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旅行이야기

서울 인사동 거리 풍경

安永岩 2014. 3. 7. 01:26

 

정말 오랫만에 서울 인사동에 다녀 왔습니다.

서울만 가면 인사동에서 숙식을 해결한 때가 있었지요.

인생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였습니다.

이제 인사동엔 그 친구가 없습니다.하늘에 살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인사동을 멀리 했습니다.

아니 서울을 멀리 했지요.

그 친구의 빈자리가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잊을려고 할 수록 더욱 더 생각나는 친구였습니다.

오늘 그 인사동을 걸어 봅니다.

 

 

 

 

인사동 초입

거리공연을 하는 곳인데 친구와 자주 구경하곤 했지요

 

 

 

공연장 뒤쪽엔 이런 예쁜 화장실도 새로 생겼네요

 

 

 

 

 

인사동엔 거리의 노점상에 물건들이 볼만 합니다.

여기서 보고 지방에 내려 오면 몇 달 안가 나타나지요

 

 

 

 

화려한 명동보다도 인사동거리를 더 좋아합니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서민적인 모습도 있고 지저분한 듯 하지만 품격이 있고

무엇보다도 세계인을 아우러주는 풍경이 있어 좋습니다.

그래서 인사동은 세계인들의 거리입니다.

이름도 좋고요? 인.사.동.

 

 

인사동에는 100년도 헐씬 넘은 교회도 있습니다.

 

 

 

 

그 교회터가 3.1운동거사를 위해 학생대표들이 모의를 하였던 곳이였네요.

지금은 골목 피맛골에서 막걸리를 놓고 시국을 논하는 곳이 되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곳입니다.

 

 

교회 모습

 

 

 

 

 우리 어릴적에 갖고 놀던 팽이도 있네요

 

 

 

 

인사동은 옛 것이 많은 곳입니다.

그러나 거리 노점상엔 최근에 유행하는 처음보는 새로운 것들이 많은 곳이지요

얼마 가지 않아 우리 지방으로 내려 오지만...

 

 

 

 

 

 

거리는 변함이 없는데...그 친구는 지금 곁에 없네요

오늘따라 날씨만큼이나 쓸쓸한 거리입니다.

 

 

 

친구가 서울로 올라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살기 위한 생활의 방편였습니다.

지방 수협에 근무를 하다가 명태를 하고 이 것 저 것 하다가 여의치 않아

동생들과 누나들이 있는 서울로 가게 되었지요

 

 

 

처음 장착하게 된 곳이 종로세무소옆 조그만한 가게였지요

물론 동생과 누나가 얻어준 가게였는데 처음엔 손님이 없어 무척 애를 먹었지요

이유는 서울 사람 입맛에 맞는 음식이 아니다 보니 객지를 탄 것이었지요.

 

 

 

 

15평정도 되는 가게를 하나 얻어 그 곳에서 음식장사를 하면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힘든 생활이 시작되었지요.

잠이야 아무데나 자모되지만 씻는 것과 화장실이 제일 불편했다지요.

그래도 지방에 있을 땐 벗든한 집에 살았는데...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손님도 동생이 보내주고 누나가 보내주는 손님들이

태반이다 보니 마음 고생을 많이 했지요

 

 

 

 

그렇게 어렵게 3년여를 고생하다가 이제 점차 알려지면서 단골손님도 생기고 하여

다소 숨통이 트여 가기 시작하고 돈도 좀 모이기 시작하고~

 그럴 때 내가 드나 들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친구는 나와 달리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자랑 삼아 몽땅 털어 놓다 보니

 어려운 친구 살림살이를 다 알고 있었지요.그래도 밤이 새는줄 모르고 

먹었던 인사동 술맛이 오늘따라 너무그립습니다. 

 

 

 

친구와 이 인사동 거리를 거닐면서 인생을 이야기 했지요

술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친구는

대낮에도 짜장면을 시켜 놓고도

빼갈을 먹을 정도로 술을 좋아 했지요

그 짜장면집은 지금은 없네요

친구도 없고~

 

 

 

역시 인사동엔 이런 골동품 노점상이 어울립니다.

 

 

 

 

인사동엔 골동품과 미술품,공예품들이 많습니다.

서울에서 외국인이 이태원 다음으로 많이 모이는 곳이지요.

서울의 중심부답게 최신식 고층빌딩이 많지만

그 사이에 이러한 고풍스러운 인사동거리가

있어 서울이 더 돋보입니다.

 

 

 

 

인사동은 거리에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움입니다.

