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집寺刹이야기

[서울절집여행]부처님오신날 맞이 서울 봉은사 봉축연등 풍경

安永岩 2018. 5. 12. 22:40

 서울병원 가는 길에 잠시 들린 奉恩寺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왠 비가 소나기처럼 내립니다.

생애 첫 방문한 봉은사인데...날씨가 받처주지 않네요.

우산들고 경내를 한바퀴 훌딱 돌아 봅니다.

강남 도심속의 아니 빌딩속에 봉은사절집의 풍경을 꼭 보고 싶기도 했고,그 느낌은 어떨까? 궁금했고요.

결론적으로 경내를 돌아 보니 바로 앞이 대로변이라 차량 소음과 함께  빌딩속에 위치한 봉은사가

참으로 용하게 잘 견디고 있네~'싶다. 이 비싼 강남 한복판에서 ~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속에 들어가 파묻혀 고개를 들지 않으니 오히려 산속에 들어 온 듯 한 착각이 듭니다.

봉은사를 감싸고 있는 수도산의 숲 때문인 듯 합니다.

수도산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그 둘레길의 풍경은 어떤지~ 수도산에서 바라 보는 봉은사는 어떤 풍경인지~

이 모든 궁금증은 시간이 나는 대로 둘러 볼 요량이다.


이하 사진 위주 부처님오신날 맞이 봉은사의 연등풍경을 올립니다. 


 

내가 아는 서울 봉은사는 강남의 비싼 땅 삼성동에 위치한 도심속의 절집이고,

삶에 찌든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어 주는 절집이다! 정도?

검색하니,

봉은사는 신라시대의 고승 연회국사((緣會國師)가 794년(원성왕 10년)에 견성암(見性庵)이란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며

이후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는 견성암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조선시대 들어 견성암은 수도산 아래 현재의 자리로 옮기면서

이름도 봉은사로 고쳐 부르고 당시 불교중흥의 중심도량으로 자리 잡았다.

봉은사는 문정왕후 와 당대 고승인 보우대사와 관련이 많은 사찰이고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 속에서 조선불교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러니까 명종의 임금의 모후 문정왕후가 누구인가? 어린 아들을 대신하여 8년간 섭정한 여걸이 아닌가?

그랬던 그녀가 봉은사의 주지로 보우대사를 임명하여 조선불교의 명백을 유지하였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봉은사에서 승려는 뽑는 승과고시를 실시하였다고 하니 억불정책의 기조속에 대단한 사건였을 것 같네요

봉은사가 더욱 유명했던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서산,사명,벽암 등의 고승들이 주지로 지냈다는 것이고,

조선 후기 문예부흥기에 많은 시인묵객들이 드나드는 명소가 되었는데

그 중에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라고 하네요

특히 추사 김정희의 최후의 명작,板殿현판 글씨가 봉은사 판전에 걸려 있습니다.



 봉은사 연들들...

특히 일주문에서 법왕루까지 길게 걸린 연등이 이색적입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씨 속에서도 연등전기작업을 계속하고 있어 우려 속에 돌아 봅니다.


 법왕루 앞 연등


 

 

 

 

 

 봉은사 화장실 앞에서 바라 본 앞쪽 풍경


 



 왜,봉은사가 도심속의 절집인지 알 것 같습니다.



 봉은사 법왕루


봉은사는 일주문인 '진여문'을 지나 낮은 계단을 서서히 오르면 보제루인 '법왕루'를 만나고

그 아래 계단을 통과하면 3층석탑이 있는 마당 위로 대웅전을 만납니다.



 

봉은사 대웅전 앞 연등


 



 

봉은사 지장전 앞에 걸린 백등들...


 

봉은사 대웅전 앞 형형색색 연등들...

연등 위로 보이는 빌딩이 묘한 느낌을 주네요,


 



 

 


 대웅전 앞


 대웅전 옆 소각장

봉은사 앞과는 달리 뒤쪽으로 숲이 가득한 수도산 기슭의 숲내음이 가득합니다.


 

봉은사의 홈페이지 첫 머리글이 '도심속 천년고찰 봉은사'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봉은사 제일 윗쪽에 자리한 '북극보전'입니다.

흔히 삼성각,칠성각이라고 부르며 내부에 산신칠성독성(나반존자)를 모시고 있지요

기도도량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미륵대불

10년간의 큰 공사 끝에 완공한 봉은사의 성보입니다.

높이가 23m로 국내 최대 크기라고 합니다.


 영각

봉은사 개산조인 연회대사외에 봉은사 관련 큰 스님의 7분의 진영을 모신 법당입니다.


 



 미륵전

미륵대불 앞에 조성된 미륵전입니다.

옛 법왕루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였다고 하네요



 

 

 


 

 

 

 

 

 

봉은사 板殿


 화엄경소초 81권외 현재 약 3,438점의 판본을 보관하고 있으며 봉은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특히 판전 편액은 추사 김정희선생의 마지막 글씨로 유명하다.


 

板殿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83호 /시대 : 1856년(철종7)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73번지 봉은사


 이 현판은 조선 후기 문인서화가 추사 김정희(金正喜 : 1786~1856)가 쓴 것이다.

1856년(철종7)에 영기스님이 새긴 <화엄경수소연의초>등의 경판을 봉은사에 안치하기 위해 법당을 지었다.

이 현판의 크기는 세로 77cm,가로181cm이다.

김정희는 1852년(철종3)에 북청의 유배지에서 풀러난 뒤 고천에 있는 과지초당(瓜地艸堂)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봉은사를 왕래하다가 1856년 10월 10일에 별세하였다.이 현판은 그가 별세하기 사흘 전에 썼다고 전해진다.

이 현판 글씨는 어리숙하면서도 굳센 필세를 드러낸다.특히 '殿'자의 왼삐침을 곧게 내려 누른 점이 돋보인다.

말미에 '칠십일과병중작(七十一果病中作,71살 과천 늙은이가 병중에 쓰다)'이라고 낙관하였다.

'果'자는 김정희가 과천에 머물던 때의 別號인 과로(果老).과옹(果翁)을 의미한다.

꾸밈이 없는 졸박(拙撲)한 글씨에서 김정희 말년의 청정무구(淸淨無垢)한 심상을 엿볼 수 있다.

<현지 안내문>


 

 



 이제 봉은사를 떠납니다.

기회가 되면 다시 찾아 수도산도 올라 보고 경내 전각들도 살피고 

색다른 도심속의 천년고찰 절집 풍경도 담아 보고 싶네요.

부처님오신 달,5월,부처님의 자비심이 온누리에 널리 퍼저 지친 심신을 바로 세우고

이웃과 함께 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부처님의 자비심이 가득하기를 기원해봅니다.

부처님의 마음,자비심입니다.

-2018,5,2,저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