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집寺刹이야기

[서울] 대한불교총본산 조계종 조계사(曹溪寺)

安永岩 2014. 1. 28. 14:33

대한불교총본산 조계사는 처음 방문이 아니고

서울에 올라 갈 때마다 특별히 바쁘지 않으면

꼭 들러서 참배하고, 옆에 살고 있는 친구가게(종로3가)를 들리지요

오늘(1/16)도 모처럼 인사동거리 풍경을 보고 조계사에 들렸습니다.

얼마전까지 코레일 노조집행부가 은신하여 화제가 되었는데

오늘은 평온합니다.

우리 사회가 위,아래 모두가 잘 사는 지혜를

모아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조계사에 들리니 그러한 생각이 더 듭니다.

있는 분들은 힘들게 사는 분들을 살피고, 어려운 사람들은 용기 잃지 말고

더욱 더 힘내시고 열심히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돈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지만

죽으면 한푼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살아서 모두 베풀고 가야지요.

그래서 극락에서 편히 지내야지요.

 

 

     조계사曹溪寺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55
            종로구 견지동 45(지번)

 

조계사는 서울 종로 도심지속에 자리 잡은 사찰입니다.

바쁜 도시민들의 안식처로써 심신을 달래주는 곳이며 바로 한 브록 건너편에

유명한 인사동이 있기 때문에 외국인 한국 사찰탐방의 일번지이지요

또한 조계사는 우리나라불교의 총본산이며 조계종 총무원이 있는 곳입니다.

총무원의 권력이 대단하지요. 전국사찰의 주지를 임명하고 관리를 하다 보니

자연히 권력과 돈이 한곳에 집중되는데 그로 인한 불미스러운 이권싸움도 

벌어지기도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지금은 조용하지만스도...예전에는...?

정치권에서도 총무원의 눈치를 보고 무슨일이 있으면 찾기도 하고

노조집행부들의 은신처로 이용되기도 하는  곳이 조계사입니다.

그러나 좋은 일을 훨씬 더 많이 하는 곳이 총무원입니다.

매년 해가 바뀌면 명동에 성당처럼 신년 덕담 법어를 발표하여

골이 깊게 패인 우리사회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합을 강조하기도 하며

전국에 있는 수많은 사찰의 여러 문제점과 갈등을 조정하는 역활을 합니다.

날로 비대해지는 총무원이지만 그래도 있어야 하는 중앙 총무원입니다.

 

 

 

'대한불교총본산조계사'이란 현판이 걸린 일주문이 웅장합니다.

일주문에는 특이하게도 네기둥에 철강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사천왕상이 있습니다.

일주문과 사천왕이 함께 있습니다.

전에 걸린 기둥의 주련은 보이지 않지만...

 

  

 

현판글씨는 현대의 명필,松泉 鄭夏建선생님(現 한국서예가협회 회장)께서 쓰셨습니다.

 

 

 

  

들어 가면서 좌측에 일자로 서 있는 조계사 종무소입니다.

서울의 조계사는 산속의 절집과는 다릅니다.

우선 당우가 없지요.대웅전,극락전,종각,사리탑이 전부입니다.

그 외에 필요한 종무소,회관,기념관등이 있지만...

산속의 범위가 어마어마한 통도사나.해인사나,송광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하지만 이 곳에는 제일 어르신인 총무원 원장이 계시는 절집입니다.

 

 

 

   조계사 법당인 대웅전입니다.

   조계사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변한 것이 없는가 싶네요

   우리나라 총 본산치고는 단촐한 절집입니다.

   도심 한가운데 있다보니 그런가 봅니다.

   금싸라기 땅에 이만한 부지가 왠걸요? 돈으로 환산하면~~ㅎ

   십사리 계산이 서질 않습니다.

   이 날도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갑니다.

   항상 붐비는 조계사입니다.

  

 

   조계사 대웅전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단층 건물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1937년에 현 위치에 세워 졌으며 정면 7칸,측면 4칸이며

   팔작지붕아래 받침부재를 겹겹 배치하여 처마를 길게 내민 웅장한 모습입니다.

   2000년 서울시지방문화재 제127호로 지정되었고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정부의 지원과 불자들의 후원으로 중수하였습니다.

 

 

  

  사리탐입니다.

  탑돌이 하는 신도들이 많습니다.

  법당에 들어 가지 못한 대신에 탑을 돌면서 기도합니다.

  

 

  

 대웅전 안에 모셔진 불상의 크기가 대단합니다.

이날은 '동안거 포살법회'가 있어 많은 스님들이 법당에 계셔서 

들어 가지 못하고 밖에서만 참배합니다.

고개를 내밀어 살짝 보니 큰스님께서 설법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동안거에 들어 가는 스님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대웅전의 단청과 창살

 

 

 

 

 

 

대웅전 옆에 극락전입니다.

전에는 단청을 하지 않은 순수하고 깨끗한 기와집였는데

이번에 보니 단청을 화려하게 했네요

물론 건물의 손상을 방지하고 오래가기 위해서는 단청를 하지요

 

 

 

   극락전 옆에 종각

 

 

 

 

스님들의 신발

이 날은 전국에서 올라 온 듯한 스님들의 신발이

법당 주위로 가득했습니다.