저도 처음엔 이 인사동거리가 너무 좋아 반드시 이 곳에서 주,야 시간을 많이 보낸 듯 합니다.

아무래도 친구가게와 가깝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볼거리 먹거리가 많았기 때문였습니다.

 

 

 

  

 

97년인가 98년도 였든가...제법 쌀쌀한 날,

거나하게 술에 취한 친구가 하는 말."아무래도 서울로 가야할 것 같아..."했다.

포항을 벗어나면 죽는 줄 알던 친구가 서울로 간다니...믿기지 않았지만

살길의 탈출구를 찾다보니 형제,누나들이 있는 곳으로

서울로 가기로 작정을 한 듯 했습니다.

그 당시 친구는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어 했지요

다니던 평생직장도 명태하고 난 뒤라~

많은 걱정이 되었지만 친구의 결정에 힘을 보탰습니다.

 

 

 

 

사실 서울은 한살이라도 젊을 때 가야지 나이들어 간다는 것은 완전 모험였지만

방법이 없었나 봅니다.그렇게 해서 서울로 갔던 친구였습니다.

다행히 동생 누나들이 종로에서 제법 잘 나가던 때라

 친구가족들이 정착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지요

 

 

 

부채가 너무 이쁘서~

 

 

 

 

인사동의 볼거리들...

가격도 비싸지 않고 눈요기 할 것도 많습니다.

사도 되고 안사도 되고 엿장수 마음대로입니다.

내가 늘 느끼는 것이지만

거리엔 사람들로 넘처나지만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장사가 장 되나 봅니다.신기하게도~

 

 

 

인사동에 유행하는 것은 곧 지방에 바로 내려 오지요

인사동에 유행하는 것은 주로 일본 동경에서 오는데

지금은 꺼구로 일본으로 건너 간다고 하네요

한류의 열풍을 타고서~~~ㅎ

 

 

 

 

추억에 젖게하는 딱지가게입니다.

 

 

 

 

딱지를 보면서 한바퀴 돌아 나오면

 

 

이렇게 생긴 아이스크림을 팝니다.

 

 

 

 

여러 문양의 예쁜 머리핀도 ...

사진을 못찍게 하는데

우째 찍었네요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제법 큰 노점상

 

 

 

 

인사동 다운 인사동거리입니다.

工房이 많습니다.

 

 

 

 

공예품가게 앞엔 어디서 온 것인지 文人像도 대문삼아 지키고~

 

 

 

 

친구는 남동생과 누나덕에 가게 손님도 많아 지고 단골도 늘어 갔습니다.

경상도 음식이라 처음엔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곧 음식의 깊은 맛을 알고

찾아 오는 출향인사들이 붐비기 시작했지요.

이 때부터 매스콤도 타기 시작하고

가끔식 연예인들도 찾고~

 

 

 

 

가게가 인사동과도 가깝고(종로세무소 옆) 종로일대의 높은 빌딩에서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들이 많타 보니 자연히 입소문이 나면서 매출이 늘어 갔습니다.

이즈음에 은행도 출입하고 세무소에 세금도 신고하고~

그렇게 형편이 나아져 갔는데...

한가지 흠이라면 향수병였습니다.

 

 

 

이쁜도자기와 서민풍 질그릇들...

 

 

 

 

요놈 참 요상한 물건입니다.

뚤뚤말아 딱자에 딱! 치면 점차 오므라 들면서 돼지모양으로 변합니다.

학교앞에서 팔면 대박 !~ㅎ

 

 

술을 먹은 날은 시간 불문하고 새벽 1시고 3시고 전화가 옵니다.

그 친구는 향수병이 심하게 걸렸지요.

서울간지가 제법 오래되었는데도 영~고향을  못잊네요

혼자 먹는 술도 늘어나고~ 가게는 갈 수록 잘되어 셈 날 정도였는데...

그 놈의 향수병 때문에 술도 더 묵고...

 

 

 

서울 '영일식당'이 각종 언론 방송을 타드니만

가게에 손님들도 예약을 하고 줄을 써고 지업으면 줄을 선 상태에서 그당시를 못참아

통닭을 시켜놓고 소주를 먹으면서 자리가 비기를 기다리는데...참 이상하데요.

우리 같으면 딴데 가서 먹겠구먼...하기사 이 집 메뉴 중에

고동구이와 막회,과메기가 있는데 그걸 먹을려고 줄을 서는 모양입니다.

