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풀꽃이야기

여름이 왔음을 알리는 꽃,화려하지만 슬픈전설을 가진 꽃,능소화

安永岩 2015. 6. 26. 02:16

매일 죽도시장을 오가며 남의 집 담장너머로 보이는 꽃들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때를 기다리는 꾼처럼...즉 수국꽃이 피기 시작하면 아.지금쯤 연화도에는 다스한 남쪽이니까 수국꽃이 만개하였겠구나!

그럼 태종대 태종사 수국은 다음쯤에 만개이겠네...뭐,이런씩으로

꽃의 절정시기를 맞추고 있다가 갈 일이 있으면 반드시 그곳을 들리지요.

능소화가 활짝 피었습니다.

봄의 꽃잔치가 끝나갈 즘에 딱히 여름꽃들이 필똥말똥 어중간 할 때 활짝피어 우리를 즐겁게 하는 능소화입니다.

우리동네 어느 원룸 담벼락에 오래된 능소화 한그루가 마치 부채를 펼쳐 놓은 듯이 모양도 잘생겼고

생육도 좋고 활짝 핀 꽃들이 너무나 화려합니다.

능소화가 잘 자라도록 받침대와 발을 엉기설기 설치하여 성장을 돕고,자연퇴비를 듬뿍 주어 잎과 꽃이 윤이 납니다. 

나무나 꽃이나 주인장의 정성을 먹고 자란다고 하지요. 

주인장의 정성이 느껴지는 아름답게 잘 자란 능소화입니다.

 

  

 

능소화 !

고즈넉한 옛 시골 돌담은 물론 삭막한 도시의 시멘트 담, 붉은 벽돌담까지 담장이라면 가리지 않치요.

담쟁이덩굴처럼 빨판이 나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달라붙어 아름다운 꽃 세상을 연출합니다.

가장자리가 톱날처럼 생긴 여러 개의 잎이 한 잎자루에 달려 있는 겹잎이고,

회갈색의 줄기가 길게는 10여 미터 이상씩 꿈틀꿈틀 담장을 누비고 다니는 사이사이에

나팔모양의 꽃이 얼굴을 내밉니다.


 

 

 

 

참으로 잘 키웠지요.

꽃을 보면 그 주인 됨됨을 안다고,이 능소화를 키우신 분은 진정 꽃나무사랑을 알 것 갔습니다.

이 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그냥지나치지를 못하죠.

스마트폰이라도 들이 밀어야겠죠.

그만큼 아름답게 키운 능소화입니다.

 

 

 

연붉은 능소화의 꽃들이 주렁주렁 화사하게 달렸네요

잎과 꽃들의 생육상태가 너무 좋네요.

 

 

 

원룸과 앞 집 담장 사이로 난 주택들어 가는 입구입니다.

그 길에 다른 여러가지 꽃나무들도 줄을 서 있습니다.

헌데 마치 시기라도 하듯이 다른 꽃들은 없이 지금 능소화만이 꽃대궐 잔치를 합니다.

능소화의 줄기를 보세요.연륜이 느껴지는 능소화입니다.

철근으로 수평지지대를 받치고 줄을 엉기설기 설치하여 잘 자라도록 해 놓았습니다.

 

 

 

이웃한 담장너머로 늘어 뜨린 능소화 줄기입니다.

 

 

꽃은 그냥 주황색이라기보다 노란빛이 많이 들어간 붉은빛입니다.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느낌이 듭니다. 다섯 개의 꽃잎이 얕게 갈라져 있어서 정면에서 보면 작은 나팔꽃 같습니다.

옆에서 보면 깔때기 모양의 기다란 꽃통의 끝에 꽃잎이 붙어 있어서 짧은 트럼펫이 연상되지요.

꽃이 질 때는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져 날아가 버리는 보통의 꽃과는 달리 동백꽃처럼 통째로 떨어지지요. 

그래서 시골에서는 흔히 처녀꽃이란 이름으로도 불려진다.

꽃은 감질나게 한두 개씩 피지 않고 원뿔모양의 꽃차례에 붙어 한창 필 때는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이 피지요.

한번 피기 시작하면 거의 초가을까지 피고 지고를 이어갑니다.



