 것을 청하였다.

이에 대사가 법성계일구를 설하자 홀연히 묘한 깨달음을 얻은 용왕은

 곧바로 승천하여 감로의 비를 뿌렸는데

이는 당시 관내 가뭄이 심하였던 농작지에 일소에 가뭄을 해소 하는 단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사께서는 이를 기리기 위해 절의 이름을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하여 묘각사라 지었다.

후대에 와서 이 곳 묘각사에서 자주 용왕제와 기우제를 지냈다는 설화가 내려 오고 있다.

 또한 이러한 설화 뒤에 특이할 만한 사실은

이 곳 일대가 관음보살이 상부하는 불보성지였음을 지명을 통해 알 수 있는데

기룡산 뒷산이 보현산이고 마을 입구부터 용화동,

삼매동,덕연동,선원동,원각동,공덕동,정각동 등 수많은 지명이

 마치 화장세계 불국정토를 표현한 듯 하다는 것이다.

 

 

사천왕상 보다 '의상과 선묘의 이야기'가

그림으로 나타나 있다.선묘가 누구인가?

영주 부석사에 가면 선묘상을 모신 전각이있는데...

의상대사께서 당나라 유학시절에 의상을 사모한 여인이 선묘가 아닌가?

선묘가 바다의 용이 되어 의상대사가 신라로 무사히 귀환 할 수 있도록 보살폈고

영주 부석사를 창건하는데도 浮石이 되어 사찰 창건에 도움을 주었다나~~~

하여튼 그 이야기가 이 곳에 그림으로 있는 걸 보니

이 묘각사도 의상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절인가 보다 했는데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신 사찰이 묘각사이다.

 

돌아보면 이러한 풍치절경의 선경이다.

백구는 재미가 없는가 고개를 떨구고 자는체 한다.

스님께서 출타하신 묘각사에는 지금,백구와 나 둘이다.

 

절 마당과 나즈막한 담장,그 너머로 仙景이 ~~~

나는 이 그림 때문에 묘각사를 좋아 한다.

 

극락전

묘각사는 아직도 불사 중이다.

극락전 내부에는 아미타불,지장보살만을 모셨고

 관음보살상은 아직도 모시지 못하고 있다.

 

요사채를 빼고는 모든 당우를 최근에 다시 복원하였다.

 

지장전

 

산신각 올라 가는길

 

극락전에서 본 모습

천왕문 좌측은 묘각사의 명물 '선묘다원'이다.

茶는 무료이며 셀프이다.

기도온 사람,산행온 사람들이 놓고 간

차를 손수 타 마신다.

여기서 차를 마시면서 밖을 보면

선경에 취한다.

 

선묘다원 과 종무소

묘각사는 이 선묘다원이 유명하다. 門은 항상 개방되어 있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다만 가지고 온 커피나 茶를 놓고 가시면

다음 사람들이 고맙게 드실 수가 있다.

 

멀리 보이는 당우가 최근에 지은 요사채이다.

 

요사채

이 앞으로 해서 기룡산을 올라 간다.

 

다시 돌아 나와 1층에서 ~~

물 맛이 좋은 옥천수에 목을 축이고~

 

좋은 경치를 구경하면서 마신 시원한 물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산신각에서 본 묘각사 전경

 

기룡산 산행후 하산길에 본 묘각사 전경

작은 절집이지만 그 품은 넓다.

 

묘각사에서 본 용화리 쪽 풍경

올라 온 길이다.

 

다시 극락전,석양에 붉은 빛을 받는 극락전 !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내려가는 길

 

내려 가는 길 S자 코스

끝 지점에 주차장이 있다.

 

영천댐 끝지점,용화리에서 묘각사까지는 5km 이다.차로 해서 갈수 있기 때문에

별문제 없지만 25인승이하 차량만이 갈 수 있다. 묘각사는 기룡산의 8부 능선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바라 보는 경치가 너무나 좋기 때문에 나는 묘각사를

좋아 하고 덤으로 뒤로 해서 한바퀴 도는 산행길도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머리가 좀 복잡하고 시원함이 그리울 때 가면 더 할 수 없이 좋은 곳이다.

茶 까지 한잔 겉드리면 더욱 멋진 풍경이 될 것이다.

<2012,3,1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