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답사기

신라 무열왕릉

安永岩 2011. 9. 16. 02:16

 

와이프가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새벽 같이 경주에 가서 06시 KTX를 태워보내고

시간이 있어 경주 유적지를 몇 군데 돌아 볼 요량으로 경주 시내를 향했다.

제일 먼저  삼국 통일의 초석을 다진 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이 잠들어 있는

선도산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라 새벽 산책 나온 마을 주민들 뿐인 무열왕릉에

들어 섰다.물론 이른 새벽이라 매표를 하지 않고 경내를 돌어 볼 수 있었다.

경주의 유적지 대부분이 입장료가 500원이다.경주 유적지는 숲과 오래된 나무들로

둘러  쌓여 공원역할을 하기 때문에 현지 주민들에게 개방을 하여 아침산책을

하도록 하였다. 내가 경주에 살고 싶은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고 여유롭게 멋진 공원을 맑은공기를 마시며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행복한가?

경주는 자연환경이 너무 좋다.우리나라 어느 도시에도 없는

도시 전체의 자연친화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다.

우선 숨막히는 높은 삘딩이 없다. 도시 모습도 복잡하지 않고

여유로운 공간이 너무 많다. 숲이 지천이고,유적지 마다 오래된

소나무들이 저마다 특색있게 자라 너무 아름답고 그 숲이 좋다.

가는 곳 마다 왕릉이 있어 그 파란 잔디가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그래서 경주는 녹색의 도시라고 한다.살고 싶은 곳 경주!

그나마 가까운 곳에 있어 마음의 위로를 삼고 자주 찾는다.

오늘도...

 

무열왕릉 입구

 

동네 주민들의 새벽운동을 위해 옆 쪽문을 개방해 놓았다.

실제로 새벽에 무열왕릉과 선도산 서악리 고분군 주변을

걸어 보니 실로 오래만에 맛보는 심신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형언 할 수 없는 감동,뭐 랄까? 고요함속에  한없이 평화로운

느낌이 내 가슴 속 깊이 들어오는...조용한 환희의 희열,,,

봉긋 봉긋한 릉의 곡선이 눈 시원하게  푸름과 조화를 이루어

그것이 묘한 감동을 주었다.죽은자의 무덤이

이렇게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느낌은 생전 처음이다.

 

 

 

문을 들어 서면 바로  왕릉이 보인다.

 

 

 

무열왕릉이다. 많지 않은 소나무와 잔디에 둘러 쌓인 왕릉이다.

 

 

 

 

삼국통일의 초석을 다진 왕릉이지만 화려하지 않고 검소한 느낌이다.

그냥 일반 무덤의 느낌, 그것이다. 다소 큰 것 말고는...

 

 

신라 무열왕릉

사적 제20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842

 

이 능은 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재위,654~661,김춘추)을 안치 한 곳이다.

경주 북서쪽에 있는 선도산(仙桃山)에서 남쪽으로 뻗은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해 있다. 김춘추는 신라 中代의 첫 眞骨출신의 왕으로 삼국통일을

이룩하려고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병합하고 통일 대업의 기반을 닦았으나

통일을 완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능은 밑둘레 114m. 높이 8.7m 로 비교적 큰 편이며 능 아래쪽은 자연석을

쌓고 드문드문 큰 돌로 받쳤으나 지금은 흙 속에 묻혀 있다. 동쪽에는 비석을

세웠던 돌 거북과 머릿돌이 나왔는데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金仁問이 쓴

'太宗武烈大王之妃' 라는 글씨가 돋을새김되어 있어

이 곳이 무열왕의 능임을 알 수 있다.

<현지 안내문> 

 

왕릉을 돌아가면서...

 

 

왕릉을 에워 싸고 있는 소나무들...

 

이 소나무는 역사가 오래되지 않는다.김춘추가 간지가 1350년이 넘었는데

그 소나무들이 쓰러지고 또 나고 또 쓰러지고 나고...반복하여 지금의 소나무가

존재하는가? 김춘추 능에 그렇게 오래된 나무가 없다,

500년,1000년된 나무 한 그루라도 기념으로 있었으면

더욱 이 능이 빛날 것인데...

 

 

 

하여튼 드 넓은 구릉지에 파란 잔디 와 드문 드문 자리한 소나무가

여백을 메워 보기에 시원하여 좋다. 확 트인 느낌이랄까? 뻑뻑한 숲에

에워 쌓인 무덤보다 여유로와 좋다.공원같은 느낌이다.

오늘 나는 이 분위기에 취해 이 곳이 무덤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주변을 거닐며 만끽했다.

 

 

 

왕릉 주변에 몇 그루되지 않지만 백일홍이 왕릉과 참으로 어울린다.

경주에 이만한 크기의 왕릉이 없다.다만 계림에 내물왕릉이 주변과

어울러 크게 느껴지지만 무덤만 보면 여기에 못 미친다,

 

 

 

경주에 어느 왕릉 보다도 넓은 곳에 있으면서 나무,숲이 없는

공원 같은 여백의 공간이 몇 그루의 나무와 참으로 잘 어울린다.

지나는 길손이 복잡한 마음을 내려 놓고 평화롭게 쉬었다 가기에

딱 좋은 그런 곳이 무열왕릉이다.두 그루의 백일홍이 참으로 예쁘다.

천년의고도. 경주시를 설계하고 그림을 그리는

문화관계전문가들의 안목에 경의를 표한다...

 

 

 

무열왕릉비

 

무열왕릉비각

 

입구에서 들어 가면서 바로 우측에 있다.

 

 

新羅 太宗武烈王陵碑

국보 제25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844-1

 

이 비석은 신라 태종무열왕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 비는 무열왕릉의 좌측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빗돌(碑身)은 없어지고

거북모양의 받침돌(龜趺)과 용을 새긴 머릿돌(螭首)만 남았다.

길이 333cm, 너비 254cm, 높이 86cm이며, 거기에 조각된 돌 거북은

목을 높이 쳐들고 발을 기운차게 뻗으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으로 

신라인의 진취적인 기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높이가 110cm인 머릿돌 좌우에는 여섯마리 용이 서로 세 머리씩 뒤엉켜

여의주를 물고있는 모습이다. 앞면 중앙에 무열왕의 둘째 아들 金仁問이 쓴

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글이 돋을새김되어 있어 비의 주인공을 밝혀 주고 있다.

이 비는 표현이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있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동양권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 일컬어지는작품이다.

 

龜趺 와 螭首

 

이수[螭首]

 여섯마리 용이 서로 세 머리씩 뒤엉켜 여의주를 물고있는 모습이다.

 

 

옆 모습

 

뒷 모습

 

 

이수(비석 머릿돌)  뒷 모습.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있는 모습이 생동감 넘치게 표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