 

 

 

낙엽성 덩굴식물인 능소화는 여름이면 고운 주홍빛으로 전국의 담장을 장식합니다.

능소화 가지에는 담쟁이덩굴처럼 흡착근이 있어 벽에 붙어서 올라가고 다 자라면 그 길이가 10m에 달하죠.


 

 

 

능소화라는 이름은 업신여김을 의미하는 ‘능()’ 자와 하늘을 의미하는 ‘소()’ 자를 합쳐 만들어졌다는군요.

하늘을 업신여길 정도로 높이 자라는 꽃. 능소화의 생태를 잘 설명하는 이름입니다.


 

 

 

능소화는 예부터 양반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합니다.

()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의 독자라면 바로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소설 속에서 능소화는 최참판댁 가문의 명예를 상징하는 꽃으로 등장하기 때문이죠.

또한 능소화는 조선 시대 과거시험 장원급제자의 화관에 꽂았던 꽃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한 연유로 일반서민이 능소화를 심어 가꾸면 곤장을 쳐 다시는 심지 못하게 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들립니다.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 '영광'입니다.

이보다 더 능소화를 통찰하는 꽃말도 없을 듯합니다.

 

 

 

 

조선 시대 양반들이 자신의 모습을 능소화에 투영한 것은,

아마도 거센 장마를 견뎌내는 능소화의 강인함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봄비 한 번이면 허무하게 꽃잎을 어지럽게 바닥에 흩뿌리는 벚꽃과 달리,

능소화는 활짝 핀 꽃을 송이 채 툭툭 떨어트리면서도 의연하게 여름 내내 꽃을 피워냅니다.

또한 능소화는 명줄을 끊어내고도 결코 목련꽃처럼 남루한 행색을 보이지 않습니다.

시들기 전에 가지와 이별을 고하는 능소화의 모습은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자의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아 처연합니다.

비에 젖어 담장 아래를 덮은 능소화의 낙화는 가지에 매달린 꽃송이보다 찬란합니다.

전 동백 외엔 능소화처럼 낙화까지 아름다운 꽃을 본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능소화이지만 이외로 슬픈전설을 가진 꽃입니다.

 

궁궐에 얼굴이 예쁜 '소화'란 궁녀가 있었답니다

임금의 눈에 띈 궁녀는 빈의 자리에 올랐고

처소는 마련되었지만 임금은 하루 밤 이후 한 번도 빈을 찾아오지 않았지요

수많은 빈의 자리에 오른 여인네들의 온갖 구설수에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

궁궐 가장 구석진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고 소화 궁녀는 심성이 여려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가슴앓이로 살아야 했습니다.

 

혹시나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오지는 않을까

담장에서 발자국 소리라도 들리기만 하면 화급하게 달려가기도 하고

그림자라도 보고 싶어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여름 어느 날 소화 궁녀는

그리움에 사무쳐 상사병이 들어 식음을 전폐하다가 그만 세상을 뜨게 되었답니다.

 

한 번의 권세도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그녀의 죽음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고

내일이라도 오실 임금을 기다리겠노라고 유언을 했는데

곁에서 지켜보던 시녀들이 담장 가에 묻었다고 합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어느 한여름 날

모든 꽃과 풀들이 더위에 눌려 고개를 떨굴 때

빈의 처소를 둘러친 담을 덮으며

주홍빛 잎새를 넒게 벌린 꽃이 넝쿨을 따라 주렁 주렁 피어났는데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높게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고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으니

이 꽃이 바로 능소화라 전해집니다.

 

능소화의 꽃말보다 꽃에 얽힌 전설에 더 마음이 갑니다.

하룻밤 사랑을 나눴던 임금님이 다시 처소로 찾아오길 오매불망 기다리다 쓸쓸히 세상을 떠난 궁녀 '소화'.

기승을 부리는 더위에 모든 꽃들이 숨을 죽이던 한여름에 홀로 꽃으로 피어나 생전에 머물던 처소의 담장을 덮은 여인.

소화 !

그토록 처절한 그리움에 하늘 높게 수만송이 붉은 꽃송이를 피웠는가?

 

능소화의 또 다른 꽃말은 ‘그리움’입니다.

 

 

<2015,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