친구는 서울에서 이름도 생소한 막회(여러 생선을 회초장에 버물러 먹는 회)를

처음 소개하였고,과메기 또한 이 친구의 역활이 컸지요

지금은 보편적인 음식이 되었지만...

하여튼 서울 한복판 종로,충무동일대에 유명한 맛집으로 통합니다.

방송피디 작가 연예인 유명체육인들...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찾고 입소문에 입소문, 인터넷으로 자기들끼리 퍼 날리고

그렇게 자연 홍보가 되다 보니 손님 뒤감당이 아니되고 하여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인사동 맞은편 기와집 골목에 기와집을 한채 사 버린 것입니다.

 

 

 

인사동 명물 쌈지길이 많이 변했네요.

 

 

그렇게 고생고생하여 십여년 만에 낙원상가옆에 30여평되는 기와집을 사서 '영일식당'을 새로 오픈한 날

둘은 감격하여 눈물을 펑펑 쏟았지요.친구는 그동안 고생한게 파노라마처럼 떠올랐을 겁니다.

벌써 아련한 추억입니다.

 

 

 

 

친구가 형편이 좋아져서 서울로 나들이 한 나는

친구덕에 종로에 있는 고궁과 이름난 청계천등 안가 본게 없을 정도로 많이 돌아 다니면서

술도 한잔하고 차도 마시고 거리놀이도 하고...그렇게 해서 나는 북악스카이웨어,청와대, 

남산한옥마을,경복궁,창덕궁,종묘,덕수궁,경희궁,탑골,등등 많이도 다녔지요.

 

 

 

 

특히 인사동은 골목 골목 들어 가면은 왠 음식점,술집이 그렇게도 많은지?

일명 피맛골이라고 하는 곳인데 푸짐하고 싸고 맛이 있어

셀러리맨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막걸리 한잔에 세상을 논하고 인생을 논하는 자리가 그렇게 좋았는데...

때론 밤이 새도록 거리를 헤메고 돌아 다녔는데...

그 친구가 많이 그립습니다.

 

 

 

 

 

이제 친구가 간지 4년이 흘렸네요

친구는 갔지만 남은 식구는 여전히 그자리에서 장사를 잘 하고 있습니다.

친구가 가고 난 후 들리지 않았던 영일식당을 찾아 아들놈도 격려해 주고

친구각시 얼굴도 보고 차도 한잔하고 내려 왔습니다.

물론 옆에 페리카나 주인장 내외도 보고~ 친구가 서울서 외로울 때

벗이 되어준 경기도 화성사람인데 주인 내외가 너무 순박하여

나도 단번에 마음에 들어서 서울 가면 들리는 곳입니다.

 

 

 

인사동 거리에 김삿갓 詩도 있길래 보니 왠지 슬퍼지네요

 

 

 

 

 

 

물론 그동안에 아들 대호가 결혼하여 얼마전 백일을 맞은 떡뚜꺼비 같은 아들(은재)이 있고

대호누나(민정)도 곧 포항으로 내려와 결혼하지요.나는 이들 남매를 내 아들 딸과 똑 같이 살갑게 대합니다.

항상 포항 오면 찾아 주는 이들 남매가 고맙기도 하고...며느리 복정이도 고맙고...

열시히 살아 가는 이들에게 작으나마 심적으로 큰 힘이 되어 주고 싶습니다.

친구가 살아 있었드라면 며느리 자랑,손주 자랑,사위 자랑...귀가 아프겠지만

그래도 친구가 없으니 많이 보고 싶고 그립기도 하고~

...

 

 

산사람은 우예든지 산다.

맞습니다.친구가 일구어 놓은(부부가 합심했지만) 터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열시미 사는 친구 가족들을 보니 이제 조금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친구는 없지만 그동안 식구가 셋이나 늘어 났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외로운 친구각시도 며느리 보고 손주가 태어 났으니 시간이 우예가는지~

우예 그리 예쁜지~ 모른다고 카톡스토리에 연일 올리고 난리입니다요~ㅎ 

 

 

 

앞으로도 친구가족들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하늘나라에서 보고 있을 친구도 빙그레 웃고 있네요

내가 없지만 술이나 한잔하고 가게나?

니가 없는데 무슨 맛으로 술을 먹나?

 

 

 

오늘도 인사동은 그대로 입니다.

다만 친구가 없네요.그 거리엔~~~

잘 있게 친구야,그 곳에서는 너무 일 열시미하지 말고

적당히 농떼이도 치고 유유자적하면서 살게나~ㅎ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사연을 안고 다니고 있습니다.

친구를 그리면서 인사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