 

 

 

 

 

조계사의 법당 외벽에 그려진 부처님의 일대기 벽화들입니다.

 

 

 

 

 

 

 조계사는

1911년 한용운과 이회광이 중동중학교 자리에 각황사(覺皇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합니다.

1915년 포교와 교육사업을 위해 31본산 연합사무소를 설치했으며, 1929년 승려대회를 열어

조선불교 선교양종의 종헌을 제정하고 중앙교무원을 설립했습니다.

 

 

 

 

 

 

 

1937년 조선불교총본산을 설립하기로 결의하고, 17만 원의 경비를 들여 1938년 각황사를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지요.

 이때 삼각산에 있던 태고사(太古寺)를 이곳으로 옮겨오는 형식을 취해 절이름을 태고사로 바꾸었습니다.

1955년 이 절을 중심으로 불교정화운동이 전개되면서 다시 절이름을 조계사로 고쳤는데,

 현재 대부분의 절은 조계종에 속해 있습니다.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현대식 건물인 불교회관과 불교역사문화기념관 등이 있으며

대웅전 앞뜰에 있는 사리탑은 1930년 스리랑카의 달마파라(達摩婆羅)가 가져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1과를 봉안한 것입니다.

그밖에 상원사(上院寺)에서 가져온 동종이 있고, 경내 천연기념물 9호인 백송() 있지요.

 

 

 

 

 

천년기념물 제9호 조계사 백송(白松)

 

서울 조계사 백송은

키 14m, 뿌리부분 둘레 1.85m이고, 나이는 약 500년으로 추정합니다.

조계사 대웅전 옆에서 자라고 있으며, 중국을 다녀온 사신이 심은 것으로 전합니다.

서울에 백송이 많은 것은 중국을 다녀오는 사신들이

백송을 자기 살던 지역에 많이 심었기 때문이고 하네요.

 

“껍질이 비닐처럼 벗겨지는 백송”

백송은 나무껍질이 어릴 때는 푸르스름한 빛을 띠다가

나이가 들면 큰 비닐조각처럼 벗겨지고

흰빛을 띠기 때문에 ‘백송’ 또는 ‘백골송(白骨松)’이라고 불린다.

중국에서는 백송의 나무껍질이 마치 호랑이 가죽과 닮았다고 해서

 ‘호피송’으로 부르며, 북한에서는 ‘흰소나무’라 한다.

나무껍질은 아주 얇고 연해 상처를 입으면 파란색의 액이 밖으로 흘러나오는데,

마치 피를 흘리는 것 같다. 보통 소나무 잎은 두 개씩 모여 달리는데

 백송의 잎은 세 개씩 모여 달려 ‘삼엽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계사 백송은

 조계사 뜰 안 대웅전 옆 가까이 서 있고, 대웅전 쪽으로 뻗은 가지만 살아있다.

나무의 한쪽은 사람들이 오가는 통로에 바로 접해있고,

다른 한쪽은 건물에 인접해 있어서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고

생육상태도 좋지 않은 편이다. 백송은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소나무이고,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다음백과사전>

 

이 백송이 산속에서 자라야 할텐데...

좋지 않은 서울 도심 한가운데 환경속에서...

우째 됄꼬?...

 

 

 

 

 

 

 

 

 

 

 

 

거대한 불상앞에 앉은 스님들이 보입니다.

 

 

 

조계사 대웅전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단층 건물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합니다.

1937년에 현 위치에 세워 졌으며 정면 7칸,측면 4칸이며

팔작지붕아래 받침부재를 겹겹 배치하여 처마를 길게 내민 웅장한 모습입니다.

2000년 서울시지방문화재 제127호로 지정되었고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정부의 지원과 불자들의 후원으로 중수하였습니다.

 

 

 

조계사 종각

 

 

사리탑

뒤편은 관음전입니다.

 

 

 

관음전 외벽의 벽화

 

 

 

동안거 포살법회를 마치고 나오신 스님들의 기념사진촬영

 

 

동안거(冬安居)

겨울 음력 시월 보름날부터 이듬해 정월 보름날까지, 승려들 일정한 머물며 닦는

 

 

 

한번에 이렇게 많은 스님들을 대하긴 처음인가 싶습니다.

 

 

못난 중생들의 아픔을 아우러는 대중의 스님들이기 때문에 그대로 얼굴을 공개합니다.

 

 

동안거 동안 수도 정진하여 참스님의 得을 얻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하나 같이 미소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비구스님들의 모습입니다.

 

 

 

 

큰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오신 스님들께서

서로 덕담을 나누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우정총국(郵征總局) 사적 제213호

우리나라 최초우체국,

조선말기 우편업무를 담당했던 관청입니다.

1884년에 설립이 되었으며 조계사와 같이 있습니다.

 

 

 

충정공 민정환선생님의 집터가 조계사 경내라는 사실은 오늘 처음 알았네요