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답사기

영천댐 건설로 이건된 문화재들...

安永岩 2011. 9. 8. 23:45

 

영천댐 건설로 移建된 문화재들,즉 유형문화재로 차례로 지정된

강호정,오회공 종택,하천재,사의당,삼휴정,오회당이 그것이다.

이 건물들이 차례로 이건되어 나란히 위치해 있다.

 

 

이렇게 야트막한 산 아래 나란히 차례로 위치해 있다. 영천댐 호수를 바라 보면서...

 

 

 

 이 길은 영천댐을 둘러 싸고 돌고 있는 환상의 드라이버 코스로써

봄에는 벚꽃길로 유명하고 여름에는 백일홍 꽃과 벚나무 녹음으로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멋진 길이다.

이건 문화재들이 바로 자양면소재지에서

 채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영천댐이 건설되면서 자양면에 산재해 있던

오천정씨 문화재들이1974년에서 1977년3월까지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산 78번지로

이건(移建)되어 영천댐 호수을 바라 보며

오늘에 이르르고 있다.

 

또한 이 길은 영천에 명산 기룡산을 오르는

들머리 역활을 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위 문화재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셈이다.

 

 

 

 

 

이하 차례로 소개를 하겠습니다.

 

길로 들어 서자 마자 좌측 언덕 위에 위치해 있는 강호정 가는 길

 

 

강호정(江湖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

이 건물은 조선 선조 32년(1599)에 의병장 정세아(鄭世雅)가 임란 후 고향에

돌아와 자호(紫湖)언덕에 정자를 짓고 여러 교우와 학문을 강론하였던 곳이다.

1974년 영천댐 공사로 수몰됨에 따라  용산동751번지에서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우리나라 모든 정자문화는 계곡 암반위에 그림같은 정자를 짓고

앞에는 물이 흐르고 아름드리 나무로 세월을 애기하고 있는게 특징인데

필시 이 강호정도 처음 위치는 그러한 절경였을 것이다.

 

 호수 鄭世雅

조선 선조 때의 의병장(1535~1612),자는 화숙(和叔),호는 호수()

임진왜란이 일어 나자 의병을 규합하여 영천에서 적을 격퇴하였다.

후에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려졌으나 사양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移建된 문화재가 저~위에 차례로 세워져 있다.

 

 

 

 

 

오회공종택

 

오회공 종택(五懷公 宗宅)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

 

이 가옥은 임진왜란 때 의병활약으로 영천,경주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정세아의

넷째 아들인 수번이 그의 셋째 아들 호신의 분가주택으로 조선 광해군 12년(1620)경에

건립한 것이며 묘우(廟宇)는 효종  6년(1655)에 세워졌는데 영천댐 건설공사로

 1977년 3월에 현 위치로 이전.복원하였다.

 

주택은 정면 5칸,측면 1칸의 가적지붕이고,

묘우는 정면 3칸,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하천재

 

 

하천재 부 비각(夏泉齊 附 碑閣)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3호

 

이 묘재(墓齊)는 烏川鄭氏 문중의 묘소와 강의공 정세아의 신도비를

수호하기 위하여 진주목사인 정호인이 조선 인조 15년(1637)에 창건

하였다고 한다.강의공은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많은 전공을

세웠으나 논공행상에 참여하지 앟고 江湖亭舍에서 제자를 기르며 학문을

닦아 덕망이 높았던 선비였다. 현재의 건물은 후대에 중건된 것으로

보이며 영천댐 수몰지구로 편입되어 1976년 7월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경내에는  추원당(追遠堂),신도비각 등의 건물이 있는데 모두

단순하고 소박하게 짜여져 있다.

 

 

추원당(追遠堂)

 

 

신도비각 오르는 길

 

신도비각에서 내려다 본 자양면소재지쪽 전경

 

 

신도비각 백일홍이 참으로 붉다.

의병장의 곧은 절개를 나타내는 듯 하다.

 

 

 

오회당

 

오회당(五懷堂)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6호

 

이 건물은 오회당 鄭碩玄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영조 3년(1727)

관찰사 권대규 후원으로 건립하였다.소박하게 짜여진 건물로

지붕의 형태는 맞배지붕 좌우에 눈섭지붕을 덧달아 마치

팔작지붕처럼 보이게 하였는데,

이런 형태는 이 지역에는 흔히 볼 수 있다.

 

 

 

 

 

사의당(四宜堂)

 

 

 

 

 

사의당(四宜堂)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4호

 

이 건물은 조선 영조 2년(1726)에 鄭重鎬,重岐,重範,重洛 4형제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삼귀리에 건립한 것인데 건물이 쇠락하여 순조 2년(1802) 

자양면 용산리에 옮겨 지었다가 영천댐 건설로 1977년 3월에

현재의 장소로 이전,복원하였다.

 

 

 

 

 

 

 

 

 

삼휴정

 

삼휴정(三休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5호

 

이 건물은 삼휴 鄭好信(1605~1649)이 학문을 연구하기 위하여

조선 인조13년(1635)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정호신의 자는 덕기(德基),

호는 삼휴(三休), 본관은 烏川으로 17세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형 섬기기를 부모처럼하고 스승을 예우함이 모범되었다고 한다.

조부인 호수 정세아가 살았던 곳에 정자를 짓고 그 풍경을 바라 보면서

'三休'란 시를 지었는데 이로 인해 삼휴당이란 당호가 생기게 되었다.

삼휴당은 소박한 구조의 건물로 전면에만 난간을 시설하였는데 영천댐

건설공사로 1977년 3월 현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그리고,

오천 정씨들의 '하절묘'

 

영천의 명산 기룡산 남쪽 자락 명당자리에 오천 정씨 집단 공동가족 묘지가 있다

 

 

정윤량의 孝心에 감복한 설악대사가 점지한 곳으로

여러사연을 간직한 99기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는데

입구에서 가만히 보면 풍수지리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과연 명당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사실 나는 건너편에 있는 移建 문화재 보다도

이 오천 정씨 하절묘역 주변을 보기를 더 좋아 한다.

더구나 입구에 소나무 숲과 묘역 주변의

소나무들이 한결같이 푸르름으로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한다.

천천히 소나무숲을 한 바퀴 돌아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절묘 입구 소나무 숲

 

 

 

 

 

 

 

영천댐 건설로 면소재지(자양면) 전체가 기룡산 기슭으로 移建되었는데

앞에서 언급한 6개의 유형문화재들이 원래 자리에 어떠한 주변 환경에

맞게 아름답게 위치해 있었는지...몹씨 궁금했다.모든 건물은 그 주변환경에

어울리게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짓게 마련인데...그 본래의 모습을 보지 못해

많이 아쉬웠다. 댐이 건설되면서 읍,면소재지가 깡그리 옮겨진 곳이 여럿 있다.

운문댐으로 사라진 운문면,충주댐으로 사라진 단양읍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임하댐으로 사라진 수많은 마을 들은?

전보다 더 좋은 곳으로 이전하였지만 조상대대로 내려온 보금자리 만 하랴?

그래서 더러는 떠나고 하여 축소된 읍,면,마을이 되어

설렁한 느낌이 듬은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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