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답사기

[영천] 노계 박인로 선생을 기리는 서원 - 도계서원(道溪書院)

安永岩 2013. 11. 18. 00:15

 

盤中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柚子아니라도 품은즉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노라

 

 

우리가 어릴 때 많이 읽은

노계 박인로선생의 유명한 '조홍시가早紅枾歌'입니다.

오늘 그 詩의 주인공을 만나려 갑니다.

 

 

 

도계서원(道溪書院)은

조선 중기의 뛰어난 문장가인 노계 박인로선생(1561~1642)

높은 학덕과 충효사상을 기리기 위해 지역유림들이 설립을 하였으며

그의 문집을 인쇄한 목판각인 '박노계집판목(유형문화재 제68호)'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 나즈막한 야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원앞에 아담한 저수지가 있어 운치를 더하고

반영되는 도계서원의 그림같은 풍경이 한폭의 산수화같습니다.  

 

노계선생은 원래 무신였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동하여 공을 세우고

후에 무과에 급제하여 조정에 출사를 하지요

 

 

 

서원 입구 좌측에 세워진 蘆溪詩碑입니다.

 

 

 

도계서원(道溪書院)

일반적으로 서원이라면 건물이 여럿채 있는

규모가 제법 크지만 도계서원은 단촐한 규모로 작습니다.

비록 서원의 규모는 작지만 그 속 깊이는 큰 것 같습니다.

 

 

 

노계(蘆溪)·박인로朴仁老선생은

경북 영천에서 1651년(명종 16)에 태어나 임란 때 의병으로 활동하고

39세 비교적 늦은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갑니다.

본관은 밀양. 자는 덕옹(德翁), 호는 노계(蘆溪무하옹(無何翁)이며

 9편의 가사와 70 수의 시조를 남겼으며, 정철·윤선도와 더불어

조선 3 시가인으로 불립니다.

 

 

 

 

 

 

 

문이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 가보지는 못했으나

옆 담장 너머로 기웃거려 봅니다.용무가 있으신 분은

사전에 연락을 달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습니다.

 

 

담장 너머로 본 도계서원 내부 모습입니다.

 

 

 

 

 

八德廟 사당 오르는 계단입니다.

 

 

팔덕묘

노계 박인로 선생의 위패을 봉안한 곳입니다.

 

 

 

 

 

 

 

 

 

박노계집 판목(朴蘆溪集 판板木)이 보관되어 있는 곳입니다.

 

노계선생은 어려서 부터 특히 시재에 뛰어나 13세에 한시를 지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수군으로 종군,선전관을 거쳐 만호를 지냈다.

도학과 애국,자연 사랑을 사상적 바탕으로 전쟁중에도 시정과

구국충정이 넘치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40세 이후 은거하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문인활도을 하였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태평가,사제곡,누항사,선상탄,독락당,영남가,노계가 등 9편의 가사와 오

륜가,조홍가 등 67수의 시조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노계집은 한시문과 가사,시조를 수록한 3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판목분량은 99매입니다. 그가 시조를 즐겨 지었으나

국문학사에 있어서 그의 위치는 가사문학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현지안내문>

 

 

 

 


 

선생은 서원에서 약 200여 미터 떨어진  반대편 야산에 잠들어 계십니다.

 

 

노계(蘆溪박인로(朴仁老) 묘소

 

 


 

盤中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柚子아니라도 품은즉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이 옶을새 글로 설워하노라 』

 

소반에 놓인 붉은 감이 곱게도 보이는구나

비록 유자가 아니라도 품어 갈 마음이 있지마는

품어가도 반가워 해 주실 부모님이 안계시니 그를 서러워 합니다.

 

노계선생이 41세 때 지은 조홍시가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가득 묻어 나는 詩입니다.

 

부모님에 대한 나의 孝는 어떤가?

다시 한번 뒤돌아 보는 계기로 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